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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청춘!

[까미노 이야기 20] 순례 18일째, 인생에서 남는 것은 결국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20] 순례 18일째, 인생에서 남는 것은 결국

Yildiz 2010. 2. 11. 09:58


지루한 길 위에서 인생을 생각하다 
 2008년 6월 10일 화요일

얏호!
알베르게에서 무료로 제공하는 아침을 먹고 시작하는 하루.
짐을 챙겨 부엌으로 내려갔을 땐,
이미 아침을 먹고 출발한 순례자들의 흔적들이 가득 했다.
모처럼 모닝커피에다 버터, 잼을 듬뿍 바른 비스켓으로 배를 채우니 출발부터 든든!
아주 좋아용~~

그나저나,
다음 사람들은 부족함 없이 먹을 수 있을까.
괜시리 마음이 쪼끔 무겁다.
나름 다음 순례자들을 위한답시고 어제 기부금을 얼마 내긴 했지만, 
얼마 되지 않는 돈과 내가 알베르게에서 누린 '호사'에 비하면
새 발톱만한 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고...

그래도 조금이나마 기부하길 잘했다!
적은 액수를 바게트 몇 개로 환산해보니
누군가의 굶주린 배를 채워줄 수 있을 것 같다.
나름 기분이 좋아진다. 


오늘부터 순례길의 동반자가 생겼다!
그건 바로...
어제 마가렛이 준 스틱!!
마가렛이 원래 가지고 있던 스틱 중 하나를 내게 주었다. 자신은 필요 없다면서.
두 개 가지고 걷기가 좀 번거로웠나? 
하긴... 마가렛이 원체 잘 걸어서 처음부터 스틱이 필요없었던 건지도 모른다. 히히.

"오... 정말 고마워!!"
이게 왠 떡이냐, 냉큼 받아챙긴 스틱.
안그래도 필요했던 아이템이다.
내 키에 맞게 스틱 길이조절이 안된다는 단점이 있지만,
보조다리가 있다는 것에 이리 기쁠수가 없다. >ㅅ <!!!!!
더이상 내리막길이 무서워 벌벌 떨 일은 없겠다, 랄라라~

첫 마을에 다다르기 전에 하이디 아주머니를 만났다. 
길에서 아주머니를 마주치는 건 이번이 두 번째다.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반창고를 지니고 산다.

마을 사람들은 아직도 자는 건지,
골목길이 썰렁~ 하다.
이런 조용한 길을 지날때는
마을은 현지인들을 위해 존재한다기보다
순례자를 위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시원하게 뻥 뚫린 길 위를 가볍게 걷는 와중에
아주머니가 내게 대뜸 심각한 표정으로 말을 건넨다.

"어제 알베르게에 있던 그 순례자 말이지... "

아주머니의 영어발음이 독일어처럼 들리는 게 있어서 세세한 부분은 놓쳤지만...
어떤 순례자의 가까운 이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한다...
내가 군데군데만 알아들어서 그 순례자가 누구인지 모르겠다.  
잘 못 알아들었으니 다시 말해달라기가 마뜩치않아
그저 다 알아들은 척 심각한 표정을 짓는다.

사랑하는 사람이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했다니...
얼마나 슬플까. 
가늠하지 못할 깊이에 있을 그 슬픔...

하지만 그는 까미노로 떠나왔다.
아마도 이번 여정이 슬픔을 치유하고자 하는 목적이 아닐까 추측해본다.

여차저차 상황을 아는 아주머니는
어제 지인으로부터 받은 충격이 꽤 크셨나보다. 

아주머니를 달래주기 위해서...
무엇보다 나의 언어가 정말로 이루어지길 바라면서.
말을 떼어낸다.

"...결국엔 다 괜찮아질거에요.
사람은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를 받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에 의해 상처가 치유되잖아요.
그 분은 이번 까미노를 통해서 슬픔을 극복할 수 있을거에요."

장담하듯 말한다.
정말 그렇게 되길 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아주머니의 상처도
회복되기를 빈다.

사람은 살아가면서 고의적으로
혹은 의도치않게
타인에게 상처를 주거나 받는다.


이때껏 상처만 받으면서 살아왔다면,
마음은 온갖 상처로 인해 누더기처럼 너덜너덜해질 법도 한데
꼭 그렇지도 않은 걸 보면
사람은 저마다 마음 속에 반창고를 지니고 사는 것 같다.
자신의 생채기에 한 두장,
그리고 누군가에게 나누어줄 여분의 반창고도 함께.


Bercianos del Camino 알베르게 같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식사를 하거나
길 위에서 우연히 만나는 사람과 친구가 되고
친근한 인사와 대화를 통해서
그 순례자의 상처는 자신도 모르게 조금씩 아물어갈 것이다...
길 끝에 다다랐을 때,
텅 비어 있는 것만 같았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 채워져 있기를 빌어본다.



잠시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고는 
조용한 거리와 아주머니를 사진에 담는다.

아주머니도 배경이 마음에 드셨는지 사진 한 장 부탁한다며 당신의 낡은 카메라를 내게 건넨다.



작은 마을이라 금방 빠져나와 끝이 어디인지 모를 길 위에 들어서게 되었다.

평평하게 잘 깔린 아스팔트는 자전거 타고 순례하는 사람들에게 너무도 편한 길일 것 같다.
아마도 순례자를 위해 깔끔하게 길을 정돈한 것 같다. 

"부엔 까미노" 라는 인사가 끝나기도 전에
쌩~ 하니 앞서 가는 자전거 순례자들 쳐다보자니
영락없이
나는 거북이요,
그대는 토끼다.
메세타에서만큼은  "발로 걷는" 순례자의 자부심이
조금은 무색해지는 기분이랄까-_ -;;
자전거.
메세타에서는 정말, 진심 부럽다!!

평지라 걷기 편하긴 하지만,
주위의 황량함과 반복되는 경치는
오히려 울창한 숲과 부지런히 지저귀는 새들을 그립게 만든다.

그래도 오늘은 운이 좋은 것 같다.
구름 한 점 없이 해가 쨍쨍 내리쬐는 날이었다면,
이 황량한 메세타를 사막인 것 마냥 상상하며 걸었을지도... 흐엇 ; ( 



이번이 네번째 까미노인 하이디 아주머니에게 메세타는 어떤 곳일까? 궁금했지만,
나름 메세타를 즐기면서 걸을 방법이 있을거란 생각에
나만의 방식을 찾아 즐겨보고자 마음 먹는다.
아무리 메세타가 무식하게 넓고 너른 평지이긴 해도,
뭔가 찾아보면 근사한 게 숨어있을지도 모른다.  



"난 여기서 쉬다가 갈래."

길가의 벤치에 앉아서 간단한 간식을 먹은 후,
하이디 아주머니에게 내 배낭을 잠시 봐달라고 부탁한 뒤 화장실을 다녀와서였다.
길 가에 화장실이 없어서 내내 참고 있다가, 폐허같은 건물을 발견하고는 그 곳에 몸을 숨겨 이용했다.

"Ok, Bye. Buen Camino!"

나는 오늘 많이 걸을 생각이니까...
어쩌면 아주머니와 마지막 인사가 될지도 모르겠다.
아주머니를 다시 만날 수 있을까?
뭐... 인연이 있다면..
까미노 위에 있는 한
언젠가 우리만의 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질 것이다.

희안한.. 집? 진짜 누가 살까? 궁금궁금.



나도 파울로 코엘료처럼 위대한 결심(?)을 하고 싶다!!!
 


누군가 붙잡고 수다를 떨며 지루함을 이겨내고 싶은데,
처절하게 혼자다.

어쩔 수 없지...
운 좋으면 누군가를 만나는 거고, 아님 말고!

그나저나 파울로 코엘료는 메세타를 걸으면서 무엇을 발견했을까?
그는 이 길에서 뭔가 번뜩이는 걸 발견했을까?
그와 나의 내공 차이를 고려해봤을 때, 
"뭔가"를 발견할 수 있는 건 그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털썩=ㅅ =; 
기운이 빠진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보니,
파울로 코엘료는 길에서 꿈을 찾은 게 아니라.  
이미 오래 전부터 간직해왔던 '작가' 꿈을 이루기로 결심한거지!

길 위에서 "뭔가"를 찾아보고자 한 건 무모한 시도였단 생각이 든다..
길 위에서 찾아야 할 게 아니라, 내 안에서 찾아야 하는 거니까.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 안에서 찾을 수 있는 것에 대해
나는 아직 파울로 코엘료처럼 완벽한 확신을 갖지는 못하겠다.

나도 그처럼 까미노에서 내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만한
결심을 하고 싶었지만,

까미노는 내게
인생을 더 살아보라고 말한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도 PD에 대한 갈망이 여전하다면 한번 도전해보면 되는 거고.
이 길이 영 아니다 싶으면, 되돌아 나와 다른 길을 찾아나서면 된다고.
그저 마음이 가고자 하는 길을 걸어보고, 그 길 끝에 뭐가 있는지 알아보라고. 

복잡하고 어렵다고 치부했던 인생에 대해
까미노는 참 단순명쾌한 해답을 알려준다.

생각해보면
그동안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 애쓰면서 살아왔던 것 같다.
내리막길 앞에 서면
미끄러질 것 같아서 한 발 앞으로 내밀기 두려워했고,
땡땡 언 눈길을 걸을 때 조금이라도
미끄러지지 않으려고
심지어 휘청거리지도 않으려고
아주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걸어다녔다.

여름 농활을 가서 피사리를 할 때,
열심히 일을 하면서도 얼마나 몸을 사렸으면
"언니는 내가 봤을 때 일 열심히 하던데
 어떻게 논에 한번도 안 들어간 사람처럼 옷이 깨끗하지?" 라며 후배가 너스레를 떤 적도 있었다.

미끄러운 길을 걸으면
한 번쯤은 넘어질 수도 있는 거고,
끈적끈적한 진흙탕에서 중심을 잃고 넘어질 수도 있는 건데,
난 너무 완벽하기를 원하거나
상처 받기를 너무도 두려워했던 것 같다.

더군다나 인생의 길목에 서서
어느 길을 택할 지 고민하는 건 더더욱 두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까미노를 걸으면서 느끼는 건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운명이 다 할 때까지
삶이라는 길을 걸어나간다는 것.
내 짐의 무게는 오롯이 내 몫이다.
그 누구도 내가 가야할 길을 대신 걸어주는 것이 아니므로,
그저
내 앞에 주어진 길을 묵묵히 홀로 걷는 방법 밖엔 없다.  

용기있게 앞으로 내민 한 발자국에 대한 기억과
스스로에 대한 믿음이 있다면,
고부랑길이든,
언덕길이든,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을 것이다.

길에서 미끄러지고
넘어지더라도
너무 크게 걱정 안해도 될 것 같다.

아프면 잠시 아파하면 그 뿐.
다시 일어나 걸을 수만 있다면,
그러면 됐다.

그러니,
삶의 무게는 조금 더 가볍게
신발끈 꽉 조여매고
무수한 길을 걷다보면,

나도 언젠가 결심을 하게 될 날이 오지 않을까?
그것은 과연 무얼까?

자, 무엇을 하며 살 것인지는
앞으로 계속해서 탐구해봐야하느니라.
고민 해결!
그러니 패쓰.
짝짝짝.

다음 문제는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

'무엇을 하며 살 것인가' 고민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도 해야하는 거라고
J교수님께서 조언을 해주신 적이 있다.

음...
사람들과 함께 어울리고,
식사 준비, 정리도 서로 도우고,
호스피탈로의 친절에 거듭 감사를 외쳤던.
어제 머물렀던 알베르게에서 행복했던 기억들이 떠오른다. 

더 많은 소유를 하기 위해 살기보다는
비록 내가 가진 것이 얼마되지 않더라도
사람들과 함께 나눌 줄 아는 삶을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내 욕심만 채우는 것보다
순간의 미소와 행복을 다른 사람과 나눔을 통해서
삶의 기쁨이 배가 된다는 단순한 '진리'를 배웠기 때문이다.

앞으로 남에게 어떻게 줄 것인가에 대해서 더 고민해봐야겠다. = )



인생에서 남는 것은 결국...

지루한 길을 겪는 와중에 마을에 가까이 다가가고 있음을 알게 되면
그렇게 힘이 날 수가 없다.

앞으로 내미는 한 발자국
한 발자국이
결국은 까미노의 종착점인 산티아고로 이끌어준다는 생각을 해보면

인생을 사는데 있어서도
누구나 한 번쯤은 메세타를 걸어가겠지.
끝이 보이지 않는
기나긴 시련.
 
까미노에서 만나는 메세타는
그래도 어느 지점에서 이 길이 끝날 것을 알기에
엄청 고달프진 않지만,
까미노보다 긴 우리네 인생에서
메세타는 훨씬 더 기나긴 여정일지도 모른다.

지루하고 고달픈 '메세타' 의 경험도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꼭 필요한 코스라는 걸 인정해야겠다.
그러니
목표를 향해 걸어가는 발걸음.
힘들 땐 있는 힘을 다해서,
편히 쉴 수 있는 곳에 머지 않아
도착할 수 있을 거란 희망을 가진 채
그렇게 한 걸음씩 옮겨 길을 걷다보면
정말 어느새 내가 원하는 곳에 닿을 수 있을것이다.

걸으면서 항상 집중만 하는 건 아니다.
생각의 한 꼭지를 붙잡고 있다가,
어느새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타고 생각의 파도에 몸을 싣는다.

헤어진 남친 생각하며 울먹이기도 하고
오래된 기억들을 다시 꺼내면서 그리워하거나 실수했던 걸 떠올리며 또다시 민망해한다.
어제 즐거웠던 기억들을 다시 되새기면서 혼자 낄낄 웃기도 하고...

결국,
사람은 인생을 사는데
자기자신이 경험한 것들이 전부가 되겠구나
,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니,
잘 살아볼 수 밖에!
지루한 순간 속에서도
즐거웠던 추억을 떠올리며 힘을 내며 사는
그런 내가 되어야 겠다.


위로 올라갈 수록 선명해지는 자연의 색, 구름, 참 좋다.


홀로 걷는 까미노.
길바닥에 있는 타인의 흔적을 쳐다보며
혼자가 아님을 위안삼아 보기도 하고

내 키의 몇 십배는 될 전봇대와 길게 이어져 있는 전선을 보며
사람들이 우글거릴 마을의 존재를 상상해본다.


아저씨, 저도 자전거 태워주세용=ㅅ =;;


집이 보인다!
이제야 조금씩 끝이 보이는 구나. ㅎㅎ

Mansilla de las Mulas에 도착하다

한나절 적적하게 걸었던 길에서 해방될거라는 생각만으로도 힘이 나는 이 시점.
어제 알베르게에서 만났던 아저씨- 독일 아저씨를 만나 함께 마을로 들어온다.



마을에 들어서는 광장에 순례자를 반기는 기념비가 눈에 띈다.
짐을 내려놓고 잠시 쉬는 남자, 여자 순례자.
힘든 순례의 여정에 지쳐서일까.
남자 순례자는 고개를 푹 숙이고 있다.

그냥 사진에 담기에는 밋밋해서
방금 전에 만난 독일 아저씨께 포즈를 부탁한다. 


"좀 더 가까이, 여자친구처럼!"


오늘을 통틀어 가장 활기가 느껴지는 마을의 중심으로 들어왔다. 
이 곳에 머물러 마을을 찬찬히 둘러보는 것도 좋을 것 같지만
내일 레온에 일찍 도착해서 도시를 구경하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무리하게 걷는다.

마을에서부터 함께 동행한 독일 아저씨와 알베르게 앞에서 작별인사를 한다.

얼마 걷지 않아 헝가리 친구들을 만났다.
"알베르게 어딨는지 알아?"

한참 길을 헤맨 것 같아 보이는 이 세사람.
난 피식 웃는다.
어쩌다 길을 잃고 헤맨 걸까.
노란색 화살표만 잘 따라왔으면 금방 찾을 수 있었을텐데,

"저 쪽으로 가세요~ "

알려주고 몇 걸음 가다가 왠지 기분이 찜찜해서
다시 돌아가 그들을 찾는다.

혹시나 했는데, 역시나!
또 길을 잘못 들어서고 있다.

"거기가 아니라, 이 쪽이에요!"

고맙다며 웃는 순례자들.

이번엔 제대로 길을 찾아 들어가는 걸 확인하고는
다시 길을 나선다.



요새? 성벽?
마을에서 멀어지면서 발견한 오래된 건축물!!
세상에나.
정말 오래되어 보이는데...
이걸 두고두고 구경하지 못하고 이렇게 지나치다니. -ㅅ-

그렇다고 가는 발걸음 아쉬워서 다시 돌아갈 엄두도 나질 않는다.
쳇.
다음을 기약할 수 밖에!!
까미노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여기에 머물러서 저걸 탐구해봐야겠다. 힛.


Puente Villarente로 가는 길...

혼자 걷는 길,
아, 이렇게 홀로 까미노를 독차지 하는군. ㅎㅎ

이렇게 흡족해하고 있다가
뒤를 돌아보곤 깜짝 놀랬다.

온타나스(Hontanas) 에서 만났던 한국인 순례자가 내 뒤로 오고 있는게 아닌가!

아내와 함께 까미노를 오기로 했었는데, 자신이 가지 못하는 상황이 되자
아내가 말 없이 훌쩍 떠났고,
그런 아내를 찾으러 까미노로 온 아저씨다.
그의 사연을 처음 들었을 때,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오 자히르" 가 생각났다.
무슨 사연인지는 자세하게 몰라도,
까미노를
나그네, 구름에 달 가듯 걷는 아저씨가 못내 미더웠었다.
누군 까미노에 오고 싶어도 쉽게 못 오는 사람도 많은데,
아내를 찾는다고, 이 좋은 곳을 휙휙 지나치니까.

하지만
몇 일만에 만나는 아저씨는 예전과 다른 모습이다.

어디서 장만했는지, 기다란 나무 막대기가 손에 쥐어져있다.
제법 순례자다운 모습이랄까.

이젠 까미노를 즐기기했다는 그.
박수쳐줄만한 일이다!

Ciao, Mansilla



Puente Villarante 가는 길에 긴 다리를 마주했다.
아, 이래서 마을이름에 Puente(다리라는 뜻) 가 들어갔구나,
생각보다 긴 다리.
여기만 지나면 드디어 마을이다!!

마을에 들어서자마자
눈에 보이는 알베르게로 돌격!
욕심을 부려 많이 걸은 탓에,
정말 지칠대로 지친 나.

무작정 들어오긴 했으나
알베르게 부엌을 보곤 내심 실망했다.
뭔가 요리를 해서 먹고 싶었으나 부엌은 내 기대를 한껏 무너뜨려주었다.
든든하게 먹기엔 글렀군. =ㅠ =;

아저씨와 내가 첫 손님인건지
알베르게 방 안에 아무도 없었다.

나와 같은 방을 쓰기가 좀 뭐 하셨는지 다른 방으로 옮기시는 아저씨.
이런 서먹한 순간이란.

늘 그렇듯이 초간단 샤워를 하고
늘 그렇듯이 굶주린 텅 비워버린 위를 채우기 위한
샵힝을 하러 갈 차례.

아저씨와 함께 나선 마실길에서
반가운 한국인 부부님을 만났다!

어제 그제 못 뵈었던 탓에
무척이나 반가웠고,
그동안 못 본 친구들의 안부도 물어보았다.

난 별로 해드리는게 없는데
늘 뭔가 주시는 부부님.
이번엔 아이스크림을..사주신다. +ㅅ +

이거 참 정말 감사해서...
다음번엔 내가 대접해드려야지! 꼭 꼭!



길가에 노란색, 빨간색, 분홍색... 색색의 장미들이 내 눈을 현혹시킨다.
오우~ 너무도 아름다워 +_ +!!
손에 있는 짐이 걸리적거리기에,
좀 이따 다시 와야겠다. 장미 사진 찍으러. 호호.


다시 만난 군

저녁으로 먹을 것과 내일 아침까지 든든하게 채울 수 있는 식량을
왕창 사들고 알베르게 방으로 들어왔는데,
그새 방이 꽉 찼다.
침대머리에 안전모가 놓여있는 걸 보곤
자전거로 순례하는 사람들이구나! 하고 눈치챘다.

근데,
알고보니
다 남자................. 만 있네?

하하하.

몇 초의 망설임도 없이
배낭에 대충 짐을 꾸겨 넣고
아저씨가 있는 방으로 이동한다.

"아니, 왜... ?"
"저 방엔 남자밖에 없어서.. "

다행히 이 방에 남은 자리가 많아 편히 누울 곳에 짐을 놓는데
한 여자와 눈이 마주쳤다.

아니!! 이 사람은!!
군(Gun)이다!

내가 "Hello!" 라고 말을 떼기도 전에 그녀가 내게 묻는다.

"Do you remember me?"

오우, 이건 내가 할 소린데!
당연히 알죠!

첫 인상이 깐깐하고 새침하고, 까탈스러웠던 군이
나에게 엄청 반갑게 말을 걸어서 조금은 당황스럽다.

여기까지 오는 길에서 한 사람도 마주치지 않았다며
군은 나와의 재회를 생각보다 무척 좋아라한다.

"오늘 저녁은 푸짐하게 먹고 싶은데, 혹시 괜찮다면 나와 함께 하지 않을래?"

라고 묻는 군에게
나는 이미 저녁에 먹을 거리를 사왔다며 선뜻 거절할 순 없었다.

한나절 혼자 걷느라 외로웠던 그녀에게
말 벗이 되어주어야 한다는 일말의 의무감이 생겼기 때문이다.

군과 함께 알베르게 바로 옆에 있는 레스토랑으로 갔다.
레스토랑의 첫인상은 그리 내게 군침 돌게 해주지 않았지만,
아무렴 어때,
뭐니뭐니해도 혼자 먹는 밥보다는 맛있을테니까.
게다가 군과 단둘이 밥을 먹게 될줄이야. 상상도 못한 일이다.

테이블을 골라 앉아 메뉴판을 보던 군이 내게 제안을 한다.
"밖에서 식사를 하고 싶은데... 괜찮니?"

레스토랑 창문을 통해 보이는 햇빛이 마음에 들었나보다.
안될거 뭐있어.
"좋아요!"

레스토랑 밖에 설치된 테라스가 없었던 탓에
군은 웨이터에게 야외에서 식사를 해도 되냐고 묻자
웨이터는 친절히 테이블을 밖으로 옮겨주었고
우리 둘은 의자를 옮긴다.

해가 비치는 건 좋은데
바람이 분다는 단점이...
하지만 난 그리 까다로운 사람이 아니니
음식에 모래가 들어가든 말든 상관없다.

높은 건물이 없는 마을이라
해가 훤히 다 내비친다.

스페인어를 아는 군의 도움으로 메뉴를 골라 만찬을 즐기기 시작한다.

"내일은 어디까지 걸을 생각이에요?"
"레온 다음 마을까지 걸을 생각이야, 넌?"

"전 레온에 일찍 가서 이곳저곳 돌아다니고 싶어요.
전에 우리 만났던 마을 기억해요?
제가 가진 옷으로는 지내기 추웠어요. 그래서 좀 두터운 옷을 사고 싶어요."

"글쎄... 내가 생각하기에는..."

순례길의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있고, 중간에 높은 곳을 지나야하긴 하지만
날이 점점 더워지는 걸로 판단해보면 굳이 옷을 살 필요가 없다는 군의 의견이다.

아, 그러고 보니 그러네.
군의 현명한 조언에 감사를 표했다.

군의 직업은 도서관 사서. 책을 정말 많이 읽겠구나 싶다.
첫 만남 때는 이 사람과는 친해지지 못할 것 같았는데, 공통인 관심사가 있다는 건 알고는
좀 마음이 편해진다.

까미노에 대해서 얘기도 하고
친구들과 뿔뿔이 흩어져 혼자가 된 군에게 
난 군의 친구(순례자 동상을 여자 친구 삼아 사진 찍힌 아저씨...)를 만났다며
메모리 카드에 담긴 사진을 보여준다.
군은 자신의 친구를 보며 반가워한다.

군이 추천해준 렌탈수프(작은 갈색 콩같은 거) 는 맛이 좋았지만
오랜만에 먹고 싶었던 새우는 대략 실패. 그냥 배 채운다는 생각으로 먹는다.
군은 후식으로 푸딩을, 나는 아이스크림을 시켰다.



군은 후식으로 푸딩을~



삶의 호흡이 가늘어질 때, 나는 무엇으로 살까

여유롭게 디저트를 먹고 있는데
10대로 추정되는(혹은 그보다 나이가 더 많을지도 모르는) 청년이
휠체어을 탄 어르신을 해가 정면으로 보이는 자리에 모셔다드린다.
연세가 어떻게 되시는 걸까?
한낮의 햇볕보다는 덜 뜨거운 열기를 받으며
할아버지는 눈을 감고 계신다.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시는 걸까?
어쩌면 그저 따사로운 햇빛을 그저 즐기시는 건지도 모른다.

순간,
나는 할아버지를 보며
꼬부랑 할머니가 될 미래의 나를 떠올린다.

태어나서 이때까정 의지했던 두 다리는 스스로 지탱하기 힘든 날들이
언젠가는 찾아와 나도 휠체어를 타야할 지도 모를 일이고,
건강했던 청년의 몸안에 있는 장기들은
너무 바쁘게 살아온 나머지 희미한 숨소리로 남은 생의 순간들을
하루하루 연장해나가고 있다면?

갓 태어난 태아가 홀로 살아갈 수 없듯이
나이들어 간다는 것 또한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뜻하니
삶의 순리라고도 할 수 있고, 어쩌면 모순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사람이라면 누구나 치뤄야하는 섭리라는 점에서
공평한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저 할아버지와 같은 나이가 되었을때,
무엇을 하면서 살게 될까?
몸을 마음껏 움직일 수 있는것도 아니니
주로 홀로 앉아 있거나 누워있어야할지도 모른다.

그럴때 나는 주로 생각을 하겠지.
아마 그동안 내가 살아온 삶에 대해서 생각을 할 것 같아.
즐거웠던 순간들, 함께 했던 고마운 사람들을 생각하며-
때론 실패의 순간들이며, 지극히 미워했던 사람들도 떠올리겠지.

삶의 호흡이 가늘어지는,
생의 끝자락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인생에서 남는 것은
그 사람이 지나왔던 순간들이 아닐까.

내가 살아온 순간들, 추억들이
고단하게 살아왔던 두 다리를 대신해서
지탱해주지는 않을까?

그때의 나를 위해서라도
좋은 추억들을 많이 만들어야겠다.
단순히 되풀이되는 일에 치여 사는것보다
여행 다닐 수 있을 때 많이 다녀보고
사람들도 많이 만나고...

그리고 내가 지금 걷고 있는 길에서도
좋은 사람들과 좋은 시간을 보내야겠다!

지금 이 순간이
언젠가 떠올릴 추억거리라 생각하니
왠지 모르게 코 끝이 찡해진다...

식사를 마친 후 알베르게로 돌아와 군은 독서를,
나는 도로변에 장식되어있는 장미를 찍으러 거리로 향한다.




정말 정말 예쁘다~~!! +ㅅ +!!!




양이 찰 때까지 열심히 장미를 찍고 나서 이젠 됐다 싶어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늦은 시간이 아닌데도 알베르게 룸메들은 대부분 침대위에서 잠을 청할 태세다.
하긴, 나도 굳이 할 것도 없으니 푹 쉬어서 내일 열심히 걸을 체력을 비축해야지.

오늘도 까미노를 주구장창 걷는 꿈을 꾸게 될런지.
윽.

꿈의 세계로 급속도로 빠져들기 전,
군의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결국은 감기가 심하게 걸렸나?
그때 내가 감기 걱정해준게
괜한건 아니었구나...

내일은 또 어떤 만남,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

기다려라, 레온,
내가 간다, 두둥!


오늘의 코스~ >ㅅ <!!!

Bercianos del Camino - El Burgo Ranero - Reliegos - Mansjlla de las Mulas - Puente Villrente = 32.8km

오늘의 지출!

바에서 코코아 1.2 + 슈퍼 5.79 + 숙소 7 + 저녁식사 10 = 23.99유로 



오늘의 스탬프!

으악!
다리를 걷고 있는 순례자 문양은 좋은데...
테두리가 너무 커서 크리덴시알에 자리만 차지한다.
앞으로도 찍을 스탬프 많을 텐데.. 흑.







아아악~~~~~>ㅅ <!!!!! 2달을 넘겨서야 포스팅하는.... -_ -;; 게으르기도 했고, 우울모드여서 그랬는지 글은 안 써지고. 
하지만 게으름 탓이죠.. 너무 빨리 가려하기 보다는, 꾸준히 조금씩 써서 까미노 이야기를 완성해야겠어요. 이거 하나 제대로 못 쓰면 뭘 할 수 있을까요. =ㅛ=; 

혼불의 최명희 작가.. 아시죠? 정말 정말 아름다운 문체를 지닌 작가죠..
인생을 길로 비유하여 풀어내는 이 문장들이 너무도 좋아 고스란히 배껴봅니다.


혼불 vol.6
효원의 생각, p 221, 222

 

사람의 일이, 토방에서 대문간만 나가려도 자칫 잘못 발을 헛디뎌 넘어지는 수가 있는데,
한나절 좋이 걸어가야 하는 십 리 길은 어떠할꼬.
떨쳐입은 진솔옷에 흙탕물도 튀어오르며, 비단 갖신 고운 발로 지렁이도 밟으리라.
내 앞을 가로지르는 미친 개, 누런 황소도 만나겄지.
길도 또한 평탄치만은 않아서,
냇물도 건너며, 고개 넘어, 산모롱이 길게 휘돌아 지루하게 멀리 걷기도 할 것이다.

십 리가 그러할 때 하루 해 온종일 깜깜하기까지 걸어야 하는 백 리 라면 어떠할까.
가다가 길이 끊어진 곳도 있고, 돌짝밭 가시덤불 뒤엉킨 골짜기도 있거니와
집도 절도 없는 길에 고적하고 막막하기 뙤약볕 속 나그네 같은 고비도 있을 것이다.

거기다가 천 리 길이야.
하루도 이틀도 아닌 그 길을 가자면, 낯선 곳의 낯선 방에 캄캄한 밤 무섭긴들 아니하리.
더러 도둑을 만날 수도 있겄지. 가진 것 다 잃고 빈 몸으로 나서는 객지의 사립문 밖.

하물며 인생이랴.

한나절 걷는 십 리 길도 아니요,
하루 해 꼽박 넘어가는 백 리 길만도 아니고,
한 열흘 혹은 보름 밤낮으로만 가면 되는 천 리 길도 아니다.

나서부터 지금까지 쉬임없이 걸어왔고,
이제부터도 쉬지 않고 몇 십 년을 걷고 걸어가야 마지막에 당도하는 길.
인생.

그것이 과연 리(里) 수로 몇 리일까.

나서부터 쉼없이 걷고 있는 우리들,
삶의 기적은 특별한 것에 있는 게 아니라
우리의 존재 자체가 기적이란 생각이 들어요.
앞으로 몇 리를 더 걸어가게 될지도 모르고
무엇을 마딱뜨릴지 모를 위태로운 길일 수도 있지만,
지금 이 순간,
힘내면서 살 수 밖에요. ^- ^
다들 화이팅입니다. 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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