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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여행기 (55)
힘내자, 청춘!
혼자 걸어서 심심하고 힘들었던 날... 2008년 6월 16일 월요일 새벽에 내린 비가 그친 아침. 어젯밤에 잠들기전 별별 걱정을 했던 것에 비해서 잘 잔 것 같다. 베드버그를 걱정했었는데, 새롭게 물린 데가 하나도 없다. 휴, 다행이다. 어제 무리하게 많이 걸어서 그런지 몸이 무거워서 쉽사리 일찍 일어나지 못했다. 사실 일찍 일어나서 걷고자 하는 마음도 없었기에 순례자의 길을 걷기 시작한 이래로 가장 늦게 출발하는 것 같다. 배낭을 다 꾸리고 신발끈을 고쳐매고, 출발 준비 완료! 8시가 다 되어가는구나. 이왕 늦게 출발하는 거 느긋하게 가려고 문이 열려 있는 바에 들어가 빵 한조각과 꼴라까오로 아침을 대신한다. 어제 까까벨로스Cacabelos에서 머물었다면, 이곳에 있는 엄청난 성당들을 그저 겉만 보고..
걷자, 내 마음이 닿는 곳까지 2008년 6월 15일 일요일 밤새 비가 내렸는지 땅이 촉촉이 젖어있는 아침. 구름은 저 멀리까지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길에서 로빈을 만났다. 로빈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걷다가 폰페라다Ponferrada에 입성. 대도시인데도 일요일 아침이라 그런지 조~용하다. 템플기사단 성 앞에 일찍 문을 연 가게가 있어서 로빈과 함께 들어왔다. 대개는 꼴라까오를 먹는 아침이지만, 진열대의 유리 안에 있는 아이스크림이 너무도 먹음직스러워 보여 순간 혹! 했다. 아침부터 아이스크림이라니! 하지만 모처럼 사치를 부려본다. 로빈은 '초콜라떼 꼰 츄러스' 를 시켰다. 난 처음 들어보는 건데... 로빈의 권유로 하나 찍어 먹어보았다. 음~ 나름 괜찮다! 나도 다음에 사먹어야지~ #군과 합류..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2008년 6월 14일 토요일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맞춰 제때 일어난 순례자가 형광등을 켰다. 갑작스런 불빛에 놀라 눈이 번쩍 뜨였다. 그동안 스무날이 넘도록 알베르게 생활을 해왔건만, 새벽부터 방 안의 불을 훤히 밝힌 후, 배낭을 꾸리는 예의 없는 순례자는 처음이다. 일찍 출발하는 순례자들은 아직 곤히 자고 있을 순례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게 손전등으로 불을 비추며 짐을 싸거나 대충 짐을 꾸리고는 밖으로 나와 다시 배낭을 정돈하여 길을 떠난다. 방에서 나갈 거면 형광등이라도 끄고 갈 것이지, 전혀 남을 배려해주지 않는 이 매정한 사람이여. ㅠㅠ 마음 같아서는, "뭐 저딴 사람 있나." 투덜대며 벌떡 일어나서 불을 끄고 온기가 남아있는 침낭 속에 들어와 다시 잠을 청하고 싶다...
모든 것은 마음 먹기에 달렸어! 2008년 6월 13일 금요일 순례자가 일찍 방을 나서는 소리에 잠이 깼다. 잠을 푹 잔 것 같은데, 어제의 여독을 제대로 풀기엔 부족했는지 몸을 일으키는데 버겁다. 혹시나 공짜 아침이 있나 해서 리셉션을 살펴봤지만, 휑하다. 역시. 어제 호스피탈로가 아무 말 없었던 것은 더이상 공짜 아침을 주지 않는다는 뜻이였다.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우선 공복으로 걷고, 다음 마을에서 끼니를 해결해야겠다. 긴 밤 잠들었던 대지의 색(色)이 천천히 깨어나고 있다. 태양계에서 태양은 유일하게 하나이지만, 어제의 태양과, 오늘의 태양은 꼭 다른 것 같다. 따지고 보면, 오늘의 태양은 어제의 태양과 같지 않다. 시간에 따라 그도 나름의 변신을 하고 있는 중이니까. #흐른다, 뻘건 코피가..
마음 먹은 목적지는 무슨 일이 있어도! 2008년 6월 12일 목요일 #출발 오늘은 꼭 머물고 싶은 알베르게가 있다. 바로 Santibanez de Valdeiglesias 산티바네즈 데 발데이글레시아스라는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다. (마을 이름 외우느라 혼났다.) 내가 알고 있는 바로는, 이 곳은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는 곳으로 저녁에 이탈리아 음식을 해준다고 한다. 전에 한번, 온타나스에서 출발한 날에 이탈리아사람이 운영하는 작은 알베르게에서 머물고 싶었지만 그냥 지나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런가. 오늘은 꼭 이 마을까지 가고 싶다. 이탈리아 사람이 해주는 이탈리아 음식을 먹기 위해서!! 알베르게를 나선지 얼마 되지 않아 갈림길이 나왔다. 간단하게 표지판만 있으면 될 것을 누가 장난친 것처럼 아스팔트..
#1. 소매물도에 도착하다 1시간 30분정도 걸려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함께 내린 관광객들의 걸음을 따라가다가 바위에 적힌 표지, 발견! 바위덩어리가 살아서 미소짓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반가운지. 머지않아 눈으로 보게 될 등대섬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답답하기만 생각했던 일상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지금 이렇게 소매물도에 와서 길가에 핀 꽃과 나무를 보는 게 참 즐겁다. 새벽에 통영 항구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태풍의 약한 기운이 스멀스멀, 섬에 오고 있는 것 같다.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몸에 부딪치는 바람의 강도가 세지는 느낌이다. 소매물도 정상에 오르자, 훤히 내다보이는 수평선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그런데 마구 불어대는 바람 힘이 장난이 아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바위 밑으로 떨어질라. ..
지루한 길 위에서 인생을 생각하다 2008년 6월 10일 화요일 얏호! 알베르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시작하는 하루. 짐을 챙겨 부엌으로 내려갔을 땐, 이미 아침을 먹고 출발한 순례자들의 흔적들이 가득 했다. 모처럼 모닝커피에다 버터, 잼을 듬뿍 바른 비스켓으로 배를 채우니 출발부터 든든! 아주 좋아용~~ 그나저나, 다음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을까. 괜시리 마음이 쪼끔 무겁다. 나름 다음 순례자들을 위한답시고 어제 기부금을 얼마 내긴 했지만, 얼마 되지 않는 돈과 내가 알베르게에서 누린 '호사'에 비하면 새 발톱만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부하길 잘했다! 적은 액수를 바게트 몇 개로 환산해보니 누군가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름 기분..
까미노, 스페인에 있지만 "스페인" 같지 않는 길. 2008년 6월 8일 일요일 "왜 사람들이 아침을 많이 먹는지 이해할 수 없어. " 기다란 식탁 정 가운데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아주머니가 한소리 하신다. 아침부터 영어로 잔소리를 듣다니, 게다가 '밥심으로 산다' 고 자부하는 한국인이 들으면 섭섭해할 소리다. 몸살기운과 감기를 겪은 나로선 아침 나절 순례길에서 버티려면 많이 먹어둬야 한다. 그래서 지금 내 앞엔 삶은 계란, 오렌지, 빵 반 조각, 요거트 한 컵이 있다. 안그래도 밥 없어서 서러운데, 혀에 가시가 돋힌 듯이 입맛이 싹 사라져버렸다. "아침에 커피 한잔에 간단히 먹으면 되는데, 불라불라.." 계속해서 이어지는 아주머니의 잔소리. '혹시 내가 영어를 못 알아듣는걸로 생각해서, 대놓고 얘기하는..
몸이 아프니 서럽구나... 2008년 6월 6일 금요일 "쿵!" 어두운 방 안 공기를 가로지르는 둔탁한 소리. '으악! 난 몰라!!' 물이 든 페트병이 2층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는 순례자들의 미세한 소음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일을 낸 것이다. 그나마 곤히 자고 있던 다른 순례자들의 단잠을 망쳤을 게 분명하다. 새벽부터 본의 아니게 남에게 폐를 끼치다니! 그런데, '뜨악!' 다시 한번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게 왠 날벼락... 두 다리가 마치 해동상태의 무우와 같다!!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누웠다. 아참참... 어제 힘들게 걸었었구나! 고단한 길 위가 아닌 침대 위에 편히 누워있는 탓인지, '진흙탕'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꿈만 같다. 어제의 여독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
난 내가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될줄은 몰랐어... 순례길의 여정이 끝나고, 혹 만나는 사람에게 800여km 가 넘는 길을 걷고 왔다고 하면 다들 나보고 대단하다고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렇게 하기 힘들 거라고 덧붙이면서.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루에 꾸준히 걷다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달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대답했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게 더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땐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하다보니 극복하게 되더라구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난 내가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될줄은 몰랐고 상상했던 그 이상의 것들을 얻어온 특별한 여행이기에 까미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지금, 그 때 마냥 설레고 떨리고 행복하다. 나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