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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홀]D+465~470,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본문

14-15 호주 워킹홀리데이 /Second

[호주 워홀]D+465~470,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Yildiz 2016. 4. 11. 01:55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11월 28일 토요일 일기 )

 

 

 

간밤 꿈에서, 아기코끼리가 전깃줄 위를 걸어다니고 큰 코끼리 세마리가 엉덩이를 덩실덩실 흔들며 달려가는걸 봤다. 이런저런 꿈 드라마를 실컷 보고 잠에서 깰 즈음엔 "직업을 구하지 말고 경험을 구하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들었다. 코끼리꿈 해몽을 보니, 코끼리 탈만한 기개가 나한텐 없구나 싶다 힝 ㅠ

 

From 페이스북 담벼락 기록 @ July 23, 2015 

 

 

 

 작년에 꾼 꿈에서 들은 지혜-

 

"직업을 구하지 말고 경험을 구하라"

 

 

   몇 개월이 지난 지금에도 가끔 생각나는 문장이다.

   

호주에서 평화롭고 여유롭게 사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비교해왔던것 같다. 난 고작 워홀 비자를 갖고 있는데 말이다.

  

힘들다고 징징대고,

마음대로 안 풀린다고 속상해해도.

  

이 경험들이 다 헛 것은 아니니께.

마음껏 맛을 봐야 아숩지 않겄지.

 

 

 

 

 

번버리에 처음 도착한 날, 마트 주차장에서 찍은 사진.

이제 거의 2년이 되어가는 사진이네...

시간 참.. ㅠ_ ㅠ.. 야속하다..

 

 

PHOTO BY HESHER @ Bunbury, WA, Sep, 2014

 

 

 

 

(2015년 11월 23일 월요일)

#굴러들어온 '일자리'를 거절하다

 

새로운 월요일 시작! 12월이 코앞인데, 이번달 안으로 일을 구하지 못하면 '망한다'는 간절함을 가지고 월요일을 맞이했다. 남자친구는 아침출근을 위해 차를 가져 갔기 때문에 혼자서 발품 팔기도 애매했다. 대신 온라인으로 여러곳을 지원해야 했다.

 

여러번 이력서를 내고 Seek어플로 지원했는데도 도통 연락이 오지 않는 고기 공장 McLoughlin Butchers에 이력서를 또 냈다. 이번에는 "내게 트라이얼을 할 수 있는 기회를 달라."는 말을 덧붙여서 신청했다.

 

그리고 그 기회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

 

인사담당자가 점심쯤 내게 전화를 걸어 오늘 인터뷰 보러 올 수 있는지 물었다. 이게 꿈인지 생시인지. 무척 긴장되었다.

드디어 내게 연락이 왔다는 기쁨과 맥러힌 고기 공장이 집에서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거리감과 쉐어하우스는 어디로 옮겨야 하나... 등...

 

지금 당장 해결할 수 없는 여러 질문들이 머릿속에서 펑! 하니 폭죽처럼 터져서 경황이 없었다. 자세한 사항을 메일로 보내준다고 하여 즉시 확인 후, 떨리는 마음으로 외출 준비를 했다.

 

구글맵으로 집에서 공장까지 가는 방법과 시간을 검색해보았다. 버스 한번 환승하고 한 시간 반정도 걸리고 자동차로는 20-30분 걸리는 거리다. 남친이 출근을 안했다면 나를 태워다 줬을텐데... 아쉽지만 초행길을 버스 타고 가는 것보다 택시 타는 것이 안전하고 실수가 없을 것 같아서 콜택시를 불렀다.

 

집에서 말라가 가는 길에 프리웨이Freeway를 타기 때문에 빨리 가는 편이긴 하지만 교차로에서 신호가 걸리면 시간이 좀 걸리는 편이다. 택시비가 많이 나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정말 많이 나왔다. 기본요금에 택시 부른 값까지 해서 37불이 나왔다. 마트 가서 비싼 거 사야 이 정도 나오는데. 한번의 택시 이용으로 시급의 2배 이상을 내는 거니.. 난 또 얼마나 더 일을 해야하는 걸까. 아쉬움을 품고 택시에서 내렸다.

 

3번째 찾아오는 이 공장의 외관이 오늘은 좀 달라보였다. 여기서 이제 일을 할 수 있는 걸까, 기대 반 걱정 반의 마음에 심호흡을 크게 하고 발걸음을 떼었다.

 

가게로 들어가 인터뷰가 있어서 왔다고 하니, 직원이 인사담당자를 불러왔다. 젊은 나이로 보이는 그녀는 노란 머리를 예쁘게 땋아 올린 머리를 하고 있었다. 그녀는 활짝 웃으면서 나를 맞이했다. 2층 사무실로 올라가는 길에 그녀는 내게 하고 싶은 말 대부분을 쏟아냈다.

 

"소세지 팩커가 필요해서 불렀어요. 아침부터 오후 2시 반에서 3시까지 소세지 팩킹만 하는데 괜찮겠어요?"

 

아, 소세지 팩킹이라... 해본 적이 있었기 때문에 못할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로테이션이 아닌 소세지 파트 고정이라면 고생할 각오를 하고 시작해야한다는 것도 경험해봐서 안다.

 

"예전 공장에서 해본 적이 있어서 괜찮아요." 라며 우선은 승낙을 했다.

"시급은 어떻게 되나요?"

 

"18.5불이에요."

 

뜨끔. 18.5불이면 캐주얼에게 주는 시급이 아닌데. 소세지 팩킹하는데 시간당 18.5불이면 굉장히 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 '하겠다' 라는 답을 주기 전에 공장 안을 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녀는 흔쾌히 따라오라고 한다.

 

번버리에 있는 고기 공장이 좋긴 정말 좋은 곳이었던 것 같다. 처음부터 그렇게 크고 좋은 곳에서 일을 했으니, 작은 공장의 시설과 배치가 복잡하고 그리 위생적이지 않다는 인상을 받기 충분했다. 그녀는 만나는 사람마다 인사를 하며 나를 소개했다. 공장안 대빵으로 보이는 덩치 큰 슈바와 악수를 하며 인사를 했다. 그의 손은 단단한 나무토막 같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손에서 느껴지는 촉감과 에너지만으로도 그는 보통 경력을 가진 이가 아님을 꿰뚫을 수 있었다.

 

공장 안이 그리 큰 게 아니라서 생산 라인이 잘 구별되지 않았다. 작은 공간에 놓을 수 있는 기계는 빈틈없이 가져다 놓은 느낌이었다. 소세지 기계가 울월스 공장에서 봤던 것처럼 크진 않았지만 이 공장의 규모에는 맞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저 기계를 한번 돌리면 소세지가 얼마나 빨리 쏟아져 나오는지 잘 알기 때문에, 일하는게 좀 힘들 것 같았다. 그래서 Seek에서 광고를 계속 하는 걸까? 소세지 파트에 자꾸 구멍이 나서?

 

소세지 기계 끝쪽에 있는 테이블에서 5-6명의 스태프들이 질서없이 쌓여있는 소세지 무덤을 둘러싸고 팩킹하고 있었다. 아마 기계가 돌아갈 때 팩커들이 놓쳤던 소세지인가 싶다.

 

아까 샵에서도 언뜻 얼굴을 보았던- 동남아에서 온 것 같아 보이는 아주머니가 자꾸 눈에 띄였다. 안경을 쓰고 왜소한 몸짓의 그녀도 이곳에서 일한지 꽤 되어 보였는데, 첫인상이 그리 좋진 않았다. 무표정의 얼굴에 감정을 읽기 힘들었다. 어쩌면 새로 팩커가 온다는 말을 듣고 나를 평가하기 위해 힐끔힐끔 쳐다보는 건 아닌가 싶었다. 같이 일하면 어떤 타입일진 모르겠지만 피곤해보이는 스타일이었다.

 

'이 일을 한번 해볼 것인가, 아니면 아예 시작을 하지 말 것인가.' 재빨리 결정을 내려야했다.  

 

공장 안을 대충 보고 인사담당자와 함께 사무실로 올라갔다.

 

"전 캐주얼 잡을 찾고 있는데, 18.5불이 캐주얼 시급인가요?" 라고 물으니 인사담당자와 같은 방을 쓰고 있던 다른 직원이 풀타임 시급이라 하였다. 그리고 자신들은 풀타이머를 찾고 있어서 캐주얼 시급은 줄수 없다고 했다.

 

"네, 저는 캐주얼 잡을 찾고 있어서요... 괜찮을 것 같긴 한데, 그 시급으로는 좀 어려울 것 같네요. 미안해요."

 

인사담당자는 만나서 반가웠다며 내게 다른 일 찾는데 행운을 빌어주었다.

 

 

택시를 타고 여기까지 오면서 들뜬 마음이었는데, 10분 만에 그 흥이 다 깨져버리고 한숨만 푹푹 나왔다.

 

다시 택시를 타고 집에까지 가기엔 돈이 너무 많이 들고, 버스타고 가기엔 시간이 오래 걸려서 남자친구가 데리러 올때까지 근처에 있는 맥도날드에서 버티기로 했다. 공장에서 10분 정도 걸어서 맥도날드에 도착했다. 치킨랩 세트와 바닐라 쉐이크를 시키고 게임을 하며 허탈한 마음을 달랬다.

 

'내가 괜히 거절했나. 그 일을 했었어야 했나?'

 

일자리 승낙의 연락이 자주 오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굴러온 복을 내가 저절로 차버린 건 아닌지 하는 아쉬움이 없진 않았다.

하지만 줌에이전시의 시급이 21불이라는 것과 남자친구가 일하는 공장과 방금 다녀온 고기 공장 위치는 정반대에 있기 때문에 출퇴근이 문제였다. 줌에이전시 연락을 기다린게 얼만데, 내가 이 일을 성급히 시작해서 에이전시 연락을 놓쳐버리면, 정말 더이상 기회는 없다고 봐야할 것 같았다.

 

남자친구의 일이 늦게 끝나고, 빅팍에서 말라가까지 오는데 차가 막혀서 2시간 넘게 맥도날드에 있어야했다. 그나마 최근에 지어진 맥도날드라 시설 좋고 깔끔하고, 콘센트가 있어서 핸드폰 밧데리가 나갈 걱정 없이 편하게 있었다. 몸은 편했지만 마음은 무척이나 심란했다.

 

갑작스런 소나기에 풀이 죽은 꽃처럼 시무룩했다.

돈은 바닥나고 있고... 내가 할 수 있는 게 얼마 없다는 생각에 굉장히 쪼글쪼글 구겨지는 기분이 든 날이다. 

 

 

 

(2015년 11월 26일 목요일)

#두드려라, 열릴 때까지

 

매일 Seek과 검트리Gumtree를 살펴보며 내가 지원할만한 일이 있나 살펴보았다. 샐러드 공장에 대한 기대도 갖고 있으면서 말이다.

아침 일찍 남친은 일하러 가고, 나는 줌 에이전시 직원인 A양에게 굿모닝 메일을 보냈다.

 

내 남자친구는 일을 구했는데, 나는 아직도 기다리고 있어요. 샐러드 공장에서 일하고 싶으니 꼭 기회가 왔으면 좋겠어요. 당신에게서 좋은 소식이 들리길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충 이런 식의 내용이었다.

 

아침부터 노트북 앞에 구부정이 앉아있자니 힘든 노릇이라, 빨래를 돌리고 밖에 널려던 참이었다. 혹시 몰라서 핸드폰도 함께 1층으로 갖고 내려갔었다.

 

반가운 진동이 울렸다. 줌Zoom 에이전시에서 온 연락이었다.

 

"프리모에서 일을 할 수 있는데 프로덕션 파트가 아니라 클리닝 파트인데 괜찮겠어요?"

 

클리닝 파트라... 생각지도 못한 포지션이었다. 거기다 나이트 시프트라니.

 

"계속 일하다가 프로덕션 파트로 바꿀 수도 있나요?" 내가 물었다.

 

"물론이죠."

 

월요일부터 토요일까지 주 6일 일하고 저녁 8시부터 자정까지 일한다고 그녀가 알려주었다. 안하겠다고 하면 더이상 내게 연락이 올 것 같지 않아서 한다고 대답했고, 그녀는 공장에 상의를 한 후 자세한 내용을 메일로 보내준다고 했다.

 

마침 남자친구 공장 점심시간이었어서 A에게 전화를 받았다고 알렸다.

 

"그래? 잘됐네... 근데 우리 공장에서도 곧 여자 뽑을거라는데..."

 

남자친구의 말에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다.. 남친의 공장에 가서 같이 일을 할 것인가, 아니면 샐러드 공장 클리너인가...

 

남친과 같은 곳에서 일하면 출퇴근이 편하니까 좋은데 아쉬운 점은 주 4일만 일한다는 거였다. 반면 클리너로 일하면 토요일에도 일할 수 있다. 토요일에 받는 1.5배의 시급은 무시못할 어마어마한 장점이다.

 

어떤 선택을 해야할지 몰라 갈등하느라 에이전시에서 온 전화를 일부러 받지 않았다. 누군가 내게 "바로 이거야. 이걸 선택해!" 라고 신통방통한 해답처럼 알려줬으면 하는 심정이었지만 선택과 행동은 오롯이 내 책임이기에 남에게 부탁할 수 없는 노릇이었다.

 

태풍처럼 회오리치는 마음을 끝내 가라앉히고 에이전시에 전화를 걸어 전화를 놓쳐서 미안하다고 말했다. A는 내게 오후 3시까지 공장으로 가서 트레이닝을 받아야 한다고 당부하며 전화를 마쳤다.

 

오후 3시까지라... 곧바로 켜는 구글맵. 집에서 프리모까지 버스타고 가면 1시간 40분이 걸린다. 이럴수가. 초행길이니 택시 타는 걸로 정하고 이번에도 콜택시를 불렀다.  

 

저녁 8시부터 일하는 걸로 들었었는데 혹시 모르니 따뜻한 옷을 챙겨입고 지갑도 챙겼다. 통장에 택시비를 낼만한 돈이 아직 남아있어서 천만다행이다.

 

택시를 타고 가는 내내 미터기를 들여다봤다. 돈이 쑥쑥 올라갈수록 월요일에 낭패를 본 일이 생각나 조금은 걱정이 되었다. 35분 정도 걸려 공장 앞 주차장에 택시가 도착했을 땐, 내 가방에 하도 정신없이 소지품을 쑤셔넣었어서 지갑을 안 갖고 온 줄 알고 한 순간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었다. 다행이 지갑을 가져와서 카드 결재를 하고 공장안으로 들어갔다. (53불 택시비 결재.. 흡 ㅠㅠ 속쓰려라...)

 

담당자 L를 만나러 왔다고 리셉션에 말하니 곧 L이 나를 맞이했다. 그녀는 나를 QA룸으로 데려가 QA를 소개시켜 주고, 트레이닝을 받게 했다. 클리너 일은 화학약품을 다루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과 샐러드 공장에서 일을 시작하기 전에 지켜야할 사항들을 문제로 풀기도 하고 여기저기 문서에 사인을 했다. 8시에 일하는 건줄 알았는데 QA와 L의 말을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다. 에어전시에서 알려준 내용은 정말 새발의 피에 불과했다. 8시부터 12시까지 일하는게 아니라 요일마다 일하는 시간이 조금씩 다르고, 밤을 꼬박 새서 일해야하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네가 원하지 않는다면 이 일을 하지 않아도 괜찮아." 라며 L이 안쓰럽다는 듯이 말했다.

 

아직 해보지도 않았으니, 우선은 해봐야겠기에 "괜찮다."고 웃으며 답했다.

 

A가 알려준대로 저녁 8시부터 일하는 건줄 알았는데, 트레이닝이 끝나자마자 오후 4시부터 클리너 일을 하기 시작했다. 내가 점심을 싸오지 않은 것을 알자 L이 클리닝 슈바격인 M에게 나의 사정을 자세히 알려주었다.

 

"피쉬앤칩스 사먹을 수 있게 런치를 일찍 시작해줘요. 가게 문닫기 전에 말예요." 라며 말이다.

 

점심시간에 풀타이머로 일하고 있는 태국 워커들이 피쉬앤칩스까지 동행해줘서 다행이 뭐라도 먹을 수 있었고, 더 운이 좋았던 것은 EFPOS기계가 고장나서 카드 결재가 안됐는데도, 8불 현금만 받고 잔금은 다음에 가져오도록 허락해준 피쉬앤칩스 한국인 사장님의 은혜를 입었다.

 

프리모 클리너의 첫 날. 오후 4시부터 11시 15분까지 일했다. 첫 날에 이렇게까지 일할 줄은 몰랐다.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아니 상상 이상이었다. 울월스 고기 공장에서 봤던 클리너들의 일을 예상했었다. 기계를 닦고 하는 그런.. 하지만 그들의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게 아니었기에 다 안다고 할 순 없었다.

 

프로덕션 룸에 정신없이 쌓여있는- 상품화 되지 못한 야채 더미들을 쓸고, 쓰레기통에 담고, 넓은 팩킹 룸을 쓸고, 화장실과 런치룸, 오피스 청소하는 것을 배웠다. 7시간 가까이 대부분 내가 한 일은 빗자루로 쓸고, 무거운 쓰레기 더미를 삽으로 퍼서 쓰레기통에 넣고.... 빗자루로 쓸고, 쓰레기 버리고... 였다.

 

스몰 굿즈를 그만 두고 2달 넘게 '요가' 라는 운동을 했기 때문에 그나마 체력이 있지 않았나 싶다. 일 끝나기 20분 전에 M아줌마가 남친에게 전화하라고 알려주었다. 나를 데릴러 오기 위해 남친은 오고 가며 왕복 1시간 가까이 밤운전을 해야했다.

 

 

 

(2015년 11월 28일 토요일)

#내 마음은 오락가락

 

목요일에는 오후에 일했지만 금요일은 시작 시간이 달랐다. 월, 수, 금은 바쁜 날이라 밤 10시에 시작한다고 한다. 어제 10시부터 일을 시작해서 오늘 아침 7시에 일을 마쳤다. 처음으로 하는 밤샘 일이라 긴장되기도 했었고, 많이 피곤하기도 했었다. 실링 하는 기계를 닦느라 고개를 살짝 숙여 뚜껑을 올려다볼때는 눈알이 빠질것처럼 어지러웠었다.

 

그래도 일은 무사히 마쳐 오후 4시에 또 출근해야 했다. 일을 하면서도 마음이 오락가락했다.

일이 힘들긴 하지만 토요일에도 일하고, 공휴일에도 일할 경우 더블 페이도 챙겨주니 돈을 꽤 벌긴 할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잘 버틸 수 있을까 걱정이 되기도 했고, 무엇보다 기계를 청소할 때 쓰는 세제 냄새가 싫었다.

 

남친 공장에서 여자 파트가 하는 일은 굉장히 쉬운 편이라고 했다. 같이 일을 할까, 아니면 여기서 버틸까.

 

아무래도 호주에 와서 돈을 많이 모았다기보단 쓰기에 바빴으므로, 이번에 이곳에서 꾸준히 일한다면 어느 정도 만회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첫 페이슬립을 받아보고, 결정하기로 마음을 정했다. 계속 이 일을 할 것인지, 아니면 남친 공장에 TO가 생기면 그쪽으로 갈 것인지를...

 

 

 

 

 

 

 

+P.S

 

막판에 운이 따라준 것도 있지만, 내가 해볼만한 일에 포기하지 않고 계속 문을 두드렸던 건 잘한 일인 것 같다. 엄청나게 열정적인 것도, 재치있고 기발하게 위기를 모면한 것도 아니었지만 말이다. 난 여전히 부끄럽고 쑥스러움을 잘 타는 사람이기에, 똑같은 상황에 놓여도 특출나게 행동하진 않을 것 같다.

 

4개월이 훌쩍 지난 일들을 곰곰이 되돌아보며 쓰다보니, 그 당시 할 수 있는 것을 해보려고 했던 시도 자체가 결과를 떠나서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님을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내가 빚진 사람들에게 계속 얻어먹으려고만 꼼수를 써오지 않았나, 싶은 생각도 든다. 왜인지 모르게 꽁해 있는 내 마음에게 그만 고집부리라고 전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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