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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청춘!

[까미노 이야기 16] 순례 14일째, 감기군을 등에 업고 걷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16] 순례 14일째, 감기군을 등에 업고 걷다.

Yildiz 2009. 9. 6. 12:14


몸이 아프니 서럽구나... 2008년 6월 6일 금요일


"쿵!"

어두운 방 안 공기를 가로지르는 둔탁한 소리.

'으악! 난 몰라!!'
물이 든 페트병이 2층 침대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일찍 일어나 짐을 꾸리는 순례자들의 미세한 소음에 잠이 깨어 뒤척이다가 일을 낸 것이다.
그나마 곤히 자고 있던 다른 순례자들의 단잠을 망쳤을 게 분명하다.
새벽부터 본의 아니게 남에게 폐를 끼치다니!

그런데,
 
'뜨악!'

다시 한번 속으로 비명을 지른다.
이게 왠 날벼락... 두 다리가 마치 해동상태의 무우와 같다!!
몸을 일으키려다 다시 누웠다.
아참참...  어제 힘들게 걸었었구나!
고단한 길 위가 아닌 침대 위에 편히 누워있는 탓인지, '진흙탕' 같은 길을 걸어왔다는 것이 꿈만 같다. 
어제의 여독이 고스란히 남아있어 다리 근육이며 발바닥이며 마구마구 땡긴다. 

어젯밤, 잠 들기 전에 너무 추워서 자켓을 입고 침낭 속에 몸을 뉘었다가 옷장 위에 있는 담요를 발견했다. '저걸 하나 내려서 덥고 잘까, 말까' 고민하는 중에 누군가 소등을 하는 바람에 어둠 속에서 몸을 잔뜩 웅크려 잠을 청했었다. 계절이 여름이라 하여도 고도가 높은 곳의 밤은 가을밤 못지 않게 춥다는 것을 상상도 못했다. 

이크!!
어제 미세하게 감지되었던 감기 기운이 슬그머니 머리꼭지까지 타고 올라온 상태.
오늘은 녹슨 몸에 오래된 기름을 칠한... 로봇 마냥 길을 나서야할 판이다.
 
"매일 같이 길을 걷는 '순례자' 본업에 충실하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건강 관리가 필수!" 라는 보편적 진리를 몸이 삐걱거리고 나서야 실감하게 된다.

순례자가 하는 일이란 고작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걷고, 먹고.. 이 얼마나 단순하면서도 건강한 삶의 패턴인가. 그러니 감기 걸릴 틈이 어디 있겠어!! 라고 생각했던 게 내 불찰이다. 한국에서 감기약을 챙겨오지 않은 것!

에휴... 몸이 아직 해동이 덜 됐으니, 좀 밍기적 거릴까. 아니면 잠이 깬 김에 물통이나 주어서 다시 올라올까 고민하고 있는데 마침 짐을 싸고 있던 루이스가 허허 웃으며 페트병을 주워 침대에 올려준다.
 
아-
이 마당에 무슨 잠이냐.
나도 짐이나 챙기자. 

대충 짐을 챙겨 밖으로 나와 배낭을 정리한 후 아래로 내려갔다.
오늘의 날씨는 과연?!

두구두구둑!!

새벽이라 안개가 끼어 흐리게 보이지만, 이러저리 살펴봐도 비구름은 없는 것 같다. 
참 다행이다!
날씨마저 흐렸다면, 난 그냥 이 곳에 주저 앉고 싶었을 것 같다. 하지만 이건 그저 투정일뿐...
원칙적으로 순례자가 묵는 알베르게에는 1박만 허용 된다. 다음에 오는 순례자를 위해서다.
그래서 오늘 푹 쉬고 싶더라도 조금이라도 가서 쉬어야 한다. 게을리 걷다가 앞서 간 친구를 영영 놓치고 말 걸 생각하면 끔찍하다. 길에서 쓰러지지 않는 한은 무조건 걸어가야한다. 그렇다고 너무 힘들어서 길 위에 쓰러질 만큼 엄청 아픈 것도 아니니까! 걸을 수 있을 만큼은 걸어야지.

오늘은 어떤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런지.
설마... 어제와 같은 진흙탕 길이 나를 기다리고 있다면, 이거 참 곤란합니다 =ㅅ =;;
 
오랜만에 간소한 준비운동으로 몸을 풀어준다. 발목, 손목 이곳저곳 스트레칭 한번씩. 이거 얼마만에 해보는 스트레칭인지. 까미노 초반에 아침마다 했던 준비운동이다.  

무거운 나의 몸과 마음을 맞이하는 새벽의 쌀쌀한 공기.
늘 그래왔듯이 하루를 시작하는 신고식으로 허공에다 대고 '허허- ' 입김을 내어본다.
입김이 뿌옇게 나타났다 사라진다.  




 

어느 정도 걸어 마을을 벗어났을 무렵,
날이 조금씩 밝아오고 대기가 조금씩 데워지고 있다.
산 너머로 해가 서서히 떠오르고 있다.



 

비록 오늘 몸은 힘들지만, 날씨가 좋아서 그런지 덩달아 기분도 좋다. 
떠오르는 해를 마주 보자, 어느새 내 마음 속에도 해가 가득 차오른다.  



 

온종일 맑을 것으로 예상되는 날씨!!
운이 좋은 것 같다. 

혹시나 어제와 같은 진득진득한 땅을 밟게 되진 않을까 싶었는데,
신기하게도 아침 나절 걷는 땅은 지점토 가루 같다. 

비록 어제 고생을 많이 했지만,
길 위에서 많은 것들을 배우는 과정이라는 생각에
오늘 하루도 많이 기대가 된다.


무엇이

이 길 앞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아침해가 내 등 뒤로 떠올라 그림자를 날씬하게 쭈욱 늘려 앞을 가린다.
위대한 해의 권력에 힘 입어 내 키가 몇 뼘이나 길어졌다.
그림자일 뿐이지만 기분이 좋다.
혼자 하는 여행이라 전신 사진이 찍기가 쉬운 일이 아닌데,
해 덕분에 그림자나마 전신을 담은 사진을 남길 수 있어서 참 좋다.
 
평소 같았으면 눈여겨 보지 않았을 그림자는
반나절 가이드 역할을 하기도 하고
아름다운 길 위에선
가끔 나 대신 모델로 사진 찍히기도 하고.

그리고 무엇보다도 좋은건,

아, 정말 내가 이 곳에 있는건가!
믿기기 힘든 순간,

여기에 있는거 맞어!
라고 조용히 답해주는 내 분신.

가끔 외로운 순례길에 길동무가 되어주는 그림자.




 


길 따라 마주 보며 자라고 있는 나무 등장!
얼마나 오래되었을까? 항상 그 자리를 지키며 자라는 나무는 참 대단해보인다.


영화에나 나올 법한 아름다운 길을 걷고 있다니!
기분이 날아갈 듯 최고다!

가로수 길을 지나 뒤돌아 해를 바라본다.
어느새 더 높이 위치한 해.
지구를 채색하듯 빛을 수놓는다.


 


세상을 감싸고 도는 따스한 햇살을 뿌리치지 못한 채
나도 그저 넙죽 그의 손길을 잡는다.

그래,
잠시
잠시 동안은 괜찮아.

서두르지 않아도 괜찮아.

 

새로운 아침을 시작하는 이들에게 인사를 보내자.
¡Buenos días!



 

황금빛으로 빛나는 세상.
햇살 가득 담금질 한 듯이 반짝반짝 빛나는 풀들.
감탄의 연발탄을 흘리며 그들이 반사하는 빛을 눈에 담는다.

이 순간만큼은 내 모든 세포들을 일깨워
온전히 느끼고 싶다.

온타나스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 San anton 에 도착했다.


내가 가지고 있는 알베르게 정보에 의하면 이 곳에서 8명 정도가 머물 수 있는 곳이라는데
편히 앉아 쉴 곳 없는 이 곳에 무엇이 있는지 제대로 파악하기 힘들다. 외관으로 보아컨대, 과거에는 꽤 근사한 곳이였던 것 같다. 높이 위치한 아치며 무너져내린 흔적들을 찬찬히 살펴보다가 어느 용도로 쓰였는지 분간이 어려운 공간을 발견했다. 이 곳엔 이미 지나간 순례자들이 남긴 메모가 각각 파수꾼 역할을 하는 작은 돌들 아래 잘 모셔져있다. 비바람이 아주 휘몰아치지는 않는 한, 안전한 보관함과 같은 역할을 할 그런 작은 공간이다. 나름의 사연이 담겨 있을 쪽지. 주인이 가고 없는 자리엔 허락된 이가 건드리지 않는 한, 영원히 깨어나지 못할 마법에 걸린 채 봉인이 되어버린 듯한 기운이 느껴지는 건 왜일까.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직 쓰지 않은 엽서 한 장과 펜을 꺼내들었다. 또산또스에서 본 이후로 그동안 그림자조차 내비치지 않은 노라의 안부도 궁금했던 참이었고, 무엇보다 지금 내 심정을 마음가는 대로 적어보고 싶다. 

 

어제는 찰흙 같은 땅을, 오늘은 지점토 같은 땅을 밟고, 이 곳 San Anton 에 왔네요.
어제는 비가 왔는데, 오늘은 날씨가 너무나 맑고, 화창해서 걷는데 너무 행복합니다.
물론 어제도 (힘들었지만) 행복했구요.
그 어느 곳보다도 특별한 이 곳. 까미노가 너무(만 쓰네요 ㅋ) 좋습니다.^ㅡ ^
이 길을 걷는 모든 이들에게 행복을.
그리고 나의 까미노 친구들.
앞서 간 이들, 뒤따라오는 이들
만나고 헤어짐이 인생사에서 다 이와 같겠지요.
함께 있을 때 더 많은 걸 나누고 싶네요.
언젠가 이 길이 끝날 거란 사실을 상기하면 슬퍼지지만,
슬픔을 느끼지 않을 정도로 많은 사랑을 채워가렵니다.


한 쪽엔 까미노 예찬론을 늘어놓았고, 다른 한 쪽엔 어디 있는지 알 길 없는 노라에게, 그리고 이미 나보다 10km 이상은 앞서서 걷고 있을 마르코스에게도 짤막하니 안부를 묻는 글을 적었다.



어디에 두어야 노라가 내 편지를 발견할 수 있을까 고심하다, 만일에 대비해 비를 피할 수 있되, 금방 눈에 띄일 수 있는 자리를 골라, 주위에 있는 작은 돌을 집어 그 비범한 공간에 파수꾼으로 임명했다.
 "내 편지를 부탁해! 꼭 그녀가 볼 수 있기를!"





한나절 풍성했던 잎들이 모두 진 겨울의 앙상한 나무와 같은 San Anton, 세월의 무상함을 남겨둔 채 살아가는 기운은 괴이하면서도, 결코 가볍지 않을 생명력이 느껴진다.   

정교한 장식과 시간의 흔적의 공존.


편지를 쓰는 동안에 Hontanas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이 몇몇 지나갔다. 대부분은 쪽지가 놓여져 있는 공간을 못 보고 지나친다. "여기 좀 보세요, 잠깐 앉아 쉬어가는게 어때요?" 라고 붙잡고 싶지만, 가고난 뒷모습만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San Anton을 떠나면서 다시 한번 뒤돌아 사진을 담는다. 'San Anton이 괜찮은 곳이면 오늘은 그 곳에서 머물까?' 짧은 고민을 하며 도달한 곳에서 커다란 아치만 덩그라니 남아 있는 모습에 적잖이 당황했었다. 하지만 나의 일부분.. 뭔가를 남겨둔 장소로서 기억될 San Anton. 내가 다시 이 곳에 온다면... 그땐 내 엽서가 고스란히 있을까? 그때 나는 어떤 글을 남기게 될까?  

San Anton을 벗어나 걷다 보니 너른 평지와 함께 저기 마을이 보인다. 마을에 위치한 언덕 위에 있는 건물이 인상적이다. 


 

열심히 걸어 Castrogeriz 마을 입구에 도착했다.


아침 나절 만끽하며 걸어온 찬란한 시간들을 뒤로 한 채, 피로가 엄습해왔다. 영업 중인 바에 들러 화장실을 이용하고, 코코아 한 잔과 내가 좋아하는 초콜렛을 샀다. 스탬프가 있길래 모양을 살펴보니, 꽤 괜찮은 것 같다. 크리덴시알을 꺼내 꾹 누른 다음 호호 불어 잉크가 잘 마르도록 하는 시늉을 했다.

조금이라도 기운이 있을 때 좀 더 걸어야 하기 때문에 서둘러 나왔다. 한 발 한 발 내딛기가 힘이 부친다고 중얼거리며 걷는데, 길 가에 핀 장미꽃을 보고는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 사진을 찍고 있는데 누군가 내게 다가선다.

어제 만났던 빅토리오씨다. 그런데 피아씨가 옆에 안 계신다. 

"피아씨는 어디 가셨나요?"
"발목이 아파서 택시 타고 갔어."

"오 저런... "
온타나스 가는 길의 진흙탕이 나에게만 험난한 코스가 아니었던 모양이다. 피아 아주머니 발목이 어서 낫기를 바란다.

바에서 산 초콜렛을 조금 나눠 빅토리오씨께 드렸다. 초콜렛 포장 용기를 보시더니, 이게 스위스산 초콜렛이라고 말씀하신다. 난 그것도 모르고 먹고 있었네. 나는 사진을 찍기 위해 가는 길 마다하고 빅토리오씨를 배웅했다.

"Buen Camino!"

 


가는 길에 만난 교회, 아직 문 여는 시간이 아니라서 아쉽게도 지나쳤다.



벽돌 조각을 버려놓은 듯한 길.


이 길을 따라 가면 저기 저 요새같은 곳에 갈 수 있는 걸까? 다녀오고 싶은 마음이 없진 않지만, 거리가 꽤 있어보인다. 게다가 경사진 길을 오르 내리느라 힘이 쫙 빠져서 앞으로 남은 길을 가지 못할 까봐 두렵다. 에이...그냥 가던 길만 가자.

마을을 가로지르는 길.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오전의 햇살이 한가로운 길을 비춘다. 따가워지는 햇빛을 피해 그늘에서 쉬고 있는 개를 보니, 더없이 여유로워보인다.  개팔자가 상팔자 라더니... 말이 툭 튀어나온다.




 


누군가를 위한 비석인가? 아님 묘지?



             이윽고 마을을 벗어나 드넓은 평지에 들어서게 되었다.




          평평하고 깔끔한 길은 지친 순례자의 발걸음을 가뿐하게 만든다.
                  
                  더군다나 경치는 또 어떻고!






             시간에 쫓기듯 걷기엔 무지무지 아름다운 길이다!
                  
                  그래서 피곤한지도 모른채
                   감기 기운도 잊은 채

               걷다 멈추고, 걷다 멈추며 사진을 찍는다.   



들에 핀 꽃과 나무, 하늘에 수놓인 구름을 카메라에 담고 감상하다보니 시간 가는 줄을 모르고 길 위에 내내 서 있다. 어느새 내 뒤로 오고 있는 순례자들이 부쩍 늘었다.

헤르만씨가 나를 보고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인사해주신다.

 


바람에 흔들리는 꽃들.


왼쪽으로 펼쳐지는 광경, 오른쪽으로 펼쳐지는, 나아가는 길 앞의 광경, 그리고 이미 지나온 길의 광경 모두 매순간 느낌이 달라 셔터를 누르는 횟수가 끊이질 않는다.


활짝 피어 있는 꽃을 열심히 찍고 있는데 이름은 모르지만 얼굴은 익히 알고 있는 순례자가 지나간다. 예전에 노라와 함께 걷는 것을 본 적 있어서, 노라의 행방을 묻기만 했지 별다른 대화는 하지 않았던 외국인이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It's so beautiful, isn't it?!" 라며 묻는다.

무슨 긴 대답이 필요하겠나.
"YES!" 
짧은 대답과 함께 활짝 웃어보였다.


어쩌다보니 또 길에 혼자 있게 되었다. 어딘가에 앞서 걷고 있을 마르코스를 생각하면 미안하지만, 혼자 걷고 있어서 참 다행이란 생각도 든다. 길 위에서 자연 그대로의 나를 마주하고, 지긋이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을 갖을 수 있기 때문이다.


설마 했는데, 앞으로 몇 미터의 코스가 훤히 내다보인다. 저 산을 올라가야 하는 구나.
길과 나란히 놓여있는 또 다른 길이 눈에 들어온다. 아치형으로 다리처럼 놓여있는 건데, 지어진지 좀 오래되어 보인다.


지금은 풀이 무성하게 자란 곳이라서 조금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 되어버렸지만, 작은 아치가 반복되는 저 길이 마음에 든다.

들판의 파노라마도 이제 끝나가고, 슬슬 오르막길에 접어들었다. 
이젠 좀 걷는데 집중해야겠다.
 
산길을 조금 올라가다보니 숨이 차서 헥헥 거린다.
아차차, 여긴 평지가 아니지.
의식적으로 보폭을 조절하지 않으면, 평소 걷는 것처럼 산을 오르게 되고
그러다보면 맞지 않은 호흡으로 오히려 걷는게 힘들어진다.
 


중간 정도 왔을까. 계속 되는 오르막에 지쳐 한숨 고르기 위해 잠시 멈춰섰다. 앞서 가던 순례자가 서 있는 장면이 멋져보이길래 카메라를 들었더니, 그새 나를 발견하곤 손을 흔들어보인다.

나도 순례자가 있는 쪽으로 가서 산 아래의 정경을 내려다 보았다.

우와...!! 내가 저 길을 걸어왔단 말이지!



계속되는 오르막길.




나무가 울창하게 자라지않아 밋밋한 민둥산 마루에서 바라보는 산 아랫풍경은 더 없이 경이롭다.
하늘에 드문드문 떠가는 구름은 대지에 흔적을 남기는 모습을 멍하니 바라만 볼 수밖에.
내가 지금 저기 구름이 드리운 그림자에서 하늘을 바라본다면, 어떤 모습일까.
저 아래로 순간이동 해봤으면 하는 심정이다.  

하늘을 가득 메우고 있는 구름 그리고 대지에 드리워진 그림자들.



다시 뒤돌아 왔던 길을 살펴본다.




              아, 저 코너를 돌면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산 정상에 위치한 까미노 표지

 

산 정상에서 바라본 정경.


             산 정상에 서니, 구름에 좀 더 가까워진 기분이다.



          황량하게 느껴질 정도의 심심한 길. 내리막길은 저 끝에 있나보다.


산 반대편의 정경.


             아... 구름이 대지를 훑고 가는 광경이란, 이런 거구나!

아까 봤던 할아버지. 노란색 화살표가 그려진 바위에 뭔가 열심히 적으신다.


         내가 제일 무서워하는 내리막 길을 천천히, 조심스럽게 내려왔다.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이 길을 지나간 것 같다. 길 위에 발자국들이 가고 난 그들의 존재를 간직하고 있다.

밝게 피어있는 꽃들이 참 어여쁘다.


계속해서 이어지는 길...
인위적인 건물 하나 없는 길을 내내 걷다가 문이 열려있지 않았다면 그냥 지나쳤을 허름한 건물 앞에 섰다. 설마 했는데, 이 곳이 바로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인가 보다. 생각보다 아주 작고 오래된 건물이라서,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다면 아쉬웠을 것 같다. 그라뇽, 또산또스이 알베르게와 같이 호스피탈로가 만들어주는 음식을 순례자들과 함께 먹는... 순례자가 놓쳐선 안될 그런 알베르게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마을로 가는 중간 지점에 있는 이 네모난 집이 창고 같았다.
지은 지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 알베르게. 

배낭을 입구에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갔다.
호스피탈로가 나를 반겨준다.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 방명록에 한국인 순례자가 남긴 흔적을 찾아 보여주신다. 그걸 보고 반가워할 나를 기대하신 것 같았지만, 사실 여기서 머물까 말까 고민하느라 한국인 순례자가 무슨 내용을 썼든 간에 눈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마음 같아선 오늘은 그만 걷고 이 곳에서 쉬고 싶다. 이탈리아 호스피탈로가 해주는 음식도 먹고 싶고, 푹 쉬어 감기군을 떨쳐내고 싶다.

크리덴시알을 꺼내어 스탬프를 찍어달라고 말했다.
"오늘 여기서 묵고 싶나요?" 물어보는 여자 호스피탈로.

당연히 내가 여기에 머물거라고 생각하신 줄 알았는데, 왠지 내가 더 걸었으면 하는 눈치인 것 같다. 아무래도 12시면 이른 시간이기도 하거니와 겉으론 내가 멀쩡해보여 아파 보이지 않았는지도 모른다. (사실 호스피탈로가 밝지 않는 내 표정을 보고 여기가 마음에 들지 않아 한다는 걸로 오해해서 다음 마을의 알베르게를 언급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전 지금 아파요. 오늘 이 곳에서 묵고 싶어요." 라고 말할까 잠시 망설였지만, 그 대신에 좀 더 걸어 갈 힘이 남아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보았다. 다음 마을까지 0.7km 남짓. 그래. 그 정도는 더 걸을 수 있겠지. 어쩌면 나는 남이 나를 보는 것처럼 그렇게 심하게 아픈 건 아닌지도 모를거란 생각이 들었다. 조금 더 갈 수 있다면, 더 걸어가서 쉬는 것도 좋을 것 같다. 오늘은 내가 아니라 다른 누군가, 이 숙소가 꼭 필요한 사람에게 이미 자리가 예정되어있는 건지도 모른다. 오래된 알베르게에서 하룻밤 지내보고 싶은 욕심이 없잖아 있지만, 아무래도 이 곳은 오늘 내가 머물러야 할 곳이 아닌 듯 싶다.

휴... 다시 배낭을 메고 길 위에 선다.
있는 힘을 다해 내딛는 걸음. 어서 다음 마을에 도착했으면 좋겠다.



갓 싹을 틔운 풀과 같은 푸르른 색을 뽐내는 나무, 가지런히 심어져 숲을 이루고 있는 이 곳을 보니 반지의 제왕의 호빗, 엘프가 생각난다. 저 끝엔 무엇이 있을까? 숲의 정령들이 살아숨쉬고 있을 것 같은 이 곳. 무거운 배낭을 베개 삼아 편히 누워 한없이 즐겨 보고 싶은 나무. 지긋이 저 끝을 바라보며, 한없이 여기에 서있으면 누군가 말을 타고 달려올 듯한 상상을 한다.

30분 정도 걸려 그 다음 Itero de la Vega 마을에 도착했다. 
마을에 들어서면서 앞마당에 잔디가 있는 알베르게 옆을 지나치는데, 내 눈에 가싯거리인 프랑스 여자애가 친구와 함께 마당에서 쉬고 있다. 눈살을 찌뿌리며 마을의 다른 알베르게를 찾아 걷는데, 도무지 어디있는지 모르겠다.

그러다 프랑스에서 온 '세친구' 순례자를 만났다. (항상 세 분이서 같이 다니신다.) 이분들은 또산또스에서 안면을 익힌 순례자들이라 반갑다. 내가 이 마을의 알베르게를 찾는다고 말하자, 고맙게도 한 분이  지도를 꺼내 내게 알려주신다. 혼자 헤매고 있던 참에 구세주를 만난 격이었다.  

다시 기운을 차려 알베르게를 찾았다. 
내가 이 곳에 묵는 첫 손님인 것 같다.
방명록에서 혹시나 마르코스의 흔적이 있을까 찾아보다가 한국어를 찾았다.
이 곳에서 친구들과 맛있는 걸 먹었다는 얘기. 부럽다...

머지않아 시에스타가 시작되기 때문에 지금 먹을 걸 사놓지 않으면 적어도 5시까지 주린 배를 감싸매야할 판이다. 2층의 방에 배낭을 내려놓고 길에 나가 슈퍼를 찾았다.
빵과 요거트, 그리고 먹음직스런 도넛 한 상자도 샀다.
배고픈 나머지 오는 길에서부터 입에 도넛을 오물거리면서 알베르게로 왔다.
우선 정신없이 도넛을 해치운 다음 텅 비어있는 쓰레기통에 도넛 상자를 버렸다.
그제야 여유가 생겨 의자에 앉아 방을 둘러보았다.

그리 크지 않은 방, 이층침대 3개가 나란히 놓여있고, 오른쪽엔 창문이 있다.
어디서 잘까. 창문가가 좋으려나? 아참, 밤에는 창가가 춥겠군... 그러다 문득,

하얀색의 침대시트며 베개며, 방 안이며,
갑자기 너무 희게 보여 마치 병실인 것처럼 느껴졌다.
그동안 이층침대가 놓인 알베르게에 여러번 다녀왔고, 이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도 군소리 없이 머물렀지만, 병실이 연상되는 날은 오늘이 처음이다. 
창가쪽 침대에 자리를 잡고 누워있는 내 모습. 텅 빈 방, 병실 같은 방에 홀로 누워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내가 참 안쓰럽다.
밤에도 혼자서 이 방을 지키고 있다면 나는 얼마나 외로울까.
모르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얼마나 외로울까.
아는 이 없이 홀로 시간을 보내자니 내일의 해가 뜨길 기다리기까지
그 긴긴 시간을 어떻게 이겨낼 것인지.

그래,
이왕 아파서 앓을 거, 친구들이 있는 곳에 머물자. 이 마을에 없는 듯 보아하니, 대부분 그 다음 마을까지 갔을게 분명하다. 게다가 오늘 내가 천천히 걸었으므로, 다른 이들은 이미 이 곳을 지나쳤을게다.

위대한 도넛의 힘을 빌려, 혼자였음 한없이 외로움의 우물에 파고들었을지도 모를 유혹을 떨치고 
짐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전 지금 여기를 떠나요!"

부엌에 있는 것 같은 주인에게 외치고는 밖으로 나왔다.



계속되는 조용한 길. 오늘따라 함께 이야기 나눌 벗하나 만나기 힘든 길 위에 있지만,
항상 다양한 모습으로 나를 즐겁게 해주는 구름을 바라보며 위안을 삼는다.


과연 내가 도착했을 무렵 알베르게에 자리가 있을지 조금 걱정이 된다.
그렇다고 서둘러 걷기엔 더위와 감기바이러스에 금방 지쳐 얼마 못 가 주저 앉을 것만 같고,
그렇다고 천천히 걷기엔 머지앉아 햇빛에 녹아내릴 것 같다. 

뭐니뭐니해도
딱 중간.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걷는 게 중요하겠지.

오늘은 이상하게도 길 위에 정말 오래 머물러있다. 가다 멈춰서고, 가다 멈춰서고.
아프다는 사람이 길 위에서 골골댔다가, 탄성을 질렀다가...




함박 웃음을 머금고 있는 이들이 나를 반겨주니, 나는 조금씩 더 힘을 낼 수 있었다.


해가 머리 위로 지글지글 타오르고 있다.
몸의 열과 함께 대지의 열이 어울려 내뱉는 숨도 열기가 더해진다. 그동안 입고 있던 자켓을 벗어 팔에 걸치고 걷기 시작했다. 자켓의 무게는 얼마 나가지 않으면서도, 기분 탓인지 몰라도 배낭에 넣어둔다면 아마 무언가를 덤으로 얹어놓은 기분일 것 같다.
배낭 끈을 주위로 땀이 차고
나는 조금씩 더위에 지쳐가고 있다.

이젠 아름다운 자연 풍경이고 뭐고 빨리 발 닦고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처럼 솟구치고 있다.
하지만 이내 내 눈을 휘둥그렇게 만드는 광경을 맞딱뜨렸으니...

어디서부터 불어오는 바람일까.
거칠 것 없이 앞으로 나아가는 바람이 풀들과 어울리는 바다 옆에 섰다.
바람이 풀들의 머리를 길 삼아 마음대로 휘젓고 있다.


손 내밀어 바람을 만져본다.
땀으로 뒤범벅된 손 마디와 이마를 흔들고 가는 바람...

끊임없이 이어지는 바람의 물줄기를 지켜보며, 나를 사로잡는 광경에 빠져들었다.
귓바퀴에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에 모든 것이 파묻히고, 그 속에 나도 파묻힌다.

한나절 따분했던 호흡의 무의식이 
의식적으로 회귀하는 순간.

세상에,
이토록 아름다운 곳에 홀로 서 있구나!

혼자 보기에 너무도 아까워 풍경을 비디오로 담았다.



춤추는 들판, 환호하듯 미끄러지는 바람,
빛나는 자연의 미소.

아름답고
참으로 아름답다.

눈을 크게 뜨고, 숨을 다시 한번 골라 내 앞에 펼쳐지는 감동을 온 몸으로 느끼고자 발악을 해본다.

이 길을 걷고 있어서
정말
너무너무 행복하다.
비록 감기군과 함께여도 말이다. 

자리 놓고 앉아 오랫동안 감상하고 싶은 곳이지만, 
생각해보니 오늘처럼 체력이 약한 날에 길 위에 머문 시간이 꽤 긴 것 같다.
더 이상 지체하다간 알베르게에 닿기 전에 길 위에서 완전히 지쳐버릴까봐 조금 두렵다.

아쉽지만... 안녕!
내가 다시 너를 찾아올 때까지.
이 아름다움이 영원하기를.

아쉬운 마음에 간간히 뒤돌아보며 작별인사를 건넨다.

그 곳에서 조금 벗어나 걷고 있는데 길 왼편에 있는 언덕에서 쉬고 있는 순례자를 발견했다. 
배낭을 놓고 편히 누워 있는 순례자. 더없이 여유롭고 평화로워보이는 그.
힘겹게 걷고 있는 작은 나를 내려다보며, 희미하게 미소를 건넨다.

나도 저 아저씨처럼 쉬고 싶지만...
휴,,  어서 마을에 가자....



앞서 가는 이도, 뒤로 오는 이도 없는 길 위에서 조금씩 지쳐간다. 
피로군과 감기군이 합작해서 나를 괴롭히기 시작한다.
멈춰서서 한없이 바라보고 싶은 경치는 이젠 지친 순례자의 환호를 받지 못한다. 



 
고독을 씹으며 도착한 마을. 이 마을또한 아기자기하니 작은 것 같다.
알베르게 표지를 따라 걷는 중에 지나가던 승용차가 내 옆에 서더니, 
어떤 남자가 "알베르게?" 라며 말을 건넨다. 

난 쳐다볼 힘도 없었던데다가, 정체불명의 호객 행위를 '얼씨구나, 좋다!' 라며 수락할 만큼 순진하지 않으므로 패스. 
무시하고 지나쳤다.

이윽고 도착한 알베르게. 먼저 온 순례자들로 북적북적하다. 이미 도착해서 쉬고 있는 몇몇 순례자가 나를 반겨주었다. 알베르게 주인은 장부에 체크인 등록을 하면서, 내가 한국에서 왔다고 하니깐 반가워한다. 이미 다녀간 한국인 순례자에게서 한국어를 배웠는지, 한국어로 뭐라고 말을 하려고 무진장 애를 쓰며 나를 놓아주지 않는다...
난 정말 배낭을 내려놓고 쉬고 싶은 마음 뿐인데...

난.... 정말 피곤하니까, 빨리 침대가 있는 방을 안내해주세요. 
라고 입에서 튀어나올 뻔한 말을 겨우 참았다.  
크리덴시알에 스탬프를 찍어주고는 세로로 자신의 이름을 한국어로 적어주었다.
내가 말할 힘만 있었다면 농담으로 재치있게 말을 받아주었을테지만...
그렇지만...지금 나는 너무 지쳐 있어 그럴 힘도 없다...

기나긴(?) 숙소 등록 코스를 마친 다음 방으로 향했다. 한 건물에 큰 방이 두 개가 있는데, 복층 구조의 방으로 아래에는 이층 침대. 윗층은... 안 올라가봐서 모르겠다...  내가 배정받은 침대는 사람들이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바로 밑에 있다. 자리가 썩 좋은 것 같진 않지만 이거라도 하나 얻어 자는 것도 다행이라고 생각하자.

알고보니, 마가렛, 루이스, 한국인 부부도 다 이 방에서 묵는다.
마가렛이 나를 보더니, 새벽에 '쿵' 하던 소음이 내가 한거냐며 나를 목 졸라 죽일 시늉을 한다.
어제 걷고 나서 너무 아파 푹 쉬고 싶었는데 내가 잠을 깨웠다면서 말이다.

"앗, 정말 미안해...
근데 마가렛, 혹시 감기약 가지고 있니?"

목아프고, 열나고, 코가 막혔다고 손짓 발짓 시늉을 하자, 마가렛은 자신이 가진 약품통을 뒤지더니 아스피린 몇 알을 주었다. 그리고 원 모양의 아주 작은 빨간색 통을 주고는 코 밑에 발라보라고 권한다. 투명한 연고같은 건데 손에 조금 묻혀 코 밑에 발랐다. 몇 초가 지나자 박하향이 싸하니 점점 진하게 올라오면서 막힌 코를 뻥하니 시원하게 뚫어주었다.

여기 알베르게의 정원은 아담하고 휴식 공간이 있어 순례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를 하고 있다. 볕 잘 드는 곳은 순례자들의 빨래들이 널어져 있고, 건물의 벽 한 쪽에는 지독하게 냄새를 풍기고 있을 순례자들의 등산화가 일렬로 세워져 있다.

잠시 인터넷을 이용하기 위해 리셉션이 있는 건물로 갔더니 어떤 순례자가 먼저 컴퓨터를 사용하고 있다. 한번에 30분 쓰는 것이기에 기다려야 하므로 그동안에 샤워와 빨래를 했다.

인터넷을 하러 다시 갔는데, 아까 그 순례자가 아직도 있다.

뒤에서 머뭇거리다가
"저기요, 언제 시작했어요?" 물어보니까

"이것 봐. 여기 주인이 일일이 그걸 체크하고 있지 않고 있어. 내가 얼마나 쓰고 있는지 관심이 없단 말이지. 지금부터 24분 남았어."

차갑게 응대하는 순례자에게 뒤통수를 한대 얻어맞은 듯한 기분이다. 코인 넣고 시간제로 이용하는 컴퓨터가 아니라 일반 개인용 컴퓨터를 사용하라고 놓았기에, 돈 내고 정해진 시간만큼 쓰는게 예의일텐데...
아무도 신경 쓰지 않으므로, 계속 써도 상관없다고? 뭐 이런 매너없는 놈이 다있나. 순례자 중에 이런 사람이 있을 거라고 생각지도 못했기에 의외의 일이었다. 내가 만만해서 막 대하는건가?

정말 당신은 매너없군요!!

라며 쏘아주고 싶지만 아파서 그럴 기운도 없고, 상대할 가치도 없는 사람이라 여겨서 혼자 씩씩거리며 밖으로 나왔다. 나참... 어이가 없어서!! 자기 성격대로 주고 받는다고... 이 사람, 다른 누군가에게 이런 대우를 받을 거야. 

기분이 무척 나빠 인상을 쓰며 나오는데, 어떤 할아버지께서 내게 땅콩 카라멜을 하나 주신다. 역시 사람은 베풀면 그만큼 다시 받는구나. 언젠가 내가 초콜렛을 조금 나눠 드렸던 할아버지다. 

찡그렸던 인상을 급 풀며 감사하다고 인사를 하고 방으로 향했다. 출입구 쪽에서 그 프랑스 여자애.. 그러니깐 부르고스 알베르게에서 전화기 사용 문제로 잠시 티격했던 여자애가 또래 친구들과 수다를 떨고 있다. 아, 아까 분명히 전 마을에 있는 알베르게에 앉아 있었는데... 거기서 잠깐 쉬어가는 거였구나!


한번 기분 상한 일이 있고 나서 얘기도 안 하고 인사도 안하고 지내는, 눈에 가싯거리 존재가 되어버린 그녀를 피해가려고 하는데, 누군가 나를 부른다.

이탈리아 부부 빅토리오와 피아, 한국인 부부님, 마리 아주머니가 모여 앉아 계신다. 빅토리오씨가 내 이름을 물어보신다. 외국인이 내 이름을 제대로 발음하기란 쉽지가 않는 일. 

걍응, 굥은 각각의 다양한 버전들이 쏟아져나왔다. 사랑스런 발음에 웃지 않을 수 없다.

이름을 부르기 어려우시면 성을 불러줘도 된다고 하고는 피아 아주머니의 발목은 어떤지 안부를 물어보았다. 박진순님께서 "코리안 마사지" 를 해줘서 많이 괜찮아졌다고 얘기해주셨다. 

기운만 있다면 나도 사람들과 함께 어울릴법도 한데, 침대에서 편히 쉬고 싶은 마음 뿐.

내가 웃는게,
웃는 것이 아니다.

Boadilla del Camino 알베르게 정원에서.


침대에 누워있는데 루이스가 내게 말을 걸려다가 그냥 가버린다. 흥이다! 어제 온타나스의 식당에서 테이블에 의자 부족하다고 나보고 저리 가라고 했던게 아직도 섭섭하다. 누워있는 자리가 이층으로 올라가는 계단 아래라서, 사람들이 왔다 갔다하는 소리가 들리지만 편히 누울 수 있다는 곳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시간이 지나 저녁시간.

점심 때 사놓은 빵과 잼이 있어서 혼자 먹고 있는데 신경희님께서 나를 보더니 왜 혼자 먹냐며 안쓰러운 표정으로 말을 건네신다. 아파서 입맛이 없다고 짧게 대답하고는 눈을 아래로 내렸다. 

왠지 모를 서러움에 코 끝이 찡해진다. 오늘따라 입 안이 꺼칠꺼칠하고, 빵 부스러기는 모래알 같다. 
입맛도 없고 해서 얼른 대충 먹고 이 닦고 침대로 올라와 일기를 썼다. 

저녁 식사를 하고 오신 부부님께서 내게 한국산 감기약을 한 알 주셨다.
약을 감사히 받고 한 알 성큼 먹었다.

한 없이 잠으로 빠져들고픈 기운을 느낀 채 잠을 청한다. 

어서 감기기운을 떨쳐내야 할텐데! 순례자가 감기를 달고 걷는 건, 고달픈 일인 것 같다.
정말이지 건강이 제일 중요해!

한낮에 도착하여 하룻밤 머물뻔 했던 그 알베르게.
만약 내가 지금 거기에 있다면,
과연 어떤 사람들과 있을까.
설마 늦은 밤까지 홀로 한 방을 차지한채 밤을 보내게 됐으려나?

무튼,
더 고생을 해서라도 이 곳까지 와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한편으론, 사무치게 외로워진다.
그래도...
혼자라는 생각 때문에.



오늘의 코스~ >_  <!!

Hontanas - San Antón - Castrogeriz - Itero del Camino - Itero de la Vega - Boadilla del Camino = 28.4km



오늘의 스탬프!

오늘의 지출

숙소 5 + 코코아 2잔 2.3 + (비싼) 스위스 초콜렛 1.1 + 초콜렛 0.8 + 슈퍼 2.75 = 11.95 유로




 

안녕하세요! 일디즈입니다. = ) 방학기간동안 포스팅을 신 들린 듯 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건 그저 제 욕심이었네요.  아름다웠던 순간, 정말 그 순간에 느꼈던 심정을 고스란히 적기가 많이 어려웠어요. 하지만 글을 쓸때 만큼은 최대한 그 순간들을 떠올리려고 애를 썼어요. 사진을 보고 혹은 센스있게 찍어논 동영상을 보면서, 그때의 감흥을 1%라도 다시 표현할 수 있다면. 그럴 수 있다면 정말 감사하다고 여겨야 겠지요. 순간순간 멈춰 서서 메모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 때가  많았지만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아서 그런지 지금에 와서야 정말 아쉽네요.
제 글을 읽는 순간 만큼은, 저도 그 속으로 빠져들어 다시 한번 그 때의 감동을 기억해내고 싶습니다. 제가 담은 사진 한 장만으로도, 당신들에게 힘이 되고, 꿈이 되는 그런 순간을 만끽할 수만 있다면, 영광입니다. ㅎㅎ
컴퓨터 사양이 좋지 않아서, 잠시 멈칫한 순간에 책을 펴드는 습관이 길러진 터라, 글을 쓰는 것보다 책을 읽는 시간이 많아지네요. 잠깐 펴든 책에 집중하다가 어느새 컴퓨터를 그냥 꺼버리기 일쑤거든요. 그래서 이번 글도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올리게 되네요. 사진이 너무 많은데, 어떻게 정리해서 올려야하나... 감흥은 어떻게 적어야 하나 고민 좀 했어요. 글을 쓰면서 고민해야하는데, 투정부리면서 고민해서 늦었습니다. ^^
마지막으로
지금 이 순간 까미노를 걷는 모든 이들에게 행운을,
그리고 제 여행기를 읽어주시는 분들에게도 행운을 빌게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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