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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32] 순례 30일째, 가자! 산티아고에.①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32] 순례 30일째, 가자! 산티아고에.①

일디즈 Yildiz 2011.11.02 02:24



Monte de Gozo까지 34.6km 그리고...  2008년 6월 22일 일요일


오늘의 목적지는 몬테 데 고소Monte de Gozo.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4~5km정도 떨어진 곳이다. 
오후에 그곳에 도착해서 푹 쉬고, 내일 이른 새벽에 산티아고로 입성해서 한적한 광장에서 죽치고 앉아 있어야지.

군은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어제 그 숨막힐 듯 뜨거웠던 한낮의 열기를 헤치고 그녀가 머문 곳은 어디였을까.
그녀의 안부를 궁금해하며 아직 어둠이 가시지 않은 새벽길을 나선다. 

6월 중순이지만 그래도 새벽 공기는 꽤 쌀쌀하다. 피부에 맞닿는 냉랭한 기운이 조금 익숙해질 무렵, 예기치 않는 길목에서 어둠을 밝히고 있는 전등불을 발견했다. 이런 곳에 바가 있다니. 워낙 지나가는 순례자들이 많기 때문에 아침 일찍부터 문을 열었나보다. 

작고 허름한 바 안으로 들어가니, 한국인 부부님과 빅토리오씨 부부가 바 안 쪽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앉아 계신다.


빅토리오 부부, 가운데 박진순님.


꼴라까오를 한 잔 시켜 몸을 데우는 동안 어제 남은 치즈 조각을 빅토리오씨와 나눠 먹었다.
따뜻한 코코아의 기운이 온 몸에 퍼지니 조금 더 힘을 내서 걸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르신들께 먼저 인사를 하고 밖으로 나오자,
그새 어둠은 자취를 감추고 길 위에는 아침 안개가 소복히 내려 앉아 있다.



갈림길 한 가운데 앉아 있는 강아지는 사람이 지나가도 가만히, 고대로 있는다.
희안한 녀석.
뭔가 소중한 것을 감싸 안고 있는 것 같았는데, 그건 아닌 것 같다.

몸이 무거워서 가만히 있는 걸까.
아니면 아직 새벽잠이 덜 깼을까.
그것도 아니면, 누군가를 기다리고 있는 걸까.



이전 지방에서는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식물들이 존재하는 곳, 스페인 갈리시아 지방.
예전에 부르고스 가는 길에서 엄청나게 큰 나무를 보며 신기해 하는 나를 보고 리까르도씨가
"그건 별거 아니야~" 라면서
바로 이 갈리시아 지방의 식물들에 대해 말해주셨던 것 같다.



원래는 비가 많이 내리는 지역이라는데, 운 좋게도 갈리시아 지방에 들어서서는 빗방울 하나 안 맞아봤다.
오, 이대로만 계속 가 다오~!!

하지만 수많은 빗방울을 맞는 대신 보이지 않는 동반자가 있으니. 바로 높은 습도!
해가 쨍쨍 내리쬐면서 이 정도의 습도라면, 무척 찝찝해서 금방 지쳤을 것 같다.   



수목원에 들어왔나? 남의 집 정원에 잘못 들어온 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정갈하게 다듬어져있는 길.



군이 어제 머물렀을만한 곳이 어디였을까 궁금해 하며
혹시 길 가에 펜션이 있지 않을까 싶어 열심히 두리번 거리며 걸어 왔지만.

아르수아Arzua에서부터 조그만 마을의 펜션을 발견할 때까지 무려 11km를 계속 걸어 와야 했다.
세상에! 숨이 턱턱 막히는 그 낮시간대에 11km를 더 걸어왔다니!
군은 녹초가 되서 이곳에 도착했을거다.

이미 나보다 11km 이상 앞서 있는 그녀는,
지금 이 길 어디쯤에 있을까.



빽빽한 유칼립투스 숲으로 들어서자 감탄이 그지 없이 나온다.
미칠 듯이 자란 나무를 올려다 보자니 허리가 휠 지경이다. 
인적이 드문 밤이면 팔 다리 길쭉한 나무들이 흐느적 으느적
살아서 움직이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아하. 그야말로 공포스럽군. 으흐흐.

롱다리 나무들이 식상해질 무렵,
어서 어서 부지런히 걸어
오늘의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단 생각만 하게 되었다.



순례길을 걸으면서 항상 유념해야하는 요일은 일요일이다.

대도시의 경우 일요일에도 문이 열려있는 마트를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작은 마을에서는 일요일에 가게들은 다 쉰다고 여기면 된다. 간단한 간식거리가 없을 때에는 마을의 바를 찾아 가야 한다. 

그래서 비상식량 같은 건 일요일 전에 미리 사놓는 게 좋다. 난 초콜렛이 떨어질 때마다 하나씩 사서 배낭에 넣고 다니는데, 오늘 같은 장거리전에 딱 좋다. 게다가 오늘은 일요일, 시골길 코스다.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었던 유칼립투스 숲을 지나 공터로 나오니 바가 있다. 

빅토리오 부부, 한국인 부부, 프랑스 부부 모두들 모여 바 테라스의 큰 테이블에 둘러 앉아 계신다.
빅토리오 씨가 잠깐 쉬었다 가라며 내 자리를 마련해 주신다. 

바에서 카푸치노를 하나 시켜서 자리에 앉고 보니, 왠지 커피잔만 놓여 있는 테이블이 썰렁해 보인다.
뭔가 먹을 게 없나 싶어 배낭 주머니를 뒤지니 초콜렛이 있다. 
아직 개봉하지 않은 커다란 초콜렛을 꺼내서 조각내어 어른들께 드리니 고마워 하신다.

"한국 사람들은 나눠 먹는 걸 좋아하나봐~."

초콜렛을 다 나눠 먹을 생각이었지만, 빅토리오씨는 나머지 반은 나를 위해 아껴두라며 초콜렛 포장지를 접어주셨다.

아침까지만 해도 어르신들은 몬테 데 고소Monte de Gozo에 못 미쳐서 쉴 거라고 알려주셨는데, 
당신들도 오늘 몬테 데 고소Monte de Gozo까지 걷기로 결정했다며 약간의 흥분 섞인 어조로 말씀하신다.

오늘 알베르게에서 어르신들을 다시 뵙게 될 거란 생각에 기분이 좋다.  


"좀이따 뵈요!"

인사를 하고는 먼저 자리를 떠났다.




순례길을 걸은 지 30일째. 
아, 벌써 한 달이 다 됐네.

무조건 '산티아고' 만을 바라보며 걸은 길이 아니기 때문인걸까.
어서 최종 목적지에 닿기 위해 안절부절하기 보다는

하루하루 주어진 길을 걷고
매일 같이 다른 목적지를 마음에 품고 걷다보니
이만큼이나 오게 됐다.

그러고 보면 사는 것도 다 이럴 진대.
아직은 너무 멀다고.
아직은 할 일이 많다고 투정 부리는 대신에

주어진 하루하루를 그저 걸어가다 보면
이렇게 내가 원하는 곳에 다다르는 날이 올텐데.

거의 체력이 바닥난 까미노 후반에 30km 이상 걷는 게 무리이긴 하지만
이젠 정말 마지막이 가까워졌다는 생각 때문일까.

몸이 힘들다는 신호가
발바닥에서부터 머리꼭대기까지 타고 올라오지만
나는 스스로를 다독이며 쉼없이 앞으로 나아간다.




노란색 화살표. 그리고 비행장




저기 마을이 보인다!
조금만 더 돌고 돌아 가면 되겠다.

긴 여정으로 지쳐 있던 마음에 돌연 생기가 돌기 시작한다.



몬테 데 고소Monte do Gozo 알베르게 방향 표지판을 보니 더 기운이 난다. 
 
가만 있자, 지금 몇 시지?
오늘은 오래 걸을 생각에서 일부러 시계를 안 보기로 작정하고 걸어왔다.

현재 오후 3시 정각.
오홋,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찍 도착했다.

지금은 날씨가 무척 맑지만 오전 내내 흐렸던 날씨 덕분에 체력 소모가 적었다.
지루하게 여겼던 길을 시계를 보지 않고 걸어오니, 다른 때보다 훨씬 낫다.  


낯선 순례자이지만, 내내 혼자 걸어온 터라 누군가 가까이 있다는 사실이 적잖은 위로가 된다.



Camino de Santiago 그리고 Monte de Gozo 표지판





드디어 몬테 데 고소Monte de Gozo에 도착했다!

(몬테 데 고소Monte del Gozo. 비가 오지 않을 때는 산티아고 대성당의 탑들이 보인다 하여 중세 순례자들이 '기쁨의 산' 이라 이름 붙인 곳이다. 'monte'는 스페인어로 산이란 뜻이고, 'gozo'는 갈리시아어로 기쁨을 뜻이다. 산 정상에 상징물은 교향 요한 바오로 2세 방문 기념비다. )



마을의 골목을 빠져나오니 산 정상에는 기념비가 우뚝 서 있고, 두 갈림길이 사이에 작은 성당이 있다.
성당 앞 테이블에 스탬프가 있길래 크리덴시알에 기념으로 하나 찍었다.

잠시 배낭을 내려 놓고 갈림길에 선다.

왼쪽 길을 따라가면 몬테 데 고소의 알베르게가 있고
오른쪽 길은 산티아고로 가는 방향이다.

내가 서 있는 자리에서 알베르게 건물이 하나도 보이지 않는 걸 보면 길을 따라 좀 더 가야하나 보다.
호기심에 산티아고로 이어지는 아스팔트 길과 파란 하늘을 바라본다.

순간 산티아고의 마을이 손에 잡힐 듯이
사막의 신기루 같은 환영이 눈 앞에 펼쳐진다.

그리고 그 환영에는 산티아고의 거리를 걷고 있는 군의 뒷모습도 보인다.

아...! 

군!

'그녀는 지금 여기에 없어.' 

신기루가 사라짐과 동시에 이 짧은 한 문장이 내 머릿속을 울린다.

군은 나보다 11km 앞선 지점에서 걸었으니 여기서 멈출 이유가 없겠지.

오늘 무조건 그녀를 만나야 한다는 생각에 순간의 망설임 없이 마음을 다잡는다.


그래, 가자.
산티아고에.

군을 만나러.







안녕하세요. 일디즈입니다. ㅎㅎ
포스팅이 무척 느리죠?
오늘은 모처럼 푹 잘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 생각도 많고 고민도 많고
가끔은 글쓰는게 그냥 막막할 때가 있거든요.
제가 극복해야할 장애물이라는 걸 늘 알면서도
항상 이렇게 제가 파놓은 함정에 빠지네요.

겨우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짧은 깨달음을 적었었죠.

이렇게요.



한번에 한 걸음씩.

이걸 그새 까먹고 있었다니.
느리게 걷는 걸음이지만, 결국은 현재를 사는 건
이렇게 느리게 걸어가는 것 뿐이라고.

백수로서의 삶을 그냥 보통 백수라 여기지 않고,
제대로 된 삶의 방향을 잡고 나아갈 수 있는
그런 힘을 얻기 위해 스스로 선택한 결과라고 마음을 다지며
하루하루
이 분에 넘치는 삶을 살아가도록 해야겠다.

이렇게 산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이런 글을 써놓고 마음을 다잡기는 커녕
진상(?) 백수로 며칠 간 더 지냈답니다.

하지만 지금은 건강한 백수로 변신해서 열심히 살고 있습니다.
'도대체 뭘 해야하나' 고민이 많았었는데

하고 싶은게 하나 둘씩 찾아지네요.
감사한 일입니다.


이번 꼭지는 1부, 2부로 나눴어요.
한 꼭지에 다 쓰자니 스크롤의 압박 때문에.

내용 분할 했습니다.

제가 건강한 백수 상태로 글쓰기를 기원해주세요. 푸히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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