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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바다 그리고 당신의 바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나의 바다 그리고 당신의 바다.

Yildiz 2009. 11. 21. 18:21


피니스테레. (finistere, fisterre)
까미노 순례의 마지막 지점.
걷는 순례 일정은 산티아고로 마치고 버스를 타고 가는 순례자들이 있고,
그때까지 기력과 시간적 여유가 있는 순례자는 3~4일 더 걸어 도착하는 곳.

난 아직 젊으니까.
한 번 걸어보자! 

해서 그 길 끝에 다다랗을 때,
끝없이 펼쳐진 마법같은 바다와 사랑에 빠져버렸다.




그 후,
산티아고로 돌아와서는
6km 정도 떨어져 위치한 Monte de Gozo 의 알베르게에서 몇 일을 지냈다.

같은 방을 쓰는 순례자들 중 조금은 독특한 브라질 아주머니를 알게 되었다.
아직 어린 나로선,
어느 장단에 맞쳐줘야 하는 지 감을 잡을 수 없는...

아주머니가 피니스테레에 다녀오지 않았다고 해서
난 두 눈을 동그랗게 뜨며,

"피니스테레에 꼭 가보세요. 정말 정말 아름다워요!!
피니스테레까지 걸어가기 힘들긴 하지만
그동안 순례길에서 들판과 도시만 지나쳤왔기에
길 끝에서 발견하는 바다는 정말 멋져요!!!"

내가 온갖 제스쳐를 해가며 열성을 다해 말했거늘,

"난 문만 열면 밖에 바로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살아.
바다라면 지긋지긋해."

시큰둥하니 대답하는 브라질 아주머니에게 할 말을 잃었다.

집에서 문만 열면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산다는 아주머니를 부러워해야할지
아니면 자기 집 마당뻘인 바다보다 이 세상에 훨씬 아름다운 바다는 없다라는 뜻으로 이해해야 할지
그래도 이왕 산티아고까지 왔으니 피니스테레에도 가보라고 다시 권유를 해야할지

만약 내가 문만 열면 피니스테레의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남은 일생을 산다면,
나도 이 아주머니처럼 바다를 지겹고 시시한 것처럼 여기게 될까? 


내가 마주했던 피니스테레의 바다는 빛나는 곳이지만
아주머니에게는 특별할 게 없는 곳일 수도 있다. 
브라질에 돌아가면 다시금 마주할 당신의 바다가 있으니까.  


바다
바다
바다.

두 글자가 나타내는 '바다' 는 조금은 관념적이기도
너무 보편적이기도
그리고
조금 썰렁하기까지도 하다.

그냥 '바다' 라고 칭하기엔 슬퍼보이므로,
"나의 바다" 라고 불러본다.


짠내 나는 고향 바다, 바이킹을 타고 내려다본 부산의 광안리,
기름냄새가 진동했던 태안의 앞바다와
내가 좋아하는 피니스테레의 바다 등등
기억의 세포에 녹아있는 나의 바다가 한꺼번에 밀려온다. 


사람은 세상에 나고 지내면서
저마다 자신의 바다를 품고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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