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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 삶의 지혜가 담긴 위로의 레시피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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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에게 주는 레시피] 삶의 지혜가 담긴 위로의 레시피

Yildiz 2015. 7. 29. 15:55

 

 


딸에게 주는 레시피

저자
공지영 지음
출판사
한겨레출판사 | 2015-06-0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자기 자신의 삶을 소중히 여기며 살기 위해 오늘도 애쓰는 너에게...
가격비교

 

 

#'요리'에 대한 관점을 바꾸다

 

요즘 티비 프로그램에서 쉐프들의 인기가 한창이다. 텔레비전을 잘 외면하는 나조차 그들의 손놀림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음식에 사로잡혀 있다. 연예인들이 맛집을 찾아가서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먹는지를 보는 것보다 쉐프들이 요리하는 모습을 보는게 백배, 천배가 더 좋다. 내가 해보지 못한 요리들, 어렵다고 생각했던 과정들이 사실은 나도 해볼 수 있을만한 것이라는 자신감이 생겨서일까. 자취10년 차가 다 되어가는 무렵, 이제서야 요리의 재미를 알았다. 사실 '재미'라고 단정지을 수 없는게, 예전 버릇이 아직 남아있어서 요리를 귀찮게 여기기도 하기 때문에 완전한 '몰입'의 상태라고 할 수는 없겠다. 하지만 외식을 해야만 내가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대부분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서, 나도 해볼 수 있는 요리가 의외로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새로운 식재료를 사보고, 그것을 직접 손으로 만져보고, 뜯고, 손질을 하는 과정에서 후각과 촉각으로도 신선한 자극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보카도를 손질할때, '이거 왜 이렇게 징글징글하게 뭉컹거리지?' 중얼거리며 아보카도 조각을 어설프게 만지듯 말듯 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보카도를 손질할 때마다 칼로 반 조각을 내 보고, 얼마나 좋은 상태인지 냄새를 맡아보기도 하고 물컹거리는 손의 감각을 즐기고 있다. 이 하나의 아보카도가 내 손으로 오기까지- 내가 알지 못한 과거에 대해서 상상해보기도 하고, 수줍은 노란색을 띄며 알맞게 익은 풋풋한 아보카도 속살을 보자면 눈도 즐거워진다.   

 

매주 새로운 요리를 고민하는 요즘, 공지영 작가의 신간 [딸에게 주는 레시피]가 나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 달전) 제목의 '레시피' 라는 단어가 호기심을 북돋았다. 공지영 작가의 또다른 에세이 [네가 어떤 삶을 살든 나는 너를 응원할 것이다](2008년 출간) 를 읽은 후, 오랜만에 읽어보는 공지영 작가의 책이다. 요즘 호주에 지내고 있어 책을 서점에서 살 수 없어서, 이북으로 책이 나오자마자 구매해 읽기 시작했다.

 

27개의 레시피와 함께 딸에게 편지를 쓰듯 쓴 글이라 쉽게 읽혔다. 이북의 하이라이트 기능을 이용해서 마음에 드는 문장들은 색칠해보기도 하고, 떠오르는 단어나 생각을 메모로 덧붙이기도 했다. 그렇게 한 번은 꼼꼼이 읽어보고, 두 번째는 좀 더 읽어보고 싶었던 부분을 다시 훑어보고. 세 번째는 한적한 휴일에 다시금 작가의 목소리를 듣고 싶어 또 읽어보았다. 몇 번을 읽어도 너무 좋다. 내가 요즘 지내는 상황과 공감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아서 책에서 위로와 용기를 얻을 수 있어서 자주 읽게 되는 것 같다.

 

 

 

 #이제 어른이라는 것

 

"어른이라는 것은 바로 어린 시절 그토록 부모에게 받고자 했던 그것을 스스로에게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것이 애정이든 배려든 혹은 음식이든."

 

주민등록증을 받고, 성년이 되고, 대학 졸업을 하고, 취업을 하고, 돈을 벌고... 그리고 시간이 흘러 서른 살이 되고. 이 모든 과정이 스스로를 챙기는 '어른'되기의 과정이라 여겨왔었다. 하지만 스무살 전반의 나날 중 내게 결핍되어 있었던 것이 '스스로를 대접하는' 것이었다.

경제활동을 통해 번 돈으로 하고 싶은 것, 배우고 싶은 것, 먹고 싶은 것들을 차근차근 해나갔지만, 거기서 빠져있던건 '잘' 먹는 것이었다. '잘' 먹는게 어쩌다 하는 회식에서 혼자 못 가는 식당에서 끼니를 해결하는 것, 어쩌다 끌리는 순대나 떡볶이를 사와서 저녁으로 해결하는것, 가끔 찾는 식당에서 먹는 한 끼의 대접이 내게 해줄 수 있는 최고의 대접인냥 생각해왔었다.

 

"사람이 진정 자립을 한다는 것. 사람이 진정 어른이 되어 자기를 책임진다는 것은 간단하더라도 자기가 먹을 음식을 만든다는 것이 포함돼. 아주 중요한 요소지."



독거노인 중 남자노인의 자살 충동 요인 중 하나가 먹거리를 스스로 책임지는데 막연한 절망도 한몫한다는 글을 읽고 공감했다. 생각해보면, 나도 고향집에 가면 어렷을적에 내가 '당연하게' 받아왔던 것처럼, 엄마가, 할머니가, 집안의 여자가 음식을 하고, 상을 차리고, 설거지를 하는 것이지 '내'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싫어했었다. 그녀들보다 어린 내가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것으로 여기고 있었다.

이런 관점을 바꾸고, 스스로 먹거리를 책임지기 시작한 요즘의 내가. '여자니까' 해야하는 '요리'가 아닌, 고생한, 낙담한, 혹은 기쁜, 즐거운 나에게 대접하는 '요리'로 하루를 보내고 있다. 한국에서 해먹을 생각도 못한, 시레기 된장국을 끓이고, 닭갈비 양념을 하고, 라이스페이퍼도 만들고, 닭가슴살을 이용한 요리도 여러가지 시도를 해보고 있다. 아, 무엇보다 빨간 국물의 떡볶이가 아닌 XO소스를 첨가한 기름 떡볶이는 최근 해 본 요리 중에 색다른 도전이었다.

 

 


#나는 소중하다, 돈보다 소중하다.

"언제 어디서든 사람은 자기 자신의 몸을 돌보아야 해. 이것이 자신을 사랑하는 또 하나의 시작이다. 이것은 외모지상주의가 아냐."

 

자기를 사랑하는 것에 대해서, 그리고 자신의 존엄을 지키는 것에 대해서 책을 읽으면서 많이 생각해보았다. 책에 인용된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 중 작가가 자기 자신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매일 아침 면도를 했다고 하는 부분이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그렇게 스스로를 돌보는 것이 결국 자신의 존엄을 지켜, 수용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였다는 게. 별 거 아닌 것 같지만 그 작은 행동이 스스로를 살린 것이다.

또 공지영 작가가 힘들었던 시절, 자신에게 호감을 표시하던 남성이 '얼마면 되겠냐는' 말에 "저 5억원보다 비싼데요." 라고 답한 작가의 대담함이 좋았다. 사실, 대담함이라기 보다는 '돈'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는 작가로서는 당연함이었다. 내가 만약 그와 같은 상황에 있었다면, 저런 말을 할 수 있었을까? 나는 나를 돈보다 소중하게 여기고 있나? 곰곰이 따져보게 되었다.

올해 들어 예기치 않게 돈 들어가는 곳이 생기고, 돈벌이도 시원찮은 애매한 백수상태인 날들을 보내고 있다. 통장의 잔고는 줄어들어 가고, 일은 해야겠는데 마땅히 나를 받아줄 곳이 없을 것 같은 막연함과 두려움에 마음이 많이 쪼그라들었었다. 급한 마음에 냉큼 받아들인 일은, 조금 하다 보니 여유가 생기자 내 상태를 냉정하게 보기 시작했다.

 

누군가의 고용으로 인해 시작한 일에 있어서 나는 '을'의 위치에서 '갑'에게 잘 보이려고- '갑'의 마음에 들기 위해 노력했지만 '이건 아니다' 싶은 것에 아무말 못하고 혼자 분을 삭히다가 2주만에 그만 두게 되었다. 처음부터 '갑'이 어떤 사람인지에 대해 중요하게 생각하기 보다는 '돈'을 우선으로 두다 보니, 내 자신을 '돈'보다 낮은 것으로 굽히고 들어갔던 것이다. 고용되어야만 하는 나의 입장만 생각했지, 나를 고용하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고,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내게 무엇을 해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전혀 고려하지 않았었다.


호주의 겨울이 아침, 밤으로 쌀쌀하고 추울 때는 씻기 귀찮아하지만, 빅터 프랭클이 수용소에서 했던 것처럼 매일같이 내 몸을 청결하게 하고, 지저분해 보이는 콧털이나 콧수염, 눈썹을 정리하는 것. 별 것 아닌 것 같은 사소한 것으로 자신을 돌보는 일부터 시작해서 그런 행동을 매일 하는 사람과 아닌 사람을 한 눈에 가려낼 줄 아는 것. 그런 세심함 또한 갖춰야하는 나이임을 새삼 느끼게 되었다.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질리지 않는다


책에 나온 레시피를 따라서 어묵두부탕을 끓여보기도 하고, 정말 간단한 꿀 바나나를 만들어 먹기도 했다. 작가가 글에 쓴 것대로, 요리해서 먹는 게 '내 마음대로' 상황에 맞게 만들어서, '맛있게' 먹으면 된다.

 

 


너 자신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는 일을 절대로 멈추어서는 안 돼. 앞에 놓은 음식이 무엇이든 그것을 감사하며 맛있게 먹고 웃어. 큰 경지에서 인생을 보고 너무 많은 것들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아라. 오늘 하루 먹은 음식이 별로 맛없었다 해서, 오늘 고른 내 요리가 별로라고 해서 내 인생이 크게 잘못되어지지 않듯이 말이야. 그렇지 않니?

 

.....

 


엄마가 생을 믿고 그래 왔듯이 네 생을 믿어라. 걷듯 가벼이 앞으로 나아가거라. 다만 이 한순간이 너의 생의 전부라는 걸 잊지 마라. 그리고 네 몸은 네 영혼의 집. 그걸 가꾸는 이들에게 어떻게 나쁜 일들이 오겠으며 설사 온다 한들 무슨 근본적 위험을 줄 수 있겠니? 그러니 오늘도 우리는 서로 좋은 하루를 맞자. 

 

 

삶의 지혜와 함께 버무려진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그리 거창한 글도 아니고, 거창한 요리가 있는 건 아니지만, 단순하고 소박하게 오래, 길게 간다는 알리오 올리오처럼. 담백하고, 친근한 그런 책이다.

 

정신과 육체는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육체를 소중하게 하는 것이 정신도 좋게하는 지름길이라는 것. 지금, 이 순간이 생의 전부이며, 인생이 불공평하더라도 그럼에도 어른으로서 살아가는 것. 히말라야 산을 오르듯 한 걸음씩 걷는 게 인생이라는 '딸'에게 주는 조언은 책의 맨 첫장부터 끝장까지 되풀이된다. 쉬운 것 같으면서도 늘 까먹는 것들. 매일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좋은 말들이다.  

 

한가한 휴일, 소파에 편안하게 누워 좋아하는 음악을 들으며, 공지영 작가의 [딸에게 주는 레시피] 책을 읽는 것. 나에게 위안을 주는 즐거움이다.

 

 

 

딸에게 주는 레시피
국내도서
저자 : 공지영
출판 : 한겨레출판 2015.06.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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