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힘내자, 청춘!

[까미노 이야기 35] 순례 31일째,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35] 순례 31일째,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다!

Yildiz 2011. 12. 14. 00:32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                                       2008년 6월 23일 월요일





#1. 같은 길이지만 만날 수 없었던 길.


마르코스는 쉴 새 없이 말하는데, 너무 빨리 말하고 있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겠다. 

"리,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로 보낸 우편물이 원래 짐을 부쳤던 곳으로 다시 보내졌대. 
 너도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내지 않았었나? 네 소포가 어딨는지 알아봐야 할거야."

엥? 왠 뜬금없는 소리?
처음 듣는 얘기라 쌩뚱 맞다. 왜 우편물들이 다시 돌려보내졌지?

정말 내 짐도 생장으로 돌아갔을까??

생장에서 힘겹게 소포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아침, 생장의 우체국 앞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님 덕분에 5kg 이나 되는 짐을 부치고 가볍게 까미노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인 부부님이 부른 택시 기사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겨우 산티아고 우체국 주소를 적어 보냈었는데.

설마 말 안 통하는 생장 우체국 직원을 통해서 내 짐의 행방을 알아봐야 하는 건가?

그러느니 차라리 짐을 포기하고 말지, 암. 그렇고 말고.
소포 상자에는 뭐가 들었더라? 중요한 게 있었나? 이젠 생각도 안 난다.

어쩌면 소포를 못 찾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순간 마음이 어지러워졌지만
아직 까미노 여정이 완전히 끝난 게 아니니까 신경쓰지 않기로 한다.


마르코스와 여전히 이야기를 하며 침대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왔다.

마르코스의 침대는 복도를 개조한 것처럼 보이는 방에 맨 첫번째에 있다. 바로 문 앞이라서 찾기 쉽다.
내 침대 번호는 훨씬 뒷 번호라서 나는 침대를 찾아 다른 방으로 향한다. 

첫번째 방에서 나와 오른편에 있는 방에서 내 침대를 찾았다. 알베르게 건물이 워낙 넓다보니 단층 침대만 있나 보다. 이층 침대에서 자는 것보다 단층 침대가 훨씬 편한데다가 내 침대가 벽 바로 옆에 있어서 그런지 어느 정도 확보한 나만의 공간은 내 방에 온 것 마냥 아늑한 기분을 들게 한다.

배낭을 내려 놓고서야 숨을 돌린다. 속사포 같이 쏟아내는 마르코스의 얘기를 듣느라 나도 숨이 가빴었나 보다.

그런데! 정은언니는 어디로 간거지?
리셉션에서 마르코스를 발견한 시점부터 줄곧 그에게 정신이 팔려서 언니를 깜빡 잊고 있었다. 같은 알베르게에 있으니까 곧 볼 수 있겠지.

"나 빨래 해야 하는데 너도 세탁할 거 있으면 같이 할래?"
마르코스가 어느새 내 방에 찾아와 묻는다.



세탁실이 지하에 있어 맨 밑층으로 내려왔다. 빨래가 끝나길 기다리는 동안 붕 떠 있던 기분이 차분히 가라 앉기 시작한다. 이제서야 마르코스에게 궁금했던 것을 뚜렷하게 떠올라 하나 둘씩 꺼내본다.  

"그런데 마르코스,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에 온다는 건 어떻게 알게 된거에요?"

마르코스의 친구가 파울로 코엘료의 친구와 친한 친구 사이인데, 마르코스가 순례자의 길을 걷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마르코스의 친구가 자신의 친구에게서 들은 파울로 코엘료의 일정을 마르코스에게 알려줬다고 한다.

아. 세상, 이렇게 인연이 닿을 수 있다니. 참 신기하다.

마르코스와의 첫 만남에서 내가 농담 반 진담 반 삼아 했던 말이 생각난다.

"당신, 파울로 코엘료 닮은 것 같아요."

마르코스가 브라질에서 왔다고 하니 가장 먼저 머릿속에 떠오른 것이 작가 파울로 코엘료였다.
그때 마르코스는 내 말을 듣고 어이없다는 듯이 웃어 넘겼었는데. 
그 장난 같은 순간이 '진짜' 파울로 코엘료와 만날 수 있는 순간을 데려올줄은 꿈도 꿔보지 못한 일이다.  


"왜 나한테 이메일을 보내지 않았어?"

에스테야의 알베르게에 있을 때 마르코스의 이메일 주소를 내 일기장에 적었기 때문에 난 그의 연락처를 알고 있었지만, 그때 마르코스는 내 이메일 주소를 묻지 않았어서 그동안 내게 연락하고 싶어도 못했던 것이다.

마르코스는 파울로 코엘료가 산티아고에 온다는 기막힌 사실을 내게 꼭 알려주고 싶었겠지.

'사실은 말야, 마르코스. 네가 어딨는지 무지 알고 싶어서 이메일을 보내려고 했는데, 참았어.
까미노가 나를 어디로 이끌어주는지, 마지막까지 지켜보고 싶었거든.'
라는 말을 꿀꺽 삼키고는
그저 헤헤 웃어보인다.

까미노 길이 열어준 인연에 감사의 무아지경에 빠진다.
그동안 그를 만나지 못한 시간 내내, 이런 순간이 오게 될줄은 누가 알았겠는지.


마르코스와 나는 서로의 크리덴시알의 스탬프를 확인하면서 각자 지나온 알베르게를 비교하기 시작한다.
나헤라Najera에서 갈라진 이후 서로 겹쳐지는 알베르게는 고작 2개.

같은 길을 걸어왔지만 우린 정말 서로 만날 수 없는 여행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각자의 인생의 길이 따로 있듯이, 자신이 거쳐야할, 만나야 할 사람들과 순간들을 지나서야 비로소 재회하게 된 것이다.



"참, 어떤 영국 여성이 있는데, 그녀와 함께 행사 장소로 오면 되겠다."

마르코스는 오늘 아침 호텔 앞에서 파울로 코엘료를 만났을 때, 영국의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는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기 위해서 30시간을 대중교통을 이용해서 산티아고로 왔다고 한다. 

마르코스는 파울로 코엘료의 전세 버스를 타고 행사 장소로 갈 예정인데, 버스에 자리가 있는지 정확히 잘 모르겠다며 나보고 영국 여성을 만나서 같이 오라고 제안한다.

이윽고 건조까지 뽀송뽀송하게 된 빨래가 끝났다. 마르코스의 파란색 바지에서 물이 빠져서 내 하얀색 스포츠타월이 옅은 하늘색이 되었지만, 이미 돌이킬 수 없으니 어쩔 수 없다.

그리고 아무렴 좋았다.

이제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러 갈 시간이다.




#2. 캐런을 만나다.


마르코스는 파울로 코엘료의 버스가 기다리고 있는 곳으로 가고 나는 버스 정류장에서 영국 여성을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캐런. 옅은 노란색 머리에 키가 큰 그녀는 나이는 40대 정도로 보였다. 알고 보니 50세였지만 나이에 비해 젊어보인다.

그녀는 영국에서 기차타고 프랑스로, 프랑스에서 버스를 타고 스페인으로 왔다고 한다.
장시간 동안 이동해 스페인으로 온 그녀는 무척 피곤하다고 말했지만 우리 둘은 서로에게 궁금한 게 많아서 그런지 버스 안에서도 끊임없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캐런은 이미 유럽의 어느 성당에서 파울로 코엘료를 우연히 만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런데 왜 캐런은 이렇게 힘들게 시간을 들여서 오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러 왔을까. 
분명 오늘 그를 꼭 만나야 하는 이유가 있어서겠지.
 
"나도 언젠가는 산티아고의 길을 걷고 싶은데, 쉽게 하지 못 하겠어."

까미노 첫 날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새로운 시작의 명랑한 기운이 아닌 비오는 날씨의 잿빛 스산함이 나를 두려움에 더 짓누르게 했던 그 날. 잘 할 수 있을까 걱정도 되고 후회의 순간도 있었지만. 매일 꾸준히 걷는 한 걸음이 근거없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게 했다.   

첫 시작은 두렵지만 결국은 계속 해서 길을 걷게 된다는 사실을 캐런에게 말해주고 싶다.

"사실, 저도 첫날에는 무척 두려웠어요. 그런데, 그냥 걷게 되더라구요.
10kg 가까이 되는 배낭을 메고 걷는게 고된 일이고, 발에 물집이 잡히면 걷기 힘들죠.
하지만 힘든 건 누구나 다 마찬가지에요.
발바닥에 생긴 물집 때문에 고통스런 사람, 관절이 좋지 않는 사람,
혹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으로 아물지 않은 상처를 갖고 걷는 사람들도 있거든요.
누구나 겉으로든, 속으로든, 아프지 않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아요.
이 길을 걷는다는 건, 그걸 치유해주는 경험이구요. 당신도 꼭 걸어 보세요."


캐런과 내가 버스에서 내린 곳은 산티아고 외곽 쪽이다. 목적지보다 덜 가서 내린 바람에 조금 더 걸어가야 한다. 

캐런이 무척 피곤하다며 잠깐 바에 들렸다 가자고 해서 버스 정류장 바로 앞에 있는 조그마한 바에 들어왔다.

웨이터에게 주문할 때 캐런의 유창한 스페인어에 내가 놀라워하자, 그녀는 스페인에서 오래 살았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삶에 대해서 들려 주기 시작한다.

영국의 단조롭고 지루한 삶이 싫었던 20대의 캐런은 새로운 모험을 위해 작은 텐트를 가지고 무작정 스페인으로 와 여행을 했다. 그러다 여행 둘째날에 만난 스페인 남자와 서로 사랑에 빠지게 되었다. 

그와 함께 살기로 결심한 그녀는, 영국으로 돌아가 부모님께 이렇게 말했단다.

"저 스페인에 가서 살거에요."
"언제?"

"내일 당장이요."

그렇게 짐 싸들고 스페인에 와서 살게 된 캐런. 왜 그녀가 결국엔 영국으로 돌아가야 했는지 굳이 캐묻지는 않았다.

동그란 테이블을 가운데에 두고 캐런이 시켜준 커피를 마시며 화제는 파울로 코엘료의 책으로 넘어 왔다. 영어로 이런 얘기까지 하게 될 줄이야...

캐런이 내게 묻는다.

"파울로 코엘료 책은 어떤 걸 읽어봤어?"

"'연금술사', '악마와 미스프랭', '피에드라... 강가에서 울었네' 그리고 '오 자히르'요. "

"그 중에서 어떤 작품을 좋아하니?"

"음.. 연금술사요."
캐런도 공감한다. 자신도 '연금술사'를 가장 좋아한다면서.

"왜 파울로 코엘료를 좋아하니?"

어떤 단어가 가장 적당할까 곰곰이 생각해본다. 그러다 한 단어가 갑자기 떠올랐다.

영감(inspiration)...!

"파울로 코엘료의 글은 제게 영감을 줘요!" 

고등학생 때, 학교 도서관에서 우연히 책 연금술사를 발견하고 읽기 시작한 게 첫 만남이었다.
그의 책 구석구석에 있는 좋은 구절들을 포스트잇에다 열심히 적어 놓기도 하고, 그의 이야기에 푹 매료되어 동아리 친구들에게 '연금술사'를 추천하기도 했었다.

"절대로, 꿈을 포기 하지 말게." 

연금술사에 나오는 어떤 왕이 양치기 소년 산티아고에게 건넨 이 한 문장은 진리가 되어 내면의 깊숙한 곳에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이 그 무렵이었다.

내가 만들어내야 할 용기와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보다 더 무서운 존재는
도전하지 않았음을 후회하며 느껴야할 인생의 씁쓸함이다.  

후회는 죽어도 싫었기에, 우선 크게 벌여 놓고 시작한 이번 여행. 여행 계획을 세울 때는 이런 엄청난 경험을 하게 될 줄은 상상도 못했다.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 아름다운 길과의 만남.

그리고 이제 곧 파울로 코엘료를 보게 된다니.
이런 마법같은 일이 내게 일어나다니!

한국에서 가져온 얇은 잠언 시집에서 읽었던 시 구절이 떠오른다.

"캐런, 전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 파울로 코엘료를 만날 거라곤 상상도 못했어요.
인생을 살다 보면 정말 예기치 못한 일들을 만나게 되네요.

어느 시인이 말하길,
자신이 삶의 계획을 세우더라도,
인생에는 다른 계획들이 기다리고 있다고 하더라구요."


"그래, 신의 계획이지.
인생은 논리적이지 않아."



"그래요, 맞아요."

'그래요, 맞아요. 캐런.'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다.

비논리적인 인생. 신의 계획은 나를 어디로 인도할까.
궁금해하면서,
그리고 이렇게 인생에 대해 물음표를 던질 수 있는 이 순간에 대해
감사하다고 또 중얼거리며 캐런 뒤를 졸졸 따라간다.




#3. 드디어, 파울로 코엘료를!


캐런과 나는 10분 정도 더 걸어서 행사 장소에 도착했다.
행사 장소는 바로... 아니나 다를까. 어제 내가 잠깐 멈춰서서 유심히 바라봤던 새로 지어진 순례자 상징물이 있는 곳이다. 이곳은 어제 파울로 코엘료의 행사에 대해 물어보러 들렀던 관광안내소와도 가깝다.

산티아고 외곽쪽이라 한산하고 사람이 별로 없는 터라, 주위 풍경만 둘러봐서는 앞으로 무슨 일이 일어날 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평소와 같이 조용한 공기의 진동만으로는 5분 뒤에 일어날 일에 대해 알아챌 낌새 조차 느끼지 못하겠는 걸.

아직 주인공이 도착하지 않은 자리는 고요하다.
푸른 잔디 위엔 캐런과 나. 그리고 군데군데 지역 언론사에 직원들이 무리지어 서 있다.

생각보다 사람들이 많지 않은 걸 보면 그리 큰 공식적인 행사는 아닌가 보다.

캐런과 이야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사람들이 한 곳으로 몰려간다.



아핫! 저기, 검은색 양복을 입은 파울로 코엘료가 걸어오고 있다.

아하핫.
진짜, 진짜로 파울로 코엘료를 보게 되다니, 양쪽 귀에 입이 쩍~ 하니 걸려버렸다.


사람들의 행렬 속에서 마르코스를 찾았다.



파울로 코엘료가 저깄어. 쌩긋 웃어주는 마르코스.



영국에서 온 캐런.



몬테 데 고소에서 산티아고로 들어오는 길에 '파울로 코엘료의 길'이 만들어졌는데 오늘은 파울로 코엘료가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표지를 직접 보는 행사이다. 역사적으로 의미 있는 길 위에 자신의 이름이 새겨진 길이 생겼다니.
파울로 코엘료는 오늘 무척이나 행복하겠다!



사람들 틈에 끼여 나도 자리를 잡고 파울로 코엘료의 사진을 찍는다. 옆에 있는 중년 여성은 파울로 코엘료의 와이프인 것 같다.





 

바닥에 가려놓았던 천을 벗겨지면서, 길 가운데에 박혀 있는 기념판이 드러났다. 


파울로 코엘료와 산티아고의 시장



 


난 사람들 틈속에 어중간하게 끼여들어서서 파울로 코엘료를 멀리서 바라보기만 한다.
많은 사람들이 그의 주변을 둘러싸고 있어서 쉽게 다가갈 용기도 안 날 뿐더러,
지금 내가 이렇게 살아있는게 꿈인가 생시인가. 순간순간이 새롭고 놀랍다.

선뜻 파울로 코엘료에게 다가가지 못하는 나를 보곤, 마르코스가 내 카메라를 가져가며 사진 찍어주겠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파울로 코엘료에게 가서 뭐라고 말을 건넨다.

아마도, 한국에서 온 순례자인데, 당신을 무지 좋아하는 팬이라며 말하는 거겠지?

아.... 마르코스 덕분에!!

파울로 코엘료는 나를 바라봐 주었고, 난 그에게 다가갈 수 있었다.

그와 악수를 하고, 포옹을 했다.
이럴수가~!! 꺄악!

그런데 미처 싸인 받을 생각을 하지 못하고 와서 마땅한 종이가 없었는데,
아까 점심 때 '까사 마놀로' 레스토랑에서 가져온 명함 중에 뒷 장이 비어 있는 것이 지갑에 껴 있어서 간신히 파울로 코엘료의 싸인을 받을 수 있었다.





 

아... 정말 내 생애 최고로 행복한 날.... 흐흑 ㅠ- ㅠ!!!!


캐런이 파울로 코엘료와 이야기를 하고 있다.




버스를 타고 다음 행선지로 이동! 전세 버스에 여분의 좌석이 있어서 캐런과 나도 다른 일행들과 함께 이동한다.

마르코스의 소개로 포르투갈에서 온 나와 비슷한 또래의 여자를 만났다. 그녀의 이름은 마리. 한 눈에 봐도 매력적인 여성이다. 그녀는 프랑스에서 여행을 하다가 어느 까페 귀퉁이에 앉아 있는 파울로 코엘료를 본 게 첫 만남이라고 한다. 이번에는 그가 산티아고로 오는 것을 미리 알고 산티아고로 찾아 왔다.


파울로 코엘료와 포르투갈에서 온 마리.



버스를 타고 도착한 곳은 한적한 주택가.
아직 공사가 다 마무리 된 것 같지는 않지만, 이 길을 새로 만들었단다.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길을.




 

 




작가 파울로 코엘료의 길...!


팬과 기념촬영하는 파울로 코엘료.




일행들과 기념사진!



다시 버스를 타고 이동한 곳은 어느 변호사의 별장이다.





여기서 뭘 하는고~ 했더니... 사람들을 따라가자 넓은 정원이 나오고, 잔디밭에 있는 테이블 위에는 맛있는 음식들이 보인다.

와우. 이런걸 파티라고 하지... 아마? 흠흠.=ㅅ =;;  



(내가 너무 파파라치처럼 행동했는지. 내 시선을 알고 피하는 파울로 코엘료... ㅋㅋ ㅠㅠㅠㅠㅠ;;)



마르코스~!


다들 한 손에는 와인병을 들고,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나는 마르코스, 마리, 캐런과 몇 마디 나누고는 조용히 디저트를 먹으면서 멀뚱멀뚱, 두리번 두리번.
이런 파티. 난 어렵다. 어려워.




마리, 마르코스, 캐런.


캐런은 너무 피곤해서 안되겠다며 먼저 돌아가겠다고 한다. 그녀는 이메일 주소를 내게 적어주면서 앞으로 나의 여행에 대해 알려달라고 한다. 그렇게 캐런은 택시를 타고 자신의 숙소로 갔다.

마르코스와 마리는 자리를 옮겨서 다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는데,
뭘 해야할지 모르겠다, 나는.

그래도 오늘, 이렇게 파울로 코엘료를 따라서 왔다는 것에
순간 순간이 새롭게 행복할 뿐.

사실, 그에게 말을 걸기가 쑥스럽기도 하고,
무슨 말을 해야할지도 잘 모르겠다.

'전, 당신의 책을 읽고 꿈을 좇아 살아가기로 결정했어요.
지금은 제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 고민 중이에요.' 라고.

이렇게 나의 고민에 대해 말하는 것은 의미가 없을 것 같다.
그가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들은 이미 책 속에 있으며,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잘 알고 있고,
내가 무엇을 하며 살아야할지는 그보다는 내가 스스로에 대해 더 잘 아니까.

오늘 파울로 코엘료를 만난 건 우연일까.
무엇일까.
그를 만난 이 경험은 앞으로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줄까.
어떤 의미가 될까.


 

혼자 있기에 도저히 뻘쭘해서 먼저 자리를 뜰 생각으로
파울로 코엘료에게 살금살금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만나서 반가웠구요.... "

"벌써 가려구요? 파티도 거의 끝난 것 같은데, 함께 가지요?"

어느새 다가온 마르코스도 함께 가자며 조금만 더 기다리자고 한다.

이윽고 파티가 끝나고, 일행들은 모두 저택에서 나와 산티아고 광장으로 가는 골목길을 따라 걷는다.

파울로 코엘료를 보고 그냥 지나치는 사람도 있었지만, 대학생으로 보이는 어떤 남성은 파울로 코엘료를 발견하자 무척 반가워하며 핸드폰으로 함께 사진을 찍는다.

파울로 코엘료와 이렇게 가까이 있고, 이런 순간이 내게도 있다니! 여전히 감격에 겨워하며 길을 걷고 있는데
앞서 걷던 파울로 코엘료가 뒤돌아 보더니 내게 말을 건넨다.

"당신은 한국에서 온 선물이에요. You're a gift from South Korea."

헛!!! 이런 감사한 말이.
브라질에선 감사하다는 말을 뭐라고 하더라? 까먹었다.. 이런 중요할 때에!!

영어로 하는 감사인사는 왠지 가벼워보여서
생각나지 않는 포르투갈어는 제쳐두고 스페인어로 크게 답한다.

"정말 감사해요! Muchas gracias!"

어쩜 맥락에 안 맞는 대답일지 모르나. 난 정말 정말 그에게 감사하다.





#4. 오랜만에 만난 루이스!


성당 근처로 올라오자 산티아고 골목 골목은 완전 축제 분위기이다. 거리에서 경쾌한 연주를 하는 기악대의 음악에 흥에 겨워 앞으로 나가 춤을 추는 사람들. 저렇게 자유로울수 있다니. 난 그들이 부러울 따름이다.





그런데!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다 반가운 얼굴을 발견했다!!

오, 세상에! 저게 누구야!

더이상 못 볼줄 알았던 루이스다. 드디어 2주 만에 만났다.


오랜만에 만난 루이스와 기념촬영!




기악대와 파울로 코엘료와 일행들은 다른 길로 가고, 나와 루이스는 성당 광장을 향해 걷는다.
루이스와 대화가 원활한 것은 아니지만,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나는 스페인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다음번에 만나면 스페인어로 얘기하자고 하고.
루이스는 영어 공부를 할테니 다음번에 만나면 영어로 얘기하자고 한다.

내가 브라질을 가게 될 날은 언제쯤일까? 5년 후라고 루이스에게 말했지만,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인생.
그래도 살아있는 한 남미는 꼭 가볼거니까. 스페인어나 열심히 공부해야지.

루이스가 맥주 한잔 하자고 하는데, 시계를 보니 곧 있음 알베르게 문이 닫을 시간이다.
헉.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돌아다녔구나.

알베르게를 찾아 가야하는데, 길을... 잃어버렸다. 해가 져서 어둑어둑한 밤길에 길을 잘 찾아갈 수 있을까.
루이스는 알베르게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는데, 모르겠다.. 전혀 기억이 안 난다.ㅠㅠ
루이스에게 서둘러 작별인사를 하고 혼자 길을 나선다.

골목길을 따라 주욱 내려와서 큰 길로 나와 보니, 너~무 아래로 내려와버렸다.
알베르게에서 너무 멀어져있는 나를 발견... 아뿔싸.

아, 이러다가 알베르게 문 닫히면 난 오늘 어디서 자나. 급한 마음에 가슴은 졸아오고. 
언덕 위에 있는 알베르게까지 단숨에 가자니 숨도 차고. 다리도 아프고. 

별별 생각이 다 들었지만, 우선 열심히 뛰고 걷고 해서 올라가본다.
언덕이 이르는 길 중간쯤 다다랗을 때,
나 말고 지각생 한 명 더 발견했다. 

다행이다. 문전박대 당하지는 않겠어.ㅎㅎ




#5. 산티아고에서 잠 못 이루는 밤...


세이프!!!!

10시 정각 하고도 조금 넘어서 겨우 알베르게 안으로 들어섰다.

침대방이 있는 층으로 올라오니 마르코스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중간에 내가 사라져서 걱정했다고 한다.
마르코스의 이야기를 듣다보니 11시가 다 되었다. 호스피탈로는 아예 소등을 해버릴 태세다. 

"나 내일은 피니스테레로 가야되니 이만 자야겠어."

그러고 보니 오랜만에 만나서 둘이 찍은 사진이 없어서 셀프로 마르코스와 사진을 찍는다. 




내 방으로 들어와서 다른 사람들이 깨지 않게 조심스레 일기장을 꺼내 들고, 화장실이 있는 복도로 나왔다.
아. 잠은 자긴 자야하는데, 오늘밤은 쉽게 잠들기 어려운 날이다.

하루의 노곤함도 있지만, 오늘 하루동안 일어난 많은 일들이 너무도 소중하기에.
화장실 입구 옆에 앉아 벽에 기대어
화장실에서 새어나오는 불빛에 의지해 두서없이 일기를 적어내린다.

생각지도 못했던 친구들과의 만남. 그리고 파울로 코엘료와의 만남.
아침에 미사를 하면서 느꼈던 감정과 성당의 기도실에서의 깊은 울음도 함께.



까사마놀로 레스토랑 명함 뒤에 받은 파울로 코엘료의 싸인을 사진 찍어둔다. 앞으로 남은 여행에서 잃어버릴지도 모르니까. 사진으로도 남겨놓기.


아... 파울로 코엘료를 만난게 단순한 우연일까.
삶이 가져다 준 이 선물을 나는 무엇이라 해석하게 될까.

좀 더 살아봐야 알겠지?

오늘은 정말이지.
내 생애 가장 행복한 날이다.
살아숨쉬는 매순간 순간이 새롭게 느껴졌던.







 

#1.

안녕하세요. 일디즈입니다!
3년동안 그 누구에게도 쉽게 말하지 못했던 비밀을 털어놓는 순간입니다. 으흐흐.
파울로 코엘료를 만났다는 사실 뿐 아니라
만남의 과정에 여러 가지 생각들과 또 다른 인연들과의 이야기도 무척 소중하고
그 날 겪은 그대로를 기록하고 싶어서, 오랫동안 끌어온 까미노 여행기입니다.

과거의 순간들을 글로 써서 다시금 살아있게 할 수 있어서 참 행복합니다.
아직. 써야할 글들이 많으니까 늘 분발해야하는데.
또 늘 느끼지만, 제 자신이 문제라서. =ㅅ =;

그래도, 글쓰기가 제 자신을 자유롭게 하는 수단이란 사실을 알게 되었네요.
저를 더 자유롭게 해야겠습니다.

아래 시는 류시화씨가 엮은 유명한 잠언 시집에 있는 거에요.



 



신의 계획서가 따로 있다는 캐런의 말처럼.
'내가 어디로 향하고 있는지 알지 못하는 순간이 있는 것도 썩 괜찮은 일이야.' 라고 말하라고 권하는 웨인 다이어씨의 충고처럼.

불평, 불만을 늘어놓기 보다는 제 자신을 긍정하며 살아야겠습니다. : )


#2.

아참. 이번 여름에 다녀온 여행에서 영국에 있는 캐런을 만나고 왔어요.
그녀가 쓴 책 Treasure을 선물로 받고, 이 날 궁금했던 이야기들도 마저 듣구요.
나머지 이야기는 슬슬 풀어서 써야겠네요.. ^^;


#3.

파울로 코엘료를 만난 것으로, 까미노가 끝난게 아닙니다~
아직 남은 이야기. 계속 갑니다잉.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