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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Sleepless days n nights

3. 배낭여행자의 낭만과 자만사이 (영국 첫날)

Yildiz 2012. 2. 25. 23:18



어설픈 혹은
어리버리한 배낭여행자의 낭만과 자만사이



새벽에 이스탄불 공항에 도착해서 2시간 정도 대기 후, 런던으로 오는 비행기로 환승했다. 터키는 다시 오겠지만, 오랜만에 듣는 터키어와 터키어로 쓰여진 광고들이 왜 그리 반갑고 흥미진진하던지!

나, 정말 영국 가는 거 맞나?
여전히 어리둥절해하기도 하고, 감탄하기도 하고.

영국으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피곤해 돌아가시는 줄 알았다. 더 피곤한 건 히쓰로 공항의 입국 심사대.
1시간도 넘게 서서 기다리는 일은 정말 진 빠지는 일이었다.



Heathrow Terminal 지하철에서



여행 가기 전에 친구가 물었다.
"너, 핸드폰 로밍해가니?"
"아니, 아예 안 가져갈건데."

요즘 한국인 여행자들 대부분이 갖고 다니는 스마트폰은 커녕
넷북도 들고 다니지 않는, 시대에 못 맞춰 노는 배낭여행자. =ㅅ =!!
어쩌면 낭만이고, 어쩌면 자만이고.

배짱이라 해야하나, (그것도 똥배짱)
안일함이라 해야하나,
초긍정주의의 극치라 해야하나.

사실 스마트폰, 넷북이 없기도 하다. ; )

나에게 있어 해외여행을 떠난다는 건,
지내던 곳의 인연과 집에 쌓아둔 모든 소유물은 내려놓고 떠난다는 것과
같은 의미라서 불필요하게 간섭받고 싶지 않은 마음도 컸다.

일상이다 못해 거의 중독이 되어버린 인터넷 기기와 휴대용품에서
잠시 멀어져 여행하는 것도 필요하단 생각에 굳이 가져갈 생각도 없었다.

그리고 3년 전에도 난 그렇게 여행했었으니까.




영국 첫 날,
신고식을 제대로 하다.


내가 영국에 오게 된 이유는, 3년 전 스페인에서 만났던 캐런을 만나기 위해서다.
단 하루, 짧은 시간 동안 만남이었지만 그녀와의 대화는 지금도 잊혀지지 않을 정도로 강렬한 무엇이었고,
그때 미처 다 듣지 못했던 그녀의 이야기가 여전히 궁금했고, 그녀와의 만남을 기다려지게 했다.

런던에 도착해서 바로 그녀를 만나러 가게 될지,
그녀가 내 연락을 받고 런던으로 오게 될지 정확하게 정해진 약속없이
7월 24일 일요일 오전
런던 빅토리아역에 도착했다.

5파운드로 공중전화 카드를 한 장 사서, 캐런에게 전화를 했다.
캐런에게 전화가 닿는 데만 해도 은근 시간이 걸렸다.
처음에 시도한 공중전화기에 뭐가 이상이 있었는지, 아님 내가 뭘 잘못 했는지
전화 거는데 번번히 어려움을 겪다가 겨우 전화가 걸린 것이다.

캐런은 몸이 좋지 않다고 했고, 나의 휴가가 최우선이라며 런던 관광을 잘하라고 한다.
아차, 난 나의 영국 방문 의도를 그녀에게 제대로 알렸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캐런에게 내가 영국에 온 이유는 당신을 만나기 위해서라며, 괜찮다면 내일 아침 바로 찾아가겠다고 말하자,
캐런은 버스표를 사면 다시 연락달라며 전화를 끊었다.

친구가 몸이 안 좋다고 하니
영국에 도착한 첫날부터 무작정 찾아가서 몸을 기대는 것이 예의는 아닌 것 같고.

어떻게 될 일정일지 몰라서 무턱대고 몸만 오는 것보다는
우선은 숨 돌릴 수 있는 곳 하나는 예약하고 왔어야 했는데, 내가 잘못 생각했다.

다른 곳 숙소는 다 예약하지 않더라도, 여행지 첫 숙소는 예약하고 가야한다는 것만은
익히 들어 알고는 있었지만, '정말 내가 무대뽀로 여행왔구나' 뒤통수를 친건 그 다음에 일어났다.

눈여겨봤던 호스텔을 어찌어찌 찾아갔지만,
오늘은 꽉 찼다고 한다.

이럴수가.
눈앞이 컴컴해진다.

호스텔 직원은 내가 가여웠던지, 옆옆 건물에 있는 곳에 가서 자기 소개로 왔다고 하면 좀 싸게 해줄거라고 알려줘서 찾아갔지만 하루에 100파운드라고 하는 곳에서 도저히 머물 수는 없는 일이었다.

다시 공중전화박스로 가서 한인민박집에 전화를 걸어보지만, 3년전에 산 가이드북 오려온 거라서 전화번호가 맞는지도 모르겠다. 개중에 딱 한 곳만 연결이 됐는데, 만원이라고 한다.

처음에 전화카드를 샀던 인터넷 카페로 와서 한인민박을 알아보려했으나, 컴퓨터에 한글이 깔리지 않은 터라 웹사이트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결국은 빅토리아역에서 가까운 호스텔 하나를 찾아 주소를 적었다.





Coach Station 을 지나서 찾아가야 하는 길인데,
도무지 터미널 같은 거라곤 찾아볼 수 없는 길을
무거운 배낭을 메고 하염없이 걷는다.

워낙 관광객들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 그런지 길가에 이정표와 지도가 설치되어 있어서
계속해서 들여다 보지만, 내가 가야할 곳의 위치는 도통 감이 잡히질 않는다.

길과 길이 이어져 만들어내는 골목마다
호기심을 일게 했고, 오랜만에 메는 배낭은 점점 무게가 죄여오지만.

길을 헤매며 걷는 순간들은
예전의 기억들과 감정을 되살리기엔 충분하다.

난 정말 배낭을 메고 걷는 걸 좋아하구나,
왜 이걸 그동안 참고 있었던 거지?


 


정체없이 돌아다니면서 여러 사람들에게 길을 물어보았지만, 호스텔까지 어떻게 가야할지 정말 모르겠다.
그러다가 택시기사를 발견하곤, 길을 물어보니 내가 가야할 곳은
지금 걷는 방향 말고 정반대 방향으로 가야하는 것이었다.
 
스스로를 달래서 겨우 원점으로- 빅토리아역으로 돌아와서
결국엔 택시를 탔다.

택시기사는 왜 이런 가까운 곳을 걸어가지 않냐는 눈치를 주었지만,
난 뭐라 설명할 힘조차 없었고, 어떻게든 호스텔에 가기만 하면 된다는 체념 상태였다.

택시비 거스름돈을 제대로 받은 건지, 가격이 맞는 건지 확인할 겨를도 없이
호스텔 리셉션으로 들어와 드디어 침대 하나 얻었다.

침대를 하나 얻었다는 기쁨보다는,
택시비로 홀랑 날아가버린 돈이 아쉽기도 하고,
아직까지 영국 동전은 다 그게 그거인 것 같아서 정신이 황망하기도 하고.

아찔한 것은 도미토리 방까지 올라가기 위한 계단이었고,
나를 더 절망케한 것은 천장 가까이에 있는, 3층 침대였다.

63빌딩처럼 높아만 보이는 침대로 감히 올라가지 못하고
난 배낭을 바닥에 던져놓곤 넋이 빠진 채 한동안 가만히 앉아 있었다.





겨우 정신을 차려 침대 위로 올라가 잠시 눈을 붙였다가 일어났다.
생각해보니, 아침에 비행기 안에서 기내식 먹은 것과 거리에서 레몬에이드 마신 것 이외에 제대로 먹은 게 없다.
먹지도 않고 돌아다녔다니, 나도 참 끈질기다.
 
뭐라도 제대로 먹고 자야 낼 움직일 수 있을 것 같다.
우선 버스터미널에 들러서 낼 친구에게로 갈 버스표를 사고,
넋빠진 영혼을 위로할 겸 빅토리아역으로 와서 커피를 하나 사 마셨다.





대충 뽑은 커피, 유리잔 바닥에 둥둥 떠다니는 커피 찌꺼기...
이 대충 뽑아 만든 라떼를 잊지 않겠다.
툴툴 대면서도 아깝다며 커피는 다 마신다.


저녁은 뭘 먹을까 고민하다가,
낮에 호스텔 찾을 때 돌아다니면서 눈여겨둔 바를 찾아왔다.





텔레비전에는 연신 스포츠 경기가 방영되고 있고, 혼자 혹은 친구들과 맥주를 마시는 곳.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는 모르겠지만, 실내 장식이 마음에 들었다. 바닥에 깔린 오래된 카페트도.





창가쪽에 자리를 잡고, 오늘의 메뉴 중 양고기를 골라시킨다.
양고기를 좋아해서라기보단, 양고기를 이런때에 먹지 평소에 한국에선 못 먹으니까. ㅎㅎ


home cooked lamb + lemonade



너무 맛없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푸짐하게 나와서 만족.
그러나 다 못 먹고 나와서 아쉽다.
교정하고 있어서 고기가 어금니 사이에 끼니 많이 먹기도 힘들군... ㅠㅅ ㅠ





시차적응 할 틈도 없이 하루가 마무리져간다.
아침부터 돌아다닌 걸 생각해보면, 하루가 참 길게 느껴진다.

낮에는 택시를 타고 온 거리를, 홀로 걷자니.
기분이 묘하다.

나, 여행 온 거 맞지?
아직도 정신이 얼떨떨해.




'나 왜 이러냐-
왜 이렇게 바보 같지?'
스스로에게 갖은 구박과 타박이 오간 하루이지만

다이어리에 쓴 것처럼,

Be Optimist!
Be Positive!

오랜만에 하는 배낭여행,
영국에서의 첫날.

배낭여행의 낭만을 되살리기도,
자만을 배우기도 충분했던 하루.


(2011년 7월 24일)





p.s.


#1.

과거를 솔직하게 들추어 내보이자니
부끄럽고, 눈물겹고,
사실대로 쓰자니, 나 바보 같고.

왜 그렇게 안쓰럽게 여행 했나 싶지만

이제와서 돌이킬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내가 배워야했던 경험이라고 여기기로 한다.
그래서 난 더 지혜로워질 수 있는 거겠지.


#2.

무대뽀처럼 다니는 여행이 남들에겐 조금 모자라보이고
비웃음을 살진 모르겠지만,

굳이 남들 가는 곳을 찾아가지 않고,
가이드북만 믿고 다니는 여행을 하지 않고
누구나 다 아는 정보를 모른 채 하는 여행이더라도

낯선 곳에서 내가 온전히 겪을 수 있는 경험들을
난 무지 사랑한다

그러니, 길바닥에 쏟은 시간과 땀과 눈물이
결코 아깝지 않다.
그만큼 배워가니까.


#3.

그래서 내가 이 날 배운 교훈.

*관광안내소 눈 앞에 두고, 엄한 곳 헤매지 말자.
*모르면 무조건 물어보기- Coach Station 이 버스터미널이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이 생소한 영국어휘-_-!!
*이 길이 아닌 줄 알면 포기는 빨리 하시지.
*혹시 모를 일이니까 다방면으로 고민하기.
*여행 첫날은 피곤하니까 무조건 숙소 예약!
*남한테 덕 볼 생각하지 말고 스스로 고민해.
*적극적으로 물어보기. 앞뒤 재지 말기.
*정말 다양한 방법들이 많은데 스스로 가능성을 좁게 생각하고 있는건 아닌지?

아.. 잊지 말자.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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