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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24] 순례 22일째, 티끌만한 존재일지라도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24] 순례 22일째, 티끌만한 존재일지라도

Yildiz 2011. 3. 6. 01:48



살아있음에 감사하다.  
2008년 6월 14일 토요일


새벽 6시.
알람 소리에 맞춰 제때 일어난 순례자가 형광등을 켰다.
갑작스런 불빛에 놀라 눈이 번쩍 뜨였다.

그동안 스무날이 넘도록 알베르게 생활을 해왔건만,
새벽부터 방 안의 불을 훤히 밝힌 후, 배낭을 꾸리는 예의 없는 순례자는 처음이다.
일찍 출발하는 순례자들은 아직 곤히 자고 있을 순례자들을 배려하는 마음에
대게 손전등으로 불을 비추며 짐을 싸거나
대충 짐을 꾸리고는 밖으로 나와 다시 배낭을 정돈하여 길을 떠난다. 
 
방에서 나갈 거면 형광등이라도 끄고 갈 것이지,
전혀 남을 배려해주지 않는 이 매정한 사람이여. ㅠㅠ  

마음 같아서는,
"뭐 저딴 사람 있나." 투덜대며
벌떡 일어나서 불을 끄고 온기가 남아있는 침낭 속에 들어와 다시 잠을 청하고 싶다.

그러나 반복 재생 버튼을 누른 것 마냥
불을 끄고 다시 잠을 청하는 '나'를 머릿속에서 구경만 하며
침낭을 머리 꼭대기까지 뒤집어 쓴 채 꼼짝도 않는다.

이틀 연속 30km 순례길, 내 체력으로는 장시간의 여정이 무리이긴 하나보다.
특히나 오늘은 다리가 천근만근 무겁게 느껴져 몸 일으키기가 겁난다.

비매너남의 '선방'으로 방 안의 순례자들 대부분 잠이 깼는지,
하나 둘씩 일어나 짐을 챙기고 훌쩍 떠난다.
30분도 안 되서 방 안의 침대가 거의 비었다.
형광등의 시린 불빛이 가득한 방 안에 시계추 소리만 점점 크게 들린다.

난 무척 피곤하고 일찍 서둘러 떠날 이유도 없으니 7시가 다 되어서야 몸을 일으켜 짐을 챙긴다.
그리고 형광등을 끄고 방을 나섰다. 부엌으로 내려오는 중에 서재에 노크를 하고는 살며시 문을 열었다.
마침 군은 배낭을 꾸리고 있다. 잘잤냐는 나의 물음에 쾌활하게 대답하는 군.
다행이다. 간밤에 더 아플까봐 걱정했었는데. 안색이 나빠보이지 않는다.

여기서는 아침 식사가 무료로 제공된다. 부엌으로 갔더니, 이미 많은 순례자들이 다녀갔는지 테이블 위에는 빈 잼병과 빵 부스러기로 어수선하다. 약간의 비스켓과 커피로 기력을 되찾고 있는데,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로들이 한 테이블에 앉아 아침 식사를 시작한다.

안경 쓴 호스피탈로가 홀로 식사하고 있는 나를 보더니, 조용한 한국 여자애라며 지나가듯 얘기한다. 
 

알베르게의 호스피탈로들. 영국인들이다.


어제 일은 감사했다며, 말을 하고 싶었지만... 과묵한 한국 소녀 컨셉으로 말없이 작별인사를 했다. 조용히 사진 찍고 가려고 했으나 나도 모르게 플래쉬가 퍽, 터졌다. 사실은 고마웠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 _-;; 내 마음을 알아주려나? (.....;)


알베르게의 방명록. 어제 내가 알베르게 방명록에 쓴 페이지를 사진에 담았으나 잘 찍히지 않았다.


평소 같았으면 입구를 슝 하니 떠날 참인데, 군이 나오는 걸 보고는 그녀가 나올 때까지 기다렸다.


빨간색 배낭을 멘 군. 호스피탈로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군과 함께 출발하다

오늘은 폰세바돈Foncebadon이라는 곳을 지나칠 예정이다.
그곳에는 순례자들이 고향의 돌을 가져와 내려놓는 커다란 십자가상이 있다.
나는 '고향의 돌'을 가져오는 대신 초등학생 때 바닷가에서 주은 예쁜 조가비를 가져왔다.
하지만
생장에 도착했을 때, 짐이 된다는 핑계로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내는 상자 속에 넣어버렸다.
그 고작 2g도 채 안될 조그마한 것을.

왜 그땐 그렇게 충동적이었나 싶어 지금은 좀 후회되지만...
흠...
까미노는 나중에 다시 올 거니까. 그때는 진짜 '고향의 돌' 하나 가져와야겠다. 

오늘의 코스는 고도가 그려진 그림만 봐도 아찔하다.
해발 1500m 가까운 두 곳을 찍고는 가히 공포스런 내리막길이 이어진다. 오르는 게 있으면 당연히 내려가는 게 있지만, 난 내리막길 공포증(내가 지은 거다)을 가지고 있어서 오늘 일정이 좀 걱정된다.




#로맨스 on the Camino

"저 남자, 미쳤나봐."

알베르게를 나선지 얼마 안 됐을 무렵, 미국인 순례자가 반팔 상의에 배낭을 맨 채로 뛰어간다.
군과 나는 두 눈이 휘둥그레져 서로를 쳐다보다 군이 먼저 말을 떼었다.

정말 저게 미쳤나? 헛웃음이 나온다. 이곳은 고도가 높아서 아침 공기가 꽤 차갑다. 걷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춥다고 느낄 정도로. 그런데 긴소매도 아니고, 반소매 티셔츠 입고 달리기?
순례자의 길에서 극기훈련이라도 하나? 그렇지만 오늘 일정은 가히 어려운 코스 중 하나인데. 왜 아침부터 힘을 뺄까?

하긴, 단단한 근육질 몸에 깍두기 머리. 어쩌면 해병대 출신인지도 모르겠다. 어제 알베르게 부엌에서 여자 친구로 보이는 순례자와 갖은 요란, 야단법석을 떨면서 파스타를 만들던 남 주인공이다. 어라, 그럼 여자 친구는 어디다 두고?

아니나 다를까.
뒤에서 여자 친구가 터벅터벅 걸어오고 있다. 시무룩한 표정.
아. 이 커플.
난해하다.




군과 얼마쯤 걸었을 때였다.
앞서 걷던 군이 뒤를 돌아보며 내게 눈치를 준다.

"Lee, 아까 그 Crazy guy야!"



가까이 다가가서 보니 주위에 있는 돌을 모아 여자 친구 이름 알파벳을 만들고 있는 중이다.
"줄리아 포에버!" 

자기를 내버려두고 앞서 달려간 남자 친구를 보며 인상을 잔뜩 찡그렸던 그녀, 줄리아가
이걸 보고 무한 감동을 받을 런지.
나라면 '흥!' 하겠다만,
그녀는 '오우 마이 갓!' 하면서
그의 품에 안기려나.
대놓고 옆에서 기다리며 구경할 수는 없으니
머릿속으로 상상해본다. 아휴. 닭살.



#폰세바돈Foncebadon 에 도착하다


폰세바돈 마을에 도착해서 제일 먼저 우리를 반겨준 건 개들.


Foncebadon의 알베르게. 문 앞에 자고 있는 개.


아침에 출발한지 얼마 되지 않았으니 바에 들러 쉬지 않고 곧장 마을을 지나친다.
금세 안개가 낀 벌판으로 나왔다.







#미국인 순례자, 파멜라를 만나다. 

길 위에서 미국인 순례자를 만나 동행하게 되었다. 그녀의 이름은 파멜라. 미국에 있는 어느 대학의 교수라고 한다. 교수라고 하기엔 그녀는 젊어 보인다.  보통 한국에서 '교수'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다르다. 난 사진을 찍으며 천천히 걷고, 군과 파멜라는 벌써 저만큼이나 앞서 간다.

아침부터 주위를 둘러싼 안개 때문에 제대로 된 경치를 못 볼까봐 걱정했는데, 다행히 어느 순간부터 맑은 하늘 아래에서 걷게 되었다. 저 멀리 높이 서 있는 십자가상이 보인다.





#철의 십자가Cruz de Fierro

십자가상이 산꼭대기에 있을 거라 상상했는데, 그게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과 달리 조금 엉뚱한 자리에 있다고 여겨지기도 하지만, 십자가상을 지지하는 돌무더기를 보면, 무엇이 이것을 있게 했을까 잠시 호기심을 일게 한다.



(해발 1,504m에 위치하는 철의 십자가상. 거대한 돌무더기는 오랜 관습의 결과이다. 켈트족은 높은 산을 지날 때 돌로 표시를 하는 관습이 있었다고 한다. 고대 로마인들 역시 관례적으로 여행의 신, 헤르메스에 경의를 표하며 높은 지대를 지날 때 돌을 놓고 갔다. 은둔자 가우셀모Gaucelmo는 이도교의 기념비를 기독교화하기 위하여 십자가상을 돌무더기 꼭대기에 심었다. -The Pilgrimage road to Santiago에서 일부분 발췌)


이곳에 일찍 도착한 순례자들이 좀처럼 자리를 뜨지 않는다. 마치 단체로 소풍 온 것처럼 곳곳에 자리를 잡아 함께 또는 홀로 앉아 있다.

날씨가 무척 화창하고, 사람들도 많아서 그런지 내 기분도 들뜬다.
모처럼 기념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에 군을 애써 불렀다.



군은 자신의 배낭에 있는 것을 모조리 꺼내 자신의 고향에서 가져온 돌을 찾고 있는 중이었다. 
난 내가 한 눈치 하는 사람이라 자부해왔는데, 기분 좋음에 취해 그녀가 거의 울상을 지은 것에 괘념치 않고 사진을 찍었다. (어이쿠. 철없어라.)



순례자들이 잔뜩 기념품을 쌓아놓은 곳으로 올라왔다. 가파른데다가 돌들이 마구잡이로 쌓여져있어 천천히, 조심히 올라왔다. 
 




들풀, 모자, 각양각색의 돌들, 그리고 등산화까지.


돌에 글이 적힌 것을 보고는 나도 뭔가 기념해서 놓아야겠단 생각이 들어서 밑으로 내려와 조그마한 돌을 하나 주었다. 배낭에서 네임펜을 꺼냈다. 마음 가는 대로 돌 위에 써내려간 글.





다시 둔덕의 정상으로 올라와 조약돌을 넓적한 돌 위에 곱게 내려놓는다.
다음에 까미노에 다시 오게 되면, 이 돌을 발견할 수 있을까? 
이걸 발견하게 된다면 어떤 기분이 들까?



몇 년후 다시 이곳에 들일 발걸음을 기약하고 마음을 놓고 간다.



내색하지는 않았지만, 아까 군이 집에서 가져온 돌을 찾지 못하고 십자가 아래에서 기도를 하며 잠시 울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인지 직접 묻기가 좀 그렇다. 분위기 파악 못하고 군의 사진을 찍은 것도 그렇고. 그녀가 내게 말해줄 때까지. 말하기 적당한 시간이 올 때까지 기다릴 참이다.



철의 십자가를 지난 후 조금 더 높은 지대로 올라가면 그 후엔 가파른 내리막 경사길이 앞두고 있다.
아직까지는, 걸을만 하다.









#티끌만한 존재일지라도

원래 나는 산을 찾아다니는 사람이 아니다. 까미노를 걷기 시작하기 전에 까미노 여행기를 2권정도 읽어서 어떤 길을 걷게 될지는 대강 상상은 했지만, 실제로 와보니 생각지도 못한 장소에 내가 직접 와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내 생에 이렇게 대지에서 높이 올라와본 적이 있었던지.
시야에 보이는 산의 줄기를 바라만 보아도 어마어마한 것을.
대한민국보다 더 넓은 스페인 땅. 그 중 아주 작은 일부분을
지금 보고 있는 것이다.

넓고 넓은 세상에 감탄하고, 어마어마한 산의 크기에 경외심을 갖으며,
대기 밖의 우주를 상상해본다.
우주라는 공간 안에서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작을까.

티끌만한 존재.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세계에 발을 딛고 서 있는
티끌 같은 존재.

허나
이렇게 작고 작은 존재이지만, 
지금 이 순간 살아 숨쉬며
두발 딛고 서 있음을.
 
온 우주를 품을 수 없지만
적어도 그 중 일부분의 아름다움을
내 마음에 담을 수 있음에 참 감사하다.




조금은 완만한 내리막 길 아래에 쉼터가 하나 보인다.
어떤 곳일지 궁금해 하며 한걸음씩 내딛는다.





산을 올라왔으면 내려가는데 당연한 일인데, 뒤에 두고 온 풍경이 자꾸 그립다.
영원히 머무를 수 없는 자리.
영원히 한 곳에 머물 수 없는 영혼은 늘 지나온 것이 그립다.



Manjarin으로 내려왔다. 이 산중에 쉴만한 곳이 있다는 것에 기쁘다.
브라질 사람이 운영하는 알베르게이다. 이것저것 순례자를 상징하는 상징물들이 가득하다.





이미 이곳에 온 순례자들이 배낭을 내려놓고 앉아 있다. 가게 안으로 가까이 다가가니 어떤 노인이 순례자를 상징하는 가운을 입고 특별한 의식을 받고 있었다. 무얼 하는걸까?
사진을 찍으려했더니, 앞에 앉아있던 청년에게 제재를 받았다.


No, photo!


음, 저게 뭐길래 사진을 못 찍게 하는 걸까. 들이댄 카메라가 민망한 나머지 가만히 두질 못하고 마당에서 놀고 있는 고양이들을 마음껏 사진에 담는다.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곳이지만, 어떤 곳인지 궁금하기에 특별한 의식이 끝날 때까지 기다렸다.
이윽고 의식이 끝나자, 가게의 문이 열린다.



들어가보니 여러가지 까미노의 기념품들이 테이블 위에 즐비하다. 그닥 흥미로운 게 없어서 간단히 구경만 하고 밖으로 나와 다시 고양이 사진을 찍는다. 










실컷 쉬었으니 이젠 다시 길을 나설 차례.
걸어온 길이 아쉬워 돌아봤다가 세 명의 순례자들이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Mansilla에서 길을 알려준 이후로 한 번도 못 만났던 헝가리 순례자들!
며칠 안 본 것이지만, 정말 오랜만에 만난 것처럼 반가운 이들.
이들도 나를 보며 무척 반가워한다.





#휴식 끝, 다시 걷기












#걷기 좋은 길 끝. 내리막 길 시작!

아무리 무섭다고 겁을 내봤자, 나대신 내려다 줄 사람 하나 없다. 내리막길에만 서면 다리가 후들거리고, 한 걸음만 내딛어도 앞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다.
두려움에 앞서 믿어야 할 건 내 두 다리인데.
늘 내리막길을 마주할 때마다 쉽지 않은 일이다.

평지에서처럼 중력의 힘을 믿어보자!
두 발바닥이 밀가루 반죽인 것 마냥 지면에 신중하게 내딛으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주문을 외워본다.



조심조심 한 발자국씩 내민 끝에 결국 내려왔다.
아...  마가렛이 내게 스틱을 주지 않았더라면, 정말 이 곳을 내려오기 힘들었겠지.
행여 비라도 왔으면 정말 내려가기 무서웠을 것 같다.

긴 내리막길에서 벗어나자 군이 쉬어가자며 제안한다. 
가파른 길을 내려오느라 긴장해서인지 피로가 급 밀려온다.





#보고 또 보아도 그리운 길





잠시 걸음을 멈추어
사진을 찍고.



왔던 길을 돌아보며
한 장의 사진을 남긴다.



산 정상에서 오래 머물 수는 없는 법.
그렇기 때문에 이 순간을 최대한으로 담기로 한다.



아름다운 길과 아름다운 순간들을 담는 호흡을 놓지 않으려 노력하지만,
그래도 아쉬움이 남는다.

찰나의 순간은 눈 깜빡할 사이에 지나가버리고,
매순간 어느 한 지점을 향해 흘러갈 수밖에 없는 우리.

1분 전, 1초 전의 순간이 금세 그리워져
이렇게 자꾸 뒤를 돌아보며 내가 걸어온 흔적을
사진으로 담는다.

보고 또 보아도...
왜 자꾸 그리워지는 걸까.





아.
또 한숨부터 새어나오는 내리막길.

이제 카메라는 옆으로 매어 단도리를 하고, 호흡부터 가다듬는다.
무사기원.
잘 내려가보자.



잠시 멈춰 서서 숨을 가다듬는다.
파멜라는 벌써 내 시야에서 사라졌다. 부럽다.
군도 참 잘 내려간다.


별 탈 없이 내려와서 기특하다. 토닥토닥.



매순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던 내리막 길 끝에 작은 마을이 있다.
얏호!



이 산중에 마을이 있다는 것이 신기하다.
마을의 집들이 아담하고, 오밀조밀 모여 있는 게 예뻐 보인다.



마을에 도착해서 조그마한 슈퍼를 찾아 간단히 먹을 것을 샀다. 가게 앞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함께 점심을 먹는데, 졸음이 밀려온다. 왜 이리 졸리고 피곤할까.


El Acebo 마을의 거리.



#오늘의 목적지는 Molinaseca로!

El Acebo 마을에서 한 시간 반 정도 더 걸어 또 다른 작은 마을에 도착했다.
El Acebo에서 여기까지 걷는 내내 졸리고 피곤하여 사진을 찍을 생각조차 못했다.


굿바이~ 파멜라!


파멜라는 오늘 여기서 오늘 머무를 거라고 한다.
이곳까지 걸어오는 동안, 너무 힘들면 이번 마을에서 머물까 싶었다.
그런데 막상 도착하니 조금 더 걸어가서 쉬어도 될 것 같다. 
여기까지 오느라 힘들긴 했지만 아직 내리막길이 남아있다.
이왕 힘든 거, 오늘 다 해치우고 속 편히 잠드는게 나을 것 같다.
군도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는지 우리 둘은 계속 가기로 결정한다.

파멜라와 인사를 하고, 군과 나는 다시 걷기 시작한다.



이젠 어려운 코스는 모두 지나친 건가?
오후의 햇살을 가려주는 시원한 나무 그늘을 지나가자니 기분이 좋다.


승천하기를 바라는 새의 몸짓처럼.



얼마나 오랫동안 한 자리에 있었을까.




이제는 계속해서 걷기 쉬운 길이 이어지는 구나~ 어깨춤이라도 덩실 추려고 했다. 
허나 머지않아 난 기겁을 했다.



우와. 여기 정말 최고다. ㅠㅠ 
완전 울퉁불퉁, 각진 돌들만 잔뜩!
어디가 끝일지 모르겠지만, 아찔하다.
다시금 두 다리에 힘이 들어간다. 아까 지나온 내리막길과는 석질이 다르다.
훨씬 더 가파르고 위험해보인다. 
등산화를 신고 있어도 발바닥에 돌들의 날카로운 표면들이 조금 느껴진다.
알베르게에 가서 쉬게 되면 발마사지는 필수로 해야겠다.

이제 거의 다 내려왔다 싶을 무렵.
어떤 젊은 청년이 외바퀴를 타고 이 험한 길을 내려오는 게 아닌가!
한 두번 타본 게 아닌 것처럼 능숙하게
그것도 엄청난 스피드로 내려간 그를 보곤
마침 중간에 만나 함께 내려온 헝가리 순례자와 나는 눈을 마주치곤 멍한 표정을 지었다.

말하지 않아도 무슨 생각을 했을지 알겠다.

마을 입구에 이다(헝가리 순례자)를 마중 나온 피터가 우리에게 알베르게가 있는 곳으로 안내한다.
마을 끝에 위치한 새로 생긴 알베르게가 있다고 한다.


멋진 중세풍의 다리 순례자 다리. 밑으로는 메루엘로 강이 흐른다.


어서 알베르게에 가서 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은데
걸어도
걸어도
알베르게는 생각보다 멀리 있는 것 같다.

이제까지 걸어온 길보다
마을의 끝에 있는 알베르게까지 가기가 정말 힘들군...  


#드디어 알베르게 도착!

피터가 말한 대로 새로 생긴 알베르게는 마을 맨 끝에 있었다.
아침에 출발하기 수월하긴 하겠다. 
군과 나는 한 방을 같이 쓰게 되었다.


말을 타고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들이 지나간다. 신기해라.


늘 그렇듯 스피드 샤워를 마치고 마을의 슈퍼를 찾아 걸었다.
아. 힘들다.
마을 구경이고 뭐고.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어서 침대에 누워 쉬고 싶은 마음 뿐.

알베르게 야외 테이블에 앉아 있는 로빈을 만났다. 그와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고는 저녁 식사 시간이 되자 로빈은 식당으로 가고 나는 홀로 테이블에 앉아 우걱우걱 저녁을 먹는다.

내 옆 테이블에는 프랑스 사람들이 푸짐하게 식사를 한다.

한국사람 같아선...
남은 음식 뭐라도 주며 신경써줄 텐데.
그저 그들이 남긴 와인과 빵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방으로 올라와서 일기를 대충 쓰고는 잠을 청한다.
깊은 잠이 들기 전,
눈을 깜박거리며 군의 기침소리를 듣는다.

군...
내일은 좀 더 나아져야 할텐데...


P.S *파멜라는 결국 그 마을에서 머물지 않고 우리가 있는 알베르게로 왔다.
그녀에게 슈퍼 위치를 가르쳐준다고 말은 해줬는데 설명이 부족해서
결국 그녀는 빈손으로 알베르게로 돌아왔다. 
부족한 영어 실력과 길을 안내해주지 않은 내 불친절에 스스로 굉장히 미안했지만...
정말 다시 걷기 싫을 정도로 발바닥이 아프고 피곤했었다. 아임 쏘 쏘리, 파멜라...  



오늘의 코스>ㅅ <!!




Rabanal del Camino - Cruz de Fierro - Manjarin - El Acebo - Riego de Ambros - Molinaseca 25km


오늘의 지출=ㅅ =!!

숙소 7 + 슈퍼 7.22 + 중간에 슈퍼 2.22 = 16.44유로


Today's Stamps!




나무 아래에서 올려다 본 하늘. 솜털 구름이 가지에 걸리었다.


계획했던 것보다 늦게 하는 포스팅.
이걸 다 마무리 지어야 마음 편하게 여행갈 수 있을텐데.
이러다 말만 하고는,
여행 못갈지도 모르겠습니다 ㅡㅡ;

나름 글 수정한다고 몇 번 읽어봤는데,
'사진' 을 '자신' 이라 써놓고 그냥 지나쳤었다니. 허거덩.
뜨악.

내 글을 너무도 여러번 읽어서 별다른 감흥도 없고.
글이 길어서 좀 줄이고 싶다만
아직 감을 못 잡겠어요. 어떻게 써야할지.
쓰다보면 늘겠죠.. ㅠㅜ

왜 이렇게까지 공들여야하나.
스스로에게 묻습니다만.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난 이유는
욕심껏 벌인 일들을 끝까지 해내는
과정과 고통과 그 길 끝에서 느낄
충만함을 배우기 위해서인지도 모를 거란
생각을 해봅니다.

제가 생각한 것과
말로 한 것은 꼭 지키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갈 길은 멀지만.
한 번에
한 걸음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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