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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소한 일상/수다쟁이

살아있는 것에 대한 연민

Yildiz 2010. 6. 27. 20:19
# 장면 1.

내가 대학생 때 3년 내내 살았던 원룸은
여름에 문을 열어 놓지 않는다면 모기 한 마리조차 감히 침투하지 못했던,
아무리 더럽게(?) 하고 살아도 바퀴벌레 한 마리 나타나지 않았던 깨끗했던(?) 곳이었다. 

이번에 이사온 곳은 전에 살던 곳보다 좀 더 아담한(?) 크기의 원룸.
이 정도면 싸게 집 잘 구했다 싶었는데....

이사온 지 일주일만에
부엌 벽에 큼지막하니 바퀴벌레 한 마리가 붙어있는 것이... 왠말!!

으악~~~

집 밖에 주인집 에프킬라가 있음을 냉큼 생각해내고, 무한정 발사시켰다.
푸우욱...

제 아무리 네녀석 다리가 재빨라 도망쳐봐도
살인무기에 당할 수가 있겠느냐~

하지만 문제는 뒷처리.
하아.;;
이때만큼은 잔머리를 굴린다.
'비닐봉지로 요렇게 담아볼까?', '상자에다가 넣어볼까?', '저기 바깥으로 던저서 시체 유기할까나?' .... =ㅅ =;;

그 후로...
일주일에 한 번씩 발견되는 바퀴의 존재는
늘 나를 긴장시켰다.
퇴근 후 집에 오자마자 하는 일이
바퀴가 발견된 장소를 재확인하는 것이었다.  


한 2주 정도 바퀴벌레의 출현이 잠잠해졌다.
이젠 새 보금자리도 나름 쾌적하다고 생각했다. 

그러던 어. 느. 날.

밀린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갑자기 출현한 바퀴벌레!!
수세미 놓는 받침대 밑에 있다가 녀석이 놀랐는지 가스렌지쪽으로 가고 있다.

싱크대에 에프킬라를 뿌리는 게 영 탐탁치 않아,
녀석에게 물로 공격했다. 고인 물에 녀석의 뒷쪽 발이 '미끄덩' 하는 모습을 보자
 
순간,
'그래, 너도 다 살려고 이러는 건데. ' 스치는 생각.


이럴 수가!
스스로 생각한 이 연민에 대해 다시 한번 놀란다.
그렇게 혐오했던 바퀴벌레가 물에 허우적 대는 모습을 보고 연민을 느끼다니.

나,
이제 카프카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 장면 2.

집 앞 전봇대는 늘 그렇듯이 쓰레기가 산처럼 쌓여있다.
일찍 퇴근한 오후,
그 전봇대를 지나치는데 고양이 한마리가 쓰레기봉투를 뜯어 뭔가를 끄집어내고 있다.

고양이만 보면 "습습스스스~ " 하는 소리를 내고 싶은데,
이는 터키 사람들이 고양이에게 하는 걸 배운 것이다.

터키 고양이는 사람들과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달까?
"습습습습습습~" 터키 사람들은 고양이만 보면 저렇게 소리를 내고,
고양이는 아무렇지 않게 다가온다.
터키에는 길고양이가 많은데, 굳이 사람을 피하거나 상관하지 않는다.

하지만 한국의 고양이는 사람들을 상당히 경계하는 것 같다.
간혹 내가 "습습스스스스~" 할 때 눈이 휘둥그레지며 경계하는 눈초리로
소리의 발원지를 두리번 거리는 고양이.

이녀석도 마찬가지로
나의 슶브스스스에 놀랬나보다.

손에 쥐고 있던 과자 하나 던져주고, 집으로 올라가는 계단 중간중간 창가에 서서 고양이를 지켜보았다.
녀석이 내가 준 과자를 먹었는지 궁금하기도 했고,
쓰레기봉투에서 찾고 있는게 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뭔가를 찾아 먹는것 같은데, 가까이에서 보는 게 아니라서
가느라단 휴지 뭉치밖에 볼 수가 없었다.


시대와 공간을 잘 타고나야 하는 건
비단 인간뿐만 아니라 동물에게도 적용이 되는게 아닐까 싶다.

길바닥이 아스팔트와 시멘트로 덮히고, 식물이 땅에 발 붙일 수 있는 공간이 줄어드는 지금.

자유롭게 먹이를 찾을 수 없는 동물들이 불쌍하다.
동물원에서 주어진 장소에 묶여 구경거리가 되는 동물들도 참 안타깝다는 생각도 든다.

그리고...
길이 깔끔해지고, 도시화되었다고 해서
사람도 정말 행복한 건지 묻고 싶다.

바퀴벌레도 다 살려고 궁상맞는 내 싱크대 위를 돌아다니고,
길고양이도 다 살려고 쓰레기를 뒤지고,

사람도 다 살려고 아둥바둥.

결국 살아있는 것은 모두 다 아름답기도 하고,
불쌍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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