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힘내자, 청춘!

[까미노 이야기 7] 순례 6일째, 공짜 와인, 욕심부리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7] 순례 6일째, 공짜 와인, 욕심부리다

Yildiz 2009. 5. 5. 11:47


물 건너간 코리안 바베큐...
 2008년 5월 29일

"Breakfast free!" 아침 식사 무료인 알베르게라, 아침 일찍 일어나 부엌으로 가서 빵과 비스킷에 버터와 잼을 듬뿍 바르고, 커피도 재빠르게 한잔. 배불리 먹고 길을 나선다. 
어제 성당에 가보고 싶었지만 문이 닫혀있어서 아쉽게도 방문하지 못했다. 아쉬운 마음에 사진에 한 장 담아놓는다.

Estella 의 성당


새벽같이 핀 꽃들이 나를 반겨주네~!! =)


한자 스티커가 반가워서 찰칵!


길가에 세워진 차를 보곤, 잠시 피식 웃는다. 차 주인은 저 한자들이 무슨 뜻인 줄 알고는 차에 붙여놨을까? 참... 한자권 사람들이 보면 어떤 생각을 하려나? 내가 봐도 좀 당황스러운데. 히히히.

(나중에서야 접하게 된 사실이지만, 서양사람들이 은근 한자 문신을 좋아한단다. 어떤 여자는목 쪽에다가 '女(계집 녀)' 자를 새겨놓지 않나, '愛(사랑 애)' , '氣(기운 기)' 를 팔뚝에 새겨논 남자들도 많이 봤다. 음... 뜻을 알고나 하는 걸까. -ㅅ-? )


오늘은 말로만 듣던 이라체 수도원을 지나는 날! 와인이 나오는 수도꼭지를 개방해놓아 누구나 마음껏 마실 수 있다는 그 곳!
멀리서 와인과 Irache 가 적힌 간판이 보인다. 이렇게 빨리 오게 될줄은!


와인을 페트병에 담는 순례자, 기념촬영을 하는 순례자들로 북적북적. 나도 0.5ml 페트병에 와인을 담았다. 보통 마시는 와인보다 조금 묽은 것 같지만, 포도주를 잘 못 마시면서도 많이 담았다. 아직 갈 길은 많이 남았는데 욕심 부리는 이 아가씨. 공짜니까 뭐 어때. 공짜 와인을 마음껏 즐겨야지! 


뒤쪽에 CCTV를 발견했다. 아마도 큰 통에 와인을 채워가는 주민들을 감시하려는 건지도 모르겠다.  ㅎㅎ


이 곳에서 머뭇거리던 사이에 어느덧 마르코스가 나를 따라잡았다. 마르코스 기념사진도 찍어주고, 함께 길을 걷기 시작했다.
길을 가다 홀로 걷는 순례자에게 인사를 했다. 나와 비슷한 또래로 보이는 이 아가씨는 프랑스에서 왔단다.


까미노 시작하기 전에 프랑스 파리에 있다 왔다며 내가 말을 걸었다. 이것저것 얘기하다, 에디트 피아프 박물관을 가고 싶었는데 못 찾았던 게 생각났다.

"에디트 피아프 노래 아는 거 있어? 한 번 불러줄래? "

나의 부탁에 몇 곡 불러주는 프랑스 아가씨.
불어는 당췌 모르겠지만, 참 발성이 아름다운 언어인 것 같다. 더군다나 에디트 피아프 노래가 아닌가. 참 좋쿤앙 >ㅅ <!!!


언덕을 올라 어떤 건물을 발견했는데, 속을 들여다보니 물이 차 있다. 안내 표지판도 없고, 그저 궁금증만 자아내게 했던 이 곳...

뭐하는 곳일까나?


잠깐 쉬다가 길을 나서는 데 저 쪽에서 반가운 얼굴들이 보인다. 박진순 부부님이시당.
인사를 하고 마르코스와 길을 나섰다.

저~기 오시는 박진순 부부님.




.

 

오래되어 보이는 성당. 문이 닫혀있어 못 들어갔다.

 

마르코스, 여기 보삼!


앞으로 펼쳐져있는 길은 한적한 시골 길. 포도밭을 따라 걷는 조용한 자연. 맑은 공기, 푸르른 잎들을 보며 걷는 길은 순간순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드넓은 하늘을 가로막는 높은 건물도, 시끄러운 소음도 없는 이 길 위에는 과거도, 미래도 아닌 현재의 순간만 존재할 뿐이다.

내뱉고 들이마시는 숨, 서두르지 않고 걷는 걸음과 몸의 리듬에 익숙해질 수 있는 시간.

오른쪽 다리의 통증이 신경 쓰여서 무리하게 걷지 않다보니 마르코스와의 사이가 벌어진다. 같이 나란히 걸으며 가자니, 통증이 더 심해질지도 모를 생각에 무리하고 싶지가 않다. 마르코스에게 먼저 가라고 말할까 하다가, 선뜻 말하진 못한다...
묵묵히 걷는 이 길.
너른 들판만이 끝없이 펼쳐져있다.


앞에 놓은 까미노 길과 마르코스와 나의 그림자.


편하게 앉아 쉴 바(Bar) 조차 찾기 힘든 이 길. 배낭의 무게는 무게대로 나를 짓눌러오고,
무리하게 많이 담은 와인은 출렁거린다. 인공화장실 찾기 힘든 길에서 어찌 와인을 대놓고 마시랴. 와인은 내게 물이 아닌 엄연한 술인데 말이다.
욕심만 과한 탓에 배낭의 무게만 늘었다. 그렇다고 공짜로 얻은 와인을 길가에 버리기는 아깝다. 알베르게에 도착해 한가하게 와인을 즐길 상상을 하니, 버릴 생각일랑 어디 들겠나. 아암, 그러면 안되지! 
 


코너를 돌아, 언덕을 넘어 무엇이 펼쳐져 있을까?
궁금해다가다도 마침내 다다른 그 언덕위에서 다시 끝없이 펼쳐진 들판을 발견하고는
약간의 허탈감도 들지만, 다시 저 편 너머에 뭐가 있을지 궁금해하며 길을 간다.

그리고 흥얼거리며 부르는 노래 한 자락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며~
(중략... ㅎㅎ)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김동률의 "출발" 을 부르며 새로운 날을 축복하고, 감사한다.

하루의 또다른 시작이 이어져 완성되는 까미노의 순례.
그 시작은 매일같이 새로운 시작이다.

잠시 쉬어가는 순례자. 폴란드 자매.


반가운 얼굴이 또 보인다. 박진순 부부님. 경치 좋은 자리에 앉아 편히 쉬고 게신다. 신경희 님은 발바닥이 괜찮으실런지. 어제 본 물집들이 생각난다.


마르코스와 길을 가다보니 앞서 간 순례자들을 하나 둘 씩 추월하여, 이번엔 테디 베어 할아버지를 만났다. 어떠냐고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함께 길을 걷는다.
마르코스는 베어 할아버지와 얘기하며 걷고, 나는 테디 할아버지와 얘기를 하며 걷는다.

마르코스는 마르코스 속도 대로, 나는 내 속도대로 걷다보니 조금씩 간격이 생긴다.
그런데 길을 가다 생각지도 못한 걸 발견했다!

나를 반겨준 "맑음"


나보다 앞서 걷는 한국인 순례자가 돌로 표시를 해논 모양이다. 
"테디, 이게 한국어에요!"

길 위에서 웃는 해님에 나도 덩달아 미소를 짓게 된다. 사람은 자기가 의도하지 않은 감동을 남에게도 줄 수 있는 것임을... 비록 그게 사소한 것이라도 말이다.

누군지 모르지만 감사하다고 전하고 싶다. 부엔 까미노 하시기를!
 


테디 할아버지도 잘 걸으셔서, 나는 좀 더 천천히 가겠다고 말하고는 나의 속도를 유지했다. 
앞서 가는 테디 할아버지. 마르코스는 이미 점이 되어 보이지 않는다.


간단하게 먹을 걸 미리 준비해서 오지 않았다면, 걷는 내내 굶주리고 목 말랐을게 분명하다. 슈퍼 하나 없는 오늘의 길. 보이는 건 녹색 뿐인데, 마을은 어딘가 있긴 있는 걸까.
어라, 저 멀리 하얀색 캠핑카가 있다!! 누굴까??   


테디 베어 할아버지와 마르코스는 이미 이 곳에 도착해 티 타임을 갖고 있었다. 내가 오자 반겨주는 영국 할아버지, (이름은 까먹었다.) 왠지 책에서 뵌 것 같다. 김효선 씨 까미노 책에서... 매년 이 곳에 있냐고 물어보니, 2년 전에 오고 작년에는 안 오셨단다.


순례자에게 차를 대접해주시고, 잠시 쉬어가게 하는 길 위의 바(Bar). 참 좋은 생각인 것 같다. 온종일 등짝에 붙어있던 배낭을 바닥에 내려놓고 (아, 홀가분하다!!)

"Tea or Coffee?" 의 할아버지 말에

차를 달라고 부탁했다. 캠핑카 밖에 있는 탁자에는 알베르게 정보 리플릿 뿐만 아니라, 각종 약품들과 선크림도 있다. 그야말로 길 위의 천사를 자청하신 분이로군! 
마르코스가 왜 천천히 왔냐고 물어보자.
"음, 테디랑 얘기하느라, 불라불라..." 어물어물 거렸다.

영국 할아버지는 한 컵 가득 차를 내오셨다. 헉. 화장실도 못 갔는데, 이걸 다 마셨다간 길 위에서 실례를 해야할지도 모를 일이다. 그래도 성의를 생각해서 다 마시고 싶었지만 뜨거워서 반 틈밖에 못 마셨다. 할아버지의 친절에 거듭 감사함을 표하고 마르코스와 길을 나섰다.
테디 베어 할아버지는 더 쉬다가 오실거란다.


또다시 구불구불 시골길이 끝없이 이어져있다. 그래, 한걸음 한걸음 가다보면, 언젠가 마을이 나오겠지.




테디 베어 할아버지!!


한참 지났을까? 뒤를 돌아보니 테디 베어 할아버지도 저기서 오신다. 나이 드신 분들이 정말 잘 걸으시는 것 같다. 오늘 목표지는 Los Arcos. Los 는 영어의 many 와 같은 뜻으로 '많은' , Arcos 는 '아치'를 의미한다. 아치가 얼마나 많이 있길래??

알베르게에 가기 전에 작은 상점을 발견하곤, 먹을 걸 샀다. 마을의 끝에 있는 알베르게에 도착해서 순례자 숙박 절차를 하고는 배정 받은 방으로 올라갔다. 오~ 그 꾸준한 속도로 잘 걷는 스페인 부부가 이미 와 쉬고 계셨다. 반가움에 인사를 하고, 늘 하던대로 샤워 먼저. 어제는 날이 흐려서 빨래가 제대로 안 말랐는데, 오늘은 햇볕이 잘 드는 날이라 빨래가 잘 마를 것 같다.

어제 산 초콜렛이 생각나서 다 먹어치워 없어지기 전에 기념촬영을 했다. 옆 침대에서 주무시는 프랑스 아주머니들에게도 한 조각씩 드리고, 나도 한 조각 먹고.

Estella의 어느 상점에서 산 '특별한' 초콜렛!


마르코스가 마을을 둘러보지 않겠냐고 해서 함께 밖으로 나갔다. 아까 알베르게 주인이 우리들 보고 커플이냐고 해서,,, 실소를 한 게 생각이 난다. 음... 거리를 두어야겠군!!

마을의 성당이 있는 광장으로 와서 박진순 부부님을 만났다. 오늘 묶는 알베르게에서도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 있어서, 오늘은 고기 요리를 해보자고 제안하신다.
와우, 당연 좋지요! 한국의 고기 요리라는 말에 마르코스도 솔깃 한 것 같았다.

하지만 조그만 마을에서, 조그만 상점에는... 우리가 원하는 그런 고기가 없었다. (절인 하몬만 있었지요... 이미 다 팔렸다고 한 것 같다.) 상점 주인과 말이 안 통해서 마르코스를 불러 대신 통역을 해달라했지만...
마침 시에스타 시작이라 문을 닫아야 된다며 빨리 나가라하는 건 또 뭔가.
할 수없이 오늘의 메뉴는 수제비로 급 대체 되었다. 흥.




시에스타 시간엔 알베르게에서 쉬다가, 끝날 때쯔음 다시 나와서 마을을 둘러보고 우표를 몇 장 사고 전화카드도 샀다. 오랜만에 집에 전화도 하고, 여행하면서 엽서를 보내주겠다며 친구들 주소를 적어온 터라, 몇 명 골라 편지를 쓴다. 여행 오기 전 헤어진 이에게도 마지막 엽서를 썼다. 아직 정리되지 않는 마음과 이 허탈감은 또 뭔지. 다소 심각해지고 우울해진다. 

우체통을 찾아 엽서를 넣고, 재빨리 알베르게로 향했다. 부부님과 저녁 식사 준비하기로 약속한 시간이 훨씬 지났다. 아이쿠.
알베르게에 도착하니, 이미 거의 다 음식을 만드신 상태. 아, 늦어서 죄송합니다... 꾸벅.
마르코스는 같이 안 왔냐고 묻는 말씀에,
마르코스는 브라질 친구와 식당에서 먹기로 했다고 알려드렸다. 
 
어제의 시끌시끌한 분위기와 달리, 오늘은 조용해서 왠지 음식 맛도 조용하다~
어제 내 고추장 튜브를 다 쓴게 마음이 쓰이셨는지, 부부님께서 가지고 계신 고추장 튜브를 하나 주신다. 내 것보다 더 큰 사이즈다.
"정말 고맙습니다!"
항상 내게 많은 걸 베풀어주시는 박진순 부부님..

이 마을의 성당 내부가 참 좋다고 들었다며 신경희씨가 꼭 한번 보라고 하신다. 마침 미사시간이어서 부인님과 함께 성당으로 갔다.


이미 미사는 진행중. 조용히 뒤쪽으로 가 성당 안을 천천히 구경했다. 와, 금으로 빛나는 구나. 미사는 처음 와보는 거라, 딱히... 어떻게 진행되는 건지 모르겠어서 (스페인어로 진행되는 거라) 중간에 나왔다.

마을은 조그맣지만, 성당은 참 찬란하구낭!

알베르게로 돌아와 내일은 어디까지 걸을 지 찬찬히 자료를 살펴본다. 하루 걷는 양이 몸에 무리가 가지 않게 적당해야하지만, 조금 큰 도시나 머물고 싶다고 느껴지는 마을을 목표지점으로 염두해두기도 한다.

내일은 어디까지?!

걸을 수 있는 데까지! ㅎㅅㅎ!




오늘의 코스>_ <!!

Estella - Ayegui - Monastery of Irache - Azqueta - Villamayor de Monjardin - Urbiola - Luquin - Los Arcos = 21km

숙소 4 유로, 엽서 0.8 유로, 우표 1.56 유로, 군것질 ?? = 6.36+?? 유로  



오늘의 받은 스탬프들~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