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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에 살이 에인다 본문

소소한 일상/마음으로 이해하기

추억에 살이 에인다

Yildiz 2010. 10. 3. 11:46

괜한 기대 탓이었을까?
살랑 살랑 다가오기 바랬던 가을은
때아닌 초겨울 바람처럼 다가온다.

반팔 티에 가을 자켓 하나 걸쳤음에도
솔솔 들어오는 찬 바람에 배꼽이 시릴 정도.

이렇게 계절이 바뀌면서
육체적으로 고달퍼지기 시작한다.
여름엔 좀 괜찮아졌다 싶었던 알레르기성 비염은
도무지 어떻게 고쳐야할지...

심적으로도 고달퍼지기 시작한다.
계절이 바뀔 때마다 생생하게 다가오는 여행의 추억은
현실에 한숨만 더할 뿐이다.

찬 바람이 간간히 들어오는 까페에 앉아
아메리카노를 마시던 토요일 오전,
내가 문득 떠올렸던 건
쌀쌀한 가을날,
추운 겨울날,
대륙 어딘가의 바에 앉아 커피를 마시며 추위를 달래던 2년 전의 단편적인 순간들이었다. 


-p.127
진정한 기억은 자신과 현재사이에서 일어나는 모든 사건을 녹여버린다.
서른 살이 돼 그 숲에 있으면 문득 분홍색 햄이 가득한 샌드위치를 먹고 있는 캠핑 나온 열두살짜리 꼬마로 돌아간다.
기억이란 누군가의 질문에 의해 억지로 끌어올려지는 게 아니다.
어느 기차역 카페에서 풍겨오는 샌드위치 냄새를 맡고 비슷한 냄새를 맡았던 오래전으로 돌아가는 우연한 조우 같은 것이다.

- 키스하기 전에 우리가 하는 말들   by 알랭 드 보통



어렸을 적에 우연히 맡았던 아카시아 향을 기억한다든지,
할머니가 맛있게 만들었던 채지의 맛이라든지,
할머니가 정말 맛있게 끓이셨던 청국장이며,
친구가 맛있게 뽑아주던 아메리카노,
와플에 얹어진 싱싱한 생크림까지.

냄새 뿐 아니라 맛까지
가끔 불쑥 튀어올라 잠시 그리움을 맛보게 한다.

그런데 희한하게도,
요즘은 또 계절에 따라
여행의 장소들이 때때로 불쑥 떠오른다.

푸름이 우거지기 시작할 무렵,
아침에 상쾌한 공기와 적당한 온도의 5,6월은
까미노때의 장면들이 숨막힐 듯이 다가온다.

가을인 지금,
쌀쌀한 기온은
추운 날 홀로 방황했던 거리와
홀로 마시던 커피가 생각나게 한다.

추억에 살이 에인다.

그 날의 자유로움과 현재의 긴 간극은
짧은 한숨을 내뱉게 만들지만,

내 가슴엔
따스한 온기가 서서히 스며든다.
결국, 그런 행복한 순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음을 인정할 수 밖에.

그러니 현재의 순간이 조금 버거울지 몰라도,
점점 아득하게 멀어지는 과거이지만,
그래도 추억거리가 있음은 감사해야할 일이다.
살아있으니 기억할 수 있지 않는가.



터키에서 봉사활동하던 곳. 
숙소에서 바다까지 2분도 채 안 걸린다.
다시 이 곳을 찾아 저녁마다 일몰을 감상하고 싶다.




맛과, 향기...  기억을 끌어올리는 요소이면서
공기의 온도 또한 그 중 하나의 조건임을.

프루스트적 시간은 냄새로 인해 정의내려진다면
나의 시간은 온도로부터도 기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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