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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수다쟁이

주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

Yildiz 2011. 1. 31. 23:42
 

자기 것이 많아서만 이웃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하루 한 가지라도 이웃에게 착한 일을 한다면, 그날 하루는 헛되이 살지 않고 잘 산 날입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산다는 것은 우리에게 주어진 목숨의 신비가 그만큼 닳아진다는 것입니다.

그 소모되는 생명의 신비를 어떻게 쓰는가에 따라서 인생의 가치가 달라집니다.

자기 자신밖에 모르는 인생은 자기 자신에서 끝이 납니다. 이웃과 함께하는 인생은 이웃과 함께 영원히 삽니다.

 

<법구경>에 이런 법문이 있습니다.

 

착한 일은 서둘러 행하고

나쁜 일에 마음을 멀리하라.

 

착한 일을 하는 데 게으르면

그의 마음은 벌써 나쁜 일을 즐기고 있다.

 

누가 만일 착한 일을 했다면

항상 그 일을 되풀이하라.

 

그 일을 즐겁게 여기라.

착한 일을 쌓는 일은 즐거움이다.

 

선한 일을 가볍게 여기지 말라.

방울물이 고여서 항아리를 채우나니

조금씩 쌓인 선이 큰 선을 이룬다.

 


나누는 일을 내일로 미루지 마십시오. 내일은 기약할 수 없습니다.
내가 그곳에 있지 않을 수도 있고, 내 마음이 변할 수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슨 일이든 지금 이 순간에 해야 합니다. 미루면 후회만 남습니다.

 

 

p.159-160

한 사람은 모두를

모두는 한 사람을

법정



요즘 좀 그랬다.
마음은 그렇지 않는데, 좋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데 이성이 너무도 강하게 작용해서,
결국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양보할 수 있는 기회들을 아무렇게 흘려보냈던 것이다.

몇 초도 걸리지 않을 선한 일을 하지 않은 것에 비해
마음에 후회로 남아 떠올리는 시간이 너무도 길다.

치과 진료를 마치고 전철역으로 향하던 중에
역사로 들어가는 계단 앞 쪽에서 바닥에 엎드린 채 하모니카 연주를 하는 아저씨가 눈에 들어왔다.

가는 걸음을 멈추어 가방 안에 있는 지갑을 꺼내자니 귀찮다는 생각에
계단을 올라섰다.

'다음에 여기 오면, 그때 드리자.' 생각을 하면서.

하지만 이내 법정 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나누는 일을 미루지 말라고, 내일은 기약할 수 없다는 말씀.
내가 다시 이곳에 온다 한들, 아저씨가 나오지 않는 날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제껏 후회로 남은 일들을 미루어 보면,
이대로 집에 가면, 쓸데없는 후회덩어리만 부풀어오르겠지.

게다가 확성기를 통해 역사 안에 울려퍼지는 아저씨의 하모니카 연주가
귓가에 한가득 맴돌고 있으니.


반쯤 올라온 계단을 내려가며 돈을 쥐어들고, 아저씨에게로 천천히 다가갔다.
돈을 넣는 바구니가 있을 법한데, 한눈에 들어오지 않아 잠시 당황했지만,

아저씨와의 거리가 더 가까워졌을 때, 돈을 넣는 작은 틈을 발견했다.

돈을 넣고 돌아서려는데,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연주를 멈추고
"고맙습니다." 라고 하시는 거다.

그리곤 하모니카 연주를 다시 이어가셨다.


생각지도 않은 말을 들어서 놀라기도 했고,
겨우 적은 돈을 드렸는데, 이런 말을 들을 만한 자격이 있는지
스스로 부끄럽기도 했다.

다시 역 안으로 향해 계단을 올라가며,
공기 중에 가득 퍼진 아저씨의 연주를 듣자니,

왜 그리 구슬픈 걸까.
아저씨의 능숙한 하모니카 연주.
그저 악기를 부는 것 같지 않았다.

하모니카 소리가 이렇게 아름답기도,
슬플 수도 있다는 걸 오늘 처음 알게 된 것 같다.

아저씨가 내게 해준 말에 감동한 건지,
아니면
더 많이 주지 못한 내가 부끄러워서였는지,
아니면
하모니카 소리가 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슬퍼서였는지.
눈물을 찔끔 흘리고 말았다.


무엇이 그리 소중하고,
그리 바쁘길래.
가방 속, 혹은 마음 속에 꽁꽁 숨겨놓고
내보이지 않았던 걸까.

단순히 아저씨에게 돈을 '드린다' 는 생각을 했지만,
주고 나니, 그게 아니었다.

주는게 다가 아니었다.
오히려 내가 받는 것이었다.


다시 그곳에 가서, 하모니카 아저씨를 보게 된다면...

그때는,
좀 더 오래.
아저씨의 연주를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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