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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수다쟁이

나에게도 (드디어) 스마트폰이

Yildiz 2014. 7. 18. 14:42

(원래 자랑하려 했으나

쓰다보니 스마트 기기 이용에 대한 단편적인 생각 모음글. )

 

#. 그동안 스마트폰 없이 살았어요오.

 

"카톡 채팅방에 너만 들어오면 되겠더라."

"아직도 폴더폰? 야, 왠만하면 바꿔."

"00씨, 전화 좀 받아요." (한동안 밧데리 충전하는 콘센트가 맛이 가서 늘 밧데리 한칸으로 간당간당 살아갈때-_-;;)

"요즘 중고 스마트폰도 싸, 괜찮은거 많아."

 

주변에서 푸념아닌 장난을 받긴 했었지만 크게 불편함을 느끼진 못했었다. 라고 하면 배부른 거짓말이겠지.(뜨끔)

분명, 불편해하긴 했다, 사람들이.

 

심지어 어떤 분은 내게 이렇게도 말씀하셨었다.

 

"스마트폰이 아니니까, 남친도 안 생기지!!!"

 

하지만 스마트폰 사용과 솔로탈출의 연관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

 

 

 

#똥고집의 이유

 

"핸드폰 번호 좀 불러주세요."

"네, 01X..."

"아니, 아직도 01X이 있어요?"

"네."

 

전화기 너머로 핸드폰 번호를 듣던 상담원은 내가 거짓말을 하는것 같았는지 의심의 목소리로 되물었다.

 

2014년 현재까지 2G, 폴더폰, 01X 번호를 10년 가까이 쓰고 있다.

이게 무슨 훈장같아서 고집 부리는 건 아니다.

어쩌다 보니 내가 고집부리는 사람처럼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하다.

 

어느 순간, 지하철을 타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스마트폰만 쳐다보고 있는 세상, 심지어 초등학생도 고가의 스마트폰을 갖고 있으니 시류에 같이 휩쓸려 파도 타기를 하면 될 것을 나는 끝끝내 고집부리고 싶었다.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한국 통신사들은 한 가정의 통신비를 어마어마하게 족족 빨아먹는 '흡혈귀'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최소한으로 통신비를 쓰겠다.'라는 소신을 갖고 있다. 최신 스마트폰을 사고, 과도한 사용 요금을 지불하는 금액을 다달이, 12개월 합치면 얼마쯤 될까 계산해본 적이 있다. '차라리 난 그 돈으로 항공권으로 살거야.'라는 생각을 하며 산다.

사실 돈이 없어서 스마트폰을 못 사는게 아니라, 그 돈들을 사용하는 데 가치순위 갈등이 일어난다. 여행이란 소비와의 갈등 말이다.

 

거기다 항상 인터넷이 되는 핸드폰이 있다면 사이버 세계에 빠져 사는 내 모습이 쉽게 그려지기 때문에

스스로를 조금이나마 깨어있는 정신으로 두기 위해선 격리가 필요했다.

 

그리고 내겐 스마트폰에 대한 잊지 못할 장면이 하나 있다.

 

 

 

#그 누구와도 눈을 마주치지 못했다.

 

2008년에 터키를 다녀오고 난 후, 터키가 그리워 2011년에 다녀온 적이 있다. 이스탄불 물가는 그새 올라서 3년전 머물렀던 게스트하우스 말고, 좀 더 저렴한 곳의 도미토리에서 지내던 밤이었다. 작은 방에 6개의 침대가 한국 여성들로 꽉 차 있었는데 혼자 여행하던 나는 그 누구와도 대화를 해보지 못했다. 모두들 침대 위에 누워 넷북을 보거나,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며 자기만의 시간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행 중 스마트기기가 있고와 없고의 차이. 분명히 편리성에 있어 차이가 있겠지만 그것을 어떻게 쓰느냐의 차이는 너무도 심했다. 한국에 있는 누군가와의 대화를 하거나, 정보를 찾거나 하는 그 여행자들 사이에서 나는 유령처럼 침대 위로 올라가 천장만 바라보며 눈을 꿈뻑꿈뻑 거리다 잠이 들었었다. 

 

3년전엔 그래도 같은 방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며 몇 마디라도 했던 것 같은데, 각자의 손바닥 세상에 빠져서 옆에 있는 사람의 존재를 잊게 되는 것. 그때 적잖이 충격을 받았던 것 같다. 스마트폰이란 앞으로 여행의 풍토를 상당히 바꿔놓겠구나. 예감할 수 있었다.

 

그 후로 인도를 여행할 때 조차 나는 핸드폰 없이 여행을 하곤 했다. 한국 사람들 대부분 스마트폰을 갖고 다니며 새로 만난 사람들을 카톡 친구 추가를 하고, 여행 동행을 찾기 위해서 카톡 아이디를 까페 게시판에 올리는 것을 보았다.

 

내가 아직 인연에 대한 고리타분한 생각을 하고 있어서일까. '난 어디에 있어, 넌 어딨니?' '우리 어디에서 보자' 라고 여행 중에 연락하는 게 시시하고 재미없게 느껴졌다. 스페인에 있는 순례자의 길을 걸을 때 도중에 헤어졌던 친구를 우연히 길에서 만나고, 어떤 친구는 도무지 만날 수가 없을 것 같다고 체념한 날에 우연히 그 친구와 만났을 때의 기쁨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나중에 손자들이 생기게 되면 불러다 앉혀놓고 옛날 이야기처럼 주렁주렁 얘기할만큼 생생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길에서 만나는 인연의 소중함과 마법 같은 만남은 '만들어진 약속'보다 예기치 않은 선물처럼 다가왔었다.

 

어떤 영화를 볼 때, 결말을 알고 보는 것보다 아예 모른 채 보는게 더 재밌고 흥미진진한 것과 여행 또한 그 이치가 같은 것 같다. 영화에 몰입하여 보다가 결론부분에서 '빵' 터지게 되는 일종의 카타르시스나 충격이랄까. 여행에서 그런 맛을 더 느껴보고 싶은 욕심이 있었나보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서 나도 스마트기기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시작했다.     

 

 

 

#Falling in love with ipad mini

 

견물생심. 이라고

지인의 아이패드 미니를 보고 갈등이 일기 시작했다. 무겁지도 않고, 크지도 않은 아담한 아이패드 미니에 난 한눈에 반해버린 것이다. 그렇지만 고민만 하다가 3개월이 지나서야 아이패드를 구입했다. 정말 고민과 고민 끝에 샀다. 결제창에 카드 번호 입력하고 클릭 몇번만 하면 끝인 것을. 난 미련하게 시간을 질질 끌고 있었다.

 

"저 아이패드 샀어요" 라는 말에 어떤 지인이 이렇게 말했다.

"왠지 살것 같더라. 그때 00씨가 아이패드 바라보는 눈빛이 너무 반짝였거든."

 

그렇게 아이패드를 구입하고 써온지 1년이 지났다. 그리고 해외여행을 갈때마다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녔다. 대만에 친구를 만나러 갈 때도, 그들과 연락하기 위해서 휴대를 했고, 한국에 있는 사람과 연락을 하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지난 1월에 태국과 라오스를 갈 때도, 3월에 인도에 갈 때도 아이패드도 함께였다.

 

그리고 스마트폰 대신 아이패드를 이용해서 카톡 사용도 하고, 영상통화도 하고, 책도 보고, 글도 쓰고, 사진도 찍는다. 왠만한 연락은 핸드폰 문자 대신 카톡 아니면 페북 메시지로 다 하고, 와이파이 사용시 카톡의 보이스톡으로 통화도 해결한다. 단, 와이파이가 될때만이다. -_-; 

 

지금 이렇게 글을 쓰면서 되짚어 보니, 아이패드를 가지고 다니게 되면서 나의 생활패턴이 어떻게 달라졌고, 여행의 풍경도 어떻게 달려졌는지 심각하게 다가온다. 분명 장점도 있지만 단점도 만만치 않게 겪어온 것 같다.

 

나도 어느 순간, 내가 배척하고자 했던 멀리하고자 했던 스마트 기기 이용 여행자가 되었다. 여행 중 무료함을 게임으로 때우질 않나, 와이파이를 찾아 길을 나서는 노예로서 길을 헤맨 적도 있다. 그리고 그건 또 나만의 이야기도 아니었다. 몇년 전엔 한국 사람들 대부분이었는데, 이제는 외국인 여행자들도 스마트폰 사용하는 정도가 만만치 않다. 라오스 남부 시판돈에 있는 돈뎃 섬의 게스트하우스에서 와이파이를 사용하기 위해 계단에 서너명의 외국인들이 옹기종기 모여 스마트폰의 작은 액정에 다들 코를 박고 있는 모습이란. '와우!!'

 

그게 내 모습이기도 하니, 씁씁한 맛이 혀를 감싸돌았다.

 

 

 

#이젠 나도 스마트폰이 필요한 것 같아

 

한 달 뒤면 호주로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

"왜 호주로 가?"라는 주변 사람들의 질문을 되받기도 한다.

"그게, 그렇게 됐어요."

 

누군가 더 자세히 묻는다면 낯간지러운 대답도 해줄텐데.

 

(각설하고)

 

최근 들어, 떠났다 다시 돌아오는 여행 끝에 내게 필요한 것은 지금까지 쌓아둔 것들을 버리든 잃어버리든 해야한다는 것이었다. 막연히 호주에서 농장 대박이라든지 외국 라이프를 동경해서라기 보단,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정체되고 막막한 기분을 해소해야겠단 다짐 때문이다. 하지만 간절히 바라는 크기 만큼 두려움도 풍선처럼 부풀게 하기 쉬운 나이인가 보다. 스무살 후반이란.

 

그래도 덜 실패할 워홀러가 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생각하던 차에, 내게도 스마트폰이 있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호주에선 통신사 가입없이 선불로 일정금액을 구입하면 쓸 수 있고, 일자리를 구할 때 내 연락처가 필요할텐데 지금 갖고 있는 폴더폰으로는 그런 사용이 어려울 거란 판단이 들어서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아이폰4를 가져오라고 요청했다. 그의 아이폰4는 액정 모서리에 금이 가기 시작하다, 결국엔 처참하게 상처가 나고, 액정 화면은 금방이라도 생명줄이 나갈 듯한 위태로운 모습이었다. 핸드폰을 수리하는 대신 아이폰5로 갈아탄 그에게 4는 더이상 필요하지 않았다.

 

집 근처 가까이 아이폰 서비스센타가 있어 찾아갔더니, 액정과 홈버튼을 새 것으로 바꾸는데 생각보다 돈이 많이 들진 않았다. 3,4년 되어가는 폰을 수리했더니, 그새 멀쩡한 상태로 탈바꿈을 했다. 오아우.

비포 사진이라도 찍어둘 걸 그랬다.

 


남자친구는 액정이 마구 금갔던 스마트폰이 다시 새 것이 되었다고 좋아했고,
나는 스마트폰을 새로 산 것 마냥 좋아라 했다. 스마트폰을 처음 개통한 초딩처럼 기뻐 했다.


남자친구가 갖고 있는 아이폰5가 날씬하고 키가 커서 훨씬 섹시하지만 이제 내 손에 들어온 아이폰4의 포동포동한 신체에 익숙해질 시간이다.

 

아이폰4를 초기화시켰더니, 앱스토어에 들어서 원하는 어플을 다운받으려 해도 ios를 최신버전으로 업데이트해야만 했다. 운영체제 업데이트를 하면 오히려 폰이 느려진다는 얘기를 주변에 들었어서, 업데이트를 하면 안될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업데이트를 하지 않으면 내가 사용하고자 하는 어플을 다운 받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업데이트를 설치했더니, 다행이도 사용하는데 속도가 무지 느리거나 하는 것은 없었다. 깔아둔 어플도 별로 없고, 사용량도 별로 없어서인가보다.


새로 생긴 스마트폰, 5년째 되어가는 폴더폰.


사실 '나도 스마트폰 생겼어요.' 라는 단순한 기념을 하기 위해 쓰기 시작한 글인데,

생각이 너무 넘쳐 쓰다보니 글이 한바닥이다.

머릿속엔 이것 외에 다른 수다거리가 넘치고 있는 와중에, 지금 생각나는 것들을 풀어내지 않으면

나의 뇌회로들이 꼬이고 꼬이다가 부패해질 것이므로, 우선은 다라락 드르락 자판기를 두들기고 있다.

 

글을 쓰면서 여러가지 질문과 생각들이 쏟아져나온다.

 

'난 남들과 달라.' 라고 했지만 전혀 남들과 다르지 않는 나였고. 오히려 보통의 사람들과 비슷해지고 싶어했던 욕구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있다. 아이폰4, 중고폰이지만 그래도 새 것 같다며 아이처럼 좋아하던 내 모습이 연기가 아니라 진심이었으니. 내 본래 마음은 이랬구나. 싶다. 나, 그동안 많이 부러웠었구나. 스마트폰이 갖고 싶었구나. 인정, 인정.  

 

스마트 기기 사용 전의 생활 방식과 스마트 기기 사용하고 있는 지금의 생활 방식에 대해서도 비교해본다. 스스로 스마트 사용에 대한 작은 규칙과 원칙을 세워두지 않는다면, 우리의 정신이 스마트기기의 ios에 잠식당하는 건 아닌가 싶다.

 

나만의 생각일까. 심심하다는 이유로 스마트폰 이것저것 눌러보다, 내가 주변 사람들의 얼굴을 유심히 쳐다보는 것보다 핸드폰의 액정을 더 자주 보는건 아닌지, 내가 사람들과 친하기 보단 ios와 더 친한건 아닌지 하는 생각 말이다.

 

'하루쯤 스마트 기기 끄기'라는 것을 해보려고 했지만, 우선은 작은 단계부터 실행해야겠단 생각도 든다. 집에다 고이 모셔둔 iptime을 계속 켜놓고 있기 보단, 쓰지 않을 땐 콘센트를 빼두는 것부터 해서 "always wifi available" 상태를 벗어날 필요성을 느낀다.  

 
작은 액정 화면을 통해 세상의 뉴스와 갖가지 소식들을 접하는 것도 좋지만, 지금 이 순간에 내가 볼 수 있는 풍경들과 느낌들을 제대로 살펴보고 있는지도,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원래 쓰고 싶었던 첫 문장이자, 끝 문장

 

 

나에게도 (드디어) 스마트폰이 생겼지만, 개통은 하지 않는다. 그래서 난 여전히 2g 사용자. 그리고 될 수 있는 한 이렇게 지내는 것도 나쁘지 않다.

 

 

 

+PLUS

어쩌다보니, 스마트기기 이용에 대한 나의 생활 습관과 태도에 대해서 반성하는 쪽으로 글을 쓰게 됐다. 원래는 어제 다 써야했을 글인데, 뉴스를 통해 알게 되는 우울한 소식 때문에 잠시 침체됐었다. 사실 이런 글을 쓰기 보단 당장 애도하는 글부터 썼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세월호 현장 지원하다 집으로 돌아가던 중 헬기 추락 사고로 운명을 달리하신 소방대원들의 안타까운 소식에 울지 않을 수 없었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 요구하던 분도 계셨다. 자신의 생명을 담보로 희생을 마다않는 이들에게, 노동의 댓가와

사회적 인정은 합리적인 수준으로 향상되어야 하는 것이 마땅하다.

 

국민의 생명을 담보로, 국가의 안위를 담보로 고위직에 있는 이들이 자신들이 얻는 권력과 노동의 댓가에 비해 얼마나 제대로 일하는지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요즘 대한민국의 정국. 이 와중에 불운의 사고로 유명을 달리한 소방관들의 죽음이 너무도 슬프다. 사고원인규명이 잘 밝혀졌으면 좋겠다. 그리고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 또한 쟁취됐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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