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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청춘!

[까미노 이야기 19] 순례 17일째,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즐거운 인생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19] 순례 17일째, 함께 나눌 수 있어서 즐거운 인생

Yildiz 2009. 11. 29. 00:26


순례자들의 행복한 시간 :)                                                       2008년 6월 9일 월요일

 



새로운 하루를 깨우는 아침햇살이
어두컴컴한 구름을 빛으로 물들인다. 

오늘 하루도 마중나온 해를 바라보며 순례의 여정을 시작한다.
순간순간 살아있음을 피부로 다시금 깨닫게 하고 (가끔은 멍하니 걷는 때도 있지만 =ㅅ =.. ) 
사소한 것에도 무한감사를 연발하게 하는 특별한 여정의 소중한 하루.

오늘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한껏 마음을 부풀려 본다. 

오늘 꼭 묵고 싶은 알베르게가 있다! Berciano del Camino의 알베르게!
그라뇽, 또산또스의 알베르게와 같이 기부제로 운영되는 알베르게로
내가 가지고 있는 정보에 의하면 저녁식사와 아침식사가 공짜다. 으핫핫.

공짜로 하룻밤 잘 수 있는데다 식사까지 해결할 수 있으니 이 얼마나 좋은가!



이름 모를 풀들이 키가 크다. 마치 미로 속을 걷는 듯한 기분.
발걸음이 가벼워진다. 룰루랄라♬



어느 정도 해가 떠오르지 않았나 싶었는데, 뒤돌아보니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는 중이다.



까미노를 시작하기 좋은 계절에 대해서 대부분의 선경험자들은 여름휴가철 전인 봄이 좋다고 추천한다. 들판에 피어있는 꽃을 마주하기에 좋은 계절, 봄. 너무 덥지도 않아 걷기 좋은.
하지만 '봄' 이라고 해서 날씨를 우습게 보면 절대 안된다. 까미노의 여정이 평지에만 해당되는 게 아니라 산을 지나기도 하고, 고도가 높은 곳을 걷는 경우도 많기에 추울 때도 더러 있다.
휴가철을 피해 오면 알베르게가 만원이 될 걱정을 조금은 덜 하며 걸을 수도 있고...

근데 생각해보니 지금이 6월이니 여름이나 마찬지구나.. ㅎㅎ
하지만 아직까지는 한낮엔 더워도 해가 뜨기전, 해가 진 후에는 조금 춥다.

(지금 걷고 있는 길 가에 핀 보라색 꽃. 향기가 참 좋다. )


나보다 앞서 가던 프랑스 부부를 만났다. 어제 같은 방을 썼던 부부다. 
아주머니께서 나를 보고는 웃으시며 "싸바~?" 라고 물으신다.
정확한 뜻을 누구에게 물어본 적은 없지만
아주머니의 미소와 함께 전해지는 언어는 해석없이 그냥 이해해도 될 것 같다. 

나도 웃으며 대답을 건넨다.

"Si(네), 싸바~?" 


사하군에 닿기 전에 어제 같은 방에서 묵었던 미국인 순례자를 만났다.
어제는 대충 인사만 하고 얘기는 안 했었는데, 이왕 길에서 만난 김에 이것저것 물어본다.

그녀의 이름은 Katie(케이티).
나보다 한 살 더 많다. 
미국에서 왔나 싶었는데, 현재 오스트리아에서 교환학생으로 공부하고 있단다. 
주위의 친구들 중 까미노를 다녀온 이들이 하도 추천을 하길래 찾아왔다고 한다. 
 

이윽고 도착한 마을 Sahagun(사하군)...
이름이 독특해서 일까?
혼자 "사하군" 을 중얼대면서 피식 웃는다. 축구 선수중에 "사하(사아)" 라는 선수가 있지!
아참참, 스페인에서는 h 발음이 묵음이라 "사아군" 이라고 읽어야 하나?

(Sahagun 이란 명칭은 San Facundo 에서 따온거래요. San 은 영어의 Saint 와 같이 '성인(聖人)' 이란 뜻입니다.) 


사하군의 어느 성당 앞을 지나면서 그냥 지나칠수가 없었다. 그리 크지는 않지만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을 보고선 감탄하며 다가왔더니, 성당 입구 옆에 사람 형상 하나 세워져 있다. 컴컴한 밤에 보면 정말 누가 서 있는 것 마냥 착각할 수도 있을 것 같다.
익살맞다고 해야하나, 뚱한 표정(?)의 순례자만 찍기엔 아쉬워서, 마침 함께 있던 사람들과 기념사진을 찍었다.
 

(케이티, 나, 프랑스에서 오신 아주머니.)



아침을 코코아 한 잔과 빵 한 조각으로 배를 채웠던 탓에, 지금은 뱃속이 텅 빈 느낌..
노란색 지표를 따라 가는 길에 슈퍼를 발견하곤
'얏호!' 속으로 쾌재를 부른다.

슈퍼에서 빵과 초콜렛, 오렌지을 사고 나와서 다시 길을 걷는데,
어떤 순례자가 내게 말을 건다.

"한국사람이세요?"
"여기 수도원이 어디 있는 줄 아세요?"

"아.. 전 여기 막 도착해서요, 잘 모르겠는데요.."

"무릎이 아파서, 여기서 치료 받으러 왔는데... "
나보다 작은 체형의 아주머니는 너무도 힘이 없어 보이신다.
사하군의 수도원에서 아픈 순례자를 치료해준다고 해서 사하군으로 다시 돌아왔다는 아주머니.
무릎이 얼마나 아프시길래...

"여기 길가에는 없었던것 같구요. 안 쪽으로 들어가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 오기 전에 왼쪽 골목길에서 순례자 협회 깃발을 봤어요. 거기가 수도원인지 알베르게인지는 모르겠지만... 한번 찾아가보세요. 수도원이 어딨는지 아는 사람이 있을 거에요." 
 
매일 걷는 순례자가 무릎이 아프다는 건 참기 힘든 일인데... 게다가 등에는 배낭을 짊어지고 걸으니. 내 배낭보다 작은 아주머니의 배낭이 몇 배는 무거워 보인다. 어서 쾌유하셔서 까미노를 무사히 잘 마치셔야 할텐데.


전반적으로 흙색깔을 띠는 사하군의 건물들. 오래되어 보이는 집들도 눈에 종종 들어온다.  
여유을 가지고 천천히 둘러보고 싶은데,
옆에 있는 케이티에게 솔직하게 말하고 혼자 걸을까?
말까?

어떻게 할까?
말을 해, 말어?
이거 그냥 지나치기 아쉬운 마을인데...
혼자 가라고 하기는 좀 그렇고,
같이 둘러보자 하기에는 미안하고...

.
.
.

고민하다가 결국은...

사하군을 쓩 하니 빠져나왔다. 윽.

앞으로 나아가는 종종 뒤로 남겨둔 사하군을 돌아보며 몰래 한숨 푹푹.

말을 할 걸 그랬나,
아..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몰라.
말을 할까? 다시 되돌아갈까?


사하군에서 멀어져 마을이 보이지 않을 즈음에서야,
그제서야 나는 갈등을 멈춘다.
 
흑흑...  까미노를 다시 오게 된다면, 그때는 기필코... 
사하군을 꼼꼼히 봐야지!

이미 지나간 건 어찌 할 수 없는 바... 
함께 걷고 있는 순례자에 대해서 좀 더 알아보기 위해서 이야깃거리를 열심히 모색해본다.

(여기 보세요~ 찰칵! )


뭐라도 같은 관심사가 있고, 내가 영어를 유창하게 한다면
이러쿵 저러쿵 얘기가 술술 풀리겠는데,

케이티는 가만히 있는데 나 혼자 끙끙대며 질문거리를 만들어낸다.

"좋아하는 운동이 뭐야?"
"형제가 어떻게 되니?"

"여기 정말 넓다!"

...

이내 이야깃거리는 바닥나고 말았다.

(풀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는 tv, 예술작품인가, 아닌가. 넌 누구냥!)



 


 

끊임없이 펼쳐지는 들판의 정경.
끝에 다다랗을 때 어김없이 또 발견하는 땅의 끝자락.

하늘에 구름이 많아서 참 다행이란 생각이 든다. 
해가 쨍쨍 찌는 날에 이 곳을 지난 다면 참... 힘들었겠네.
그늘 찾기도 힘들고, 근처에 민가가 있는 것도 아니고, 

나와 함께 걷는 케이티 외에는 사람을 찾아볼 수가 없다.
 
너무 서둘러서 걸어왔나? 

그래도 사하군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온 아쉬움이 없진 않지만
케이티가 없었다면  
혼자서 외롭고 무서웠을 거란 생각이든다..

만약에 SOS를 외쳐야 할 상황이 된다면,
아무리 크게 소리친들 내 목소리를 들어줄 사람이 있을까? 
휑한 들판 속에서 고립을 상상하니 몸에 진서리가 친다.  


(저~ 기 보이는 예배당, 찾는 이가 있긴 있을까. )


길은 단조롭고
보이는 사람은 없고
케이티와는 할 얘기가 떠오르지 않고
끝처럼 보이는 길의 끝에 다다르면
또다시 발견하는 먼 길의 끝.


내 옆에서 묵묵히 걷던 그녀가 당근을 꺼내 먹는다.
"너도 먹을래?"

그녀의 손에 든 투명한 비닐봉지엔 가는 당근 몇 개 담겨져있다.
당근을 간식처럼 먹는 사람은 처음 보네.
앞으로 당근을 보면 케이티가 생각나지 않으려나.


케이티는 나보다 키가 크고, 뼈도 굵다.
이 말인 즉,
나보다 체력이 훨씬 좋다.

지루한 길 위에서 점점 지쳐가는 나와 달리
케이티는 참 잘 걷는다. 

이 사람 없었다면
홀로 걷는게 고달프고 고달프지 않았을까.
서로 묵묵히 걷고 있지만
적어도 나를 이끌어주고 있으니까.

또 어찌 생각해보면,
별로 힘든 내색하지 않는 나도
그녀를 이끌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언제 끝나나.
언제쯤 마을에 와 닿을까.

더 가야 되네.
아직 멀었네.

저기만 넘으면 뭔가 보이겠지.
아니면 말고.

마을이 있긴 있는 거겠지?
.....


멀리서 마을의 형체가 보이기 시작했을 때
그때의 기쁨이란.
얏호!! 조금만 더 힘내서!!


열심히 걸어 닿은 마을,
Berciano del Camino!

사람이 살고 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작고 조용한 마을. 
마을의 집들은 참 오래되어 보인다. 어떻게 지은 건지 참 특이하네.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배정받은 방은..
두그두그두그두그...!!



케이티와 나는 일찍 도착했기에 특별실에 배정받았다.
주황색 시트로 깔끔하게 정돈된 침대와 아담한 크기의 방. 
아, 좋다 좋아~

이윽고 온 마가렛도 합세하여 셋이 함께 방을 쓰게 되었다.
아는 이들과 같이 방을 쓰다니. 이것도 나름 운이군~

 

(왼쪽에는 도미토리실, 오른쪽으로 들어가면 특별실이 있다.)


샤워를 하고 나와 쉬고 있는데 마가렛이 함께 바에 가지 않겠냐고 묻는다. 오호! 그거 좋지.
1층으로 내려가기 전에 도미토리 룸은 어떤지 구경차 들어갔는데,
피아 아주머니와 눈이 마주쳤다.

"Ciao!!"

 

          어제 다른 알베르게에서 묵어서 못 봤던 아주머니. 참 반갑다.

(마가렛과 알베르게 외관)


마가렛과 바에 가서 와인과 초리소를 시키고 시간을 때운 다음, 오는 길에 구멍가게에 들러서 과일을 샀다.
한번 감기에 걸리고 나서는 먹는 것에 돈을 많이 아끼지 않는다. 
더이상 감기는 사양하고 싶다.  

평소에 그렇게 빼고 싶었던 뱃살이 까미노 초반에 눈에 띄게 없어졌다가
이제는 도로 재생되는 것 같다. 

아무렴 어때.
무엇보다도 잘 걷는게 중요하니까,
잘 먹어야지!
내가 좋아하는 여행길에 뱃살마저 도움이 된다면 대환영이다.
 
그럼... 뱃살은 나의 체력과 같다는 말이되나. 
흠....  


(2층으로 올라가는 나무 계단, 삐걱삐걱)


오늘 머무는 알베르게는 여러 모로 흥미로운 곳이다. interesante!
트리플 룸(침대 3개가 있는 방) 이 있고, 일층(?) 침대가 있는 곳, 도미토리 룸이 따로 있고 침대 시트 색깔들이 전반적으로 어두운 방 분위기를 살린다.
게다가 화장실은 마치 가정집 화장실 같아서 안정감 마저 든다.   
1층에는 미사를 하는 방도 있다.

(미사를 하는 방)


방에 들어갈까 했는데, 이미 와 있는 순례자의 기도를 방해하고 싶지 않아 문간에서 사진을 찍는다.
가만 보니, 저 사람
내가 아는 사람 같다. 
어디서 봤더라... 

(알베르게 1층)


리셉션에 있는 방명록에 혹시나 앞서간 친구가 다녀갔는지 훑어보았지만, 흔적이 없다. 오는 길에 갈림길이 있어서 여기에 안 머물렀을 수도 있겠구나...



사진을 찍으려고 밖으로 나왔는데, 긴가 민가 했던 순례자 앞모습을 보곤 한눈에 알아보았다.
어제 알베르게 식당에서 같은 테이블에서 식사했던 순례자!
근데.. 이름은 까먹었다... 하핫.

"안녕하세요, 친구들은 어디 있어요?"
어제 같이 식사했던 친구들은 보이지 않아서 물어본다. 

"여기 오는 길에 갈림길에서 서로 다른 길을 택했어. 다들 지금쯤 어디에 있는지 모르겠네. "
"여기에 서봐, 사진 찍어줄게." 

내 사진을 찍어주겠다고 하는 이 사람.
민망하지만 거절할 이유가 없어 카메라를 건넨다.

(혼자 찍히려니 이거 민망해.. 하하핫.. =ㅅ = )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알베르게로 들어와 부엌으로 갔다.

헛, 이게 누구야!


빅토리오씨다!
근데 인사는 둘째 치고 아저씨 코를 보곤 놀라서 가리켰다.

아저씨 코가 마치 루돌프코처럼 빨갛다.
너무 빨개서 걱정될 정도.

"아저씨, 선크림 바르세요!"

(저녁 식사 준비를 돕는 순례자들.)



부엌에선 곧 있을 저녁 식사 준비가 한창.
색색깔의 샐러드를 보니 벌써부터 군침이 돈다. 아!

내가 도와줄 일이있을까 싶어 기웃거렸지만, 다른 순례자들이 분주하게 도와주고 있어서 막상 할 게 없었다. 나중에 설거지라도 해야지.

방에 가만히 있기 싫어 밖으로 나간다.

(하이디 아주머니와 피아 아주머니가 앉아 계신다. 사진 찰칵 찰칵!)



(저녁 식사를 기다리는 순례자들.)



(빅토리오씨와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


이사람 저사람 사진을 찍고 다니는 나를 보고는 빅토리오씨가 묻는다.

"are you a journalist?"
나보고 기자냐고 물으신다.

"아니요~ "

"e... tu paparazza? "

파파라챠? 파파라치? 파파라치?
내가 여자라서 뒤에 i 대신 a 를 붙이셨나? 

내가 어리둥절해하니까
아저씨가 이래저래 설명을 해주신다. 

"스타~ 포또, 씽어~ 포또, 포또."

파파라치.. 
순례자들을 찍는 파파라치... ㅎㅎ 
나쁘지는 않은 별명 같다. 
 

(이탈리아에서 온 크리스티나와 엘리자베스.)



호스피탈로가 고개를 내밀고는 저녁식사 준비가 다 되었다고 알린다. 

와우! 드디어~!!

순례자들이 부엌으로 가 자리를 잡아 앉은 다음,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로들이 차례로 인사를 한다.


"식사 후 미사에 참석하고 싶은 순례자는 기도실로 오면 되고, 끝나고 밖으로 나가서 일몰을 보도록 해요."
  
함께 기도를 하고,
자, 이제 식사 시작!
부엌에서
샐러드 볼과 빵을 받아 뒤쪽으로 차례로 이동시키고, 접시에 샐러드를 먹을 만큼 담는다.  
맛있겠다!
잘 먹겠습니다아!


(저녁식사를 하는 순례자. )


분주하게 움직이는 손들,
와인을 따르고, 샐러드를 접시에 옮겨 담고, 빵도 뜯으면서 냠냠.



다른 테이블에 앉아서 식사하던 빅토리오씨가 나를 발견하고는
붉은 와인이 담긴 컵을 자신의 코의 위치만큼 올려서 내게 사진을 찍어달라고 하신다.

"Rosa~"

와인을 드셔서 얼굴이 벌겋게 오르셨는데, 코는 정말이지.
불이 날 것 같다.
레드 와인처럼 빨간 빅토리오씨의 코.

"자 봐, 빨갛지! 빨게!"


헤헤헤, 유쾌한 빅토리오씨. 
파파라챠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하는 나.  ^. ^

(맞은편에 앉아 있는 엘리자베스와 크리스티나)




내 옆자리에 앉은 아주머니가 나를 가볍게 치면서 "또산또스 어쩌구 저쩌구~ " 하신다.
난 불어를 못하고, 아주머니는 영어를 못하셔서, 길게 대화를 나누진 못 하지만
또산또스에서 처음 본 걸로 시작해서, 가끔 알베르게에서 봤던 아주머니.
"우리 몇 번 보지 않았느냐~ " 하는 얘기를 하시는 것 같다.

옆에 앉아 계신 분께 나를 소개하신다.
성함도 모르고 서로에 대해서 잘 모르지만
웃으면서 인사한다.

이젠 사진 찍을 만큼 찍었으니, 나도 먹는데 집중해볼까나~

렌탈 수프를 마지막으로 배를 채우고, 와인도 조금씩 홀짝홀짝.

식사가 끝나고는 테이블 정리하는 걸 돕고 나서 부엌으로 들어가니,
이미 자리를 차지한 순례자들이 도란도란 얘기를 하며 즐겁게 뒷정리를 하고 있다.



아저씨들이 나서서 저렇게 설거지도 하다니. 잠시 고개를 갸우뚱. ㅎㅎ
내가 도울 일이 없어서 부엌을 나왔다.


미사에 참석할 순례자들은 기도실로,
일몰을 볼 순례자는 밖으로!


미사에 참석할 요량으로 방으로 들어가니 이미 엄숙한 분위기가..
뭐.. 그냥 했다 치고 해를 마중나가자! 



                       이크,
                    해가 금방 떨어지겠네.



일몰을 보는 사람들 틈에서 나는 그들의 삶을 상상해본다.
아니, 상상이라기 보다 질문을 던진다.

무엇이 이 사람들을 까미노에 오게 했을까,
이 길에 오기까지 어떤 길들을 걸어왔을까.

순례자라는 이름으로 한 데 모여 아름다운 순간을 공유한다는 것 -

어찌 보면 참 신기하다.
여행을 오지 않았으면 전혀 몰랐을 삶의 존재들을 만나고
그들 추억의 일부분에 내가 스며들 수 있음을.

이 곳까지 힘들게 왔을 그들의 까미노 여정,
그리고 삶의 여정에 대하여

작게나마 박수를 보내고 싶다.
앞으로의 여정이 쉽지만은 않겠지만, 모두들 부엔 까미노 하기를.

그리도 나 역시도 부엔 까미노가 되기를! 

지는 해를 바라보며 기도해본다.   


행복 충만,
함께 나눌 수 있어 즐거운 인생.

꼭 큰 것이 아니더라도, 미소와 작은 나눔이 함께 나누면 배가 된다는 사실!
아무리 식사가 무료이고 하룻밤 자는게 무료라고 하더라도
혼자서 누린다면 이런 행복을 느낄 수 있을까.

호스피탈로들의 정성, 사람들의 대화와 정다움, 미소가
마음을 따뜻하게 하는 날이다.


나의 특별실로 돌아와서 잠을 청하려는데,
옆방에서 어느 순례자의 코골이 소리가 들려온다.

와우...
이렇게 큰 코골이는 처음 들어보는 것 같다.
게다가 일정한 리듬을 타는 코골이도 아니고 제멋대로 켜지는 소리.
잠잠해졌다가
순간 까딱하면 숨이 넘어갈 듯 긴박하게 요동치며 울렸다가
다시 또 잠잠해졌다가...

정말 끔찍하군! 

하지만...  아무렴 어때.
난 푹 잘 수 있으니까. 음하하!!

 


+Plus

이내 terrible 한 코골이 소리는
귓전에서 밀려났지만,


한낮에 그 지겨웠던 평지를,
끝없이 펼쳐졌던 들판을 홀로 걸었다.

으악! 꿈에서조차 걷다니.
난 진정 쉬고 싶다!! ㅠㅅ ㅠ



오늘의 코스~ >ㅅ <!!

Terradillos de Los Templarios - San Nicolas del Real Camino - Sahagun - Calzada del Coto - Bercianos del Camino = 23.8km

오늘의 지출~

아침에 바에서 코코아와 빵 2.2 + 사하군 슈퍼에서 3.66 + 알베르게 기부금 3 + 마을의 슈퍼에서 과일 0.62 + 마을 바에서 커피와 초리소 6.7 = 16.18유로


오늘의 스탬프!

알베르게 옆 공터에서 볼 수 있는 일몰을 상징하는 걸까?
아니면 바다 아래로 지는 해를 나타내는 걸까.
바다 위로 뜨는 해?

까미노의 상징이 새겨진 자그마한 돌 위에 쉬고 있는 순례자.

Bercianos del readl camino 알베르게 스탬프.







 

안녕하세요! 일디즈 입니다! >ㅅ <!!!! 생각했던 것보다 늦게 포스팅하네요. 마음속에 담아둔 심정을 적기엔 제 글쓰기 실력이 영... 따라주지 않아서, 고뇌의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끈기 있게 집중을 잘 못하는 탓도 있구요.. 그래도 뭐... 열심히 쓰는 수 밖에 없겠죠.. ㅠㅠ  무릎이 아파 수도원을 찾던 아주머니는 그 날 잘 찾아가셨는지 모르겠습니다.. 그 이후로 만난 적이 없거든요. 글을 쓰다보니 '그 때 같이 동행해서 수도원을 찾았으면 좋았을걸'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 서두를 이유가 없는 길 위인데, 전 항상 서두르곤 했으니까요. =ㅅ =;; 
가끔 심신이 지치고 힘들었을 때, 이런 알베르게에 머물면서 참... 회복하는데 도움이 됐던것 같아요. 국적이 달라 대화가 잘 통하지 않더라도 함께 밥을 먹고, 뒷정리를 하고, 미사를 하는 시간 동안 좋은 에너지를 주고 받나봐요. ㅎㅎ 까미노를 걸으면서 아름다운 광경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들도 그에 못지 않게 기억에 많이 남네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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