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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정수업] 감정의 항해, 자신에게 이르는 기쁨과 슬픔의 향연

Yildiz 2014. 7. 20. 13:22

 

 

 

#강신주 철학박사의 애독자가 되다.

 

작년 여름, 내가 제대로 된 사랑을 하는 건지 아니면 어설픈 사랑을 하고 있는 건지 고민하던 때에 강신주의 다상담 책을 읽게 되었다. <몸, 사랑, 고독, 일, 정치, 쫄지마> 라는 주제로 벙커에서 강연한 내용들을 책으로 엮은 것이었다. 그동안 읽어온 자기계발서와는 달리, 당연하다고 믿어왔던 생각들에 대해 질문을 던져주는 글들로 가득했었다. 그 후, 팟캐스트를 통해 다상담을 빠짐없이 듣게 되었다. 책을 한 번 읽었다고 사람의 생각이 곧바로 변하지 못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느끼게 되었다. 듣고 또 들어도, 왜 새롭게 느껴지는 건지 모를 일이었다.

 

다상담을 통해 강신주의 육성을 듣는다 한들, 진정 자신의 감정에서부터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다면 책과 라디오를 통해 받은 자극은 순간의 자극에 불과한 것이다. 때론 과격하게, 과장되게 다가오는 강신주의 날카로운 질문에 치열한 고민을 거듭하고 스스로를 대면하지 않는다면 한낱 애청하는 프로그램을 습관적으로 듣고 보는 것에 그칠테니까 말이다.

 

 

 

#지금 자신의 감정 에너지 장에 속하는 소설 한 권을 손에 넣어라!

 

어떤 작가에 대해 긍정적인 자극과 반응을 얻게 되면, 그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게 되기 마련이다. 작년에 읽은 책 중, 강신주의 책이 다수를 차지한다. 작년 11월 말, 강신주의 신간이 발간됐다는 소식에 믿고 바로 구입한 책이 <감정수업>이다.

 

 


감정수업

저자
강신주 지음
출판사
민음사 | 2013-11-20 출간
카테고리
인문
책소개
철학자 강신주가 읽어주는 욕망의 인문학 “자신의 감정을 지켜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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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전에는 읽고 싶은 소설을 선택할 때, '베스트셀러'라든지, 누군가 '이것은 고전이다, 그러므로 읽어봐야 하는 필독서다.'라고 평하기 때문에 선택한 것들이 많았던 것 같다. 내가 그것을 읽지 않으면 뒤쳐질 거라는 기분에 허겁지겁 달려들어 책을 집었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몇 번을 읽어도 잘 이해가 되지 않은 채 끝마무리를 지어야 했던 소설들이 있었다. 고등학생 때 읽었던 <위대한 개츠비>는 2번을 읽어도 잘 파악을 못했었고, 대학생 때 읽었던 밀란 쿤데라의 <농담>, 파울로 코엘료의 <오 자히르> 또한 '이게 뭐지?' 라는 반응만 남긴 채 책을 읽었던 것 같다.

 

하지만 나이를 먹고, 시간이 흘러 여러 인간관계와 경험을 지나온 뒤에 다시 읽는 소설은 그야 말로 굉장한 보물로 다가왔다.

사랑을 경험하고 잃어버렸던 때에 다시 읽는 <오 자히르>는 왜 그렇게도 눈에 쏙쏙 들어오든지?

최근 영화로 만들어진 <위대한 개츠비>는 내가 책에서 잘 간파하지 못했던 인간상에 대해서, 물질이 우선인 사회의 본모습을 어찌 그리 잘 담아냈는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봐야했다.

 

강신주의 다상담 팟캐스트를 듣던 중 강신주가 밀란 쿤데라의 <정체성>의 줄거리를 이야기해주는데, 그게 그렇게 재밌게 들릴수가 없었다. 아마 사랑에 대해, 나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하고 있는 시기여서 그랬는지 귀에 쏙쏙 들어왔고 재빨리 그 소설을 손에 집어넣게 되었었다.

 

자신의 감정이 어떤 것이고, 감정의 에너지 파장이 어디에 속하는지를 파악하고 이 에너지를 좋은 쪽으로 잘 증폭시킬 수 있는 문학작품을 선택하는 것이, 누군가의 추천으로 읽게 되는 것보다 무척 즐겁고 보람된 독서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처음부터 차근차근 읽어도 좋다.

 

벙커에서 감정수업 북콘서트도 하고, 녹음된 내용이 팟캐스트에 올라와서 듣게 되었다. 그때 강신주가 하는 말로는 이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되니, 목차를 주욱 보면서 자기가 빠져있는 감정이 무엇과 비슷한지 파악하고, 그 부분을 읽어보라 하였다. 마트에 가서 필요한 음료수를 골라마신다는 생각으로, 제일 마음에 드는 과자를 고른다는 생각으로 목차를 읽어봐도 좋을 것이다.

 

그래서 내가 관심있는 부분을 읽고, 다른 부분도 읽고 하다가 결국엔 처음부터 찬찬히 읽게 되었다. 그런데 이게 웬걸.

 

난 충분히 알고 있었다고 생각했던 감정에 대해 다시 한번 곱씹게 되면서, 과거에 내가 경험했던 일들도 새록새록 떠올랐다.

 

'아, 그때의 내 감정을 '소심함'으로 표현할 수 있겠구나.' , '내가 지금 이런 문제 앞에선 '소심해지는구나.' 라는 자가 진단과

'경멸'이란 감정이 결국 나 또한 파괴할 수 있는 서글픔이란 무서운 자각.

'호의'로 인해 파괴적으로 몰고 가야했던 인간관계에 대해 안개가 걷힌 듯한 기분도 들면서 내가 그동안 겪어온 '감정'들의 실체와 그것들에 대한 나만의 기준을 조금씩 세우게 되었다. 


 

니체가 선과 악에 'Good'과 'Evil'이란 대문자를 사용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선과 악은 사회의 안전이나 통념을 위해 어떤 개인이라도 반드시 따라야만 하는 절대적이고 유일한 규범을 상징하니까.

 

반면 니체는 좋음과 나쁨에 'good'과 'bad'라는 소문자를 붙인다. 사람마다 좋음과 나쁨의 기준이 다르고 동시에 좋음과 나쁨의 내용도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우선 선과 악이라는 규범을 버리고 좋음과 나쁨이라는 자기만의 기준에 따라 살아가도록 노력해야 한다.

 

'좋다'고 느끼는 것을 선택하고, '나쁘다'고 느끼는 것을 거부하라!

나의 삶을 유쾌하게 만들어 주는 것을 선택하고, 반대로 우울하게 만드는 것을 거부하라!

이제 우리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 않은가.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신의 감정을 따르지 않는다면 자기 삶을 행복하게 살아갈 수 없다는 진실을.

 

-에필로그 중, <감정수업> 강신주

 

 

삶의 주체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을 회피하지 않고, 대면하고 따르는 당당함과 동의어일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사회에선 여러가지 통념과 도리를 명목으로 우리의 감정을 스스로 억압하게 만들거나, 구속하도록 배워오지 않았던가?

 

 

감정을 죽이는 것, 혹은 감정을 누르는 것은 불행일 수밖에 없다. 살아 있으면서 죽은 척하는 것이 어떻게 행복이겠는가. 그러니 다시 감정을 살려내야만 한다. 이것은 삶의 본능이자 삶의 의무이기 때문이다.

행복하게 산다는 것, 그것은 감정의 자연스럽고 자유스러운 분출이 가능하냐의 여부에 달린 것 아닌가.

 

-프롤로그 중, <감정수업> 강신주

 

그동안 가슴 속에 꾹꾹 눌러야만 했던, 설명하기 힘든 감정에 대해서 그 실체를 파악하고자 한다면 이 책을 통해서 조언이나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왜 굳이 불편한 감정들을 다시 끄집어 내야할까? 분명 자신의 약함을 대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살아있는 한, 그 감정을 껴안고, 건강하게 풀어내지 못한다면 비슷한 비극을 되풀이할 수밖에 없는게 우리 인생이지 않나 싶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감정들, 살아가면서 그 감정들을 오롯이 살아내고, 고통을 감내하는 것은 우리의 몫이고, 자신이 책임져야 하는 것이다.  

 

 

이 책의 가치를 더 빛나게 하는 것 :: 편집자가 고른 감정에 관련된 '그림'

 

 

 

#철학자 '스피노자'의 감정에 대한 정의와 강신주가 선별한 소설 속 감정, 편집자가 선별한 '그림' 의 세 박자가 잘 어울린 책, <감정수업>

 

감정은 용수철과 같다. 누르면 누를수록 더 큰 반발력을 갖기 마련이니까. 모든 사회적 통념에 맞서서 당당하게 자신의 감정을 지키겠다는 결단은, 주인공을 통념의 노예가 아니라 삶의 주체로 만드는 것이니까. 사랑을 부정하면 자신을 부정하게 되고, 반대로 사랑을 긍정하면 자신을 긍정하게 된다.

 

48명의 세이렌의 노랫소리를 마음껏 즐겨라. 우리는 반드시 모든 감정을 통과해야만 한다. 집으로 돌아가야만 하는 오디세우스처럼, 지금 우리는 나 자신만의 감정에 이르려는 항해를 떠나는 것이니까.

 

-프롤로그 중, <감정수업> 강신주

 

 

48가지의 감정을 모두 살펴보는데 지난한 시간과 과정들을 거쳐야 할 것이다. 더더욱 자기에게 긴급한 감정을 위해서라면 <감정수업> 책에서 언급된 문학작품 또한 함께 한다면 더 풍부해지고 깊어지는 자신의 감정과 대면할 것이다.

쉬운 일도 아니고, 쉽고 짧게 끝낼 과정이 아닐 것이다. 죽을 때까지 이어질 이 감정의 항해. 이 고단할 항해를 지휘하는 선장이 될 것인지, 아니면 노예가 될 것인지는 자신의 선택에 달린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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