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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캐런의 이야기 본문

2011 Sleepless days n nights

12. 캐런의 이야기

Yildiz 2012. 4. 29. 02:12

 

 

#1. 캐런과의 재회

 

전날에 무척 아팠었다는 캐런은 나의 방문을 무척 반기며 본머스의 이곳저곳을 구경시켜 주었다.

화창한 날씨에 졸졸졸 흐르는 물소리가 너무도 좋았던지, 양말을 벗고 냇가에 발을 담그며 캐런이 하는 말.

 

 

"인생은 단 한 번뿐이야. 살아있을 때 충분히 행복해야해."

 

 

2008년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캐런과의 첫 만남 후, 이번이 두 번째 만남이다.

그 날은 우연히 마르코스를 다시 만나게 되고, 덩달아 캐런을 소개 받았었는데,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기 위해 영국에서 하루와 반나절을 걸려 왔다는 그녀의 이야기는

내 호기심을 사로 잡았었다.

 

그녀는 휴학을 하고 이런저런 여행을 하고 있다는 나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졌었고

그렇게 우리는 이메일을 주고 받으며 서로 연락을 하기로 했다.

 

페이스북으로 간간히 메시지를 전하며 지냈기에 그녀가 몸이 좋지 않다는 걸 알고는 있었지만,

3년만에 만나는 그녀는 예전과 달리 얼굴은 더 수척해보이고, 창백해보이기까지 했다.

 

본머스의 버스터미널로 마중 나온 그녀를 발견하고는,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어제까지만 해도 날씨가 좋지 않았는데, 오늘은 날씨가 무척 좋아.

오늘이 무슨 날인줄 알아? 7월 25일, 성 야고보의 날이야. "

 

 

나의 본머스의 방문이 7월 25일, 성 야고보의 날과 맞아 떨어질줄이야. 생각지도 못했었는데,

이 절묘한 우연에 캐런은 굉장한 의미 부여를 한다. 난 이 우연한 사건이 원래 이렇게 정해져 있었냐며 어리둥절해했지만

캐런이 무척 좋아하니, 좀 머쓱했지만 나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다.

 

 

 

 

 

내가 영국에 온 이유는 순전히 캐런을 만나기 위해서다.

캐런이 자신의 인생 이야기를 책으로 냈다는 소식을 듣고, 어떤 이야기일지 무척 궁금해하며

기대를 갖고 영국에 왔다.

 

그녀의 방에 도착하자마자, 그녀의 책을 선물로 받았다.

실제로 존재하는 곳일지도 모를 어느 폐허 사진을 표지 위로

'TREASURE'이란 제목이 크게 자리잡고 있다.

 

 

 

#2. 캐런의 Treasure

 

 

"내 삶은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 주인공과 꼭 닮았어."

 

스페인 안달루시아 지방의 어느 교회의 폐허에서 이집트 피라미드에 가면 보물을 찾을 수 있을 거라는 꿈을 꾼 후,

정말 자신의 보물을 찾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산티아고'의 여정을 그린 소설, 연금술사.

 

고등학생 때 대학 진학과 장래 진로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던 나에게

'연금술사' 는 또다른 세상을 보여주었다.

 

내가 아직 발자국을 내딯지는 못했지만

이 세상 어딘가에 존재하는 장소.

언젠가 나도 내가 원하는 곳에 가 닿으리라는 믿음,

내 안에는 뭔가를 이루어 낼 수 있는게 존재한다는 신념을 강하게 해준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캐런은 '연금술사' 의 산티아고처럼 안달루시아의 어느 폐허에서 꿈을 꾸고,

소설과 같은 똑같은 장소는 아니지만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앞에 있는 피라미드를 보았다고 한다.

그리고 산티아고가 피라미드에 도착했을 때 아랍인들에게 두들겨 맞았던 것처럼

그녀도 그와 비슷한 의식이 있었다고 한다.

 

"나의 에고를 놓아버리니 내 정신, 영혼을 발견했어.

이기적인 자신과 대면하고 싸울 때, 우리는 더 다양한 방면으로 나타날 수 있지.

이게 16년이란 시간이 걸렸어. 힘든 시간들이었지만 그래도 행복했단다."

 

 

 

캐런의 방으로 와서

캐런의 일기장과 앨범을 보았다.

 

사진에서 보는 젊은 캐런은 정말 곱고 아름답다.

 

 

"인생은 너무도 짧아."

 

 

바로 내 옆에 있는 캐런과

사진 속의 젊은 캐런을 번갈아 쳐다보자니.

 

화살처럼 빠른 세월에

왠지 모르게 망연자실해지는 한편,

 

과거를 회상하던 캐런이 내뱉은 말은

내 정신을 번쩍 들게 만들었다.

 

내가 캐런만큼의 나이일때,

난 어떤 모습일까.

 

 

얼굴을 찡그리며 불평만 하기에는 너무 짧은 인생.

웃으며 사랑하기에도 짧은 인생을

지금 이 순간, 충분히 즐기자. Live fully.

 

 

 

 

#3.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의 의미

 

 

어쩌면 삶의 의미는 따로 정해져 있는게 아니라

우리가 부여하는 것에 달라지는 게 아닐까.

남들이 이미 정해놓은 의미 말고

내가 만들어가는 인생의 의미.

 

다른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내 눈에는 신이 몰래 숨겨둔 보물같은 것들이

저마다 있을 것이다.

 

캐런과 2박 3일을 함께 보내면서

그녀가 낯선 사람들과 서슴없이 이야기를 나누고,

즐거움을 주는 모습을 보니 나도 그녀의 1/3 이라도 따라갔음 좋겠단

생각을 하게 됐다.

 

 

 

 

 

원래 나는 사진 찍을 때 입벌려서 잘 안 웃는데,

캐런은 이상하게 긴장상태에 있는 내 얼굴 근육을 요리조리 펴게 만드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나이와 국적을 떠나서,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친구가 되어 준다는 것.

그런 친구가 지구별 어느곳에 있다는 사실은

내가 나의 길을 찾아 나서는데 큰 힘이 된다.

 

나의 서툰 영어 실력에도 배려해주고, 내 존재를 기뻐해준 캐런.

 

"우리 Good-bye 라고 말하지 말자."

 

캐런과 헤어지는 날, 혼자 버스에 올랐을 때

창밖의 캐런을 바라보며 참았던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언제 또 그녀를 만날 수 있을런지.

기약없는 세월이 야속하다.

 

 

-2011년 7월, 영국 본머스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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