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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30] 순례 28일째, 얼마 남지 않은 까미노...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30] 순례 28일째, 얼마 남지 않은 까미노...

Yildiz 2011. 10. 15. 23:08



점점 가까워지는 산티아고   2008년 6월 20일 금요일


매일같이 아침부터 걷고 먹고 자고. 이런 순례길 일정이 고되긴 고된건지 순례길 후반부 부터는 아침에 일어나는게 망설여진다. 좀 더 푹 자고 싶지만 매번 일찍 일어나 하루 일과를 준비하는 순례자들의 기척에 새벽잠은 늘 부족하다. 

하지만 며칠 있으면 순례길 여정이 모두 끝날 거란 생각에 아쉬움을 떨쳐낼 수 없다. 중간에 헤어져서 몇 주 동안 만나지 못한 친구들을 결국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그들은 지금 이 길 어디쯤 걷고 있을까.


"Hello, Lee!!"


어제 군을 만난 장소에서 몇 걸음 지나지 않아 나를 반갑게 부르는 군의 목소리를 들었다.
몇 시에 만나자고 약속하지 않았는데도, 이렇게 또 만나다니!

"Lee! 오늘 마을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너야!"
군은 이제 나를 무슨 의미인냥 여기는 것 같다.

이렇게 자연스럽게 군을 만나 함께 걷기 시작했다.





군과 함께 호흡을 맞춰 걷는 걸음은 아니지만, 그녀와 나.
서로 앞 뒤를 봐주며 걷는데 전혀 어색하지가 않다.
평소에 자주 신던 런닝화를 신고 온 군. 정말 정말 잘 걷는다. 내가 가끔 사진 찍느라 멈춰서기 때문에 군보다 뒤쳐지긴 하지만, 사실 그녀가 잘 걷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들은 그녀가 나보다 앞서 간다.
그래서 그녀와 함께 걷는 날이면 늘 그녀의 뒷모습이 배경과 함께 한다.



산티아고와 가까워졌음을 나타내는 표지를 발견할 때마다 조금씩 순례길의 마무리를 실감하게 된다.


산티아고까지 84km










늘 휴식을 제안하는 것은 군이다. 바에 가서 아침 겸 점심으로 샐러드를 주문하는 그녀. 난 메뉴판을 읽을 수가 없으니, 그녀가 먹는 걸 나도 똑같이 주문했다.
스페인어를 잘 모르지만 그래도 꽤 유용한 표현 중 하나!

"Yo, tambien." (저도요.)

샐러드라 별로 기대 안했는데, 이거 왠 걸!



빵 몇 조각도 나오고, 큰 쟁반에 풍성하게 치즈, 참치, 올리브, 토마토, 야채...
접시 가득한 샐러드에 기분이 좋아서 사진을 찍으려니 군이 얼굴을 가린다. 어제 내 사진을 못 찍게 했던 것 때문에 나도 자기 사진을 찍으면 안된다나. 히히.

보이는 것보다 더 맛 좋았던 샐러드. 부지런히 다 먹어 해치웠다.


뻗어오르려는 나뭇가지들이 범상치 않아.






갑자기 늘어난 신참 순례자들을 길 위에서 구경하는 것이 재밌긴 하지만 (예를 들어, 친구들과 손잡고 노래 부르면서 걷는 스페인 10대 순례자들) 급격히 저하된 체력 때문인지 모든게 귀찮기도 하다.
내가 걷는 건지 배낭이 걷고 있는 건지, 짜리 몽땅 스틱이 걷는 건지 애매할 만큼.

군이 아니었다면 하루가 더 지루하게 느껴졌을 지도 모르겠다.
나는 많이 걷기 보다는 쉬고 싶어서 Palas de Rei에서 멈췄다. 군은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열리는 성대한 의식을 보고 싶어서 늦어도 일요일에 꼭 산티아고에 도착하고 싶다며 일부러 더 걷는다고 했다. 군이 나보다 앞서서 걸으면 더이상 못 만나려나. 약간은 두렵기도 하지만 그래도 나중을 기약하며 그녀와 헤어졌다. 
 
3유로로 운영되는 Palas de Rei 알베르게 무니시팔은 기대했던 것보다 좋았다. 방이 여러개가 있고, 작은 방에 이층 침대가 4~5개가 있는데 칸막이가 되어 있어 단촐하면서도 아늑하게 느껴졌다. 어느 방으로 들어가야 할까 고민하던 차에 우연히 복도에서 나를 발견한 피아 아주머니께서 이쪽으로 오라고 손짓하신다. 방으로 들어가니 한국인 부부님과 빅토리오 부부, 마리 아주머니 모두 계신다. 이층 침대 하나 골라 자리를 찜해 놓았다.

한국인 부부님께서 순례자를 위한 파이를 하나 사오셔서 한 입 크게 입에 물었다. 혼자라면 절대 사먹지 않았을 텐데, 덕분에 이렇게 파이맛도 보고. 늘 정을 베푸시는 부부님.
한 방에 식구처럼(?) 모인 기념으로 사진을 찍었다.  


(왼쪽부터) 피아 아주머니, 나, 빅토리오 씨, 박진순님, 마리 아주머니.



슈퍼에서 간단히 먹을 것을 사고 알베르게 주방에서 정은언니와 사모스에 만났던 아저씨와 이야기를 하며 저녁을 먹었다. 아저씨한테 어제 포르토마린의 알베르게에서 내가 꼴보기 싫어했던 프랑스 여자아이와 같은 방에서 머물었다고 말씀드리니, 거 보라며 고소해 하셨다.

아저씨가 나이 들기 전에 꼭 해야할 일들이 있다며, 젊었을 때 여행을 많이 하라는 것, 눈이 나빠지기 전에 책도 많이 읽고, 공부도 열심히 하고, 건강도 제때 챙겨야 한다며 운동을 하라는 등 좋은 말씀을 해주셨다.

정은언니와 나는 아저씨의 직업이 뭔지 상당히 궁금했는데, 선뜻 알려주시지 않으신다. 하시던 일이 끝나서 여행 오신 것 같은데, 건축 관련 직업은 아닐까 혼자 추측만 하고는 일부러 캐묻지는 않았다. 아저씨가 명함을 하나 주셨는데, 홈페이지 주소가 go.kr 로 끝난다. 뭐지. 이 도메인은. 특별한 곳이긴 한데, 어디다 쓰는 거더라. 기억이 안 난다. 나중에 한번 홈페이지 들어가서 아저씨의 정체를 파악해야지. 후훗.

별로 한 게 없는데 벌써10시다. 호곡.
오늘은 무난한 길을 걸었음에도, 오랫동안 걸은 터라 체력이 바닥을 치고 있다. (지구력이 바닥을 치는 걸까)

내일도 눈을 뜨면 열심히 걸어야한다.
아악, 순례자에겐 휴일이 없네.


오늘의 코스~ >ㅅ <!!!



Portomarin - Gonzar - Ventas de Naro - Ligonde - Palas de Rei =24.5km


 
오늘의 지출~ㅠㅅ ㅠ!!

숙소 3 + 드라이 1 + 돈 먹힌 것 0.2 + 비누 0.62 + 먹을 것 5.xx + 중간에 바에서 샐러드 3.5 + 꼴라까오 1.2 = 14.52 + ? 유로  


오늘의 스탬프~!!



알베르게 근처의 바에서 찍은 스탬프. 약하게 찍혀서 다시 찍었더니 선명하지 않다. 하지만 꽤 멋졌던 스탬프. ^^







꺄아악. 거의 4개월 만에 하는 까미노 포스팅.
우선 초안을 살금살금 다듬어서 포스팅 완료할 계획이니, 제가 분발하느냐에 달렸습니다.

3년만에 다녀온 2달간 여행에서 빅토리오씨 내외 분을 다시 찾아 뵈었답니다. 그리고 군도 다시 만났구요. ^^
까미노를 통해서 소중한 인연들을 얻은 것은
제 삶에 너무도 값진 보물임을 다시 한번 느꼈어요.

아, 사모스에서 만났던 한국인 아저씨는 국회의원 하셨던 이인영씨였습니다. 아아.
좋은 말씀 해주신게 자세히 기억나질 않아 다시 연락드리니 답변 해주셨어요. 참고하시라고 밑에 답글을 그대로 옮겨놓습니다.


이인영님 말씀

 
아, 그러고 보니 6개월 지내고 돌아와서 메일 보냈던 것 기억 나네요. 잘 지내요. 그때 만났던 분들과도 연락되면 한번 보고싶어요. 분당 선생님 부부나 장위동 아가씨와는 혹 연락되는지요? 보고 싶군요.

세가지는 여행하라는 것, 운동하라는 것, 공부 열심히 하라는 것이었는데... 이 세가지는 나이 먹으면 다 못해요.
가장이 되면 아이가 생기면 남녀를 불문하고 여행 다니기가 쉽지 않죠, 한동안. 나이 먹어서 운동하면 무리가 오기 ...쉽고 배우기도 쉽지 않죠, 몸의 유연성이 많이 떨어지니까. 나이 먹으면 눈이 안좋아지는데 공부하기도 쉽지 않죠, 노안 때문에.
그래서 이 세가지는 꼭 젊어서 하라고 했죠. 여행은 여러가지 경험을 주지만 특히 상상력과 꿈의 크기를 키워주고, 운동은 오래 사는 것을 넘어 건강하게 오래 살게 하고 평상시에도 삶의 휴식과 활력을 증강시켜주는 벗과 같은 것이고, 공부를 잘하는 것은 자기 혼자 출세하기 위한 것을 넘어 사회를 위해 더 잘 봉사하고 기여하기 위해서도 꼭 필요한 일이기 때문이죠.

그건 그렇고 너무 반갑네요. 꼭 산티아고의 기억이 되살아 나는 것 같아요. 한번 연락하세요.



이번 글은 잔잔한(?) 내용이지만, 앞으로 하게 될 글들에 비하면 폭풍전야(?) 라고 할까요.
흠. 후훔. 궁금하시면 계속 읽어주세요.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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