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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워홀]D+369~370 경험을 업수이 여기지 말 것 본문

14-15 호주 워킹홀리데이 /Second

[호주 워홀]D+369~370 경험을 업수이 여기지 말 것

Yildiz 2015. 8. 21. 00:30

 

 

 

 

번버리 시티 근처 쉐어하우스에서 가까웠던 바닷가

아침에 조깅하기 좋은 곳.

 

돈만 많으면 여기 집 하나 얻어 살고 싶어라. 어힝.

 

 

@Bunbury, WA, Aug, 2015

 

 

 

(2015년 8월 19일 수요일)

 

#First day at work

 

원래 긴장하면 덤벙대고 실수 잘하는 성격인데다 호주 사람의 영어를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말까지 더듬기도 하는 나. 내가 작게 느껴지고, 내가 영어를 잘 못 알아듣는 걸 알면 어쩌지? 이런 두려움이 있다. ...... 엉엉엉 ㅠ_ ㅠ

 

몇 달전, 잠깐 일했던 가게 사장(한국사람)에게 불만을 여과없이 털어내고 그만 둔 경험이 있다보니 '나 스스로를 위해 얼마큼 당당하나?' 를 따져보게 된다. 사실 오늘도 그렇다. "트라이얼 할래?" 라고 전화로 물었던 아줌마... 그 아줌마가 오늘 내가 만났던 슈바인지 누구였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왜 나는 더 자세한 사항- 궁금한 것들을 속사포처럼 쏟아내지 못하고 소심하게 짜져있었던지. 제일 중요한... 시간당 페이가 어떻게 되는지 묻지도 않고.. 에휴. =_  =;;;;

 

 

무튼 오늘 하루 일을 했다는 사실이 뿌듯하다. 언제나, 모든 일의 첫 날은 그렇다. 하지만 이 기분을 어떻게 유지해나가고, 관리하는지는 나의 능력에 달려있다. 그래서 우선은.. 할 수 있는 데까지 끝까지 해보는 게 좋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확인한 것은 구글맵 지도로 집에서 공장까지 가는 시간이었다. 7시까지 공장에 가야하는데 차가 막혀서 늦을까봐 걱정되서였다. 공장은 집에서 19km 떨어진 거리이지만 예상시간 30분이었다. 프리웨이가 있고, 하이웨이를 이용하지만 아무래도 중간중간 신호등이 있기 때문에 대기시간까지 합하면 꽤 걸린다. 이 정도 거리와 시간은, Z 에이전시에서 소개해준 샐러드 공장과의 거리와 비슷하다. 다만 다른 위치에 있을 뿐이다.

 

이번 주는 비가 내리는 주간이라서 아침부터 빗방울이 떨어지기 시작했다. 남자친구가 운전을 해줘서 망정이지, 나 혼자 찾아가는 거였으면 초행길에 비까지 내리고 있으니... 무서워서 긴장 바짝한 채로 덜덜 떨면서 운전을 했을것 같다.

 

구글맵에 나온대로 찾아간 공장은, 사진에서 본 것처럼 작은 공장이었다. 홈페이지 정보를 찾아보니 가족이 운영하는 사업이라 예전에 일했던 울월스(Woolworths 호주의 대형마트 중 하나) 고기 공장에 비해 아주아주 작았다. 안으로 들어가면 실제 그렇다. 공장에서 일하는 사람도 적고, 런치룸도 작고 탈의실도 작고 화장실도 작다.

 

하지만 일은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소세지나 햄을 자른 것을 팩킹하는 건 정말 쉬운 일이었고, 그외 진공포장하기 등등의 일들이 복잡하지 않았다. 울월스 공장에서 일했던 경험이 길지 않지만 그래도 거기서 일하면서 보고, 이해했던 공장의 과정들이 도움이 되긴 되구나 싶었다. 오랜만에 움직이는 녹슨 몸이지만 열심히 하려고 부지런히 움직이고 무얼 해야하나 두리번거리며 일했다. 나와 함께 트라이얼로 공장에 들어온 2명의 남자 중 한 호주남자는 공장이 추웠는지 감기에 걸린건지 휴지를 자꾸 챙기며 코를 풀었다. 팩킹하는데 있어서 남자 2명은 나보다 일하는데 좀 둔하다고 느껴졌다. 대신 그들은 나보다 힘이 세다. 

 

공장 일에 그닥 잘하지 않았던 호주 남자는 중간에 쉬는 시간이 되자 슈바가 다가와서 장갑을 벗더니 웃으면서 악수를 청하며 정중하게 뭐라뭐라 하면서 집에 보내는 것 같았다.

 

나는 트라이얼이라고 해서 30분 정도 일하고, 일 하는 걸 봐서 집에 바로 보내고 서류를 작성하는 등 그런 절차를 할 줄 알았다. 그래서 점심이고 물이고 간식이고 돈이고, 아무것도 챙겨오지 않았다. 다행이도 그곳에서 먼저 일하고 있던 한국여자분이 티백이랑 수프랑, 씨리얼 바도 주셔서 그날 간식과 점심을 해결할 수 있었다. 아무것도 못 먹었다면 난 힘들어서 집에 가고 싶었을 것이다. ㅠㅠ

 

처음 발을 내딛은 환경에 놓인 날이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일을 했다. 그리고 오늘의 물량이 끝날때까지 공장에서 일했다.  

남자친구가 날 데릴러 와야하는데 집에서 오는데 20-30분은 걸린다고 슈바에게 말하자, 끝나기 30분 전 슈바가 내게 와서 남친에게 전화 걸고 오라고 말해주었다. 그래서 내가 공장 밖으로 나오자 딱 맞게 남자친구가 마중나올 수 있었다.

 

집에 가는 차 안에서 공장 이야기를 실컷 하다보니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일을 마치고 나와 집에 오기까지 하늘이 맑게 개었는데 얼마 지나서 바람이 심하게 불면서 비가오기 시작했다. 잠깐 마트에 가서 과일이라도 사오려고 했는데. 밖에 나가기 싫은 비오는 날씨다. 우산을 써도 다 젖게 되는 그런 비오는 날 말이다.

 

 

 

#Seek에서 구하라

 

잡 에이전시를 통해서 공장 들어가는게 제일 편하게 느껴져서 그것을 우선으로 두고 있었지만, 일주일 전에 인터뷰를 본 에이전시에서 별다른 연락이 없으니... 마냥 그것만 바라보기엔 퍼스에 공장은 많고, 기회도 많으니까.

 

별 부담없이 구직신청하기 좋은 Seek, 어플로 남자친구와 함께 다니고 싶은 곳에 무작정 신청을 해보았었다. 개인 사업자가 올리는 채용광고도 있고, 에이전시에서 올리는 것도 많다. 그런 것들을 보다보면 이런 이름의 공장도 있구나. 이 에이전시는 이 공장의 인력을 담당하는구나, 하나 둘 눈에 들어온다.

 

 

 

 

 

관심어를 등록해두면 알림 메일을 오게 설정할 수도 있고, Seek에 레쥬메를 등록해놓으면 매번 구직신청할 때 편하게 처리할 수 있다. 이번에 퍼스에 온 김에 바리스타 과정을 수료하고, 까페에서 바리스타로 일해보는 게 나름의 작은 목표다.

 

 

 

 

 

 

 

 

(2015년 8월 20일 목요일)

#경험을 업수이 여기지 말 것


Smallgoods 공장에서 일하는 두번째 날. 어제 바지런히 일을 했어서인지 몸이 뻐근함을 느낀 채 일어났다. 하지만 공장에 제 시간에 맞게 도착해야하니 잽싸게 준비해서 출발했다. 아침부터 퍼스는 비가 왕창 내리고 있었다. 작년의 이맘때쯤에 비해 비가 많이 오는 것 같다.

 

오늘은 꽤... 무거운 햄을 비닐에 넣고, 햄을 감싼 종이껍질을 벗기고, 소세지를 비닐에 넣고, 살라미 팩킹하는 등, 하다보니 하루의 시간이 훌쩍 갔다. 공장 안에 시계가 어딨는지 모르고 있으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빨리 마칠 수록 집에 빨리 간다는 생각에 일에 전념했던 하루였다.

 

공장에서 집까지 거리가 좀 있고, 남자친구가 데려다 주고 오고 있으며, 남자친구또한 일을 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슈바와 보스는 상의를 했던 모양이다. 어제 남친이 날 데릴러 왔을 때 공장 오피스에 찾아가 보스에게 직접 레쥬메를 전해줬었다. 오피스에 보스가 있었던 것도, 남친이랑 얼굴을 잠깐 마주본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는 것. 이런 우연이 참 기가 막히다.

 

오전에 팩킹을 하고 있을 때 보스가 내게 물었었다. 남자친구와 같은 곳에서 일하는게 좋은 생각인 것 같냐며. 그는 회의적인 의견을 피력했지만, 워낙 일만 하는 공장에서 둘이 같이 일해왔던터라 우린 일에만 집중한다고 답했다. 크리스마스 시즌에 정말 바빠지는데, 남자친구가 공장에 와서 그때까지 그만 두지 않고 해준다고 약속할 수 있으면 데려오라고 했다.

 

사실, 남친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지 않아도 내가 대리인으로서 "당근 빠따 of course. no worry, man." 이건데, 난 남친에게 물어본다고 했다. 하지만 슈바는 오늘 내가 공장을 떠나기 전에 "내일은 남자친구를 데려와" 라고 간단히 말했다. 되면 좋고, 안되면 말고. 이런 마인드? 슈바는 쿨한 분인 것 같다.  

 

이 공장을 애초부터 알지도 못했고, 연락이 올 거라는 확신도 없이 우선은, 신청해보자. 이런 마인드였는데, 어쩌다 슈바(?)가 내게 전화를 걸고, 나는 그 전화를 받고, 일하게 된 것이 참 신기하다. 그래서 기분이 얼떨떨하기도 하다. 세상 일이 어찌 돌아가는지는 정말 두고 볼 일인 것이다.

 

아무래도 이제 일을 시작한 곳도 고기를 취급하고 포장하는 곳이다보니 울월스 고기 공장에서의 기억이 순간순간 저절로 떠올랐다. 그때, 일이 힘들다고 징징대고, 내 마음대로 안된다고 인상 쓰고... 그랬던 내 모습이 이제와서는 귀엽게 느껴지기도 하다.

 

그게 그렇게 힘들었었나... 이렇게 다 지나갈 일인 것을.

 

마냥 어렵고 힘들다고 생각했던 것이 지나고 보니 재미있는 추억으로 남아있다. 고기공장에서 보고 배운 것들 때문에 마트에 진열된 고기들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나오는지에 대해 깊게 알게 되니 한 팩의 고기 상품이 오기 까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손을 거치는지, 짧은 상상을 하며 살펴보게 된다. (킬링파트는 본적이 없지만.. )

 

영어를 사용해야하는 공간에서의 사람들과의 소통에 내가 많이 부족함을 느끼는 순간도 많고, 한국에서는 그렇게 잘하던 숫자 셈도 여기서는 12를 세다가 갑자기 22로 뛰어넘는. 나도 내가 답답해지는 순간도 경험하고 있다.

 

아 정말. 그렇게 덤벙대고 긴장할 필요는 없는데!

너무, 잘하려고 애써서 그런가?

 

유럽식 빵처럼 크고 단단했던 햄을 들고 이리저리 옮기고 하면서 팔에 무리가 갔다. 내일 오른쪽 손목이 많이 시큰거릴 것 같다. 무거운 햄을 들면서, '이게 빵처럼 가벼웠음 좋겠다.' 아쉬워했는데.

 

'아냐, 이거슨 빵이야.' 라고 최면을 걸었어야 했나.

 

 

오늘 하루, 내 밥벌이는 했고,

일주일 내에 결제해야하는 전기세 정도야 가벼운 마음으로 낼 수 있고,

사랑하는 사람과 단내가 진동하는 파인애플도 살 수 있다.

 

일할 수 있는 곳이 있어 참 다행이고,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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