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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워홀] D-34, 9년만의 여권 발급 본문

2017 독일 워킹홀리데이/준비

[독일워홀] D-34, 9년만의 여권 발급

Yildiz 2017. 4. 16. 18:16


(2017년 2월 22일 수요일)

#여권 발급하러 구청에 다녀오다 

독일 워홀 비자를 발급 받으려면 미리 독일 입국 날짜를 정해야 한다. 왜냐하면 비자 서류 심사 때 중요하게 보는 것이 바로 '보험' 이기 때문이다. 독일 현지에서 1년 동안 커버가 되는 보험을 가입해야 하는데, 이때 날짜를 독일 입국 날짜부터 1년 간을 꼭 명시해야 한다. 

언제 독일을 가는 게 좋을지 고민하다가, 비행기표를 알아보던 중 내 여권 만료 일자가 생각났다. 

2008년에 첫 배낭 여행을 가기 위해 여권을 만들었었는데, 그게 벌써 9년 전의 일이다. 독일에서 1년 동안 있다가 올지, 아니면 워홀이 끝나고 다른 나라를 여행할지 미래는 알 수 없는 것이라서, 여권 유효 기간을 약 1년 1개월을 남겨 놓고 비행기 티켓을 구매하는 건 어리석어보였다.

독일에도 대사관이 있다고 하지만, 그래도 한국에서 공적인 업무를 처리하는 게 제일 마음 편한 것 같았다.  

여권의 유효기간과 사증란이 아직 남아있어 갱신해야 하는 건가 싶었는데, 신규 발급을 해야 했다. 

인터넷으로 찾아 보니, 여권을 발급 받으려면 기존의 여권과 신분증, 여권용 사진1매, 발급비용이 필요했다. 신용카드로 결재가 되니 현금을 따로 준비하지 않았다. 

평상시에는 거들떠 보지 않지만, 여행할 때가 되면 애물단지가 되는 여권. 가끔은 하도 찾지 않았어서 여권을 찾는데 애쓴 적도 있다. 이걸 가지고 꽤 오랜 기간 다녔는데, 이제 더 이상 못 쓴다니. 조금 아쉽기도 한편으로 홀가분 하기도 했다.  

9년 전에 찍은 내 여권 사진은 아무리 내 얼굴이라도 별로 보고 싶지 않은 사진이었다. 비행기표를 사기 위해서는 여권이 있어야 했고, 그 당시 나는 용산 구청 근처에 있는 허름한 사진관에 갔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비행기표 가격이 어떻게 날뛸지 몰라서 마음이 급했다.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우선 급한 불을 끄는 게 먼저였다.

센스 없던 그 사진관에서 나는 화난 듯한 무표정을 가진 사진을 얻었다. 게다가 머리카락은 며칠 전에 미용사가 심하게 숱을 쳐낸 터라 삐죽삐죽 뻗쳐있었다. 내 얼굴이지만 남들에게 정말 보여주기 싫은 사진이었다. 

사진을 붙이고 다닌 지가 벌써 9년이 다 되어가다니. 첫 해외여행을 떠난 지 벌써 9년이라니. 

새 여권을 신청하기 위해 구청으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 만감이 교차했다. 이제는 혼자서 6개월 넘게 여행을 가려고 하면 많이 망설일 것 같은데, 그때는 정말 무모했던 것 같다. 처음 배낭에 짐을 꾸리는 게 어색해서 한참 넣다 뺐다 했던 것, 출국 당일에 ATM 기계에 체크카드 2장 모두 놓고 갔다가 다행이 누군가 은행에 맡겨줘서 찾았던 기억. 스마트폰, 지도도 없이 낯선 땅을 혼자서 헤맸던 기억들... 서툴렀지만 당당했던 기억들이 떠올랐다. 

과거 스무살의 풋풋하고 패기 넘쳤던 시절이 한동안 잊혀졌다가, 오랜만에 기억의 회로에서 찌릿찌릿 발동 걸린 기분이었다.  


기존 여권을 아예 회수하는 줄 알고, 아쉬운 마음에 전날 밤 찍은 여권 사증란. 내가 걸었던 무수한 걸음들을 셀 순 없지만, 스탬프가 영광의 증거로 남겨있다.


구청 근처에 사진관이 많아서 그중에 한 곳을 골라 들어갔다. 주인 아주머니는 월요일에는 사람이 많은데 그나마 한가할 때 내가 온 거라고 하셨다. 이곳은 포토샵 처리를 더 많이 할 경우 돈을 더 받는데, 이왕이면 10년간 쓰게 될 여권에 예쁜 사진을 넣고 싶어서 수정해달라고 부탁드렸다. 아주머니는 내가 잘 못 그리는 눈썹도 수정해주시고, 얼굴 비대칭도 손 봐주셨다. 너무 고친 것 같아서 내 얼굴이 아니라고 퇴짜 받으면 어쩌나 걱정하니, 아주머니 왈, "더 무리하게 요구하는 사람도 많아요. 이 정도면 괜찮아요." 라고 하셨다. 

아주머니의 고객 서비스인지, 아니면 일하는데 에너지가 넘치는 사람이신지. 이런 저런 이야기가 끊이질 않았다. 

"한번은 서울에서 전화가 와서, 여기서 사진 찍고 나서 여권을 만들겠다고 하더라구요. 서울에서 여기까지 와요." 

아주 조그마한 사진관이지만 보통 길거리에서 보는 사진관보다 여권용 사진 촬영 비용이 거의 반값이어서, 가격에 부담이 적었다. 포토샵 처리에 나 스스로가 좀 민망하고, 작은 사진 안에 내 머리가 유난이 커 보여서 이게 '여권용 사진' 이 맞나.. 고개를 갸우뚱거렸다. 

"이제 보니 살짝 수지 닮았네~"

아주머니의 립 서비스는 조금 황당스러웠지만, 조금은 기분이 좋았다. 대신 나는 아주머니 헤어스타일이 너무 좋다며 입에 침이 발리도록 칭찬했다. 드라이와 고데기를 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컬이 유지되는 컷트 스타일이 정말 세련됐었다. 아주머니께서 미용실 상호명을 알려주셨지만, 확실히 어디 위치에 있는 건지 모르겠어서 '아, 그렇군요.' 하고 말았다. 가게를 나가는 내 뒷모습에다가 아주머니는 "미용실 위치를 알고 싶으면 전화하세요." 라고 끝까지 친절한 멘트를 날려주셨다. 

구청 민원실 안에는 조금 한산한 편이었어서, 10분 정도 기다린 끝에 여권 신청을 완료할 수 있었다. 기존 여권 사증 페이지가 24를 넘어갔어서 이번에도 복수여권으로 10년, 48면으로 신청했다. 발급수수료 38,000원 + 국제교류기여금 15,000원, 총 53,000원을 카드로 결재했다. 기존 여권을 반납해야 한다고 해서 회수해 가는 줄 알았더니, 직원이 펀치로 여권 앞면에 뭔가를 찍어서 주었다. 기존 여권과 작별해야 하는 줄 알고 아쉬웠는데, 돌려받으니 기분이 좋았다. 


이틀 뒤인 금요일에 구청에서 문자가 왔다. 냉큼 구청에 가서 신 여권을 받아왔다. 새것은 새 것인지라 빳빳하고 매끈거렸다. 새 여권의 텅 빈 사증란을 보고 있으니 내 과거의 여행이 리셋된 기분이 들었다. 생각해보면 9년간 기존 여권을 가지고 다니면서 한번도 잃어버린 적이 없었다. 앞으로 언제, 어느 나라로 가서 알록달록 다양한 스탬프를 받게 될지 모르겠지만 앞으로의 10년간 별 탈 없이 가지고 다녔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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