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소리가 울리는 대로 2008년 6월 19일 목요일
난 벌써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는데, 군은 천천히 배낭을 챙기고 있다.
군은 서둘러 출발하고 싶지 않나보다.
군과 함께 걷고 싶어 기다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걷다보면 어느 순간 그녀를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인사를 하고는 먼저 출발한다.
어제 못 걸을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미 떠났을 사모스.
사모스를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 장소- 순례자 광장을 지나며 피식 웃어본다.
어제 한나절 푹 쉬었기에 오늘은 많이 피로하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우선은 걸어 봐야 알 것 같다.
헝가리에서 온 순례자, 피터를 길에서 만나 함께 걷게 되었다. 헝가리가 예전에 공산국가여서 그런지, 피터는 한국에 대해 다른 유럽인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 보인다.
헝가리에 북한 학생들이 유학 오곤 했었다면서 요즘 남북한 관계는 어떤지 내게 물어온다.
"통일은 언제쯤 될 것 같아?"
우훅. 여행 오기 전에 미리 공부 좀 해올 걸 그랬다. 짧은 영어로 설명하기가 어려운 문제다.
대통령이 바뀌면서 대북정책이 달라졌기 때문에 남북관계가 예전 같지 않다고 잘 설명하고 싶지만,
피터의 표정을 보면 도통 이해했다는 구석을 찾아볼 수가 없으니.
슬프다. 도대체 왜 영어 공부를 코피 터지도록 한 걸까.
그렇게 피터와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며 와닿은 사리아Sarria.
사모스와 가까이 있을 줄 알았는데, 시간을 재어보니 12km 정도 걸은 것 같다.
피터는 먼저 앞서 가고, 나는 천천히 걷는다.
사리아의 중심부로 들어와 언덕으로 올라가는 길에 순례자를 위한 상점 하나가 눈에 쏙 들어온다.
순례자 전문 상점으로 방대한 장비와 서적, 지도, 순례자를 위한 용품들이 가득하다.
까미노를 준비하는 사람들이 흔히 알게 되는 "빨간책"(영어판 순례자 가이드북)을 발견하고는
이걸 살까 말까 잠시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결국엔 욕심을 내려놓았다.
안 그래도 배낭 무겁다고 골골 대는데, 순례길이 거의 끝나가는 마당에 굳이 살 필요가 없는 것 같다.
게다가 지도 없이도 잘 걸어오지 않았는가.
가게 문쪽에 세계지도가 있는데, 다녀간 순례자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있다.
어느 순간부터 이 지도가 방명록이 된걸까?
Corea를 찾아 내 이름을 조그맣게 써 넣었다.
가게에서 나와 노란색 지표를 따라 올라가니 성당이 있다.
산타 마리아 성당. 스탬프가 예쁘다.
언덕길을 어느 정도 올라왔을 때 발견한 바의 테라스에 자리를 잡는다. 꼴라까오(코코아)를 시켜 마시고 있는데 어제 사모스에서 만난 한국인 아저씨가 나를 보더니 옆 자리에 배낭을 놓는다. 내가 마시고 있는게 궁금하셨던지 물어보시곤 가게 안으로 들어가신다. 흠. 왠지 같이 걸어 가야할 분위기.
아저씨도 꼴라까오를 시켜서 밖으로 나오셨다. 아저씨와 이야기 하던 중에 헤르만씨가 오는 걸 보곤 반갑게 인사했다.
"저 분, 길에서 만났었는데 초콜렛을 주시더라고. 안 먹는다고 안 받았지."
헤르만씨가 지나가시자 아저씨가 말씀하신다.
'아, 그 초콜렛 받지 그랬어요.' 말을 하려다 아낀 채
혼자 웃어보인다.
예전에 내가 길에서 헤르만씨에게 초콜렛을 드렸던게,
그때 그 작은 초콜렛 조각이 헤르만씨에게 큰 힘이 되었던지.
다른 순례자들에게 내 칭찬을 가득 하시더니,
이제는 당신이 다른 사람들에게 초콜렛을 나눠 주신다니.
'저 아저씨가 왜 초콜렛을 주시냐면요...' 말을 하려다
자랑을 아낀 채
그저 웃는다.
잔에 담긴 꼴라까오를 남김 없이 다 마신 후.
아저씨와 함께 걷기 시작한다.
사리아Sarria를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자니 어제 산에서 사모스 수도원을 내려다본 게 생각이 난다.
새롭게 지어진 건물들이 주는 인상은 사모스의 느낌과 상당히 대조적이다.
사리아를 지나고는 계속되는 조용한 산길.
한국인 아저씨는 나와 비슷한 속도로 걷다가 이내 앞서 걷기 시작했다.
아저씨는 먼저 가시고,
홀로 걷는 길.
아는 사람도 없어 조금 지루해질 뻔 하다가 들판길에서 낯익은 순례자를 발견한다.
그녀를 알게 된 것은 Monlinaseca몬리나세까에서 로빈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였다. 로빈이 그녀와 나누는 대화를 대강 엿듣긴 했었는데, 그리 쉽게 알아듣지 못했었다. 미국 사람인가 싶었는데, 알고보니 캐나다 사람이었다. 그녀는 캐나다에서 불어를 주로 쓰는 지역에 산다고 한다. 그래서 영어 발음에 불어스러운 억양이 묻어났던것 같다. 그녀가 다른 곳으로 가자, 로빈이 내게 그녀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까미노 초반에 마을의 물을 잘못 마셔서 크게 탈이 났다는 그녀. 로빈 자신도 물을 잘못 마셔서 많이 고생했다고 한다. 그녀의 증상은 더 심했었나보다. 팜플로냐에서 병원의 의사가 그녀에게 말하길. 까미노를 그만 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계속해서 걸었고, 지금은 상태가 꽤 좋아졌나보다. 그런 이야기를 잘 하고 있는 걸 봐서는. 아무리 탈이 났어도, 까미노를 멈출 수 없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참 궁금했다.
한번 직접 물어보고 싶었는데, 이렇게 길에서 만나게 되니 정말 반가웠다.
왜 까미노에 오게 됐냐는 나의 물음에 그녀는
꼭 한번 와보고 싶었다며 답한다.
다시 까미노에 오고 싶냐고 물으니
그녀는 고개를 크게 절레절레 내저으며 말한다.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녀의 고개를 크게 내젖는 과장된 행동에는 그간의 어려움들이 모두 담겨져있는 것만 같았다.
까미노를 중간에 그만 두라는 의사의 권고에도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그녀.
예순이 넘은 나이에도 이렇게 자신이 강해질 수 있고,
회복되는 기분을 느낄 수 있는 이 길을.
그녀는 또 다시 찾아오지 않을런지.
그녀와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혼자 있고 싶어하는 것 같아서
앞서 걷기 시작했다.
어제 아주 적게 걷고 푹 쉬어서 그런지 오늘은 몸이 무척 가볍다.
하늘에 구름도 적당히 있어, 따가운 햇살을 피해 걷기에 참 좋은 날씨다.
굳이 어디까지 걸어야할 생각을 하고 있지는 않아서, 마음 내키는 대로 걷기로 한다.
중간에 알베르게 하나가 보였으나, 오늘 머물기에는 적당한 장소 같지 않았다.
그리고.
난 아직 더 많이 걸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렇게 알베르게 하나를 더 지나치고,
우선 다음 마을까지 가보기로 한다.
가는 길에 앞서 걸었던 한국인 아저씨를 다시 만나
또 함께 걷게 되었다.
버려진, 아주 작은 성당. 까미노에서 발견한 아주 아주 작은 성당. 안에 있는 낙서들이 흉했다.
개팔자가 상팔자니라... 둘이 부부일까?
멀리서 개처럼 보이는 형상에,
그들의 덩치에 놀랐지만
그늘 아래에 누워서 세상 모르게 잠자고 있는 개들을 보니 안도의 한숨이 나온다.
잠자는 중이어서 고맙다, 얘들아!!
어제 개 때문에 가슴 철렁거렸던 걸 떠올리면... 에휴.
이윽고 Ferreiros 마을에 도착! 여기까지 걸은 거리를 계산하면 한 26km정도 되는 것 같다.
하루 걷는데 적당한 양이다. 그렇지만 오늘 이만 걸을지 아니면 더 가야할지, 아직도 확신이 서질 않는다.
그래서 마을 입구에 위치한 바에 자리를 잡고 앉아 보까디요를 하나 시켰다.
우선 배부터 채우고 나서 생각해보자.
함께 마을로 온 아저씨는 배가 많이 고프셨는지 가게 안으로 들어가 메뉴를 하나 시키신다.
"어제 사모스에서 만난 그 아가씨도 여기 오면 저녁에 한국 음식 해먹자!"
아저씨는 한국 음식이 그리우셨는지, 짜파게티가 하나 있다며 나를 회유하신다.
짜파게티에 귀가 솔깃해지긴 했지만, 우선 보까디요를 먹고 기운을 차린 다음에 생각해봐야겠다.
내 종아리 보다 굵은 보까디요와 레몬 에이드 한 잔을 들고 가게 밖으로 나온다.
팍팍한 보까디요를 반쯤 먹었을 무렵, 처음 보는 부부가 내 앞으로 와 앉는다. 차림새를 봤을 땐 순례자 같지 않아 보인다. 자리도 많은데 왜 내 앞에 앉는걸까 의아하게 여기고 있는데 남편으로 되어 보이는 아저씨가 내게 중국사람이냐고 물어온다.
"아니요.. 저는 한국사람이에요. "
아저씨는 내심 내가 중국사람이길 바랬던 것 같다. 자신이 중국어 좀 할 줄 안다면서 몇 마디 하시는데, 유럽 사람이 이렇게 중국어를 잘하는 건 처음 본다. 혹시 사업 때문에 중국어를 공부했는지 물어보니, 그저 자신의 취미 생활로 중국어 공부를 했다는 그. 한자 외우는 게 보통 일이 아니었을텐데. 정말 대단하시다.
아내분이 이 마을 사람이라면서, 까미노에서 만나 함께 걸었고, 후에 결혼도 했다며 여러 이야기를 해주시다가 내가 마시고 있는 레몬 에이드는 자기가 사 주겠다며 호의를 베풀어주신다. 나중에 다른 사람에게 베풀라는 말을 덧붙이면서.
에헷?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어안이 벙벙해졌지만,
감사하다는 말을 건네는 건 잊지 않았다.
"전 좀 더 걸어야겠어요."
보까디요를 모조리 해치운 후, 아저씨께 인사를 하러 가게 안으로 들어 왔다.
아저씨는 걸음이 빠르시니, 곧 다시 만날 것이다.
"아니 왜, 한국 음식 해 먹자니깐~"
"제가 싫어하는 여자애가 방금 알베르게로 들어가더라구요.
걔 꼴보기 싫어서래도 더 가서 쉬어야겠어요."
프랑스 지지배. 흥.
그 아이를 보기 싫은 탓도 있지만
사실 이 마을이 오늘 머무를 마을이 아니라는 것을
그냥 마음으로 느꼈다.
아직은 좀 더 걸어가야 한다는 것.
더 걸어가서
무엇이 나를 기다리고 있는지,
두 눈으로 확인해야 한다는.
낯선 것에 대한 두근 대는 이 설레임의 답이
길 너머 어딘가 있을거란 기분.
가게 주인에게 화장실에서 물 떠다 먹어도 괜찮냐고 물으니,
자신이 직접 물을 생수통에 채워 준다. 고마운 사람.
"나 더 갈 거에요. 다음에 봐요."
밖으로 나와 맥주를 마시고 있는 헝가리 친구들에게 인사를 하자,
이다가 아쉬워하는 표정을 지으며 말한다.
"왠지 널 다시 못 볼 것 같아."
"걱정말아요. 까미노를 걷는 한 다시 볼 거에요.
난 우리가 만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내 말에 위로가 되지 않았는지 이다는 내게 메일 주소를 적어달라고 한다.
이들을 다시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을 하면서도
한편으론
그래도 혹시나, 이들과 만남이 마지막이 될까봐 기념사진을 한 장 찍는다.
헝가리 순례자 이다와 그녀의 친구.
내가 잠시 이 마을에 있는 동안 군이 올까 싶었는데,
그녀는 아직까지 도착하지 않았다.
오늘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가면, 군을 못 만나겠지...
포르토마린Portomarin까지 약 8km 남짓. 천천히 걸으면 2시간 반 정도 걸릴 것 같다.
오전에는 하늘을 뒤덮었던 구름은 모두 가버리고, 하늘에 구멍 구멍이 생겨났다.
뻥 뚫린 하늘과 들판을 바라보니, 내 마음도 그지 없이 뻥 뚫린 기분! 이어서 좋았지만,
이내 따갑게 내리쬐는 햇빛을 고스란히 견뎌내야 했다.
중간에 화장실이 없어 푸른 들판에 몰래 실례도 하고,
혼자 걷는 숲길은 무서웠다.
언제 마을이 짠! 하고 나타날까?
목이 빠져라 두리번 거리며 걷다가 저 너머에 있는 마을을 발견했을 때
그 기쁨이란!
아아, 보인다.
저기가 Portomarin포르토마린인가?!
강을 끼고 있는 마을. 강도 꽤 넓다. 마을로 들어가기 위해서는 다리를 지나야 한다.
이제껏 멋지고 오래된 다리를 보다가, 철과 시멘트로 만들어진 다리를 보니
왜인지 식상해보이고 감동도 덜하다.
까미노를 걷다보니 내 눈이 고급이 되어버린 것 같다.
(현대식 다리. 로마 시대에 지어진 원래의 다리는 산티아고 기사단과 관련이 있는 산 페드로의 남쪽 구획과 성 요한 기사단 본부가 있었던 산 니콜라스 북쪽 구획을 연결했다. 앞에 있는 가파른 계단은 기존 다리의 일부이다. 계단 아래에는 아치와 '눈의 성모' 예배당을 비롯하여 여러 역사적 기념물들이 있었는데 1962년 댐을 짓기 위해 벨레사르 저수지를 만드는 바람에 포르토마린 주변의 고지대를 제외하고는 모두 물에 잠겼다.
-출처: The Pilgrimage road to Santiago)
이제 정말 조금만 더 가면 된다는 생각에 기운이 펄펄 난다.
산 속의 마을이 아니라 강가에 위치한 마을에서 머물게 되다니! 좋다, 좋아!
다리 위 좁은 보행로에 스페인 부부가 앞서 간다. 그들의 배낭이 깨끗하고 부피가 적은 걸 보니, 어제 혹은 오늘 막 걷기 시작한 것 같다.
너무너무 좋다. 캬. ㅠㅠ
이런 경치 좋은 곳에서 나고 평생을 산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그냥 궁금해짐.
말을 타고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 핸드폰으로 통화중.
긴 다리를 건너는 것까지는 좋았다. 그런데 설마했던 일이... 사람을 잡았다.
설마 저 계단을 올라가랴 싶었는데, 노란색 화살표가 계단 방향으로 나 있다.
앞서 걷던 노부부도 계단을 오르기 시작한다.
겨우 목적지에 다 왔다 싶었는데.. 무수한 계단을 올라야만 해서 였을까.
몇 걸음 가지 않아, 갑자기 부인이 울음을 터트린다.
남편은 아내를 달래곤 앞서 올라오기 시작한다.
계단을 다 올라오면 이런 아치가 있다.
순례자 협회에서 운영하는 저렴한 알베르게를 찾아 이리 저리 걷다 성당을 발견했다.
산 니콜라스 성당
알베르게는 성당과 가까이 있었다.
이젠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푹 쉴 수 있겠다 싶어 기분 좋은 마음으로 들어간 알베르게.
생각지도 않은 냉소와 냉대에 기분이 팍 상했다.
알베르게 리셉션에서의 일이다. 보통은 나이가 적당이 있는 자원봉사자가 있는데, 젊은 여성이 리셉션에 있다는게 의외였다. 아르바이트 하는건가 싶기도 하고.
숙박비 3유로를 지불하고 등록을 했는데, 그녀는 내 눈을 쳐다보지도 않고 날 그 자리에 냅둔다.
엄연히 난 여기에 처음 온 사람인데, 적어도 방이 어딨는지는 알려 주는게 당연하다.
하지만 그녀는 전혀 내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
어이가 없어 그녀를 주의를 붙잡고, 방이 어디에 있는지 물어보자
그제야 건성으로 눈짓으로 알려주는 아가씨.
귀찮은데 뭐 이렇게 성가시게 하냐. 그런 투의 눈빛. 참 싫다.
샤워를 하고, 먹을 걸 사러 나가려는 데 그 예의 없는 아가씨가 순례자 무리를 데리고 방으로 와 침대를 배정해준다. 동양인은 찬밥처럼 대하면서, 자기 또래 유럽인에겐 하염없이 친절을 베풀다니.
너 재수 정말 짱이다. 눈빛 한번 날려준다.
세종대왕님께 죄송하지만, 이럴 땐 나도 할말 못할말 남발한다.
못 알아듣겠지만, 내 표정을 보고는 뭔지 알겠지. 내가 날릴 수 있는 최대한의 썩소를 날려준다.
인종 차별하는 그 여자도 재수없지만, 하필이면 그녀가 데리고 온 순례자는...
아까 "똥 더러워서 피한다" 라며 피한 그 프랑스 여자아이와 친구다.
아니, 거기서 머물 것이지 여기는 왜 또 오고 그러냐.
처음부터 인상 좋지 않는 사람은 그 이상 좋아질 길이 없다.
게다가 같은 방이다. 우엑, 우엑!!
흥이다. 흥!!
알베르게 밖으로 나와 성당 구경할 겸 갔더니 예전에 라바날에서 만났던 한국 언니들을 우연히 만났다.
마트가 어딨는지 물어 길을 찾아나선다.
마트에서는 오랜만에 마리 아주머니를 만났다!
이게 정말 얼마만이지? 아주머니와 나는 의외의 만남에 정말 무척이나 반가워했다.
마리 아주머니께서 이곳에 빅토리오 부부도 머문다며 귀뜸해주셨다.
마트에서 저녁거리를 사들고 가는데, 저 앞에 익숙한 얼굴들이 보인다.
내가 손을 흔들어 인사하기도 전에 나를 부르는 그들.
"파파라쨔!!"
빅토리오 부부와 엘리자베스, 크리스티나. 나를 너무도 반겨준다.
"우린 네가 이미 산티아고까지 간 줄 알았어!"
며칠 못 본데다가, 늘 그들이 머무는 곳보다 항상 앞서 가는 나를 보아서 그랬던지
빅토리오 부부는 내 안부를 궁금해하며 이미 산티아고에 도착했을거라 생각했다는 거다.
어제 사모스에 머물게 되어 군을 만나고, 오늘은 이곳에서 또 다른 친구들과 재회를 한다.
여기까지 오길 정말 잘했다.
오늘 저녁 메뉴는 오렌지와 요거트 하나와 토마토와 치즈를 넣은 바게트.
단촐하지만 더불어 초록의 잔디와 유유히 흐르는 강을 바라보며 먹는다.
좋다, 좋아!! 날씨도 좋고!
배를 적당히 잘 채우고는 포르토마린을 더 돌아볼 생각에 길을 따라 걷다가 돌로 된 벤치가 있는 작은 공원에 다다랗다. 그늘진 곳이라 약간의 이끼도 있는 돌 벤치 위에 누워 조용히 눈을 감는다.
한 1분 정도 지났을까.
어디서 기침소리가 들려온다.
그래, 기침소리.
기침소리...
기침.. 소리?
어라! 이건...!!
군의 기침소리잖아!!
난 깜짝 놀라 일어나 앉았다.
설마 군이 여기에 왔을려고?
잘못 들었나 싶어 귀를 쫑긋 세우고는 소리의 근원지를 찾아 주위를 둘러본다.
벤치에서 일어나 길가로 나오니 언덕에서 내려오고 있는 군이 보인다.
군은 오늘 여기까지 오지 못할 거란 생각을 했었다.
사모스에서 포르토마린까지 꽤 먼 거리라고 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왠걸.
"군!!"
"리!!"
이렇게 우연히 만나게 될 줄이야!
"저 위쪽에 괜찮은 펜션에 자리를 잡았어. 정말 좋아.
리, 그거 알아? 넌 내가 오늘 여기서 본 첫번째 사람이야."
군은 나를 본 게 무척 반가웠던지, 맛있는 걸 사주겠다며 나를 식당으로 데려간다.
난 이미 저녁을 먹은터라 배부르다며 사양하자,
"너 단 거 좋아하잖아. 뭐라도 골라봐."
그래서 그녀와 함께간 곳에서
나는 꼴라까오를, 그녀는 샐러드 한 접시를 시켰다.
Lee, Smile!
식사를 마치고 군은 자신의 펜션으로, 나는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오늘따라 알베르게 방 안은 유난히 퀘퀘한 냄새가 진동한다. 처음 보는 순례자들로 가득 찬 방.
모처럼 평균 나이대가 나보다 더 어려보일 정도로. 친구끼리 함께 온 학생들이 많다.
순례자의 '순' 자도 제대로 모를 것 같은, 철없어 보이는 얘들 때문에 잠을 푹 잘 수 있을까,
살짝 걱정했었는데
다행이 내가 일기를 다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 안의 전등이 소등되었다.
아직은 낯설은 방안 천정을 멀뚱멀뚱 쳐다 보며 잠이 오길 기다리는데,
일층에서 자고 있는 한 남자의 코골이가 시작되었다.
하아- 이거, 이거.
무슨 악기 연주도 아니고.
심난하게 구는 저 코골이.
소음정도가 아니라 아주 코미디다. 코미디!
코고는 소리가 옥타브 갈아타며 연주하는 음악이라니. 나 참.
듣다 못한 어떤 여자아이가 꺄르륵 웃는다.
나도 피식 웃음이 새어 나온다.
님 진짜 짱인듯. 인정하겠다. 당신은 최고의 코골이!
이 남자. 친구 2명과 함께 걷는 것 같던데.
친구들은 이 친구의 코고는 소리를 알고 같이 왔을까?
난 오늘 잠깐 들으면 되는데
같이 다니는 친구들은 앞으로도 계속 같은 방에서 듣겠지.
하룻밤 사이 그들의 우정이 금갈 수도 있을거란 상상을 해보며,
낯설었던 밤, 잠깐 웃음 짓고 잠을 청한다.
오늘의 코스>ㅅ <~!!
Samos - Sarria - Barbadelo - Ferreiros - Portomarin = 35.9km
오늘의 지출!!
숙소 3 + Sarria 까페 1 + 보까디요 2.8 + 슈퍼 4.19 = 10.99유로
Today's Stamps!
Sarria 의 성당에서 |
Pontomarin 알베르게의 스탬프 |
어제는 벌써 제 방에 모기님이 찾아오셨습니다. 가느다란 팔뚝에 뭐 뜯어먹을 거 있다고, 네 방씩이나 친절을 베풀고는.
새벽에 유유히 사라지셨네요. 아흑. ㅠㅠ
글쓰기 좋은 계절이 지나고서야 늦은 포스팅을 합니다.
아무런 부담없이 글을 수정할 때면, 어느 순간엔 내가 변했나- 싶으면서도.
뒤돌아서면 금세 게으른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 있네요.
요거요거, 탄성(彈性)이 질기고도 고급인가봅니다.
아아, 키보드 위에 얹혀 있어야 할 손가락들이
뻘겋게 부은 모기 물린 자국에 자꾸 손이 갑니다. 허어.
글 수정한다고 셀 수 없이 읽다보니, 전 벌써 제 글에 질려 버렸습니다. ㅠㅠ
그래서 띄어쓰기고, 문법이고. 오늘은 더이상 신경쓰고 싶지 않네요.
내일 안에 다시 점검해봐야지.
참, 캐나다에서 온 할머니... 성함을 어디다 적어두지 않았어서, 로빈에게 물어봤는데.. 로빈도 까먹었다네요.
그게 아쉽긴 한데...
휴휴.
무튼, 전 계속 씁니다.
고고고!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