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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31] 순례 29일째,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에 온다고?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31] 순례 29일째,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에 온다고?

Yildiz 2011. 10. 17. 22:13



체력 바닥나는 소리가 들린다
2008년 6월 21일 토요일


새벽 6시 무렵.
일찍 길을 나서는 친구들이 나를 배려한다고 조심스럽게 나갔는데도 조그마한 기척에 잠이 깼다.
일부러 잠을 청하는 것도 무리인 것 같아서 피곤을 떨쳐내고 나도 배낭을 꾸린다.



새벽 하늘에 아직 달이 떠 있다. 거리의 조명처럼 세상을 환히 밝히는 달.



아침 안개가 자욱한 걸 보면, 오늘 햇살이 무지 쨍쨍거리며 화창하겠구나.
어제 나보다 앞서 간 군은 오늘 어디까지 걸으려나? 길에서 또 군을 만났으면 좋겠다.


말을 타고 가는 순례자들.


평화로운 숲 속을 지나는 아침은 정말 상쾌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개가 걷히면서 만들어내는 광경은 신비롭다.











작은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아침 나절 평온했던 내 마음이 번뜩 번뜩 놀랐다. 그래서 새로운 마을에 들어서서는 노란색 화살표를 따라들어가 마을길을 지나는 게 왠지 겁이 나서 다른 길은 없나 한 번 둘러보았다. 갈래길 오른쪽 끝에 고속도로가 눈에 띈다.   

괜히 고속도로를 따라 걷다가 길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싶어 걱정했는데, 카메라를 줌해서 살펴보니, 저~기 앞에 순례자 한 명이 걷고 있다. 고속도로라 차가 쌩쌩 다니긴 하지만, 한번 걸어볼까.



내가 온 방향에서 순례자들이 내게 소리를 지른다. 내가 길을 잘못 들어선 줄 알았나보다.
내가 선택해서 걷는 길이니, 우선은 걸어봐야지.



차가 지나가지 않을 땐 고요하지만, 차가 빨리 지나갈 때 일으키는 바람은 조금 위협적이다. 새롭게 선택한 길에는 개가 없어서 마음이 놀랄 일은 없지만, 혹시 잘못되서 교통 사고라도 나면 도와줄 사람이 없을 것이란 괜한 걱정을 하게 됐다. 이래도 저래도 마음은 편안할 길이 없군.



고속도로만 믿고 걷다가 길을 완전히 잘못 들어설까봐, 중간에 마을로 오는 길로 빠졌다.

내가 까미노 방향으로 잘 걷고 있나 걱정하던 것도 잠시, 말을 타고 다니는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걸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아침부터 말을 참 많이 보는군.





홀로 내내 길을 걷다 마침내 친구들을 발견했다. 그들은 순례길 표식을 가운데 두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중이다. 조가비 문양이 새겨진 비석에 K.50 표시가 있다. 여기가 산티아고까지 50km 남은 지점이다.
 


한 명이 사진을 찍어야 하니까 단체사진에서 혼자만 쏙 빠지게 되는 상황이다. 그래서 당신도 저기 가서 사진 찍히라며 이 분의 등을 떠내밀고 내가 자진해서 찍사가 되었다.



빅토리오씨는 이리 와서 같이 사진 찍자며 내게 어서 오라고 손짓하셔서, 나는 그들의 무리에 섞이고 원래 찍사 아저씨가 내 자리로 오셨다.




나도 덩달아 찍게된 기념사진.


산티아고의 입성이 얼마 남지 않은 지점. 순례자들의 얼굴엔 미소가 가득하다. 그동안 한 달 가까이 산티아고에 닿기 위해 부지런히 걸어왔으니, 다들 얼마나 고될까. 하지만 고통의 시간을 넘어 머지 않아 순례길의 마지막 점을 찍으며 각자의 순례 여정을 마칠 것이다. 나에게도, 그들에게도 그 날은 가슴 벅찬 날일 것이다.
 



박진순, 신경희 부부님


그들과 함께 걷다, 나는 그들을 앞질러 걷기 시작했다.



어려운 코스도 아니고, 걷기 쉬운 길을 걷는 데도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내딛는 발자국이 점점 무뎌진다.

하루에 얼만큼 잠을 자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계속해서 이동하는 순례자의 일상에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아직 걸을 힘은 있어서
무조건 빨리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쉬고 싶다는 마음과 함께
스스로를 달래는 말로 시간을 보내야 했다.



저~기 코너만 돌면, 진짜 마을이 나올거야. 라고
속으로 중얼거리면서.


오늘의 목적지 Arzua. 현수막을 보니 반갑다.




부단히 걸어온 탓에 목적지에 일찍 도착한 편이었고, 초 스피드 샤워를 마치고 마실을 나와 슈퍼에서 체리 한 봉지를 샀다. 한국에선 비싸서 못 사먹는 체리. 흑진주 같이 빛나는 녀석들을 물로 씻고는 봉지채 들고 다시 밖으로 나왔다.

체리를 입 안에 오물거리며 알베르게를 나선지 몇 걸음 되지 않아 길 끝에서 낯익은 순례자 형상을 보았다.
파란색 상의에 빨간색 배낭과 양손에는 스틱 하나씩.
군이다!

"군, 저기에 알베르게가 있어요."
"나는 오늘 좀 더 가려고 해."

내 예상과 달리 그녀는 여기서 멈추지 않을거란다. 햇볕이 가장 강한 오후.
아직 태양이 저렇게 쟁쟁한데, 쉬지 않고 걷겠다니!
행여 군이 같이 걷자고 해도 난 절대로 가지 않을거다.

내가 알기엔 다음 마을까지는 꽤 걸어야하는데, 괜찮을까.
찜통 같은 더운 공기를 뚫고 그녀는 얼마나 더 걸어야 할까. 내가 다 숨이 막혀온다.

"요즘 순례자들이 많이 다니니까, 어딘가 팬션이라도 있을거야. "

일요일에 산티아고에 도착해서 대성당에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의식을 보기 위해, 군은 마지막으로 혼신을 힘을 다해 무리를 하며 걷는 것 같다. 군의 행운을 빌어주며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오후 4시부터 졸린 것을 겨우 참았다. 벌써 자버리면 저녁에 잠들기 애매할 것 같아서다.
한낮에 지글지글 타오르던 해의 기운이 사그라들자, 밖으로 또 나왔다.
 
길에서 우연히 한국 언니들을 만나 새로운 소식을 하나 얻었다.

23일에 산티아고에서 파울로 코엘료에 관한 행사 열린단다.

뭐??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에 온다고?
왜 오는거지?

어떤 언니의 까미노 친구가 브라질에서 왔는데, 그 사람에게서 이 소식을 전해 들었다고 한다.
일요일에 산티아고에는 무슨 축제가 있다고 하고,
파울로 코엘료가 온다고도 하고.

세상에! 이게 진정 사실일까?!
정말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에 온다면, 이건 분명 행운이다.
파울로 코엘료로 인해 까미노를 여행의 첫걸음으로 선택했는데, 여기서 그의 소식을 듣게 되다니!

하지만 전해 들은 정보라서 그 행사가 무엇이고, 어디서 열리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산티아고에 도착하면 꼭 어딘가에 물어봐야겠다.

오늘 알베르게에는 철없는(?) 순례자들이 많이 있는데 참 꼴불견이다. 중,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스페인 순례자들이 알베르게 방 안에서 연애행각을... 키스는 밖에 나가서 하시지? 저것들을 콱 그냥.

까미노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자 마음이 급해진다.
마르코스는 어디에 있고, 또 노라는 어디에 있을까.
혹시나 해서 메일을 확인하지만 그들의 소식은 없다.
마르코스에게 메일을 보내볼까 잠시 고민했지만, 우선은 산티아고에 도착할 때까지 참아볼련다.
까미노가 무엇을 가져다 주는지 우선은 지켜볼 생각이다.

까미노를 떠나기 전에 그들을 꼭 만나야 할텐데.
다시 만나서 미처 하지 못했던 작별인사를 꼭 해야 할텐데...

산티아고에 도착하더라도 피니스테레까지 걸어갈 것 같다.
처음 도전한 순례길이기도 하고, 아직 젊으니까. 3일 정도는 더 걸어봐야지.
피니스테레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걸으려나?

...산티아고에 가면 나를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까?



오늘의 코스~ >ㅅ <!!!




오늘의 지출!!

숙소 3 + 인터넷  0.5 + 전화 1 + 슈퍼 3.93 + 중간에 바나나, 물 0.75 + 꼴라까오 1.2 + 샐러드 4.5 + 과일 1.75 = 16.63유로

Today's Stamps!



까미노에 다녀온 지 3년이 지났는데도, 사진을 보며 글을 쓰다보니 그때의 감흥들이 새록새록 피어오릅니다.
3년이 지난 일이지만, 이때의 경험들이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되는 소중한 경험이기에.
마지막까지 열심히 쓰고, 또 새로운 인생의 페이지를 열심히 써내려가렵니다. ^^

기온이 뚝 떨어져 추운데 다들 감기 조심하세요 ㅎㅅ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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