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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38] 순례 34일째, 안녕, 바다야!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38] 순례 34일째, 안녕, 바다야!

Yildiz 2011. 12. 29. 22:10


깔로와 함께 피니스테레에 오다    2008년 6월 26일 목요일
 


새벽 일찍 일어났던 어제와 달리 7시가 되서야 일어났다.
방 안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방을 떠나고 없다.
사람들이 떠나는 줄도 모르고 푹 잤다니. 많이 피곤했었나보다.

방에는 옆 침대의 커플, 나이든 순례자 한 명과 나. 그리고...
참, 깔로가 오늘 같이 걷자고 했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아래층을 내려본다.

'어랏, 없네?'

깔로가 늦잠을 자고 있을 것 같았는데, 이미 떠났나보다.
흰 침대시트만 달랑 보게 되어 섭섭하다.

흥, 같이 가자고 해놓고는, 날 깨우지 않고 혼자 가다니.
치사하다.


그래도,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스스로를 달래면서 침낭을 정리한다.

배낭을 챙겨서 알베르게를 나오는데 식당 앞에 깔로가 앉아있다.
밖에서 나를 기다려주고 있었구나. 실망했던 기분이 눈 녹듯이 사라진다.



깔로와 함께 마을을 벗어나다가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길을 도저히 모르겠어서,
깔로가 근처에 있는 가게로 길을 물으러 다녀왔다.

순례자들이 많이 걷지 않는 코스라서 그런지 길 찾기가 보통 어려운 게 아니다.

다음 마을로 가기 위해서 산을 지나는데, 길에는 자갈, 돌들이 가득 있다. 동글동글한 돌이 아니라 날카로운 녀석들이 많아서 조금 험하기도 하다. 죨드는 피니스테레까지 가는 길이 힘들었다고 했는데, 아무리 체력이 좋은 그도 이런 길을 걷자면 힘들었겠지.



짙은 에메랄드빛의 돌멩이들이 너무도 독특해보인다. 이들은 어떤 역사를 지녔기에 이런 빛을 띄고 이렇게 쪼개져있을까 궁금증이 일었지만, 그저 추측해볼뿐. 마음에 드는 작은 돌멩이 몇 개를 기념으로 골라줍는다.


어제에 이어 한국어 강습(?)은 계속 되었다.

돌밭을 걷고 있으니 발에 걸려 차이는게 '돌' 뿐.  한 글자니까 기억하기 쉽겠지.
 
"깔로, stone을 한국어로 '돌'이라고 해요."

그러다가 "머리가 나쁘다" 표현이 생각나서 그것도 덩달아 알려주었다.

"한국어 단어 중에 멍청한 사람을 놀릴 때, '돌'을 써서 표현하기도 해요.
head는 '머리', '머리' 앞에 '돌'을 붙여서 '돌머리'라고 하죠. "

그러자 바로 연습하는 깔로.
"나는, 돌머리."

풉.
그걸 왜 본인한테 써먹지?
웃기다 이 남자.


갈림길. 왼쪽은 피니스테레로 가는 길, 오른쪽은 묵시아 가는 길.


조용한 갈림길을 지나 또 다시 산 길로 들어왔다. 다행히 거친 돌은 없고, 걷기 좋은 흙길이다.


깔로는 자기 키 만한 나뭇가지를 스틱으로 사용한다.

 

아침부터 흐리고 보슬비가 조금씩 내려서 맑은 하늘이 그리웠었는데,
산 고개를 올라오자 탁 트인 시야와 함께 푸른 하늘.
그리고 바다가 보인다.

바다!

혹시 저기가 피니스테레일까?



내가 무척 들떠하자, 깔로는 그럴리가 없다고 말한다.
거리상 피니스테레에 도착하려면 아직 멀었기 때문이다.
 
한 달 내내 산이나 강을 보며 다니다가 이렇게 긴 시간을 걸어서 바다에 오게 되다니. 좋다, 정말!



마을로 내려와서야 우리는 CEE(체) 라는 곳에 도착했음을 알게 되었다.
꽃나무가 무성한 담장을 지나 정원을 지날 때였다. 
깔로는 꽃에 물을 주고 있는 아주머니에게 다가가서 길을 물어본다.

아주머니는 순례자냐면서 무척 반기면서 차 한잔 마시고 가라고 하신다.

깔로가 정중하게 사양하자, 아주머니는 그냥 보내기 아쉬우셨던지 레몬 하나를 주신다.
그것도.... 한라봉 크기만한 레몬을.

이렇게 엄청 큰 레몬은 처음 본다.
으..... 얼마나 실까나.




깔로가 제안을 한다.
"마트에 들려서 점심 먹고 가자.
 바닷가에 가서 먹을까?"

아침부터 줄곧 내리 걸은 터라, 배도 채우고 편히 쉬기도 해야한다.
바닷가에서 휴식이라!

"좋아요!"

마트에서 샌드위치를 만들 빵과 하몬, 치즈 그리고 후식으로 맛있어 보이는 푸딩과 요거트, 과일도 몇 개 샀다. 



상가에서 나가는 길에 서점 쇼윈도우를 지나치다가 낯익은 책 표지 발견!
까를로스 루이스 사폰의 소설 '바람의 그림자'(La Sombra del Viento)!
2년전에 인상 깊게 읽었던 소설책인데, 여전히 진열장에 놓여있는 걸 보면, 여전히~ 인기리에 팔리는 걸까?
옆에는 작가의 또다른 책, '천사의 게임'이 나란히 놓여 있다. 한국에서는 아직 못 본 책.
올해 나온 것 같으니 내년쯤에는 한국에서 번역본을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깔로와 나는 곧장 바닷가로 왔다.
마트에서 먹을 걸 많이 사서 짐이 늘어났지만, 어서 먹어서 없앨 생각에 무겁단 생각을 못햇다.
 
바닷가 모래사장에는 산책하는 마을 사람 하나 없이 조용하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고 앉아 샌드위치를 뚝딱 만들어 먹었다.

깔로는 수영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처음 오게 된 바다이니, 한번은 들어갔다 와야 한다며 침낭을 두른채 재빨리 수영복으로 갈아입는다.

"너도 수영할래?"

"전 수영복이 없어요. 그냥 보는 것만으로도 좋아요."

난 그저 보는 것으로도 충분하다. 바다는.



바다로 향한 깔로는 얼마 지나지 않아 밖으로 나온다.
물이 너무 차갑다면서.
ㅎㅎ



후식 겸 먹을 걸로 해서 봉지에서 푸딩을 꺼낸다. 유리병에 담겨서 파는 푸딩.

나는 커피 푸딩, 깔로는 초콜렛 푸딩을 골랐었다. 

기대에 잔뜩 차서 먹어보지만....

생각했던 것만큼 맛있지 않은 푸딩.. 훅.. 비싸기만 했군!  

온타나스Hontanas의 식당에서 후식으로 먹었던 바나나 푸딩 때문에 '스페인의 푸딩은 엄청나게 맛있다.' 라는 생각을 은연중에 하게 됐었나보다. 그 바나나 푸딩은 정말 혀에서 녹아 내렸는데! 다시 맛 볼 수 있을까나.
다음에 가게 된다면 비법을 알아오고 싶다.


배낭, 신발, 양말까지. 내려놓고 푹 쉬기.





충분히 휴식을 취했으니, 다시 걷기 시작! 

도로를 지나 산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산 속의 구불구불 오솔길을 지나서
어느 정도 올라왔을까.
산 너머로 파란 줄이 보인다.



한 발자국씩 걸을 때마다 빛나는 세상에 가까워지면서
내 몸과 마음도 온통 그와 같은 푸른색으로 물들어간다.

앞으로 나아가는 내 발걸음이 더욱 더 가벼워진다.



드디어 넓은 바다가 모습을 드러냈다. 피니스테레는 오른편에 보이는 마을인 것 같다.



피니스테레에 도착하기까지 아직 길이 남아 있지만,
멀리서도 보이는 하얀 모래 사장과 푸른빛이 감도는 바다는 내 가슴을 무척 설레게 한다. 

산티아고에서 피니스테레까지 걸어오는 길은 힘들었지만
그래도 여기까지 걸어오길 잘한 것 같다.



깔로와 나는 피니스테레에 6시가 다 되서야 도착했다. 
알베르게에 가서 피니스테레까지 걸어왔다는 완주 증명서는 받았지만, 이미 만원이 된 알베르게엔 남은 침대가 없었다. 

어디서 하룻밤 자야하나 갑자기 걱정하다가 오는 길에 가게 문에 붙여있던 민박 전단지가 생각났다.
다시 그 가게로 가서 오늘 묵을 곳을 구했다.

숙소를 늦게 구하고, 저녁 먹고 하다 보니 해는 벌써 지고.
깔로와 함께 피니스테레 0km 지점까지 갔다 오는데 왕복 6km 를 걸었더니
온종일 걸은 탓에 피곤해서 저녁에 일찍 잠이 들었다.

내일은 꼭 0km 지점에서 해 지는 걸 봐야지!!!!!!!!!!!!!!!!!


피니스테레의 0km 지점, 까미노의 또다른 끝.




오늘의 스탬프!

 


Olveiroa - Finisterre 34km




오늘의 지출!

전화카드 5 + 슈퍼 5 + 숙소 10 = 20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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