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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본문

소소한 일상/수다쟁이

당신,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Yildiz 2011. 3. 18. 23:58

1. 파란 눈의 집시 여인

새파란 눈빛,
시린 가을 하늘을 닮은 
여인의 눈이
겨울의 길거리를 하염없이 걷던
내 마음과 발걸음을 붙잡았다.

갓난아이를 품에 안고 있는 집시여인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다시 돌아와 주머니에 동전 몇 개를 넣었다.
그리고 그녀의 눈을 다시 바라보았다.

파란 물결 가득한
그녀의 두 눈.

내 마음을 관통하듯이 바라보는 그 눈을.
호기심 반,
두려움 반으로 바라보았다.

그녀는 내게 무슨 말을 하려 했던 걸까.
그녀는 무슨 생각을 했던 걸까.

2년이 지난 지금도 정말 궁금하다.
가끔 떠올리던 장면인데,
요즘따라 그녀의 눈을 자주 떠올리고 있다.


2. 무조건 떠나기

지금 하고 있는 일 계약이 끝나면
이번 여름은 무조건 떠나기로 스스로 재차 삼차 다짐하고 있다.
터키행 비행기표 결제 직전이라는 지인의 소식을 듣고는,
슬슬 여행루트를 고민하기 시작했다.

3년 전에 다녀온 봉사활동 장소에 또 가고 싶고,
보고 싶은 친구들이 많기에
터키는 꼭 가야한다.

그리고 영국에 가서 꼭 만나야 하는 사람이 있다.

최대한 이동경비를 줄이는 쪽으로 루트를 생각하다보니,
뭔가 공백이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이번 여행에서 무얼 하고 싶지?
하나 둘씩 적어보기 시작한다.


3. 일주일 피로를 급행 열차에서 달래다

사실 오늘 자진해서 참가하겠다는 모임이 있었다.
약속 시간이 가까워지기까지 별다른 연락이 없어서
어떻게 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다가
결국은 용산 급행열차를 탔다.

오늘 하루도 정말 바뻐서 퇴근하고 나서야 화장실 한번 들렀다.
정말 피곤한데, 안 간다고 연락할까?
몇 주 전부터 가겠다고 벼른 곳인데, 갑자기 마음 돌리자니
좀 비겁한 것 같고.

우선 용산까지 가보자.

전철 안에서, 급속도로 잠에 빠져든 나는
꾸벅꾸벅 졸기 시작한다.
열차가 정지하는 중간중간마다
고개를 푹 숙인 채 졸고 있는
배터리 방전된 내 상태를 확인하곤 했다.
아, 미치도록 졸리다.

용산에서 내렸지만,
역사 안에서 3분정도 헤매다가
동인천 급행 열차를 타러 발걸음을 돌렸다.

그냥 집으로 가자.
오늘은 정말 날이 아닌 것 같다.


4. 비루한 자리, 그래도 행복

집으로 돌아오는 전철 안.

책이라도 꺼내서 읽을까?
귀찮다.

그럼, 눈 감고 생각이나 하자.
여행 가서 하고 싶은 것들 좀 생각해보자.
뭐가 있을까.

이리 저리 튀는 마음.
집중력은 금붕어 레벨.

옆에 앉은 남자가 꼼지락거리며 만지는
스마트폰 액정을 슬쩍 쳐다본다.
알 수 없는 게임을 하고 있다. 재미있을까.

이윽고 공간을 가득 메운
사람들 틈 속에서
비루한 자리에 앉은 채로
중얼거려본다.

그래도 행복한 거라고.
갑작스런 일본의 재난 소식 이후로
습관처럼 중얼거린다.

오늘이 있어 정말 감사하다고.


5. 당신, 여전히 그곳에 있나요

어설픈 일탈의 종지부를
전철 출구 카드기에 찍는다.

나 뭐한거냐
별별 생각이 다 드는 틈사이로,

불가리아에서 본 집시여인의 눈이 다시금 생각난다.

내가 다시 그곳에 가면 그녀를 볼 수 있을까?
그 여자, 여전히 그곳에 있을까?

그런데
언제까지 풀지 못할 숙제를
간직한 채 살아야 하는 걸까.


6. 생의 마지막 여행인 것처럼

터키에 가서도
분명 그 집시여인을 내내 생각할 것 같다.

이스탄불에서 야간 기차를 타면 아침에 도착할 수 있는 곳.
불가리아의 수도, 소피아.
터키에서 그리 먼 곳이 아니다.

불가리아.
다시 한번 가보자.

최대 2개월을 고려해볼 수 있는 여행이니,
시간은 충분할 것 같다.

그녀를 볼 수도 있고,
못 볼 수도 있지만,
아예 안 가는 것보다 나을 것 같다.


아... 그러면 이참에 보고 싶은 사람은
왕창 만나고 올까?!
세르비아 여행 좀 해보고,
슬로바키아에도 가보고,
동유럽을 방랑해보자.

이동경비를 따지자면,
그닥 저렴한 여행은 아니겠지만.

몇 푼 안되는 돈,
바닥에 가까워지더라도.

후회 없게끔,
보고 싶은 사람들
모두 만나게 된다면,

가뿐한 마음으로 제자리로 돌아와
다시 버리고 떠나기 위해서
열심히 하루하루를 살아가겠지.


이왕 오랜만에 떠나기로 한 거.

생의 마지막 여행인 것처럼 준비해야겠다.

돈.
돈보다 가치있는 것들을 위해
다가올 여행의 순간들을 위해서

생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살아야겠다.

살아야한다.

아직 하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사람들.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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