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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청춘!
[까미노 이야기 40] 순례 36일째, 내가 세상을 떠날 때 남길 것 본문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오다 2008년 6월 28일 토요일 다시 돌아온 광장.
# 지각! 늦었다!!
이크! 어쩌면 좋지?
시계를 보니 벌써 8시다!
부정언니와 8시에 만나서 함께 걷기로 했는데, 이미 늦었다.
서둘러 준비해서 가는 데도 10분은 걸릴텐데.
간밤의 달콤했던 잠을 음미하는 여유는 커녕
재빨리 화장실 다녀와서 배낭을 챙기고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향한다.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광장으로 왔으나, 부정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언니 먼저 간걸까..?
아니면... 혹시 늦잠을 자는 걸까.
알베르게에 가서 언니가 자고 있는지 살펴 보았으나, 언니는 이미 떠난 것 같다.
알베르게를 나와 홀로 길을 나선다.
그런데 문제는... 묵시아로 가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모른다는 것.
우선 마음 가는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걷다보면 뭐라도 나오겠지.
어느 쪽으로 갈까 고민하다가 오른쪽 방향으로 걷기 시작했다.
그런데 계속 가다보니 집들만 있고, 까미노에 대한 어떤 표지도 찾지 못하고 있다.
골목을 지날 때마다 왼편으로 보이는 바다.
앗, 그러고 보니 이 방향은 피니스테레 0km 지점에 가는 방향이랑 같네?!
생각해보니 그곳에서 묵시아로 가는 방향이라든지 까미노 표지를 보지 못했던 것 같다.
거리에 사람이 없어서 누구에게 길을 물어야 하나 발을 동동 굴리다가,
산책 나온 할아버지를 발견하곤 길을 물어보았다.
(까미노를 걷는 순례자가 현지인에게 길을 묻는 방법은 초간단하다.)
"Pardon, Camino?" (실례합니다, 까미노?) (방향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면서 묻기)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요."
역시... 반대방향이다.
자, 후진이다...!!
조용한 텅 빈 광장에 떠오르는 해가 한가득 햇살을 뿌려준다.
너무도 눈이 부시지만 그렇다고 싫증이 나진 않는다.
가는 길 멈춰서서 해를 바라보고,
또 다시 멈춰서서 해를 바라본다.
오늘따라 태양이 유난히도 강렬한 것 같다. 바닷물을 가를 듯한 기세로 떠오르는 태양.
드디어 피니스테레를 완전히 벗어나는 표지판와 함께 묵시아로 가는 방향을 찾았다.
피니스테레를 떠난다는 아쉬움에 자꾸 발걸음을 멈추게 된다.
아, 이제 진짜 떠나는구나.
안녕, 피니스테레!!
태양빛에 반사되는 바다도 눈부시고, 하늘색도 이쁘고, 발색하는 대지의 모든 것들이 너무나도 아름다워보인다.
몇 걸음 가다가 다시 멈춰서 뒤를 돌아보고,
얼마쯤 걷다가 또 멈춰선다.
이 아름다운 곳을 오늘 떠난다니. 아쉬움 한 가득 마음을 채운다.
가지 말라고,
떠나지 말라고
날 좀 더 보고 가라고, 뭔가가 내 발목을 잡는 듯한 느낌이다.
묵시아로 향하는 발걸음은 점점 느려지기 시작한다.
묵시아로 향한 답시고 걷고 있는데, 내 마음 속에는 여전히 피니스테레가 가득 차 있다.
내가 오늘 꼭 묵시아로 가야하는 이유가 있나?
이번에 이렇게 피니스테레를 떠나고 나면, 내 생애 다시 한번, 언제쯤 찾아올 수 있을까.
지금 이 순간이, 오늘이 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나는 피니스테레에 있고 싶다.
잠시 고민 끝에 결정을 내린다.
다시 돌아가자, 피니스테레에.
다시 피니스테레에 왔다.
아까 이 도로를 지날 때만 해도, 피니스테레를 떠난다고 생각했었는데
종잡을 수 없는 이 내 마음을 누군들 알았겠는가.
원래 돌아오게 되었던 걸까...?
바다를 가까이에서 보고 싶어서 곧장 바닷가로 향한다.
떠나는 나를 멀리서도 유혹하던 피니스테레의 아름다운 바다.
바닷가에 산책 나온 사람은 몇 명 안 된다.
멀리서 바라만 봐서 몰랐던 게, 바닷가에 바람이 꽤 분다.
간간이 휘몰아치며 부는 바람은 모래를 찰싹찰싹 흩뿌린다.
모래사장 한 가운데에 앉고자 했지만 바람막을 게 없어서 못 버티겠다.
아무것도 없이 한동안 앉아 있다보면 모래인간이 되어 있지 않을까=_ =;;
마땅히 피할 곳은 없지만 구석으로 자리를 옮긴다.
이름 모를 수풀 사이에 앉아 조금이나마 바람을 피한다. 수많은 바람을 이겨내며, 이렇게 혼자서.
아침겸 점심으로 먹으려 했던 샌드위치를 꺼내 한입 한입 물어보지만,
간간이 모래도 씹힌다. 퉤퉤.
일기를 쓰려고 다이어리를 꺼낸다.
페이지를 넘기는데 바람이 불어서 노란색 포스트잇 한 장이 날아가 버렸다.
아, 손 써보지도 못하고...
포스트잇이 저만치 가버리는 것을 우두커니 바라본다.
저기엔 무엇이 적혀있었더라.....
가만히 앉아있는게 추워서 해변을 따라 걷다가
피니스테레의 바다, 흐잉, 아름다워라. 창가에 서있는 아이, 강아지. 어쩌다보니 눈이 마주쳤다.
오늘 묵을 숙소를 찾기 위해 마을 안으로 들어왔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어제 노라가 피니스테레에 왔었지!
알베르게가 꽉 찬 후로 왔기에, 노라는 다른 곳에서 머물고 있을 것이다.
오늘 노라와 같이 보내면 되겠다 싶어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가 오늘 하루 더 피니스테레에 머무를 건데 같이 방을 쓰면 어떻겠는지 물었다.
노라는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묻고는 데릴러 오겠다며 전화를 끊는다.
이윽고 나타난 노라를 따라서 도착한 곳은 평범한 가정집.
호스텔이나 펜션 같은 곳에 머물줄 알았는데, 이 집을 통째로 빌렸다고 한다.
휴가철에 이렇게 집을 빌려주기도 하나보다. 대문을 열면 피니스테레의 푸른 바다가 바로 보인다.
아, 나도 이런 곳에 집 하나 있었으면!
노라는 아직도 여독이 덜 풀렸는지 잠을 더 자러 방으로 들어가고, 나는 피니스테레를 한바퀴 둘러볼 생각으로 다시 밖으로 나온다.
어제 장보러 갔었던 마트를 찾아왔다. 부정언니가 내게 해줬던 것처럼 스파게티를 직접 해보는 것이 목표! 헤르만씨와 함께.
토마토 페이스트 가장 작은 것을 사고, 거기에 들어갈 간단한 재료도 골라본다. 이것저것 고르다보니 비닐봉지가 꽉 찼다.
마트에서 나와 바닷가가 아닌 골목길을 지나 숙소로 향하는데, 이럴 수가.
오랜만에 보는 독일인 순례자, 헤르만씨를 만났다!
헤르만씨도 오랜만에 본다며 정말 반가워하신다.
겉으로 보기에 때깔은 좋아보이지만...
피니스테레에서 뵙게 될 줄이야! 길 가는 행인에게 사진 한 장 찍어달라고 부탁했다. 헤르만씨는 자신의 사진을 보내달라며 주소를 종이에 적어주신다. 여전히 까미노에 있어서 친구들을 만날 수 있어 무지 행복하다.
노라의 숙소로 돌아와 스파게티 만드는 것을 시도해보았다.
내가 좀 급하게 했던지 면이... 덜 익었다. 그런데도 맛있다고 해주는 노라.
속이 안 좋으면서도 내 스파게티를 다 먹어준다. 고마우면서도 한편으론 너무 미안하다.
노라는 다시 휴식을 위해 방으로 가고, 나는 부엌을 정리한 후, 다시 밖으로 나온다.
마트에 가면서 지나쳤던 해변에 다시 왔다. 가족끼리 혹은 친구들끼리 놀러온 사람들로 아까보다 더 북적인다.
아무것도 입지 않고 바다로 뛰어가는 아이의 뒷모습에 홀딱 반해버렸지만,
가까이 다가가진 못했다. 바로 뒤에 훈남 아빠가 지켜보고 있었으니까...-_ -;;
모래사장에 홀로 앉아 어제 밀렸던 일기를 마저 쓰고, 멍 하니 풍경만 지켜보다가 다시 숙소로 걸음을 옮긴다.
# 다시 피니스테레의 끝으로
오늘은 피니스테레에서 머무는게 3일째. 그리고 피니스테레의 끝으로 가는 것도 3번째다.
2번째 시도 모두 일몰을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일찍 출발하기 때문에 놓칠 일은 없다.
노라와 그녀의 친구들과 함께 저녁을 먹고 함께 피니스테레 0km 지점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3km를 걸어서 피니스테레 끝으로 왔다.
"Lee, 피니스테레가 무슨 뜻인줄 알아?" 바닷가 절벽에 십자가.. 노라와 내 그림자.
"대륙의 끝... 마지막 지점을 뜻하지."
"그래, 맞아. 세상의 끝. 피니스테레."
바람이 무지 분다. 진짜 등산화 아님...
피니스테레 0km 표지를 붙잡고 무지 행복해하는 노라. 그동안 길을 걸어오느라 발바닥이 성할 날이 없었던 그녀에게 이 지점은 너무도 뜻 깊은 것일지도. 난 드디어! 이 돌덩이와 함께 플래시 없이 사진을 찍었다.
해는 수평선 아래로 떨어질동 말동...
우리보다 먼저 도착한 순례자들은 자리를 잡고 때를 기다리는 중이다.
노라와 셀카놀이도 하고,
노라의 까미노 친구들
건배!
바다 가까운데에 자리를 잡고 해가 지는 것을 바라본다.
노라와 함께한 일행들이 와인 한 병과 안주거리를 사와서 나도 얻어 먹는다.
벌겋게 타오르며 지는 태양이 멋진 조명을 건네준다.
일몰을 바라보며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피니스테레, 세상의 끝에서
난 삶의 마지막 순간을 상상한다.
내 삶의 마지막 순간에, 이렇게 일몰을 보는 순간이 허락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를 마감하듯,
찬란했던 시간들에게 안녕을 고하는 시간이 생의 마지막에 주어진다는 건
얼마나 값진 순간일까.
까미노의 끝은, 이렇게 피니스테레에서 마감하지만
아직 살아갈 날들은
무슨 일이 일어날 지 모르는 이 바다를 건너가는 일과 같을 거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바람 한 점 없이 물결이 잔잔한 날도 있을 것이고
영화 '캐리비안 해적' 3편에서 나오는 바다 한가운데 전투씬처럼.
커다란 소용돌이를 만들어내며
모든 것이 사라지는 위험천만한 순간도 있을 것이고,
깊이를 알 수 없는 지점에서 허우적 대며 '나 살려달라' 고
발버둥 치는 순간도 있겠지.
모든 일은
차차 일어나겠지만,
그래도 알 수 없는 미래와
어쩌면 지긋지긋할지도 모를 순간들을 살아내야 한다는게
몸서리치게 만들지만.
끝까지 걸어가봐야 아는게 삶 아니겠나.
지금껏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많지만,
이제까지 잘 버텨온 것처럼 앞으로 한 걸음씩 걸어간다면.
이 바다가 닿는 건너편 대륙에
언젠가는 우뚝, 서 있을 것이다.
순례자가 피니스테레에 오게 될 경우 그동안 순례길에서 자신이 썼던 것을 태우는 의식이 있다. 어떤 순례자는 등산화를 태우기도 하고.... 자신이 태우고 싶은 것은 자기 나름인 것 같다.
나는 앞으로 여행을 마칠려면 한참이나 남았으므로 신발을 감히 태울 순 없다. 피니스테레에서 없애버릴려고 가져왔던 건 '무겁다는 핑계로' 생장에서 소포로 넣어 부쳐버렸기 때문에 그건 나중에 알아서 처리해야 한다.
다만 까미노를 걸으면서 얻게 되었던 여러 종이들- 앞으로 쓸모없는 것들 몇가지 불구덩이에 넣었다.
나중에....
내 삶이 다하면, 난 화장을 하고 싶다.
그때가 되면 그동안 내가 소중히 여겼던 것들도 쓸모가 없을 것이다.
내가 집에 남겨놓고 온 것 중에 값진 게 뭐가 있나. 곰곰이 생각하다 보니,
고작 몇가지 책이다. 법정스님의 책들, 그리고 완전 소중히 여기는 나만의 베스트 책들.
그런데 이렇게 모든 것들을 남겨두고
떠나와 있으니, 아무렇지 않다. 그것이 더 이상 내것이 아니라 하더라도 말이다.
지금 이 순간, 내가 가진 건 바로 나 자신뿐이다.
여기까지 걸어왔고, 다시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선
온전히 내가 없으면 안될 일이니까.
까미노는 인생의 길과 같다. 이 하나의 명제를 따지고 놓고 보면,
피니스테레- 이곳 '대륙의 끝'은 삶의 종착점이라 말할 수 있겠다.
삶의 끝에 다다랗을 때,
그동안 쉼없이 걸어왔던 몸은 한 줌의 재가 되겠지.
몸뿐이겠는가.
그동안 내가 아끼고 아꼈던 책들이며, 그동안 모아뒀던 돈이며...
모든 물질들도 역시 (혹은 언젠가는) 한 줌의 재가 될 것이다.
세상을 떠나는 몸이 그 어디 무거운 짐들을 다 짊어지고 갈 수 있겠나.
가뿐히 떠나야 한다. 생이 다 했다면.
그럼 몸이 없어지면, '나' 도 없어지는가?
모르겠다. '나' 라는 존재가 육체를 만나 이루어지기 전부터 내가 속한 무언가가 있을것이다.
형체가 없는... 아마도 우리가 '영혼'이라고 일컫는 부분이 아닐까?
한 존재가 이루어야할 임무를 다 마치게 되면
홀연히 떠나, 새로운 여행을 하게 되겠지.
삶이 다해 머물고 있던 자리를 떠나게 되고,
온갖 물질적인 것들도 한 줌의 재가 된다면
이렇게 왁자지껄 살아가는 모든 것들은 다 뭐가 되는 걸까.
그것마저 다 사라지는 거라면 너무도 허무하다.
모든 걸 훌훌 털어버리고 떠날 때,
그래도 무언가가 남는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사람의 마음에 남는 것이
진정 영원토록 사는게 아닐까 싶다.
누군가에게 감동을 주고, 내가 가진 것을 나누어줌으로써,
서로의 마음을 든든하게 채우고 만족하며 떠나는 건지도 모른다.
어차피 언젠가는 떠나게 될 삶이라면,
쓸모 없는 것들의 소유는 줄이며 살아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사람들의 마음에 남는 사람,
그런 일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숙소로 돌아와서 노라의 말.
"까미노 첫 날, 알베르게에서 잘 때 내 옆에 있던 사람이 바로 너고, 너는 나와 같은 달에 태어났지. 그리고 똑같이 1명의 남자형제가 있고. 까미노의 마지막 날인 오늘, 넌 바로 내 옆에 있어."
난 그렇게까지 깊게 생각하진 않았는데,
노라의 말이 그럴듯하여, 인연이란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일을 누가 아나.
내가 오늘 묵시아로 안 가고 이렇게 피니스테레에서 지내게 될 줄은 어제 생각지도 못했으니까.
어쩌면,
내가 피니스테레에서 알아야할 교훈을 배우지 못해, 떠나지 못했던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제 배웠으니,
내일은 정말 이곳을 떠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데.... 내일은 오늘보다 피니스테레가 더 아름다워 보이면 어쩌지?
그럼 또 하루 더 있다 가야하나..?
아... 그건 그때가서 결정하자.
오늘의 지출
카페 1 + 인터넷 0.7 + 전화카드 5 + 숙소 10 + 슈퍼 7.83 + 도넛, 음료수 1.67 = 26.2 유로
안녕하세요. 일디즈입니다!!
드디어 써야할 글을 썼으니 속이 후련합니당. >ㅅ <
아직 몇 꼭지 글과 사진이 더 있으니, 차후 포스팅 할거구요.
지금 보면... 해를 정면으로 찍은 사진이 부담스럽고, 일몰 사진도 그닥 예쁘지 않지만..ㅠ_ ㅠ;;
여기까지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ㅎㅎ
피니스테레에서 느꼈던 대로, 잘 살고 있나.
제 삶을 더 점검해보게 되네요.
무튼, 전 Keep going. 합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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