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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수다쟁이

[김진숙 특강] 너와 나, 희망을 선택하자

Yildiz 2012. 4. 10. 00:22

 

 

한겨레 21 인터뷰 특강 '선택' 시리즈

제1회 김진숙 (3/13, 백범기념관에서)

 

 

지방에서 대학을 다니던 나는 풍부한 문화 생활과 여러 좋은 강의를

들을 수 있는 지역 특성으로 '서울'을 동경했었는데 

 

그 요소 중 하나가 '한겨레 21 인터뷰 특강' 이었다.

'서울에 살게 되면 꼭 들으러가리라' 했던게 작년 김어준 특강을 들은 이후

올해로 두번째다. 모든 특강을 들으면 좋겠지만 앞으로도 해마다 최소 특강 한 개씩은 꼭 듣겠다고 다짐해본다.

 

그러고 보면 조금 신기하기도 하다.

한겨레 21 잡지에 실린 특강 광고를 보고

'나도 한번 가봤으면' 하며 특강을 욕망했던 게 5~6년 전의 일인데,

내가 과거에 원하던 것을 실현하고 있는 현재가 새삼 자기예언적 삶인 것 같아 잠시 멍~해진다.

그때의 욕망을 지금도 여전히 지닌 채 현재를 만들어 가고 있으니 좋기도 하지만,

생각의 한 끝을 욕망에서 끌어올려 문장으로 만든다는 것은 곧 미래에 실현 가능성을 잠재적으로 지닌 것이니

어떤 생각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의 삶도 달라질 것이란 사실이 조금은 두려움을 갖게도 만든다.

 

 

 

 

특강 후기를 쓰면서 무슨 사설이 이리 길까- 싶겠지만

이번 특강의 강연자와의 만남은 내게 조금 특별해서 그런지 이런저런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대학생 때 '한겨레 21 인터뷰 특강' 을 알기 전,

고등학생 시절로 과거의 기억을 더듬거려 본다.

 

한국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그것이 알고 싶다', 'PD수첩' 등을 수업 자료로 활용하며

수업을 알차게 해주신 선생님 덕분에

나는 별다른 거부감 없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PD수첩을 애청하며 노트에 방송내용을 적기 시작했다.

 

학교-집, 집-학교만 다니며 공부하던 고등학생이 사회에 대해 뭘 그리 알았겠나.

그때 막 등장하기 시작한 '비정규직' 이 뭔지 난 잘 알지 못했으나,

'비정규직' 이란 용어 때문에 사회에 갈등이 일어나기 시작하고 누군가 분신자살까지 한다는 것은

분명 좋은 것은 아니란 것을 조금씩 알아가고 있을 때였다.

 

2003년 어느 화요일날, PD수첩에서 한진중공업 노조 파업과 김주익씨의 자살, 회사의 손해배상청구와 재산 가압류에 대해 방송했던 내용이 모두 자세히 기억이 나지는 않지만,

어느 한 여성이 크레인에 올라가(사실 크레인에 올라가서였는지 무대위였는지 가물가물하다...)

김주익씨의 죽음을 애도하며 읽어내려가던 글을 방송으로 들으며.

나도 무척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다가, 방송 후반부에 어려운 얘기가 나오자 나도 모르게 잠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때 날 울렸던 그 사람. 김진숙이다.

그 사람이 크레인에 올라갔다는 글을 트위터에서 보곤

난 거짓말이라 믿고 싶었고. 사회면을 장식하는 기사 머릿말을 보며

내 가슴을 철렁거리게 할 기사가 올라오지 않기를 마음을 졸여야했다.

 

크레인 위에서 위태로워보였던 그녀가

천만다행으로 309일만에 내려왔고, 이렇게 오늘의 특강의 강연자가 되었다.

 

퇴근시간만 되면 파김치처럼 축 늘어지는 3월이지만,

김진숙씨를 가까이에서 본다는 것에 설레는 마음을 품고 찾아온 백범기념관.

 

 

강연장은 이미 만원이라 뒤에 앉았다.

곧이어 강연 시간이 되어 사회자와 김진숙씨가 나왔다.

사회자가 강연자 소개를 마치자 이어지는 박수소리.

 

 

 

 

 크레인이라는 선택

 

 

"저 김진숙이 아니가?"

"김진숙이?"

 

김진숙씨가 크레인에서 내려와서 가장 간절했던 건 목욕탕에 가는 것이었다.

크레인에서 내려온지 열흘만에 목욕탕에 가서 뜨끈한 탕 안으로 들어갔더니

앞에 앉아있는 할머니 세 분이 김진숙씨를 알아보고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는

김진숙씨는 제대로 목욕도 못하고 나왔다고 한다.

 

어떤 분위기의 강의가 될까, 기대했었는데

크레인이라는 선택이 가져온 여러 어려움과 에피소드들을 들으며

내 눈에 눈물이 맺히기도 하고

눈가의 눈물이 마르기도 전에 박수치며 사람들과 함께 웃기도 하며 들었다.

 

 

"못 내려올거라고 생각하고 올라갔습니다."

 

2003년, 한진중공업의 대규모 정리해고의 통보로 노조에선 2년간 투쟁을 했지만 2500명이던 조합원의 숫자는 60명으로 줄어들었고, 김주익 지회장은 85호 크레인으로 올라와 시위를 계속 했지만 129일째 되는 날.

그는 밥을 끌어올리던 밧줄에 목을 매어 자살을 했다. 크레인에 시체가 매달려 있었지만 사측은 아무런 대응이 없었다.

 

김주익씨가 자살한 지 5일만에 곽재규 씨가 자살을 하자 그제서야 노사간의 합의가 이루어졌고 두 사람의 합동 장례식을 치를 수 있었다고 한다.

 

두 사람의 장례식을 치르고 집으로 돌아온 김진숙씨는 보일러를 켜려는데 차마 전원 버튼을 누르지 못했다고 말했다.

20년지기를 차가운 땅에 묻고 어찌 저 혼자 따뜻한 방에서 잘 수 있겠냐며.

 

그 후로 8년동안 겨울에 보일러도 틀지 않고, 머리를 감을 때도 찬물로 감아 부산에 살면서도 겨울에 귓볼에 동상이 걸렸다고 한다.

 

노동자의 죽음과 노동자의 피와 땀으로 생명을 이어가는 회사.

노동강도나 노동자의 처지가 좋아지기는 커녕 노동자의 숨통을 조이기만 할 뿐인 회사.

사상 최고의 영업이익을 억 소리나게 냈음에도 순이익이 아닌 주식배당금이라고 허위로 알리는 회사.

 

경영진은 뇌하수체가 고장난 것 마냥 위통이 다 찬 줄도 모르고 끊임없이 채우는데

노동자들을 구조조정하겠다고 발표를 한다.

 

김진숙 지도위원장은 처음부터 크레인에 올라갈 생각을 한 것은 아니었다.

'누군가 올라가겠지' 싶었지만 마땅히 올라가는 사람이 없어, 당신이 올라가겠다고 85호 크레인을 선택했다.

 

 

 

 

 

"크레인 위에서 제일 무서웠던 건 세상과 단절 그리고 고립이었어요."

 

그렇지만 지인이 밧줄로 올려보내준 스마트폰을 이용해 트위터를 하게 되면서

단절과 고립의 두려움에 늘 시달릴 필요는 없었다.

 

그러나 트위터를 통해 여론이 확산되는 것을 두려워한 회사에서는 크레인의 전기 공급을 중단시켰고,

이때 김진숙씨는 "엄청 쫄았다." 며 말했다.

 

스마트폰 밧데리를 도시락에 몰래 넣어 올려보낼까봐

용역이 금속 탐지기로 확인까지 했고

 

'김진숙에게 모형 헬리콥터로 스마트폰 밧데리를 보내자!' 며 몰래 작전을 펼치려 했지만

모형 헬리콥터의 사진을 트위터로 올린 까닭에

그 다음날부터 용역들은 하늘을 쳐다봤다고 한다.

 

결국은 모형 식빵 안에 태양열 충전지를 넣고 또 어떻게 싸고 해서 밧데리를 충전하고 트위터를 다시 할 수 있게됐지만

김진숙의 트위터를 팔로우 하는 사람은 그녀의 응원군들 뿐 아니라

아래에 떡하니 지키고 있는 용역들도 포함되어 있으니...

 

크레인에서 내려와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병동에 있던 경찰들도 스마트폰을 들여다보고 있었더란다.

 

한진중공업 사장은 어떻게든 김진숙을 크레인에서 끌어내리기 위해 갖은 방법을 동원한다.

어느 아파트 주민들에게 돈을 뿌려 희망버스가 오면 갖은 욕을 하며 훼방을 놓으라고 시키고,

무당에게는 김진숙이 언제 죽냐고 물어보고, 크레인을 해체할 날짜를 '택일'까지 받았다고 한다.

 

용역들은 페트병에 든 물을 그대로 올려보내주는게 아니라 봉지에 물을 담고 거기다 가래를 뱉어서 올려보냈고.

구급약품과 모기약이 필요하다해도 절대 올려보내도록 허락하지 않았다고...

 

 

갖은 모욕과 냉대를 받으면서, 굴복하지 않고 그녀가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누가 또 크레인에 올라가면 울고 가지 마세요.

남은 사람 감정처리 안되거든요~"

 

김진숙을 응원하기 위해 사람들이 찾아오고, 그녀의 투쟁에 전환점이 되는 방문객이 있었으니

"김여진과 날라리"

 

다들 울고 가곤 했는데, 날라리들은 와서 신나게 웃고 놀고 가더란다.

김진숙은 그들을 보며 울음보다 웃음의 크기가 크다는 것을,

그래서 웃으면서 함께 싸워야겠구나. 웃으면서 끝까지 함께 가야겠구나. 라고 느꼈다고 한다.

 

"크레인에서 살아내려올 수 있었던 근본적인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그 힘은 무엇이었나요." 라는 질문에

김진숙은 실제로 정말 '못' 내려올 뻔 했다면서 말문을 떼었다.

 

"정말 힘들 때, 못 버티겠다. 싶을 때

꼭 누군가 왔었다.

 

이건 정말 기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트위터로 알게 된 한 남성이 나를 만나러 오겠다고 했는데

그때 용역들이 민간인의 출입을 막고 있던 때였다.

 

그런데 그 사람은 개가 드나드는 구멍으로 개를 앞세우고

다른 개가 뒤따라오는 듯이 개 흉내를 내며 네 발로 몰래 기어들어 왔다.

위에서 그를 내려다보면서. 내가 간절한 만큼 저 사람들도 간절하구나 느꼈다.

 

앞서간 동지들, 김주익, 곽재규를 생각하면 지난 8년동안 죄스러웠다.

 

내가 이대로 가버린다면 내가 다른 이들에게 준 상처는

그들이 평생 안고 살아갈 것이다."

 

 

"희망버스를 타고 오는 사람들. 난 얼굴도 모르는데 나를 찾아오는 이 사람들에게 묻고 싶었다.

 

'당신은 어떤 마음으로 오십니까!'

 

살아서, 저 사람들을 한번만 보고 싶었다."

 

 

세상은 싸우는 사람들의 요구대로, 움직이고 실천하는 사람들의 발걸음만큼 변해오고 진보해가고 있으며

'행동' 하지 않는 양심이라 할지라도,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실천해나가는 것이 세상을 바꿔나가는 것의 일부분이라며

강연 참석자의 질문에 답을 주는 것으로 강연은 끝났다.

 

     

 

 

사회자의 마무리 멘트가 끝나고 몇몇 사람들은 줄을 지어 책에 싸인을 받는데, 나도 책을 미리 사와서 싸인을 받을 걸 후회가 된다. 싸인하는 김진숙씨의 사진을 몇 장 찍고 강연장을 나오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8년 전에 PD수첩을 통해 잠깐 봤던 그 사람을 8년 후 실제로 보게 될 줄을. 상상이라도 했냐며.

 

8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뉘우침은 커녕 

더욱 더 기승을 부리는 자본의 횡포는 걷잡을 수 없이 커져만 가고 있지만

 

그에 대항하는 사람의 마음이

다른 사람을 울리고 웃게 하고

또 다른 사람을 함께 하게 하고, 그래서 희망을 노래하게 하는.

 

인간이 인간답게

노동이 노동답게 실현될 세상을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손'을 잡고 만들어가야 함을 일깨워주는

이 사람의 힘을, 받고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에는

하루의 피로가 남아있지 않았다.

 

언제부턴가 내가 숨쉬고 있는 것은 기회이고,

살아있는 한 희망은 숨쉬는 이유라고 생각해왔다.

 

나의 숨이 희망이라면,

원래 사람의 존재가 희망을 품은 것이라면

 

나의 숨은 누군가의 희망이되고

누군가의 숨은 나의 희망이 된다.

 

그렇게 우리는 모두 서로의 희망의 이유이고 존재가 되는 것.

 

원래의 우리의 존재를 잊지 않는다면

희망의 힘은 더더욱 커질 것이다.

 

 

 


 

 

p.s)

 

0. 특강을 들은지가 벌써 지난 달의 이야기인데... 한번 글쓰기의 장벽에 부딪치면 늘 빈 페이지에 커서만 놓고 헤맨다.

그래도 오늘은 꼭 어떻게든 써야겠다 싶어 머리가 쥐가 나고 허리에 쥐가 나도록 앉아서 궁리만 하다 겨우 썼다.

강의 내용을 모두 적지 못하고, 또 중요한 내용들을 다 소화하지 못해 글에 모두 녹아내지 못했지만,

또 다른, 나보다 글 잘 쓰는 이가 어딘가에 기록을 남겼으리란 기대를 하며 썼다.

 

1. 몸으로 부딪쳐 행동하는 지인들을 지켜보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내 몸은 무거운 양심만 덩그라니 있을 뿐 마음만 오뚜기처럼 왔다갔다 했다. 그래서 누군가 '행동하지 않는 양심' 에 대해서 얘기할 때. 희망버스에 한번 타보지 않은 내가 부끄럽고, 행동하지 않은 내가 한심했지만.

 

그. 래. 도. 자기 자리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을 해나가는 것. 그것이 무엇이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이들에게 '희망' 을 가르치는게 중요하다고 믿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다짐해본다.

자신이 희망의 존재이고, 누군가에게 희망을 줄 수 있는 존재임을 안다면, 나중에 어려운 일이 있더라도 세상의 굳은 일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 믿기 때문이다.

 

2. 잘 안 써지는 글. 붙잡고 늘어져서 포스팅 하는 이유는 4.11 총선 때문에. 꼭 투표일 전날에는 포스팅해서

선택에 대해 생각해봤으면 하는 마음에서 ^^ 나의 한 표가 내 삶의 희망이자 누군가의 희망이 될 수 있다는 뜻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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