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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9] 순례 8일째, 마르코스는 어디에??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9] 순례 8일째, 마르코스는 어디에??

Yildiz 2009. 5. 10. 16:50


코리안 바베큐를 먹다! 2008년 5월 31일 토요일

알베르게(순례자 숙소)는 모두 도미토리다. 같은 가격에 어떤 숙소는 한 방에 침대 3~4개 인 곳도 있는 반면, 어떤 곳은 큰 방에 침대가 모두 100개인 곳도 있다. 오늘은 큰 방에 침대가 100개인 숙소에서 묶을 예정이다. 어제 오늘 나름 강행군...=ㅅ =;; 

 해가 머리 위에서 내리쬐어는 한낮을 피해 걷기 위하여 일찍 일어났다. 조용히 배낭을 꾸리려해도, 부시럭거리는 소리는 다른 순례자들의 단잠을 방해하곤 한다. 그래서 왠만하면 배낭을 방 밖에 나가서 꾸리는 게 좋다. 아직 피로가 덜 풀린 순례자를 위하여.

방 밖으로 나가 짐을 싸다가, 문득 한국에서 사온 천원짜리 후레시가 생각났다. 막상 쓰지도 않고, 짐만 되는 것 같아서 알베르게에 있는 의자 위에 올려놓았다. 아차, 건전지도 함께 버려야 필요한 사람이 바로 쓸 수 있겠지? 실상 이들의 무게는 얼마 나가진 않겠지만, 무언가 하나 짐을 덜었다는 것에 마음이 더 가벼워졌는지, 배낭 무게가 훨씬 줄어든 기분이다. 

새벽길이 어둡다. 도로는 지나가는 자동차 하나 없이 고요하다.




새벽하늘을 반사하는 강의 수면. 참 아름답고나.


축축한 나무숲 길을 가는데, 자그마한 생물체 발견! 청둥오리 비슷한 과인것 같다. 갑자기 오리탕이 떠오르는 건 뭘까.

난 열심히 걷는 다고 걷는데, 나보다 더 잘 걷는 순례자 몇몇이 나를 추월한다. 연세 있으신 분들이 참 체력도 좋으셔. 나도 나이 먹어서 저렇게 정정했음 좋겠다만. 

프랑스에서 온 순례자들.



두 명의 프랑스 여인들은 Los Arcos 에서 본 분들. 영어를 할 줄 모르셔서, 그저 인사만 했다. 어느덧 걷다보니 이분들이 나를 앞질러 걷는다.



저기 마을이 보인다! 얏호!

새벽이라서 흐리거니 싶었는데, 시간이 지나도 하늘이 무겁다. 비가 올 것만 같다.


금방 다다를 것 같았던 마을이 40분을 넘게 걸어도 보이지 않는다. 뒤따라 오던 프랑스 할아버지는 벌써 길을 되돌아갔나보다. 프랑스 아주머니들과 나는 갈림길에서 길을 잘 못 선택한 것. 아휴, 일찍 일어나 거의 1등처럼 걸었는데...
잘못 온 길을 되돌아가려니 힘이 빠진다. 흑흑...

프랑스 아주머니들은 나보고 자기네를 따라오란다. 꼭 되돌아가지 않아도 길이 있겠지? 여기도 사람 사는 덴데, 모든 길은 다 통해있을거야. 운 좋게도 현지 주민을 만나 아주머니가 길을 물었다. 알려준 방향 대로 좀 걸었을까? 아까 잡힐 듯 말 듯 보였던 마을이 다시 눈앞에 나타났다. 어이쿠.

잠시 쉬었다 가는 순례자들이 보인다. 성당에 혹시 스탬프가 있을까 해서 들어가려는데, 이 곳엔 스탬프가 없다며 스페인 부부께서 알려주셨다. 호기심에 한번 들어가봤는데, 너무 어두워서 내부를 제대로 볼 수 없었다는...

성당 내부


브라질에서 온 순례자를 발견하고는, 마르코스를 봤냐고 물어보니 못 봤다고 대답한다.
이미 이 곳을 지나고도 남았는데... 오늘은 늦게 출발을 했나? 어제 잠자기 전에 마르코스 침대로 갔지만 자리가 비어 있어 오늘 어디까지 걸을 건지 물어보지 못했다.
걷다보면, 어느새 마르코스가 나를 따라잡겠지?

몇 일간 함께 걷고 수다를 떨던 친구가 옆에 없으니 외롭다.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은 마르코스는 저 멀리 앞을 봐도, 뒤를 봐도 보이지 않는다.

하늘이 점점 더 무거워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가늘게 내리는 비는 나헤라에 거의 도착 했을 무렵엔 쏟아붓듯이 내린다. 
 
알베르게가 어디 있는지 몰라 잠깐 헤매다가 도착했다. 이미 도착한 순례자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중이다. 혹시 마르코스가 이미 도착했나 싶어 둘러봤지만 없네. 나는 너무도 피곤하여 우비를 입은채 앉아 기다렸다.

순례자 협회에서 운영하는 이 알베르게는 기부제다. 큰 방에 침대가 100개... 바로 씻자니 샤워부스는 적고 해서, 침대에 침낭을 깔고 쉬는데, 박진순 부부님을 발견했다. 반갑게 인사하며 이야기 하다가, 오늘 저녁에 고기를 구워먹자고 제안하신다. 당연 좋지요!!

비가 내렸다 그쳤다 변덕스런 날씨. 큰 마트로 가서 장을 봐오는데 갑자기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헤라가 흉한 도시 중 하나라는데,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임에도 별로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날씨도 그렇고, 몸도 고단하여 알베르게에서 휴식을 취했다.

"Completo"

알베르게는 만원이 되었지만, 마르코스가 보이지 않는 걸 보면, 오늘은 다른 곳에 갔나보다.
이대로 작별인사도 못하고 헤어지게 되는 걸까? 로그로뇨에서 제대로 인사도 못 했는데, 괜시리 섭섭해진다.

테디 베어 할아버지가 식탁에서 맛있게 체리를 드시고 있는 걸 발견했다. 반갑게 인사하고 얘기하다가, 나중에 못 만날 수도 있을 걸 생각하니, 지금 선물을 드리는 게 좋을 것 같았다.
한국에서 사온 기념품을 따님께 전해달라고 하고, 한국에 오시면 꼭 연락달라며 내 메일주소를 드렸다. 그리고 할아버지 메일주소를 내 일기장에 받고.

좁은 부엌이 북적거리기 전에 미리 요리하는게 좋을 거란 판단에, 쌀을 씻어 냄비를 가스렌지에 올리고 야채를 씻고, 아참! 고추장이 빠질 수야 없지! 배낭에서 고추장 튜브도 꺼내온다.


혼자였다면 이렇게 못 해먹었을 텐데, 부부님과 함께 있어서 참 행운이다 싶다.


피망, 양파, 고기를 한데 불에 구워 접시에 가지런히 놓고, 밥도 접시에 푸고. 식탁에 셋팅 완료! 마침 테디 베어 할아버지가 지나가자, 한국 음식 한번 맛 좀 보라며 권해드렸다.
보통의 유럽 사람들이 하는 요리와 다른 탓에 사람들이 호기심을 가지고 쳐다봤다. 넉넉하게 사와서 좀 나눠먹었으면 좋았을 것을. 정신없이 먹다보니 다른 사람들 줄 만한게 남지 않았다. 
알베르게에서 요리하는 사람들이 많아, 식사를 마치고 자리를 얼른 비워줘야 했다. 누룽지를 해서 먹을 계획이었으나. 어떤 순례자가 안 먹는 건줄 알고 버리는 것을 목격하고는 잠시 박진순님께서 버럭... 하기야, 외국사람들이 누룽지를 어찌 알겠노. 아깝지만 어쩔 수 없었다. ;)

파스 냄새, 여기저기 순례자의 짐들과 비에 젖어 냄새나는 등산화 등의 향기가 섞여있는 알베르게의 방. 오늘은 그 어느때보다 코고는 소리가 많이 들릴 것 같다. 뭐, 그렇다고 잠을 잘 못자는 내가 아니니깐 걱정은 안된다. 걱정되는 건... 친구를 다시 못 만날까봐. 나보다 잘 걷는 마르코스가 저 멀리 날라갈 것만 같다.

내일은 Grañon(그라뇽)까지!! 요 몇일 무리하게 걷는건 아닌가 싶지만, 호스피탈로가 만들어주는 저녁을 한번 맛보고 싶다. 그리고... 거기서 마르코스를 다시 만날 수 있을거란 작은 기대도 품어본다.  


오늘의 코스~ >_  <!!












Logroño - Pantano de la Grajera - Hospital de San Juan de Acre - Navarrete - Alto de San Antón - Poyo de Roldán - Najera

오늘의 지출!

숙소(기부제), 장보기 6.5유로, 빵 0.6유로, 쥬스 0.95유로, 가는 길 슈퍼에서 2.49유로 = 10.54유로

오늘 받은 스탬프!

Najera 알베르게 스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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