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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섬에 내가 있었네] 내 삶은 무엇으로 남겨질까 본문

책벌레/0.5배속

[그 섬에 내가 있었네] 내 삶은 무엇으로 남겨질까

Yildiz 2013. 11. 17. 21:26

 

 

김영갑 작가의 이름을 귓동냥으로 처음 들어본 때는 3년전 처음 필름카메라를 사서 사진을 배우기 시작할 때였다.

 

제주도 풍경을 찍은 작가 중에서 김영갑 작가를 뛰어넘을 사람은 없을거라고. 누군가는 그렇게 말하기도 했다.

그때 사진집을 훓어보면서, '그런가 보다' 하고 건성으로 넘겼었다.

 


작년 여름에 제주도에 갔을 때의 일이다.
서른살 가까워지는 나이 먹도록 아직 운전면허를 따지 않은 덕택에 버스를 이용하여 제주 여행을 하던 참이었다.
다른 곳은 그냥 빼먹더라도, 김영갑 작가가 살아 생전 만들었다는 두모악 갤러리는 꼭 다녀오고 싶었다.
사실,, 김영갑 작가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모른채 간 곳이었다. 오래된 폐교를 자신의 사진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으로 만들고, 정원도 잘 가꾸어져 있었다. 김영갑 작가의 사진들의 전시와 함께 생전 그가 나온 영상을 보면서 난 말로 제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을 온 몸으로 느끼며 눈물을 찍어냈었다.
마음 속에 들어온 감동이 쉽사리 빠져나가지 않아 사진을 다 보고 나서도 갤러리 주변을 어슬렁어슬렁 거리며 심호흡을 해야 했었다.

갤러리에 다녀오고 난 다음날, 게스트 하우스에서 아침을 먹다가 책장에 꽂혀있는 김영갑 작가의 책과 나무 장식품이 눈에 들어왔다.   바람이 심하게 부는 제주도 땅에서 사람 혼자 버텨내기도 힘든데, 홀로 자라는 나무의 생명력은 뭐라고 설명해야할까. 김영갑 작가의 사진 중 홀로 자라는 나무들이 찍힌 사진들이 많다.
그 사진들을 보면서, 홀로 자라는 나무들은 김영갑 작가과 다를바 없다는 생각을 했었다.

아침 햇살이 쨍하게 들어비치는 책장 앞에서, 김영갑 작가의 책 '그 섬에 내가 있었네' 와 아름다운 햇살과 나무 장식의 그림자를 담아냈다.

 

 

 

이 책을 나도 어서 읽어봐야겠단 생각을 한 지 거의 8개월이 지나서야 책을 읽었다.
이북으로 다운 받아 읽는데도 불구하고, 책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심하게 집중하며 읽느라
방금 전에 했던 사소한 고민들은 생각도 나지 않고 작가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나는 푹 빠져버렸다.

출판사에서 책을 출간할 때, 어느 정도 글을 손 보았겠지만, 난 이 책을 읽으면서 흡사 작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는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올곶게 자신의 작업을 위해서 먹는 것을 아끼지만, 필름과 인화지 사는 돈은 아끼지 않았고.
자신이 죽고 난 후, 창고에서 버려지고 잊혀질 필름과 사진들을 제대로 남기기 위해 고통을 참아내며 폐교를 갤러리로 바꾸었다.
 
'시내에서 갤러리를 열어도 잘 될지 말지 할판인데, 이런 외진 곳에 누가 찾아오겠냐' 며 주위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갤러리를 만들어냈다. 난치병인 루게릭병으로 인해 운동신경이 죽어가서 카메라 조차 제대로 들지 못하게 됐기 때문에, 생의 말미에는 카메라로 사진을 찍지 못하고 마음으로, 눈으로 사진을 대신 찍었다고 한다. 

사람은, 참.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잃고 나서야 그 가치를 깨닫게 된다.
평상시 아무렇지 않게 걸어다니고, 눈으로 보고, 손으로 무언가를 집고,
아무런 어려움 없이 음식물을 목구멍으로 밀어넣는 일련의 습관적인 행동들이
원래부터 그랬으므로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살고 있기에.
우린 감사할 게 지천으로 널렸음에도 불구하고 늘 불만이고, 양에 차지 않아한다. 

건강할 때 매일을 사진으로 시작해서 사진으로 끝냈던 작가는
카메라를 들 수 없을 때야 비로소, 마음의 평안을 얻었다고 한다.

길이 끝났다고 여겼지만, 끝나버린 길 이후에 또다른 길이 열린다는 것을,
예술가의 순수한 열망과 그 뜻이 사라지지 않고 고스란히 갤러리에 남아,
그의 작품에 남아 살아숨쉬고 있는 것을 보면서

 

누구나 지독히 외롭고, 고독한 길을 가게 되더라도,
우리 모두는 이어져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내 주위 사람뿐 아니라,
내가 직접적으로 모르는 누군가가
생각지도 못했던 무언가를 통해서,
나를 알게 되고,
내 삶을 알게 되고,
그것에 감동 주고 받을 수 있다는 것.

그래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진 생을 아무렇게나 내버리듯
함부로 살아서는 안되는 것이다.

적어도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적어도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무언가는 있어야
생을 마감하는 날, 그래도 한 생에 잘 살아냈다고 만족할 수 있지 않을까.

아무리 많은 물건들을 사모은다 한들,
가져갈 수 없는 저승길에,
적어도
살아 있었으므로, 생을 살아봤으므로 감사합니다.
라는 말을 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난,
내 삶은 무엇으로 남겨질까.
라는 고민을 하게 된다.

 

(2013년 5월에 쓰고, 11월에 포스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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