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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내자, 청춘!

[호주 워홀]D+390, Kick the job, Quit the job 본문

14-15 호주 워킹홀리데이 /Second

[호주 워홀]D+390, Kick the job, Quit the job

Yildiz 2015. 9. 12. 11:16

 

 

 

@adari47: Q: 슬프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A: 트위터에 내가 얼마나 어떻게 슬픈지 남김없이 씁니다.

컵라면 익을 정도의 시간이 지나면

그게 얼마나 형편 없었는지 깨닫고

다 지우게 될 것입니다.

 

 

 

 

제목에서처럼, 일자리를 걷어찼고, 일을 그만 뒀다. 

아래글에 구구절절 썼지만, 지나고 나니

내가 주절주절 늘어놓은 글을 다시 읽는게

시간낭비처럼 느껴진다. 

 

트위터 글을 인용한 것처럼, 

'형편없는' 그런 얘기를

굳이 되새김질 할 필요는 없으니까.

 

어둠이 가고 새로울 날을 맞이할

준비를 해본다.

 

 

 

The day before leaving Bunbury @ Aug, 4th, 2015

 

 

 

(2015년 9월 9일 수요일) 

 

#He is Asshole!!!

 

"그 아저씨, 오늘 일찍 가는 것 같던데?"

 

9시 반 쉬는 시간 후 일을 시작할 때, 왠지 호주인 워커 J를 보내는 것 같았다. 그럴거면 진작 보내지, 쉬고 나서 들어오자마자 집에 보낼까. 보스도 어지간히 재수없는 놈이다.

 

남자친구가 말했다.

"나 장갑끼고 있을 때 들어와서 아저씨가 파일에 끝나는 시간 적더라고. 그래서 내가 'you go home?' 라고 물으니까 뭐라뭐라하면서 계속 'He is asshole, he is asshole!!!' 이랬어."

 

보스의 야단치는 소리를 못 이겨하던 아저씨는 일을 그만둘거라고 한지가 일주일전이었던 것 같은데 아직도 공장에 나오고 있다. 이번에는 정말 두려나? 싶지만 남자친구 음성과 표정으로 전해듣는 그의 감정은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나였다.

 

원래 점심시간에 남친과 같이 밥을 먹지 않고, 여자 탈의실에 있는 낮은 나무 난간에 앉아서 먹곤 했다. 같이 일하는 한국 언니와 얘기도 할 수 있고, 캐비넷 문에 기대서 편히 쉴 수 있는 공간이 그 곳 뿐이었다. 하지만 오늘은 공장에서 일하는 게 미친듯이 싫은 날인데다가 왜 내가 저런 보스를 위해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지? 싶어서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래서 12시가 되자마자 나와서 공장 옷 상하의를 캐비넷 앞에 재빨리 벗어놓고 슬리퍼를 신고 남자친구가 앉아있는 벤치로 갔다.

 

밖으로 나와서 먹는 점심은 처음이었다. 9월에 들어서 가장 덥다고 느낄만한 오후였다. 긴 소매 옷을 입고, 그 위에 후리스까지 입고 있으니 밥 먹는 25분 시간이 그리 쾌적하진 못했다. 그늘이 전혀 없는 쉬는 공간이었기에 햇살을 모조리 흡수한 내 얼굴은 빨갛게 달아오르기 시작했다. 

 

벤치를 만들어 놓은 공간을 다시 보니 4개의 벽돌 기둥이 있다. 원래 이렇게만 만드려고 했던 건지 뭔지 모르겠으나 지붕까지 올리기엔 돈이 많이 들었던건지 그 이상은 짓지 않은지 오래된 것 같다. 기둥 맨 위에는 풀들이 자라고 있으니 말이다.

 

소세지 만드는 파트에서 일하는 동양인 2명- 말을 걸어보지 않아서 그들이 어디서 온지는 모른다. - 남자친구 말에 의하면 그들도 항상 밖에서 점심을 먹는다고 했다. 그들은 공장 건물 아래 아주 작게 생긴 그늘에 앉아서- 아니 그냥 앉은 것이 아닌 쪼그려앉아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밖에서 밥을 먹는 풍경이 이런 거구나.'

 

5-6시간 분주하게 일을 하고 제대로 된 한끼를 먹는 30분 시간에 이런 어설픈 곳에서 매일 밥을 먹는다니. 게다가 남친은 혼자 여기서 밥을 먹느라 무지 심심했을 것이다. 진즉 같이 나와서 먹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공장안 런치룸에는 동그란 야외용 테이블 하나와 야외용 의자 7개 정도만 있어서 공장에서 일하는 모든 워커들의 머릿수에 비하면 열악하다.

 

"새 기계를 들여왔는데, 런치룸에 전자렌지 바꿀 돈은 없고, 테이블이랑 의자 살 돈은 없나봐. 재수없어 정말."

 

런치룸에는 전자렌지가 2대가 있는데 하나는 모두가 쓰기를 꺼려하는, 정말 후져도 후진 전자렌지다. 디자인이나 성능을 보더라도 내가 태어났을 무렵에 만든 전자렌지가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니까.

 

밥 먹으면서 나는 남친에게 이곳에서 일하기 너무 싫다고 푸념을 늘어놓았다. 남친도 같은 생각이지만 당장 그만 두는 것보다 다른 일자리가 구해질때까지 참는 게 좋다고 말했다.

 

저번주에 에이전시에서 온 전화를 받지 않은 것이 이제야 후회가 되었다. 나름 공장에 적응해가던 때였고, 사람들과도 좀 친해질 수 있을거란 기대를 해서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바빠지니 일을 더 할 수 있고 돈도 더 벌 수 있으니 좋을 것 같았다. 보스가 내 남자친구가 여기서 일하고 싶으면 적어도 크리스마스까지는 해주겠다고 약속을 받아내라고 말했으니까. 웬만하면 그 약속을 지키는 게 좋은 것이라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그건 나의 순진한 생각이었다.

 

나보다 한달 반정도 먼저 공장에 들어와 일하고 있는 한국인 워커, J 언니의 말에 따르면 그 전에 일하던 홍콩 남자가 보스랑 사이가 많이 안 좋았었다고 한다. 보스가 막 대놓고 심한 욕설을 많이 했었나보다. 그래서 2달 정도 다니다가 어느날 일을 나오지 않았다고 한다. 나나 남친도 보스의 욕설을 피할 수 없었다. 공장에서 일한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소세지 종류나 특징도 잘 모르는데 무작정 몰아치듯 일하게 시키는 그의 스타일에 우리가 어찌 마술사처럼 잘 알고 따를 수 있을까. 자기 뜻대로 안된다고, 마음에 안 든다고 "Fuck"을 외치는 것을 몇 번 보고, 오늘 오전에도 본 터라 기분이 상당히 나빴다.

 

어떤 미친 사람이, 자신이 실수한다고, 잘 못 알아듣는다고 해서 함부로 대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할까. 사실 나도 얼마전까지는 그랬으니까. 내가 영어가 부족하고 유창하지 않으니까 참았지만, 생각해보면 상대방의 약점을 잘 알기 때문에 자신이 갑인 위치에서 욕설을 퍼붓는 행동은 언어폭력에 해당하니까. 그런 사람을 위해서 내가 여기서 일하는 것이 비정상이고, 이런 사람을 위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사실 약속다운 약속도 하지 않았다. 보스가 일방적으로 말했을 뿐. 슈바 아줌마는 그런 것에 개의치 않아했으니까.)

 

보스는 이탈리아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 여자한테는 꽤 친절하게 말하는 편이다. 남자친구가 일하러 처음 왔을 때 보스가 남친의 이름을 물어보지도 않았고, 공장에 뭐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는데 굉장히 대충 말해줘서 남친은 기분이 상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아까 15분 쉬고 들어가서 소세지 긴 거 하고 있을 때, 어떻게 하면 쉽게 일할 수 있는지 알려주더라고. 지금까지 그렇게 말한 적 진짜 한 번도 없었는데. 아까 나한테 퍽킹이라 하는거 나도 들었어서 계속 인상쓰고 있었지. 그걸 지도 봤는지 뭔지. 친절하게 말해준거 이번이 처음이네."

 

남자친구는 불심으로 참고 있다고 했다. 불심. 부처의 마음. 하지만 나는 남자친구처럼 마음을 잘 다스리지 못해서 계속 인상 쓰면서 일을 하고 있었다. 이렇게 인상 쓰면 나만 손해이긴 한데. 정말 저런 개새끼 같은 보스를 위해서 내가 최선을 다할 필요가 없다는 진실을 깨닫자, 한시 바삐 공장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아까 공장에서 기계에 걸려 넘어질 뻔 하고, 팔을 바삐 움직이다가 기계의 튀어나온 부분에 세게 부딪쳤다. 통증에 신경질이 팍 나면서 한국말로 욕을 씨부러야했다..

 

"스태프 구하기 힘들다고 하는데, 그런 식으로 사람을 대하면 누가 여기서 일하려고 할까."

 

남자친구가 말했다.

"기계만 좋은 거 들여놓으면 뭐해. 사람 구하기 힘들걸. 지딴에는 큰 꿈이 있겠지. 그런데 아무리 사업을 크게 키울려고 해도 저렇게 하면 못하지."

 

호주 사람들 보고 게으르다고 하던 보스의 말이 생각난다. 그래, 보스의 뭐 같은 다혈질 성격을 다 받아주면서 공장에서 빡세게 일할 호주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그 시간과 에너지를 들여서 차라리 다른 일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도 덜 받고, 좋을테니까. 스태프 구하기 힘든 이유가 바로 사람을 아낄 줄 몰라서라는 것을 모르고 그는 순전히 남의 게으름 탓, 능력 부족탓만 할 것이다.

 

일 적응할만하다 싶은 사람들이 보스가 싫어서 그만 두기도 하고, 더군다나 스탭을 뽑는 방식도 별로다. 워커를 고용하기 전에 인터뷰를 보지도 않고 무작정 트라이얼 할 수 있냐고 전화를 걸어서 공장에 오게 만드니까. 내가 딱 봐도 정말 공장일 못하게 생겼다 싶은 인도네시아 여자, 아무리 호주 사람이어도, 영어를 다 알아들어도 노련함이 없는 곰 같은 호주 남자가 트라이얼하러 왔었다. 그들은 공장 일 2시간에서 혹은 그 날 물량을 다 마칠 때까지 하고 집에 돌아갔다.

 

그렇게 큰 공장이 아니니, 별다른 인덕션- 공장 소개라든지, 주의사항, 중요 스태프 소개 등등을 하는 시간 - 을 하지 않아도 상관없다고, 아니면 굳이 그렇게 시간을 들여봤자 그만 둘 사람은 그만두니 비용을 지불하기 아깝다고 생각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기계를 돌리고, 무거운 트롤리, 공장의 여러 장소들을 모른체 무작정 일만 눈치껏 하는것이 피로로 다가오기도 한다. 게다가 여기는 마무리 청소를 워커들이 다 한다. 번버리에 있는 고기 공장을 다닐 땐, 워낙 큰 공장이다보니 각 분야별로 자기가 맡은 역할이 확실했고, 워커들은 자신의 일만 잘 하면 된다. 그리고 혹시나 생길 사고를 대비해서 체력이 약하고, 힘이 없는 여자에게 굳이 무거운 것을 들게 하지 않는다. 절대로 못 들게 하는 경우가 많다. 옆에 있는 남자 워커에서 슈바가 부탁한다. 그러나 이 공장에선 그런 역할의 구별이 뚜렷이 없어서 10kg 넘는 박스를 두 팔에 엉겨붙들고 노끈 묶는 기계에 가져가고 다시 옮겨서 상자를 쌓기도 했다... 사실 이 곳에서 계속 이런 식으로 일하다보면 어딘가 다칠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J언니가 말했었다.

"웬만한 공장은 다 쓰레기통 버리는데 들어올리는 기계가 있는줄 알았는데, 여기는 다 손으로 해야해요."

 

공장 안을 청소할 때, 하루 중 쌓인 엄청 쌓인 쓰레기통을 밖에다 버려야 하는데, 남친의 말에 따르면 굉장히 무겁다고 했다. 그래서 한 번은 안에 있는 것을 일일이 손으로 다 꺼내서 버리고 왔다고 한다. 도무지 혼자서 들어올려 큰 쓰레기통에 버릴 수 없다고...

 

생산비용을 줄여 최대의 이윤을 얻는 것. 자본가의 목표다. 하지만 너무 비용을 줄이려 하다가 오히려 잃기도 하는 것을 - 게다가 사람 손이 많이 가는 공장일에 사람은 중요하다고 생각해 본적이 없을 그는, asshole. 이 맞는 것 같다.

 

 

 

 

 

 

PHOTO BY HESHER @Luagprabang, Laos, March, 2015 

 

2009년 다녀온 후로 올해 3월에 다시 찾아간 라오스.

6년 사이에 관광객도 늘고, 길거리에 새 차들도 보이고.

예전엔 한국에서 들여온 고물차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그닥 행복하지 않았던 여행이라 생각했는데

지금에 와 돌이켜보니,

 

하릴 없이 거리를 배회하며

먹을 것을 찾아헤매던 때가

정말 좋은 시절이였음을

 

공장에서 빡세게 일만하니

이제야 지나간 시절이 아쉬웠다.

 

현재 순간을 살아내지 못하는

이 어리석은 자의

어리석은 후회.

 

 

 


 

#Kick the job, Quit the job

 

'참으라'는 남친의 말, 그리고 점심시간 잠깐의 일광욕으로 내 기분을 조금 누그려뜨리긴 했지만, 오늘따라 일찍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다. 그러다 사건이 일어났다.

 

공장에 새로운 기계가 들여왔기에 슈바 아주머니는 자신이 하던 일을 같이 단짝으로 주로 일하는 P 아주머니에게 맡기고, 내가 P 아줌마 역할을 대신 해야했다. 큰 소세지, 살라미 등을 슬라이스 기계에 아주머니가 넣고, 기계에서 나온 것을 무게를 재서 벨트 위에 올려 놓으면 나는 그것을 낚아채 플라스틱 백에 넣고, 진공포장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다. 진공포장하고 라벨 찍는 것은 기계가 다 하는 것이니 나는 소세지 더미(?)를 비닐백에 잘 넣기만 하면 된다. 완성된 제품이 마지막에 나오면 이란에서 왔다는 남자워커 M이 박스에 넣어 마무리를 한다.

 

슬라이스된 동그란 살라미가 500g 만큼 작은 탑처럼 쌓여져서 벨트에 와야 하는데, 모양이 무너진 것도 있고 해서 두 손으로 잡아 모양을 맞춰 넣기도 했다. 그러다, 2-3개 정도의 덩어리 살라미가 저울에 무게를 달지 못한채 내려오자 P 아주머니가 내게 "Get back"이라고 소리쳤다. 당연히 알아듣는 소리이고, 우선은 오고 있는 살라미가 있기 때문에 그것을 처리하고 가져다 주려고 했다. 그런데 마침 그때 우리 옆을 지나가던 워커 M이 그 소리를 들었고, 나 대신 살라미 덩어리를 아주머니에게 전해주면서 "give it to her."이라고 얘기했다. 당연히 알아듣는 소리다.

 

그런데 그, M이 내 오른팔을 붙잡으면서, 뒤로 살짝 당기면서 얘기했다는게 문제다.

 

문제의 살라미 덩어리가 벨트 마지막에 치달아 긴급한 상황도 아니었고, 나는 계속 움직이고 있는 기계에 맞춰 살라미를 채워 넣고 문제의 살라미를 아주머니에게 돌려주기에 충분했다. 굳이 그 사람이 내 팔을 잡을 필요가 없었다.

 

짜증나서 나는, "I know"라고 말했지만 그렇게 큰 소리가 아니었기에 M이 내 기분을 알지도 못했고, 그는 그런것 따윈 신경쓰지도 않았다.

 

내가 뭘 잘못하고 있는 것도 아니었고, 중간에 끼여들어서 지가 나보고 이래라 저래라 한다한들, 몸에 손댈 이유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나는 기분이 엄청 상했다. 바로 말하려고 했는데 지금 당장 하고 있는 일이 있어 다가가 얘기하지 못했다.

 

바로, 그가 내 팔을 잡았을 때, 그때 당시에 소리 질러야 했다. 영어로라도 안 나오면 한국말로.

 

"왜 만져 새끼야." 라고 말이다.

 

 

2시 40분이 넘어서야 마무리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난 M이 조금 한가해보이는 때를 노려 그의 옆으로 가서 내가 계속 속으로 되풀이하던 문장을 얘기했다.

 

"M, I can understand your english, if you say clearly."

사실 그의 영어를 못 알아들을 때가 많다. 그리고 그가 영어를 잘하지 못하면서 내게 지시하는 적도 많았다.

 

그가 내게 물었다.

 

"Clearly?"

"Yes, Clearly." 분명하게, 명확하게라는 단어를 모르나 보다. 그래서 다시 말했다.

 

"I understand your English, so you don't need to touch my body. you touched my arm."

 

"what? when?"

 

난 이 사람이 내게 미안하다고, 내가 그랬으면 미안하다고 할 줄 알았다.

하지만 적반하장으로 성질을 부리며 물었다.

 

어이가 없어서, 그때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자 M이 P아줌마에게 물었다.

 

"P, 내가 얘 팔 만지는 거 봤어?"

 

 ....

 

 

니가 알지 누가 알겠냐. xx야.

나는 속으로 열불이 올라 손에 쥐고 있던 수세미를 바닥에 힘껏 던지며

 

"Hey!!!!" 라고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마침 쓰레기통을 비우고 공장에 들어와있던 남친이 나를 말렸다.

 

평소에 공장에 들리지 않던 언성이기 때문에 슈바 아줌마와 다른 아줌마가 가까이 오며 무슨 일이냐며 웅성대기 시작했다.

 

안그래도 일 그만 두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았는데, 오히려 나를 이상한 애로 몰아가는 M 때문에 폭발할 대로 폭발한 나는 비닐백과 물품을 보관하는 곳으로 재빨리 걸어가서 오늘 끝나는 시간을 적었다. 남친도 나를 따라들어와서 우리가 그동안 일한 시간을 적은 종이를 핸드폰으로 사진 찍었다. 나는 먼저 여자탈의실로 향하고, 남친은 뒤늦게 따라 나왔다.

 

"슈바 아주머니가 나중에 들어와서 자기 찾더라고. 나갔다고 했어. 나한테도 나갈거냐고 묻길래, 나도 간다했지."

 

남자친구가 운전을 하면서 내 손을 지긋이 잡아주었다. 나만 이상한 애처럼 된 것 같아서, 그렇게 이야기가 돌 것 같아서 억울한 마음. 그리고 옆에서 위로해 주는 사람이 있어서 내가 슬퍼 보여 눈물이 나왔다. 이상한 눈물이었다. 하지만 너무너무 화가나고 억울해서 흘리는 그런 눈물까지는 아니어서 오래 울 필요는 없었다.

 

올해 들어 '남자사람' 과 싸우는 일이 잦다. 이전까지 그런 적이 별로 없어서 그런지 돌발 상황에서 잘 대처해보지 못했던 나다. 라오스에서 경찰관한테 대들면서 싸우다가 (남친과 내가 만만해서인지 터무니없는 벌금을 물게 하려했다.) 비엔티엔 길거리에서 너무 짜증나서 사자후를 내뱉기도 하고, 잠시 한국에 들어가 도로주행 연습을 할 때, 강사가 내 무릎에 손을 대는- 성추행을 해서 민원넣기도 하고. 몇 달전엔 스시가게에서 일할 때, 내가 돈 계산을 잘못하자 손을 살짝 치며 비키라는 무언의 행동을 했던 스시 사장에게 뒤늦게 따지기도 했다. 2주 전, 내 팔꿈치를 치며 얘기했던 워커 J에게 따지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정말 안되겠다 싶어 M에게 그러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려했는데, 되려 "내가 뭘?" 이런 반응을 얻었다.

 

어차피, 여자, 약한 사람에게 함부로 대하지 않는 사람은 손깃만 스쳐도 미안하다고 정중하게 말할 것이고, 반면에 자기가 한 짓이 얼마나 실례가 되는지 모르는 놈은 기억도 못하고, 그게 미안해할 일인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뼈저리게 느꼈다.

 

공장의 일보다 중요한 건 내 몸인데, 그것보다 일을. 나보다 가치 없는 살라미 몇 개 제대로 포장하겠다고 즉각 반응하지 않았던 나의 둔하디 둔한 반응도 문제다.

 

즉각 반응 - 사건이 일어난 당시에 "니가 나한테 한 짓이 얼마나 잘못된 건지 아느냐." 라고 따질 줄 아는 리액션과 대담함. "너는 내 몸에 손 댈 권리가 없다. 짜식아." 라고 후려갈기기까진 아니어도 바로바로 내 기분을 피력하는 것. 몇 번을 깨져야 난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앞으로도 무수한 연습 상황이 생길 것 같다. 내가 제대로 대처하기 전까지는 말이다.

 

 

 

#일자리를 구할 때, 몸을 사려야할 곳

 

문화도 다르고, 언어도 다른 곳으로 와서 돈을 벌고 지내는 게 쉽지 않다. 자격증을 필요하는 그런 전문직에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얻어 온 사람들이 빠른 시일에 좋은 일자리를 얻기가 어렵다. 직업과정을 듣는데 돈과 시간이 꽤 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장이라든지 농장, 호주 사람들이 일하기 꺼려하는 곳에서 주로 일하게 될 수 밖에 없다. 한인 사장 밑에서 일하게 되면 언어가 잘 통하는 장점은 있지만, 택스잡tax job 이 아닌 캐쉬cash로 지불하는 형태로, 최저임금보다 낮은 시급을 주거나, 임금을 제대로 주지 않는 경우, 주말 시급, 초과 근무 시급을 맞춰서 주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기대한 만큼 좋은 일자리 구하기가 쉽지 않고, 통장의 잔고는 떨어져갈 때는 사람의 마음이 급해지기 마련이다. 어떤 곳에서 일하든, 우선 일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덜컥, '조건'을 단 일을 시작하게 되면 나중에 문제가 생긴다.

 

이번 smallgoods 공장에서도 느낀 거지만, '조건'을 다는 사장 밑에서 일하는 건 좋지 않는 것 같다.

 

"우선 일을 시작하려면, 3개월은 기본으로 해줘야 한다." (모 스시가게 사장 왈,)

"일하고 싶으면 성수기때까지는 해준다는 약속을 해야한다." (smallgoods 공장 사장 왈,) 등등

 

그들이 이렇게 조건을 내거는 이유는, 사람들이 일을 쉽게 그만 두기 때문이다.

거기다 한국인 사장이 돈을 선뜻 주지 않으려는 꼼수는 호주인 사장이라면 상상하지 않을 방식이다.

 

몇 달전에 일했던 스시 가게 사장은 또 이런 조건을 내걸었다.

 

"트레이닝 기간 동안의 돈은 캐쉬로 주는데, 바로 주지 않고, 일을 그만 두게 되면 주겠다."

 

그가 임금을 캐쉬(현찰)로 주는 이유는, 합법적으로 고용한 형태가 아닌 상태로 직원을 둬서 조금이라도 세금 신고를 적게 하기 위해서다. 게다가 나중에 끝날 때 주겠다니.

 

마음이 급하고, 돈을 중요하게 생각하다 보면, 이런 불합리한 조건도 수용하고 일을 시작하게 된다. 그러다 돈을 조금씩 받게 되고 모아지게 되면 생각이 많아지면서 갈등을 하게 된다. 사람마다 상황도 다르고, 대처방식도 다르겠지만, "여기는 아니다." 싶은 곳이 있다면 최대한 빨리 벗어나는게 좋은 것 같다. 무작정 그만두는 것보다는 대안이 있다면 훨씬 좋을 것이다.

 

남자친구는 내가 스시가게 사장과 인터뷰를 할 때,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살짝 지켜봤었다. 그의 인상이 별로라고 했다. 나중에 들은 소리지만 그가 "쓰레기" 라는 소문이 한국인 사이에서 돌 정도였다. 이번에 일했던 공장 사장의 행동에 (특히 남자 워커에게 대하는 행동, 그는 아버지와 서로 fucking, fucking 하면서 싸운단다.) 남자친구는 싫다고 했다.

 

돈에만 집중하면 같이 일하는 사람에 대해 간과하게 되는 '나'는 항상 늦게 배운다. 이런 과정을 통해, 배우는 거겠지만... 피할 수 있는 곳은 애초에 가지 않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하지만 사람 일이 마음 대로 되는 것이 아니니. =_  =;; 아무쪼록 나도, 내 글을 읽는 분들에게도.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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