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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8] 순례 7일째, 지친다 지쳐!!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8] 순례 7일째, 지친다 지쳐!!

Yildiz 2009. 5. 10. 15:23


이제는 홀로서기 2008년 5월 30일 금요일

오늘 하루는 어제 페트병에 담아 놓고 한 모금도 마시지 않은 와인을 버리는 일로 시작했다.
까미노 순례를 하면서, 필요 이상의 것엔 욕심을 부릴 필요가 없음을 배웠음에도, '공짜' 라는 것에 눈이 멀었었다. 흠, 인간이란...


길을 나선지 얼마 안되서, 파란색 바지를 발견했다.
한창 해가 뜨거웠던 어제의 오후.
순례자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바지를 가지고 내내 걸었는지,
바지가 당신 것이냐는 질문을 가던 길을 멈추고 물어보던 그 여자가 떠오른다. .
결국엔 길 가에 짐을 덜어놓고 갔나보다.


새로운 날의 태양이 밟아온다.
잠시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이 순간 살아있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낀다...

오늘은 일부러 마르코스보다 늦게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지금까지 마르코스의 도움을 받아 이것저것 일을 해결해서 순탄하게 흘러간 것 같다. 앞으로 남은 여행을 하기 위해선, 홀로 감당해 낼 줄 알아야 하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부터는 마르코스의 도움 없이 혼자서 모든 걸 해내야겠다.


가는 길 멈춰서서 뒤를 돌아보았다.
세상을 밝혀주는 해는 묵묵히 외로운 나의 길을 밝혀주는 중이다.


그러고 보니, 까미노 순례를 시작한지 벌써 일주일이 되었다. 시간 참 빨리 간다...
한국을 떠나온 지는 열흘째 되는 구나. 혼자 사색하는 시간이 많다보니, 여행한다는 것에 대해서, 나는 왜 순례자의 길을 걷는 지에 대해서 자주 묻게된다.

까미노 순례를 하고 나서 작가의 길을 걷겠다고 결심했던 파울로 코엘료가 쓴 작품들이 나를 이 길로 불러들었고, 매일 걸으며 이동하고 숙소 값도 저렴하므로 싸게 여행을 할 수 있으며, 다양한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그리고 나를 되돌아보고 내가 진정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다는 바람이 나를 길 위에 있게 했다. 

그래서 아무 생각 없이 길을 걷는 다는 건 고민 없는 순례여정을 한다는 것이므로, 좀 더 생각하고 고민하고 싶은게 내 욕심. 허나, 막상 걷다보면 '그저' 걷고 있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Estella 의 적십자에서 붙인 파란색 테이프는 아직도 오른쪽 뒤꿈치에 붙어있다. 매일 하는 샤워와 매일 걷는 노동으로 테이프가 조금 너덜너덜 해졌다. 테이프가 별다른 약효를 주는게 아니라는 걸 알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발에 쫙 잘 달라붙을 수 있도록 꾹꾹 눌러준다. 다리가 꽤나 아프지만, 그래도 걷는 걸 포기할 정도는 아니다.


평소보다 느린 걸음으로 도착한 Viana. 오늘은 무슨 장날인지, 광장에 여기 저기 천막이 쳐져 있고, 각종 과일과 채소들을 팔고 있다. 힘겹지만 않다면은 과일이라도 살 텐데, 아직도 갈 길이 멀어 그냥 지나친다. 성당을 발견해서 안으로 들어가니, 막 스탬프를 받고 나가려는 마르코스를 만났다. 잠깐 대화를 나누고, 자기는 이미 점심을 먹었다며 먼저 간댄다. 그래, See you!


성당에서 스탬프를 받고 점심을 먹을 만한 곳을 찾았다. 야외에 놓인 테이블은 잠시 요기를 하는 순례자로, 식당 안에는 현지 사람들로 바글바글 하다. 코코아 한 잔을 시키고는, 어제 샀던 빵으로 배를 채운다.


꽤 오래된 도시 같아 보여서, 둘러보고 싶지만 아직 9km 정도를 더 걸어야 한다. 아쉽지만, 최대한 볼 수 있는 만큼 이 도시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걷는다.


어제 묵었던 Los Arcos 처럼 골목 곳곳에 아치가 많이 있다. 특이한 점은 요새처럼 큰 성곽으로 둘러쌓여있다는 점. 순례길에 지나는 곳마다 각각의 개성이 있어, 볼만 한 곳이 참 많이 있는 것 같다.


Viana를 막 나와서


언덕에 지어진 Viena


몇 시간 째 홀로 걷는 중. 뒤따라 오는 순례자가 없다. 음, 오늘 Logroño 까지 걷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미 이 길을 지났나보다. 해가 뜨거운 한 낮동안 걷는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점점 낮의 열기가 뜨거워지는 것 같다. 배낭에 있는 요거트가 따뜻하게 데워질 정도로.


물을 많이 마신 터라 화장실이 가고 싶은데, 화장실을 찾을 수가 없다. 음... 잠시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도 없는 걸 확인하고, 길 가의 풀 속에 들어가서 실례를 했다. 배낭을 내려놓은 김에 잠시 쉰다. 으~ 지친다, 지쳐. 이래서 해가 쨍쨍 찌기 전에 알베르게에 도착하는 게 좋은게다. 태양이 나의 걸음을 더디게 만든다.


비록 덥지만, 넓고 맑은 하늘과 두둥실 떠있는 구름이 참 아름답다.



흙길을 걷다가, 공사 중인 길에 들어섰다. 아스팔트로 도로를 포장하는 공사인데, 흙길을 걷다 아스팔트를 걸으니 다리에 더 무리가 오는 것 같다. 말끔하게 포장된 아스팔트 도로보다 자연 그대로의 길이 순례자에겐 더 좋은데...

저~ 기 도시가 보인다! 만세~!


스페인의 한 낮, 시에스타 시간엔 개들도 낮잠을 잔다.
이런 개들을 보면서 무심코 하게 되는 말.

"개팔자가 상팔자라더니."



로그로뇨에 들어서서 알베르게 화살표 방향을 따라 갔다.
알베르게에 도착! 아직 문을 여는 시간이 아니라 사람들이 정원에서 쉬고 있다. 난 거~ 의 꼴찌로 온 셈이었다. 순례자들이 너무 많아서 온 차례대로 방을 배정받았다. 마르코스는 나보다 훨씬 앞선 번호를 받아 이미 짐도 풀고 샤워도 끝낸 상태. 나와 마르코스는 한 방이지만, 침대는 멀찌감치 떨어져있다.

오랜만에 반가운 얼굴을 만났다! 생장에서 만났던 타이완에서 온 쳉이다! 그때 만났던 한국언니는 어딨냐고 물어보니, 자기도 모른댄다. 그 언니는 천천히 걸어오시나 보다...
이 곳에서 까르푸가 있단다. 먹을 걸 사러 쳉과 함께 거리로 나왔다.


오늘은 전보다 많이 걸은 데다가, 더위에 지치고, 배가 고파서, 까르푸까지 가는 길이 그렇게 힘들 줄이야... 요거트와 빵, 초콜렛을 사고는, 밖으로 나오자 마자 벤치에 앉아 요거트를 물 마시듯 먹었다.

알베르게로 돌아와 쳉은 부엌에서 리조또를 전자렌지에 데웠다. 나는 혹시나 마르코스와 저녁을 먹게 될까봐 먹지 않았다.

레이첼과 나


미국에서 온 레이첼, 오늘이 순례의 마지막 날이란다. 콤포스텔라까지 순례의 여정을 마치지 못해 아쉽지만 일정상 어쩔 수 없다고 한다. 웃음이 많고 유쾌한 친구인데, 그동안 친해지지 못해서 아쉽다며 인사를 했다.


방으로 돌아와서 마르코스를 찾았지만, 밖에 나갔는지 없다. 알베르게 안에서 마르코스를 찾아보았지만 보이지 않는다. 뭐, 할 수 없지. 오늘은 혼자서 먹어야 겠다.

이제 점점 더워지는 날씨도 날씨지만, 오늘은 짜증을 잔뜩 부렸던 것 같다. 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자고, Carpe diem 을 외쳐보자!
좀 웃고, 더 많이 웃고, 좋은 생각만 하고, 앞으로 심해질 더위에 잘 대비하고,

김남희, 김효선의 까미노가 다르듯이 내가 하는 여행도 그 누구와도 같지 않을거니깐.
남하고 비교하지 말고, 나는 그냥 나 인체로 있자.

오른쪽 발이 아픈만큼 파스냄새도 지독한 것 같다.


오늘의 코스 >_ <!!

Los Arcos - Sansol - Torres del Río - El Poyo - Viana - Cuevas - Cantabria - Logroño = 28km

숙소 3유로, 빨래 1유로, 바 2.6 유로, 까르푸 2.3 유로 = 8.9 유로



오늘 받은 스탬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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