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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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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엄마로 산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

Yildiz 2017. 3. 9. 20:15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책과의 만남 

2016년 12월, 남자친구가 사고 싶은 책이 있다 하여 같이 서점에 갔었다. 거기서 책[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발견했다. 책 표지와 대강의 내용을 훑어보고, 이 책을 꼭 읽어야겠단 마음을 먹었다. 책은 도서관에서 빌려보았다. 

요즘 들어 더더욱, 빨리 결혼해서 아기를 가지고 싶은 생각이 없기 때문에, 내가 이 책에 관심 가질 이유가 별로 없었다. 평상시의 나라면 그랬을 것이다. 하지만 시간강사로 잠시 맡고 있던 학급에서 만난 특수아로 인해, 무언가 조언을 구하고 답을 찾아야만 했다. 

사실, 블로그에 이 책에 관한 글을 쓰면서 어느 정도 선까지 내가 경험했던 것을 써야할지는 모르겠어서 많이 망설였다는 점을 밝힌다. 자세히 쓰기에는 조심스러운 내용이라 생략하겠다. 한 아이로 인해 나는 육아에 대한 공포심을 느꼈고, 서점에서 발견한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를 읽으면서는 더 큰 좌절감과 공포심을 가지게 됐다.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국내도서
저자 : 수 클리볼드(Sue Klebold) / 홍한별역
출판 : 반비 2016.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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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의 저자 '수 클리볼드'는 '딜런'의 엄마이다. 딜런은 수의 둘째 아들이다. 1999년 4월 20일, 딜런은 친구 에릭과 함께 남몰래 계획했던 총기 난사를 자신이 다니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실행으로 옮겼다. 이게 바로 콜럼바인 사건의 간략한 내용이다. 워낙 인터넷 검색하기 좋은 세상이니까, 자세한 사건의 내용과 사진을 찾아볼 수 있지만 굳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 딜런의 엄마 '수'가 서술하는 그 날의 감정, 상황, 콜럼바인 이후의 세상은 어땠는지, 그녀는 어떻게 버텨왔는지를 읽다 보면 그 끔찍한 사건에 대해 눈으로 재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자꾸 떠올랐던 소설책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정유정의 최신작인 [종의 기원]이다. 무슨 내용인지 알지도 못한 채, 그저 '정유정' 이라는 세 글자를 믿고 냉큼 구입했던 책이다. 하지만 책장을 조금 읽다가, 너무도 끔찍해서 더 읽어가지 못했다. 몇 달이 지나야 책을 꾸역꾸역 다 읽을 수 있었다. 

종의 기원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6.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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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종의 기원]의 주인공은... 사이코패스 중 가장 상급이라고 일컫는 '프리데터'. 포식자이다. 소설 중간중간, 주인공의 엄마가 일기장에 기록한 내용들이 나오는데, 주인공의 과거에 대해 조금씩 알게 해주는 힌트로 역할을 했다. 수의 아들 '딜런'은 [종의 기원]의 주인공과 같은 악질 사이코패스가 절대 아니다. 하지만 그가 살인을 계획했고, 그것을 실제로 행했다는 것에는 누가 봐도 '악인'으로서 결론을 내릴 것이다. [종의 기원]은 사이코패스의 생각회로와 판단, 행동에 대해 대부분을 이야기했다면,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아들의 범죄, 아들의 자살 후에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가?" 에 대한 수의 과거 회상과 자책과 눈물로 얼룩진 기록이다. 


.305

... 딜런은 틀리거나 지는 일을 극도로 싫어했다. 자의식이 매우 강하고 스스로에 대해 비판적이었다. (가차 없는 자기비판도 우울증의 증상 가운데 하나다.) 딜런은 자기가 자립적으로 생각하고 싶어 했고 자제력이 있는 사람으로 비치려고 했다. 괴롭힘을 당할 때마다 이런 자아감이 심한 타격을 입었을 것이다. .. 

.. 남자아이들 여러 명이 딜런과 에릭을 조롱하고 밀치고 케첩을 뿌리면서 게이라고 놀렸다고 한다. 이 사건 하나만으로 어떻게 두 아이 사이에 치명적인 결속이 이루어졌는지를 설명할 수는 없을 테지만 이렇듯 굴욕을 함께 경험하면 유대감이 형성되기 마련이다. 


.307

딜런이 자기 학교생활이 어떤지를 그렇게 쉽게 숨길 수 있었다는 게 마음 아프다. 나는 아직도 말하지 않던 딜런의 상처를 발견하는 꿈을 꾼다. 어떤 꿈에서는, 아직 아기인 딜런을 목욕시키려고 옷을 벗긴다. 웃옷을 벗기고 보니 상체에 칼자국이 거미줄처럼 나 있었다. 그 꿈 이야기만 해도 또 눈물이 난다. 


.317

살면서 어떤 깨달음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특히 기도에 응답이 있고 일이 원하는 대로 풀리는 것 같은 때에는 더더군다나 예측하기 어렵다. 그때에는 딜런이 다이버전에 들어가게 되어 감사했다. 하지만 지금은 딜런을 청소년 교정시설에 보냈더라면 딜런의 목숨도, 딜런이 앗아간 목숨들도 살릴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328

... 지금은 그 싸움에 대해서 다르게 생각한다. 아들을 안아주며 사랑한다고 말했더라도, 아들이 자기 자신과 다른 사람을 해치는 일을 막을 수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더라도, 그 손을 잡았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이리 와 같이 앉아. 이야기하자.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주렴.' 딜런의 잘못을 낱낱이 읊고 무엇에 대해 감사해야 마땅한지 일러주는 대신에, 귀를 기울이고 딜런의 고통을 인정해주었더라면. 만약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면, 나는 이렇게 말할 거다. '네가 달라졌어. 그래서 겁이 나는 구나.' 

하지만 그때 나는 겁나지 않았다. 그랬어야 했는데 안 그랬다. 


.329

3학년 때 딜런은 내가 걱정할 필요가 없는 아이에서 늘 걱정을 일으키는 아이로 바뀌었다. 16년 동안 아무 말썽도 부리지 않다가, 갑자기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고, 부모와 다른 아이들과 충돌하고, 그리고 마침내는 법적인 문제까지 일으키고 말았다.


.350

삶이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었고 나는 에릭네 가족과 같이 저녁식사 자리를 마련해 다이버전 프로그램이 끝난 것을 축하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둘을 떼어놓으려고 애썼지만 둘 사이 관계에 대한 걱정은 많이 수그러들었다. 에릭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이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부모님이 철저히 감시하고 있었고 심리치료도 받기 시작했으니 말이다. ... 살다 보면 축하할 일이 많이 없기 마련인데, 이때만큼은 감사할 일이 정말 많았다. 


.370

.. 하지만 나는 진심으로 한 칭찬을 딜런이 농담으로 여기지 않기를 바랐기 떄문에 딜런의 야윈 턱을 두 손으로 잡고 눈을 똑바로 들여다보았다. 

"장난 아니야. 진심이야. 정말로 사랑해. 너는 멋진 사람이고 아빠와 나는 널 자랑스러워해." 

딜런은 당황한 듯 고개를 숙이고 고맙다고 웅얼거렸다. 


정유정의 [종의 기원]과 수 클리볼드의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는 장르도 다르고, 소재도 다르다. 하지만 '아이'를 가진다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주는데 공통분모가 있다고 할 수 있겠다. 


.349-350

"부모는 자기 아이를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자기가 낳아 기른 아기라도 전혀 모르기 십상이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다. 안됐지만 누가 사이코패스 거짓말쟁이인지 부모도 나만큼이나 오리무중이다."

-책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중에서 


"엄마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을 소재로 한 아주 좋은 영화가 있다. 바로 [케빈에 대하여] 이다. 2011년에 개봉했던 이 영화를 극장에서 봤었다. 예고편만 보고 궁금해서 보러간 영화였는데, 굉장히 강렬하게 내 기억에 남아있다. 


엄마 역은 틸다 스윈튼, 아들 역으로 이즈라 밀러가 맡았다. 영화가 종합예술이라는 것을 다시 한번 더 상기시켜준 영화. 작품성과 예술성을 고루 갖췄다고 생각한다.

영화정보 보기 > http://movie.daum.net/moviedb/main?movieId=64410


영화 속에 등장하는 케빈이 '딜런' 과 같은 우울증 증상을 갖고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영화는 과거와 현재를 교차하는 방식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부모가 케빈의 '계획'에 대해 알아챘다 하더라도, 총체적 파국으로 향하는 결말이 해피엔딩이 될 순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 인물' 인 딜런은 앞서 언급한 주인공들과 좀 다르다. 수는 자신의 아들이 스스로 해낼 줄 알고, 무난히 성장해가고 있다고 여겼다. 그러나 딜런은 우울증이 있었고, 꽤 예민한 성격이었다. 그가 힘들어하는 점, 터놓고 싶은 것을 일기에 쓸 줄 알았지만, 부모에게 직접적으로 도움을 청하지는 못했다. 딜런이 '파괴적인' 성격을 지닌 에릭과 같이 어울리다보니, 딜런의 수동적인 자기 파괴적 성향이 외부로 표출된 것으로 경찰에 의해 분석됐다. 만약, 딜런이 '총기 소지'가 합법이 되는 나라에 살지 않았더라면 다른 선택을 했을 것 같다. 그나마 덜 파괴적인 방식으로 표출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책에서 자주 언급하는 '뇌건강' 에 대한 문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다면, 아마 딜런은 나중에라도 스스로 '자살'이라는 선택을 했을지도 모르겠다. 실제로 딜런은 총기난사 이후, 그 자리에서- 학교에서 자살을 했다. 

수는 콜럼바인 가해자의 엄마인 동시에 자살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총기난사가 일어나기 전까지, 수와 그의 남편은 아무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그들이 얼마나 괴로웠을지, 나는 내 처지로는 상상이 잘 되지 않았다. 아들이 자살로 생을 마감했기에- '왜' 라는 이유와 더 이상 따듯한 말과 포옹을 나누지 못하는 것에 대해 그들이 얼마나 힘들었을지- 살아남은 자들- 혹은 아들로 인해 무고하고 희생된 아이들과 부모들에게 얼마나 미안했을지- 그 고통들이 수의 글 속에서 묻어나긴 했지만, 실제의 고통은 계산하기 힘들만큼 컸을 것이고, 지금도 이어지고 있을 것이다. 

나도 그것들을 감당할 수 있을까? .나는 아니겠지- 라고 장담할 수 없다. 나라고 그것을 피해갈 수는 없을 것이다. 


(아래의 내용은 책에서 옮겨 적은 문장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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