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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21] 순례 19일째, Leon에서 길을 헤매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21] 순례 19일째, Leon에서 길을 헤매다.

Yildiz 2010. 8. 9. 12:52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줄 수 없는 때는
단 한순간도 없다.


환하게 미소 짓는 것,
유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것,

심지어 문을 열어 잡아주는 것까지.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p.238



가만히 멈춰서서, 길이 네게 하는 말을 잘 들어봐  2008년 6월 11일 수요일


 

푹 자고 일어난 아침!
살아있는 레온을 구경하기 위해서라면, 굳이 일찍 길을 나설 필요가 없어서
침대에서 게으름을 피운다.
여기서 레온까지는 꽤 가까우니까.
서두를 이유가 없다. 히히 -ㅅ -v

7시에 일어나 배낭을 챙기고 방 밖으로 나온다.
알베르게의 주방에서 아침을 먹기에는 식욕이 뚝 떨어질게 분명하므로,
길을 가다 잠시 쉬어 먹는 걸로 하고 공복으로 알베르게를 나선다.

오~ 노!
화창한 레온을 보고 싶은데, 하늘 위에 걸린 무거운 구름이 마음에 걸린다.
비가 조금 내릴 것 같다. ㅠㅅ ㅠ

 


Villarante 마을을 빠져나오기까지 아스팔트 도로 옆을 따라 걷다가 한적한 길로 들어선다.
자동차가 쌩쌩~ 지나가는 도로보다는 역시 조용한 길이 최고!


 


아직까진 길 위가 한산하다.
Villarante 에서 일찍 출발한 사람들은 앞서 갔겠고,
Mansilla 에서 일찍 출발한 사람들은 이제 이 곳으로 오고 있겠지.

카메라 줌을 최대한으로 해서 저 멀리 가는 순례자를 사진으로 담는다.
혹시나 내가 아는 사람일까봐서.

빗줄기가 가늘게 내리다가 멈칫 한다.
시원하게 오지 않는 비는 차라리 안 내리는 게 낫다!!
우비를 벗었다 입었다 하는게 귀찮아~

 


들판에 이름 모를 풀들이 가득 차 있는 걸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구름 사이로 스포트라이트처럼 비추는 햇빛이 그리도 반가울 수가 없다.

아니.. 저건 뭐지?!

 

든든한 요새를 지어놓고 경계의 태세를 보이는 듯한 새.


 


한 40분쯤 걸어왔나...
어제 저녁을 식당에서 먹어서 잔뜩 사놓은 먹거리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무겁게 느껴진다. 
걷다보면 쉴 자리 하나 발견할 것 같은데 
정말 마땅한 곳이 없다.

'여기가 좋을 것 같아.'
어디에 멈춰 서면 좋을지 물색하다
결국은 작은 언덕 위에 선다.

방금 전까지 걸어온 길을 내려다볼 수 있고,
혹여 아는 사람이 온다면 방긋 웃으며 크게 손 흔들어 보일 수 있는 자리.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먹을 걸 꺼낸다.
눅눅한 바게트를 초콜렛 크림에 잔뜩 묻혀 한 입 물어본다.
빵에다가 초콜렛 크림을 발라 먹는 건 순전히 새로운 시도.
시도는 좋았으나, 빵이랑 초콜렛.. 그닥 입 맛에 맞지 않는다.
다음부턴 계속 쨈이나 발라 먹어야지.

멀리서 순례자 한 명이 걸어오고 있다.
노란색 머리에 빨간색 자켓!
딱 보면 군이다.
군이 오고 있다.  

언덕으로 온 군과 나는 서로 안부를 물었다.
군은 내게 맛있게 먹으라며 인사를 건네고 간다.

혼자 먹는데다가
서서 먹는 게 그리 매력적이지 않아
배를 적당히 채우고 길을 나서려는데

저기 멀리서 4명의 순례자가 온다.
누굴까?
내가 아는 사람일까?

좀 기다려볼까 하다가
가던 길을 재촉하며 걷는다.

하지만 이내 엄청난 속도로 나를 따라잡는 순례자들.
'이 사람들 누구야?' 하고 뒤돌아보니
헤르만씨, 마가렛, 케이티 그리고 내가 모르는 순례자 한 명!
멀리서는 못 알아봤지만, 가까이에서 보니 내 친구들이다.

헤르만씨, 마가렛, 케이티가 반갑게 인사한다.
케이티는 내가 처음 보는 순례자와 대화를 나누는데
미국에서 왔는지 이야기가 잘 통한다.

예기치 않게 친구들을 만나 한 무리로 걷기 시작했다.
워낙 나보다 잘 걷는 사람들이라 내가 많이 뒤쳐지기는 하지만.

케이티는 아까 길에서 나를 만나기 전에
헤르만씨가 내 얘기를 했다며 알려준다.

"아저씨가 힘들었을 때
그 때 네가 길 위에서 초콜렛 줬다면서,
너 정말 친절하다고 칭찬하시더라."

아, 그래서 아저씨가 날 보고 엄청 반가워하셨구나!
그나저나 난 언제 아저씨께 초콜렛을 드렸더라?
기억을 더듬어 보지만 언제 준 초콜렛이 그렇게 큰 도움을 줬는지는 확실치 않다.
하지만 나의 사소한 행위가
누군가에게 힘이 되었다는 것에
정말 뿌듯하다.

문득 "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라." 라는 책에서 나온 구절이 떠오른다.
마음에 쏙 들어 여행 다이어리 어느 구석에다가 옮겨 적은 것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전혀 줄 수 없는 때는
단 한순간도 없다.


환하게 미소 짓는 것,
유쾌한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것,

심지어 문을 열어 잡아주는 것까지.

내가 길을 걷다, 혹은 휴식 중에 뭘 먹게 될 때 
지나가는 사람이 있거나, 함께 앉아 있는 사람에게
내가 가진 걸 조금 나눠준다. 

순례길에서는 짐을 줄일 수록 편하다.
하지만 무게가 적게 나가거나, 많이 나가거나 상관없이
누군가에게 조그마한  초콜렛 조각이라도 주게 되면
그렇게 마음이 가벼워질 수가 없었다.
무게도 줄이고, 누군가에게 뭔가를 나누어줬다는 것에 기쁜 나머지
더 가벼움을 느끼는 건지도 모르겠다. 

오솔길을 벗어나 고속도로에 접어들었다.
이제 정말 레온까지 얼마 남지 않은 것이다.

왼쪽에서부터 케이티, 카우보이 맨, 마가렛, 선두에 헤르만 아저씨.


 


선두로 계속 걷던 헤르만씨와 마가렛이 어느 순간 사라졌다!
함께 걷던 케이티와 미국인 순례자도 어리 둥절.
아무리 그들이 빨리, 잘 걷는다지만, 시야에서 벗어나지 않았었는데 도대체 어디로 갔나?
벌써 저~ 멀리 가버렸나?

걷는 내내 뒤를 바라보고, 앞을 유심히 살펴봐도 그들이 보이지 않는다.
혹시 길을 잘못 들어선 것은 아닐까?
이대로 헤어지는 건 아니길 빈다.

 


도시 레온의 변두리를 지나 이제 점차 중심가로 향하는 발걸음.

오랜만에 도시에 입성했다는 것에 즐거움도 잠시,
노란색 화살표를 잃어버렸다!

사람들도 많고, 복잡하다보니
이리저리 둘러봐도 감 잡기가 힘들다.

우리처럼 길을 헤맨 것 같아 보이는 순례자 일행을 만났다.
그런데 딱 보니
누군지 알아보겠다.

에스테야에 가기 전에 만났던 캐나다 여성!
마르코스와 함께 걸을 때 만났던 순례자다.

그녀와 눈이 마주쳤다.

그녀도 나를 기억하는 것 같다.
난 쌩긋 웃어보였다.
그녀는 내 웃음의 의미를 이해했을까?

에스테야 가는 길에 그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는 화장을 하고 있었다.
눈썹을 예쁘게 말아 올린 마스카라를 보며 '순례길 남자 꼬시러 걷나.'
살짝 비웃었었는데, 지금 그녀의 눈에는 화장기가 없다.
까미노를 전적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니 왠지 흐뭇함을 느낀다.

잉글리쉬 네이티브끼리 만나 까미노 방향에 대해 이야기가 한창이다.
캐나다 일행이 레온 지도를 가지고 있어서 방향을 살펴보고 있는데,
난 내가 걷고 싶은 방향으로 걷기 시작한다.
그냥... 나를 한번 믿어보기로 했다.
발 가는 대로
마음 가는 대로
Leon을 모험하기!

뒤에서 케이티가 부르는 소리가 들리지만 그저 앞으로 나아간다. 

한 30분쯤 걸었을까.
이건 명백히 도시 산책이지
까미노 걷는 게 아니군.

한 길로 주욱 걷다가 갈림길에 섰다.
오른쪽 길은 건물이 늘어선 길,
왼쪽 길은 가로수가 우거진 길.

어디로 갈까 망설이다
가로수가 우거진 길에 들어선다.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을 만큼 가로수의 잎이 길게 늘어뜨려져 있어
한번 걸어보기로 한다.

내가 맞게 걷고 있는지 확신이 잘 서지 않아
지나가는 사람에게 손가락으로 방향을 가리키며
'이글레시아(교회)?' 라고 물으니 고개를 끄덕인다.

정말 이 길이 맞는 건가?

도중에 이상한 표정을 한 남자가 자꾸 뭐라하면서 따라와 무서웠다.

'이제야 내가 길을 완전히 잘못 들었구나!' 깨달은 것은
가로수 길 끝에 다 와서야 알았다.

길 끝에는 삭막한 벌판이 눈 앞에 펼쳐져 있다.

휴, 다시 되돌아가는 수밖에.
다행히도 레온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까미노를 걸었다는 현지사람을 만나
성당 가는 방향을 알게 되었다.

 


아저씨가 일러준 대로 길을 걷는 중,
내가 정말 맞게 걷고 있나 싶어
길가는 스페인 사람에게 물어본다.

"실례지만... 대성당이 어디 있나요?"

위쪽으로 더 가서 오른쪽으로 가면 된다고 손짓으로 표시해주는 커플.

난 길만 물었을 뿐인데, 동양에서 온 여자 혼자 걷고 있으니 이것저것 궁금한 게 많나보다.

어디서부터 걸었고,
얼마 기간 동안 걷고 있는지 또 물어본다.

생각해보니
현지인들과 스페인어를 쓰며 대화하기보다
순례자들과 영어를 쓰며 지내는 날들이 많다보니
몇 일 걷고 있냐는 질문을 이해하는데 애를 먹었다.

제대로 된 스페인어로 대화하지는 못 하지만
몇 개의 단어를 이용해서 의사소통하는 일이 이렇게 재밌을 줄이야.

커플들은 갈 길을 가고,
나는 대성당으로 향한다.

Leon의 시가지 모형. 큰 도시위에 군림하고 있는 비둘기들.

 


대성당이 가까워짐을,
성당의 꼭대기 부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어느 정도 마음의 안정을 찾는다.

길모퉁이에 맛있어 보이는 아이스크림 가게를 발견했다!
1시간동안 길 헤맨 것에 나름 고생했다는 뜻으로 내게 아이스크림을 사주기로 한다.
제일 먹음직스럽게 보이는 것을 손가락으로 찍어 고른 뒤
콘에 봉긋 담긴 1유로짜리 아이스크림을 받는다.

순례 도중에 아이스크림을 먹는 것은 이번이 처음.
아이스크림을 먹으며 걷는 순례자.
뭔가 조금 어색하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슬퍼보이기도 하고...

 


골목 골목에 여러 가지 상점들이 즐비하고, 은행들도 있다.
그동안 작은 마을만 지나쳐오다 사람들이 많고 깔끔한 시가지를 걷자니 기분이 참 색다르다.

우연히 씨티은행을 발견하여 ATM에서 다음 여행을 위한 비상자금을 인출했다. 
이왕 씨티은행을 찾은 김에 돈을 인출해야 나중에 일부러 은행에 가지 않는 수고를 덜 수 있고, 
내가 귀중품 관리만 잘하면, 순례자의 길에서 도난 염려는 크게 안 해도 되기 때문이다.


드디어 레온 대성당 앞에 도착!
레온의 성당이 크고 아름답다고 해서 잔뜩 기대를 했었는데,
부르고스 대성당만큼은 아닌 것 같다.

파리에 있는 노트르담 성당과 조금 비슷해 보인다.

성당 앞 광장에서 길에서 만난 독일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올해 그녀의 까미노는 레온에서 끝이다.
내년에 다시 레온에서부터 산티아고까지 걸을 예정이다. 
의자에 앉아 편히 쉬며 성당을 올려다보는 그녀의 눈에는 감동이 가득 차 있다.

그녀와 간단히 인사를 나눈 후, 
성당 안으로 들어간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뒷모습이 보인다.
아침에 길에서 봤던 군!
그녀와 함께 찬찬히 성당을 둘러본다.

 

 

 

             성당 중앙의 큰 동그라미의 스텐실 창이 노트르담 성당에서 본 것과 비슷한 것 같다.

 

 


부르고스 이래 가장 큰 성당을 방문하는 것이라 나름 큰 기대를 했었는데... 아는 게 별로 없으니 원래의 가치를 제대로 모르는 것일 수도 있고, 부르고스의 아름다웠던 성당 천장을 레온에서까지 기대를 했던 내가 바보이기도 하고.  
성당 안의 사진 몇 장 찍고 다시 밖으로 나온다.  

군과 인사를 하고, 나는 알베르게를 찾기 위해 성당 주위를 둘러보기로 한다.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 레온 대성당에 온 게 아니니, 어디부터 봐야할지 감을 못 잡겠다.

우선은 성당 한 바퀴를 돌아보았다.

성당의 어느 한 쪽에서는 보수공사가 한창.

 

 

레온 대성당 뒷 쪽.


누군가 붙잡고 알베르게 방향을 물어보고 싶지만,
순례자는 안보이고...

아까도 길을 잃었었는데('자발적 길 잃기' 이기는 했으나...)
까미노 방향을 찾는데 또 애를 먹고 있다니.. 참 힘 빠진다.

작은 마을에서는 노란색 화살표를 찾는데 그리 힘들지 않는데,
도시는 너무 넓어서 길 잃기가 참 쉬운 것 같다.

그리도 구경하고 싶었던 큰 도시이었으나,
노란색 화살표를 잃은 순례자에겐 두려움의 장소가 되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거의 울상 지으며 다시 성당 앞으로, 원점으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다시 군을 발견했다!
재빨리 군에게 다가가 오늘의 목적지를 묻는다.
"오늘 어디까지 걸어요?"

"Virgen del Camino, 레온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곳으로 가려고 해.
여기서 9km 정도 남았어."

"그럼 저도 함께 가요."

더 이상 길을 헤매는 데 지쳐서 그런지 레온에서 하루 머물고 싶다는 마음이 싹 가셨다.
한나절 길을 헤매다가 이제는 함께 걷는 사람이 있다는 데 위안을 얻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길을 지나치며 발견하는 레온의 모습을 보고는
아쉬움이 생기지 않을 수 없다.

군을 따라 레온을 서둘러 지나가겠단 결단이 너무 성급하지 않았는지
후회가 되지만, 되돌아가기엔 이미 늦었다.
혼자 레온을 헤매겠다는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빠른 걸음의 군을 붙잡아, 기념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냥 지나치기 아쉬움을 이 사진으로 달래야지.

 


그리고 한 가지 더 아쉬운 점은, 
크리덴시알에 '레온' 이라는 흔적을 남기지 못했다는 것이다.

"여기에 있는 숙소에서 스탬프 찍고 싶어요.
크리덴시알에 레온을 다녀왔다는 흔적을 남기고 싶거든요."

내 말을 들은 군은 길 가에 숙소가 있나 함께 살펴봐 주었다.
도중에 작은 호텔에 들어가 군이 직접 직원에게 스탬프가 있는지 물어봐주기까지 한다.
스탬프가 있다는 직원의 말에 크리덴시알을 꺼내어 찍었다.

'오우, 안돼!!!' 겉으로 티내지 못하고 속으로 발악하는 나.

이런 스탬프는 차라리 안 찍느니만 못하지.
하나도 안 예쁜 스탬프. 모양 좀 확인하고 찍을 걸. ㅠㅠ
어린애처럼 징징 댈 수 없는 일이라,
그냥 스탬프 모퉁이에 "Leòn" 에 만족하자며 스스로를 달랜다. 

 

선두로 걷고 있는 군은 참 잘 걷는다.
한 걸음 내딛을수록, 내가 얼마나 지쳐있는지 실감하게 되는 오늘.
오른쪽 발목이 시큼시큼 아파온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밥 먹는다고 길 위에서 배낭을 내려놓고 쉰 적 이외에는
제대로 쉰 적이 없네. 이럴 수, 이럴 수!!

그러니 내가 군에 비해 많이 뒤처질 수밖에.
그녀에게 조금 쉬다 가고 싶다고 말을 할까 말까 하다가
그냥 걷기로 한다.
열심히 걷다보면
머지 않아 알베르게가 나올 거란 희망을 가지고...

여기서 군을 놓쳐버리면 또다시 혼자 길을 잃어버릴 것만 같다.

이제 레온을 어느 정도 벗어난 것 같다.

 


"아까 개 주인 봤어? 개랑 정말 똑 닮았어."
땅바닥에 붙을 것만 같은, 짜리 몽땅 연필 같은 다리를 가진 불독과
그를 산책 시키는 사람이 지나가자마자 군이 내게 말한다.
얼마나 닮았으면 군이 이렇게 웃는 걸까.

"정말요?? 난 개만 쳐다봤는데..."
나도 군처럼 웃고 싶은데, 아쉽다.
불독 얼굴을 가진 사람이라.. 흠...?



계속해서 찻길로 걷는데 지친 나는 편의점을 발견하고는 잠깐 들르자고 군에게 말한다.
초콜렛을 사서 기력을 보충할 생각이다. 
군은 직원에게 화장실이 있는지 물어본다. 역시 현명해!

서로 교대를 해가며 짐을 지키면서 볼 일 보고 나왔다.
그리고 얼마 안 가서 나를 부르는 군.

"Hey, Lee!"
(내 이름이 어려우니.. 성을 부르게 했다.)

 


열 발자국만 걸었어도 볼 수 있었던 표시판.
Virgen del Camino!
머지않아 짐을 내려놓고 푹 쉴 수 있을 거란 생각에 힘이 솟는다. 불끈!
조금만 더 힘내서, 아자!

이 마을은 새로 생긴 곳인지.. 건물들이 다 멀끔하고 조용하다.

 

 
알베르게 도착!! 하기 전 바로 입구 쪽에서
마가렛과 케이티를 만났다! 마트에 가는 길이란다.

마가렛을 보자마자 헤르만씨 안부를 묻는다.

"아까 갑자기 안 보여서 걱정했어, 어디 갔던 거야?"

"헤르만씨가 너무 지쳐서 못 걷겠다고 하는거야.
그래서 근처에 있던 호텔에 방 잡아주고 왔지."

마가렛의 말을 들으며
욕조에 축 늘어진 헤르만씨를 상상하니..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다시 회복하셔서
건강한 모습으로 뵙고 싶다.

 

 
딱 보아하니 생긴 지 얼마 안 된 알베르게.
이 알베르게의  인상은 순례자들이 묵는 '알베르게'라고 하기 보다는...
학교 체육관, 동네 주민회관 같은 느낌이랄까. 훗..

(알고보니, 예전엔 신학교의 일부였던 지자체 알베르게라고 한다.  세탁기, 건조대가 각각 남녀 화장실에 잘 구비되어 있고, 주방에 조리시설도 깔끔하다. 갓 만든 알베르게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정도^. ^~ )

오늘 묵는 알베르게. 겉만 봐도 참 깨끗해보임.

 


크리덴시알에 스탬프 받고 숙박비 지불 후 배정된 방으로 이동한다.
군이 세탁기를 사용할 건데 혹시 같이 하지 않겠냐며 물어본다.
탈수, 건조 기능까지 다 되는... 드럼 세탁기라 이참에 옷 소독 한번 제대로 해야겠단 생각이 든다.
사실 저번에 베드버그 물린 뒤로 간간히 미칠듯한 가려움이 여전하기 때문이다.

세탁기 사용이 3유로라, 반땅해서 1.5유로를 군에게 주었다.

초간단 샤워를 하고 마트가 어딨는지 물어 먹을 것을 왕창 사왔다.
몸이 지쳐서 그런지, 눈에 보이는 대로 다 산 것 같다. 이런 돼지 같으니라고. =ㅠ =;;

편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는 마가렛.

 

 

살금살금 다가가 그녀의 이름을 불렀다. "Hey!!"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로가 나 말고 한국인 순례자가 있다는 걸 알려주었다. 부엌으로 가니 처음 보는 한국인 순례자가 있다. 17일에 출발했다는 정은언니. 천천히 까미노를 걷고 있다고 한다.
언니와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해먹었다. 일주일 전에 산 스프를 이제야 반이나 해치웠다. 이휴

언니가 쟈스민 티백 하나 줬는데 시큰시큰한 목을 데우는데 좋았다.

내가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걸 보고는 이탈리아 순례자들이 사진을 찍어달라고 한다.

 


알베르게에서 인사만 하고 얘기는 해보지 않던 부부 또한 같이 사진 찍자고 한다.
이분들 역시 이탈리아 사람. 

 

 
어제 못다 쓴 일기와 오늘의 일기를 마저 쓰고, 방으로 들어와 맨소래담으로 아픈 오른쪽 다리를 마사지한다. 내 옆 침대에 있는 군이 묻는다.

"내일은 어디까지 갈 거야?"

"전 이탈리아 사람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에 갈 거에요.
거기서 주인이 이탈리아 요리를 해주는 데 아주 맛있다네요."

"오, 좋은 정보군, 고마워."

군은 그렇게 아파보이지 않는데
기침을 계속 한다.

군.. 이대로 괜찮은 걸까?

늘 그렇듯 오늘도 만나지 못한 친구들의 안부가 궁금하다. 그들은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보다 앞서서 걷는 마르코스를 만날 수 있을까?
내일 길에서 헝가리 친구들을 만나게 되면 이름 물어보고, 사진도 찍어야겠다.
메르시보꾸 할머니도 보고 싶네.
아참, 노라는 어디 있을까?

천천히, 오래 걸으면 좋을 까미노인데,
하루에 너무 많이 걸어서 나의 까미노는 금방 끝나게 생겼다.
그리 급하게 굴 필요가 없는데도 왜 이러는 걸까?


오늘의 코스~ >ㅅ <!!


Puente de Villarente - Arcahueras - León - La Virgen del Camino = 21.3km

오늘의 지출!!

아이스크림 1 + 초콜렛 1.69 + 슈퍼 9.55 + 숙소 5 + 세탁 1.5 = 18.74유로


Today's stamps!








+Plus
"오후에 태양이 장미의 창을 비출 때, 성당으로 들어가 그 빛을 보아라."
레온의 대성당에 노트르담 성당과 같이 장미의 창이 있었죠. 해가 질 때, 창문을 비추면,
과연 성당엔 어떤 색들이 피어날까요.

못 보고 온게 참 아쉽네요.
레온은 역사가 오래된 곳이라,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성벽도 있고, 볼 거리가 많은 곳 입니다...
(다음엔 공부하고 가야지!!! 불끈!)



거의.. 5개월 만에 포스팅하는 까미노 이야기.

변명하자면, 게으르기도 했고, 마땅히 집중하는 게 힘들고, 어렵게만 여겨져서
내가 만들어 놓은 한계라는 벽을 쉽게 부수지 못해 지금까지 질질 끌고 온 이야기.

컴퓨터 앞에만 앉으면 집중력에 문제가 있어서 늘 몰입하기 힘들었던 것 같다.
하지만, 그리 중요하지도 않을 수 있는 자그마한 이야기까지 글로 쓰지 않고는 못 배기는 걸 보면,
까미노에서의 소소한 순간들을 여전히 소중하게 여기고 있다는 걸 알았다.

길에서 내가 준 초콜렛을 먹고 힘을 냈다는 헤르만 아저씨와의 에피소드를 가끔씩 떠올린다.
어떤 큰 선물이나 보답만이 큰 기쁨을 가져다 주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의도하지 않았던 작은 행동도
누군가에게는 큰 기쁨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잊지 않아야 겠다.
다른 누군가에게 또 다른 힘이 되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그러니, 스스로의 인내심 부족에 무기력을 느끼지만
완성하지 않고는 억울할 까미노 이야기.
느리지만 썰렁한 블로그를 채울 이야기는 여전히 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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