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달리는 기차 안
목적지가 어디였는지는 잘 기억나지 않는다. 고향집에 가는 것 같기도 했고,
기분 좋은 흥분 상태로 기차 안에서 돌아다니다가
앞으로 나 있는 선로를 바라보았다.
그런데 왠 걸.
몇 백미터 앞에 있는 기찻길은
마치 슈퍼마리오 게임에 나오는 끊어진 길처럼 놓여있다.
아. 나 이제 죽었구나.
....
2. 그래도 기차는 갈 수 있어
'어서 기차에서 내려야햇!
떨어져 죽을거야!'
라는 다급한 상황에서
'그래도 기차는 달려.'
라는 침착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황당하군.
이 높은 곳에 기찻길이 끊겨있는데
어떻게 기차가 달리냐며
따지기도 전에
기차는 끊어진 길 바로 직전까지 왔다.
아앗.
이제 죽는구나.
3. 추락? 혹은 날개짓?
순간 공중에 붕 뜬 느낌과 함께
기차에서 빠져나온
나는 두꺼운 공기층 속에 스며들어
회색 지붕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광경을 내려다보았다.
이제 추락하는구나.
떨어지면 죽는걸까.
....
4. 죽어야 하지만 죽지는 않는다.
순간, 지구의 중력이 해제됐는지
가속도가 붙어 떨어지는 장면은 생략.
죽어야 하지만 죽지 않은 채
뒤통수 몇 군데에 피가 나서
반창고 몇 개 붙이고는 엄살떨며
나 죽을 뻔 했다고
가족과 친구들에게 알리려고 돌아다녔다.
골목골목을 지나 친구들을 찾았다.
그들은 라면을 끓이고 있는 중이었다.
5. 꿈보다 해몽
친구들이 끓이는 라면을 보며
군침을 흘리다
꿈은 끝났다.
끊어진 기찻길이며,
공중에 붕 뜬 느낌이며,
이거 꿈인지 생시인지
잠에서 깨어나서는 잠시 멍한 상태로
꿈의 장면들을 곱씹어보았다.
노트북을 켜고는
인터넷에서 꿈해몽 사이트에 접속해본다.
즐거운 마음으로 기차를 타고 가는 것까지는 좋았으나,
그 뒤의 이야기가 마음에 걸린다.
이 꿈을 어떻게 해석해야할까.
6. 상상 가능한 꿈
이왕 이런 꿈을 꾼 거,
안 좋은 일이 생기면 덤덤하게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런데
끊어진 기찻길을 발견하고도
'기차는 달릴 수 있다' 고 난데없이 들렸던
목소리의 정체는 무엇일까.
하늘에서 떨어지는 듯한 기분도 잠시.
그러나 땅에 도착하기까지의 장면은
생략된 채,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죽을꺼야.
높은 곳에서 떨어지니까 아플거야.
그러니가 피가 나고, 반창고도 붙여야돼.'
이런 생각 때문에
꿈에서 반창고를 붙인 채 돌아다녔던 것 같다.
논리적, 이성적 사고가
꿈에서도 나를 지배하고 있구나.
하늘을 달리는 기차까지는 좋았지만,
끝내 내 꿈은 현실에서 상상가능한 데까지만 머물러 있었다.
7. 날아라, 기차!
중간에 끊기지 않는 철로가 있어야만
기차는 목적지까지 달릴 수 있다.
그게 상식이다.
하지만 이번에 꾼 꿈을 통해서
철로는 어쩌면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인 삶의 길, 행로를
상징하는 것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통의 철로에서
벗어나고 싶지만
내 시선은 여전히 상식이 통하는 길 끝에 닿아있다.
끊어진 땅,
끊어진 철로 위를 가기 위해서
기차는 날 수 있다고 믿는 용기와
상상력이 있어야함을.
아. 역시 꿈보다 해몽이다
별 생각이 다 드는군.
어제와 다른 나,
나날이 새로운 나.
현실에 안주하지 않는 삶을 꿈꾼다면
기차도 날 수 있다고 그릴 줄 아는 상상력이
간절하게 필요한 것 같다.
이번 꿈을 통해서
엉뚱하지만,
하나의 주술이 생겼다.
상상 가능한 삶에 안주하지 말고,
상상 불가능한 삶으로
떠나보자,
날아라, 기차!
한번 날아가 보자.
그 끝에 무엇이 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