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힘내자, 청춘!

[28]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 본문

책벌레/0.5배속

[28]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이야기

Yildiz 2015. 9. 21. 13:02

 

 

별다른 계획이 없고, 뭔가에 집중하고 싶을 때에는 하염없이 빠져들 수 있는 이야기를 읽고 싶어진다. 2013년인가, 도서관에서 우연히 발견한 소설책 [7년의 밤]을 며칠 동안 손에 부여잡고 완전 빠져든 적이 있다. 이야기에서 느껴지는 불운함과 우울감에 이게 현실인지 상상인지 분간이 안될 정도로 몰입했었다. 책을 읽으면서 그렇게까지 집중하는 건 오랜만이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 당시 일하는 곳에서 쉬는 시간마다 책을 펼쳐 들면서 짧은 독서를 간간히 하고, 퇴근 후 까페의 딱딱한 나무 의자에 앉아서 책의 남은 부분을 모조리 읽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7년의 밤

저자
정유정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1-04-06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세계문학상 수상 작가 정유정의 신작 장편.7년의 밤 동안 아버지...
가격비교

 

작가의 문체에서 풍기는 남성적 느낌과 달리 여성 작가라 하여 처음에는 놀랐다. [7년의 밤]을 읽으면서 남성 작가가 서술하는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28

저자
정유정 지음
출판사
은행나무 | 2013-06-27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2009 세계문학상 수상작 [내 심장을 쏴라] 2011 베스트셀...
가격비교

 

[7년의 밤]을 읽은 후, 작가의 다른 작품도 빨리 읽고 싶었지만 다시 읽기까지 2년의 시간이 걸렸다. 가끔 팟캐스트로 찾아 듣는 'EBS라디오 북까페(2013년 방송분)'에서 정유정 작가가 게스트로 출현하여 소설 [28]과 관련한 에피소드와 소설에 대해 설명하는 것을 들었더니 책[28]이 꼭 읽고 싶어졌다. 현재 외국에서 지내고 있으니 간편하게 이북으로 구매했다.

 

지난 일요일 저녁부터 읽기 시작한 책은, 월요일 점심때가 다 되서야 끝냈다. 아이패드로 책장을 넘기는 건지, 달리기를 하는건지도 모르게 마지막 장까지 이르렀다. 최근에 원서로 읽었던 할레드 호세이니 작가의 소설 [그리고 산이 울렸다] 이후 한국소설을 읽었더니 막힘없이 술술 읽혀서 정말 편했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와 [28]의 비슷한 점은 여러 사람의 시점에서 이야기를 전개해나간다는 점이다. [그리고 산이 울렸다]는 3세대를 포함하는 긴 시간의 가족 서사시라 하면 [28]은 28일동안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왜 28일... 그러니까 30이 될 수도 있고 그런데 왜 28일일까. 갑자기 궁금해진다.

 

소설 [28]은 '화양'이라는 도시에서 인수공통전염병이 발생하여 전염병이 다른 곳으로 퍼지지 않게 그곳이 봉쇄되어 있던 기간, 28일 동안의 이야기이다. 인수공통전염병은 개가 개에게, 개가 사람에게, 사람이 개에게, 사람이 사람에게 옮길 수 있는 원인 모를 바이러스로 '빨간 눈'의 괴질이라 칭하기도 했고, 발병된지 얼마 되지 않아 심각한 폐출혈과 호흡곤란을 일으켜 치사율 0%에 달하는 전염병이다.

 

이 책을 읽으면서 영화 [감기]와 이외 전염병이 돌거나 지구의 멸망을 다룬 영화들이 떠올랐다. 도시가 고립되고, 황폐해지고, 사람들 사이에서 갈등, 다툼, 폭력 등이 난무하는 무법천지의 세상. 그런 곳에서도 과연 우리에게 희망이 있는가- 작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진다.

 

정말 소설에서와 같은 전염병이 퍼지게 된다면...? 정말 소설에서와 같은 일이 일어날 것이란 '확신'이 들어서 글을 읽는 내내 암울한 기분이 들었다. 이 소설책은 2013년에 출간된 거지만, 올해 '메르스'라는 바이러스가 한국에서 어떤 문제를 일으켰는지 - (난 호주에 있어서 체감까지 하지는 못했지만) 돌이켜보면, 까딱 잘못하다간 정말 사람들이 고립되고, 도시가 봉쇄되고, 계엄령이 내려져서 군인들이 관리 감독하는 상황까지 갈 수도 있겠구나- 한국은 그런 나라니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에서 군인들이 시민들을 함부로 대하는 그런 장면들은 광주 5.18 민주화운동을 떠올리게 만들었다. 그 일이 1980년도의 일이지만, 일상 속에서 공권력의 폭력이 얼마나 용인되고 행해지고 있는지 무감각해진 2000년대에 살고 있으니, 과거의 수준과 별반 달라지지 않을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상상도 해보았다. 질병관리, 국가의 위기대처에 대해 정부 관료들이 무능하면, 한낱 시민에 불과한 우리의 삶은 의미없는 휴지 조각으로 공중에 산산이 분해되는 것이다.

 

인간의 시선으로만 서술할 수 있는 그런 이야기였을텐데, 작가는 '링고'라는 늑대개의 시점에서 개의 마음, 개가 바라보는 인간, 개가 목격하게 되는 인간의 잔인성에 대해서 서술한다. 작가는 구제역으로 인해 돼지를 생매장하는 동영상을 보고 나서, 인간에게도 비슷한 일이 일어난다면, 과연 인간도 똑같이 그렇게 할 것인가. 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됐다고 한다.

   

서로 빚을 주고 받고 사는 세상- 인간 대 인간 뿐 아니라 인간 대 동물, 인간 대 자연.... 그 어느하나 서로에게 빚지지 않는게 없는데, 인간만이 최고라고 여기는 지구에서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 자기 스스로에 대한 존엄과 상대방에 대한 존엄에 대해서조차 빛을 잃어가고 있는 것 같다.

 

정유정 작가의 끝으로 치닫는 결말을 읽고 책장을 덮고 나면 머리가 '멍~'하다. 아마 너무 책만 읽고, 눈을 굴려서 일 것이다. 하지만 책에 나온 전염병에 걸리거나, 어딘가에 붙잡혀 자유롭게 오도가도 못하는 그런 상황에 닥친다면, 과연 나는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을 던져보았다. '그래도 나는 책 좀 읽어. 공부를 열심히 했어. 나는 돈이 조금은 있어. 그렇기에 나는 멋지게 살아남을 수 있을거야.' 이런 것보다는, 나도 생필품이나 구호품을 빼앗기 위해 누군가를 해칠수도 있고, 먹을 것을 차지하기 위해 비굴해지고, 야만스러워질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살아남기 위해서, 생존을 위해서 교묘해지고 악랄해질 수 있는 그런 인간의 본성에서 나도, 타인도 모두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 혼란의 상황에서 과연 인간의 '악'만 있을까. 아니다. 그래도 인간은 희망을 품을 줄 알고, 자신이 가진 것을 나눌 줄 안다. 알래스카에서 개썰매를 끄는 경주에서 자신의 '쉬차'(썰매개들)를 잃고 혼자 살아남은 '재형'. '윤주'라는 기자가 제대로 확인하지 않고 쓴 기사에 의해서 사람들에게 오해를 사고, 속보성으로 발송한 기사에 의해 그가 지내는 곳인 유기견보호소 '드림랜드'는 군인들의 갑작스런 침투로 모든 개들이 몰살당했다. 윤주를 언제까지나 미워하고 싫어할 수 있을법도 한데, 그는 그녀를 용서하고, 그녀와 사랑에 빠진다. 재형이 아끼던 개 '스타'를 죽인 소방대원 '기준'에게 '링고'가 복수를 하려고 하는 것을 알고, 그것을 막기 위해 애쓰다 결국엔 링고의 이빨에 죽임을 당한다. 빨간 눈의 괴질병이 개에게서 옮길 수 있다는 뉴스를 듣고, 사람들은 개를 길에다 버리거나 드림랜드 정문에 갖다 놓기도 했었을 때도, 유기견들을 다 받아들이는 재형이었다.

 

재형과 달리 자신의 애정결핍을 아버지의 애견을 학대하고 죽임으로서 푸는, 절대 악의 축에 속하는 '동해'라는 인물도 나온다. 부모의 비뚤어진, 잘못된 훈육방식에 그는 더 엇나가고, 자신의 가혹행위를 정당화한다. 자신을 감옥에 보내는 대신 정신병동에 갇히게 만든 부모에게 복수를 감행하기까지 한다. 어느 면에서 동해와 링고는 비슷한 것 같다. 링고도 어렷을 적에 자신을 예뻐하던 인간 가족이 자신이 너무 커지고 이빨까지 무서워지고 하니, 링고를 사설 동물원에 팔았고, 결국엔 투견장까지 가게 되서 살아남기 위해 필사적으로 버텨야 했으니까. 그리고 이 둘의 자신이 가진 목표에 대한 집념 또한 엄청나다. 무조건 달성해야만 하는, 그것만이 자신의 존재 이유가 된다. 다만 링고는 스타와 사랑에 빠져서, 자신의 목숨을 다 바쳐서라도 지키고 싶어하는 것이 생기고, 자신의 마음의 소리를 따를 줄 알고, 필요한 때에 공격성을 줄일 수 있다. 하지만 동해는 처음엔 개를 두들겨 패고, 나중에는 개의 혀를 자르고, 불을 붙이고, 결국엔 분풀이의 대상이 인간에게까지 향하는 걷잡을 수 없는 광기로 가득차게 된다.

 

이야기의 큰 흐름이 인수공통전염병으로 인해 공간이 한정되어지고, 인물들의 행동반경, 인물들의 사건이 집약되어지면서, 또 인물마다 각자의 해결해야하는 갈등을 풀어가는 방식으로 작은 이야기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인간이나 개들의 운명이 쉽게 가고, 어렵게 이어지고 한다.

 

이전에 전염병과 관련된 영화를 본 적이 있거나, 지구가 멸망하기 전의 이야기를 다룬 소설책을 읽어본 적이 있다면 그렇게 새로운 이야기들은 아니지만, 개의 시선으로 서술하는 점, 나라와 인종을 떠나서 보편적인 인간의 감정, 갈등을 다뤘지만 한국적 국가재난이 실재로 어떤 식으로 전개될지,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미리 간접체험한 기분이든다.

 

진짜... 한국에서는 그런 일이 일어날 것 같은, 허구의 소설이 단지 가짜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우울해졌지만 그래도 지금 당장의 현실을 바로 보기로 했다.

 

지금 이렇게 등따시고, 편안하게 지낸다는 게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헤아려보는 것이다. 그러니 더 갖기 위해 아등바등, 남들은 있는데 내게는 없다고 슬퍼할 시간에 지금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자유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그리고 혼자만 사는 세상이 아닌, 누군가에게 빚지고, 빚을 갚고 사는게 서로의 인생이라는 것. 지구에서 태어나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보편적으로 경험하는 것들에 대해서. 보편적이지만 개별적인 특수성을 가진 인간과 동물 모두를 소중히 여기는 것만이 살아가는, 살아남고자 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예의라는 생각을 해본다.  

 

 

 

 

 

 '28' 저자 정유정 - 책과 사람 (2013년 7월 6일 방송) 

http://home.ebs.co.kr/bookcafe/replay/9/view?courseId=BP0PHPK0000000047&stepId=01BP0PHPK0000000047&lectId=10128518

EBS북까페 정유정 작가의 방송 에피소드를 들어보면, 작가가 캐릭터에 대해 설명하는 것, '화양'이라는 가상 도시를 의정부를 롤모델로 만들었다는 것, 비하인드 스토리 등을 들을 수 있어 소설에 대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

 

 

28
국내도서
저자 : 정유정
출판 : 은행나무 2013.06.16
상세보기

 

정유정 작가의 다음 소설을 기다려 읽는 것도 삶의 재미 중 하나가 될 것 같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