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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2] 순례 1일째, 후회가 피레네 산맥처럼 밀려오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2] 순례 1일째, 후회가 피레네 산맥처럼 밀려오다.

Yildiz 2009. 4. 10. 15:07

생장(Saint Jean Pied de Port) - (론세스바예스(Roncevalles)) - 에스삐날(Espinal) = 6.4Km

닭똥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2008년 5월 24일 토요일

날이 밝았다.
아침에 일어나보니, 방 안에는 나 뿐이다. 다들 6시에 일어나 일찍 출발한 모양이다.
하지만 나는 우체국에 들렸다가 출발을 해야하니, 서두를 필요는 없다.
(어제는 우체국이 일찍 문을 닫아서 짐을 보내지 못한 것...)
비는 새벽내내, 지금까지도 쏟아붓는 중이다.

침낭을 접고, 산티아고로 보낼 짐을 따로 챙기기 시작했다.
여행 내내 쓸 다이어리 한 권의 무게마저 버겁게 느껴져서 1/4을 칼로 짤라냈다.
책이 두 동강 난게 아쉽지만, 어쩌겠나.. -ㅅ-;

1층으로 내려가니, 프랑스 부부가 있었다.
'어, 아직 출발하지 않은 순례자들도 있네' 생각했는데,
당신들은 오리손 숙소에서 묵으실 거란다. 오리손 숙소는 예약해야만 묵을 수 있는 곳으로
론세스 바예스 가는 길 중간 지점에 있다. 즉 피레네 산 어딘가에 있다는 얘기.

늦게 출발하는 데다가, 비도 오고, 오늘 제대로 걸을 수 있을까 걱정된다.
간단히 아침을 먹는데, 그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빵 쪼가리를 주신다.
할머니께선 내 짐을 보시곤
순례를 위한 배낭의 무게는 자신의 체중에 1/5가 적당하시다면서
말이 잘 안 통하자 종이에 써가며 설명해주셨다. 

작은 친절과 관심에 감사함을 느끼면서 숙소를 나섰다.

첫날부터 판쵸우비를 쓰게 될 줄은 몰랐다.
어깨에 올려놓은 배낭이나, 두 팔에 안아 가져가는 짐이나 모두 버겁게 느껴진다.

유감스럽게도,
우체국은 아직 안 열린 상태.
30분 이상은 밖에서 기다려야 한다. 비는 계속 오는데...
옆 건물에 빵집이 있길래 뭣 좀 사갈까 하고 들어가니, 아직 오픈 시간이 아니란다.
그래서 그냥 밖으로 나왔다.
밖으로 나와 기다리는데 판쵸우의를 입은 순례자가 온다.
별다른 짐이 없는 걸 보면 우체국에 나와 같은 업무가 아니라 간단(?)한 용건이 있나보다.
단조로운 빗소리와 함께 시간은 더디 흘러갔고, 우체국 영업 시작 5분 전,
택시가 다가왔다.
어제 순례자 협회 사무실에서 뵌 한국 커플이셨다.
까미노 여행이 끝나고 이베리아 반도를 여행하실 거라면서, 큰 트렁크에 담긴 짐들이 모두 그때를 위한 것이라 지금 필요가 없어서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내 맡기실 거라고 하셨다.

'같이 길을 나설 동지가 생겼구나', 조금은 위안이 된다.

드디어 기다리던 우체국의 문이 열리고, 우편 업무를 시작했다.
우체국에서 주는 상자에 짐을 꽉꽉 눌러놓고 저울에 재니 5kg 이다.
산티아고로 보내는 데 30유로 씩이나... 이 정도로 많이 들진 몰랐다. 시작부터 출혈이 크다.
(나중에 들어보니, 나라간 소포를 보낼 경우 비싸다고 한다. 생장은 프랑스, 산티아고는 스페인)

직원이 영어를 못해서 애를 먹었다. 마침 이 부부님을 태운 택시 기사가 영어를 할 줄 알아서 그나마 다행.

골칫덩어리인 짐을 부치고 한결 가벼워졌지만, 이젠 앞으로의 일정이 문제다.
어떻게 하실거냐고 한국인 부부께 여쭤보니,
이 분들은 택시를 타고 론세스바예스로 가서 그곳에서 순례를 시작하실 거란다.

아, 어떡할까. 지금 출발하기엔 늦은 것 같고, 길도 모르겠고,
날은 어두워져서 길을 못찾아 헤매는 내 모습이 상상되었다.

같이 택시를 타고 가자는 말에
'네,, 저도 갈게요.' 하고 따라나섰다.

5kg 씩이나 하는 짐을 보냈는데도 마음은 왜 이리 무겁나.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택시 안에서 시무룩하니 앉아있었다.
이게 잘한 결정일까?
생장에서부터 걸어가는 게 목표였는데, 택시를 타고 쉽게 이동하다니...

론세스바예스로 가는 도로는 산길을 타고 나있었다. 바깥 경치를 구경하는데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경사진 도로를 올라가는 순례자가 보인다.
헛, 어제 그 독일 아저씨!!
세상에. 체력도 좋으셔라...

어제 얘기하면서 내가,
"자전거 타고 지나가실 때 저 만나면 인사해주세요!" 라고 말했었는데
아저씨는 그저 "허허, " 하며 웃었던 장면이 생각난다.

순례길이 아닌 도로로 가는데 만날 일이 있나... 게다가 자전거 타고 순례하는 사람과 걸어다니는 순례자와 속도가 같을 수가 있나.

아무래도 이 아저씨를 보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 될 것 같다.

생장에서 출발해 론세스 바예스로 걸어오는 데 족히 5~6시간 정도, 혹은 이 이상은 걸릴텐데
나는 1시간도 안 되서 왔다.
참... 착잡하다...

내가 택시비를 보태려고 하니, 고맙게도 부부님께선 사양하셨다. (감사했습니다, 정말로!!)
론세스바예스는 생각보다 휑한 곳이었다. 눈에 띄는 레스토랑에 가서 배를 채우고, 알베르게로 가서 스탬프를 받았다.
이 곳에 그냥 머무르기엔 너무 이른 탓에 부부님과 나는 걷기로 하고 길을 나섰다.

다행히 비가 그쳤다.
론세스바예스에서 묵었던 순례자들은 출발한 지 오래 일테고,
생장에서 오늘 출발한 순례자가 축지법을 써서 여기까지 올 일은 없을터라
세 명이 함께 걷는 길은 조용하고 조용했다.

아저씨께선 내가 배낭 매는 것을 보곤 끈을 어떻게 조절하면 좋은지 알려주셨다.
처음 걷는 거라 체력 조절을 잘 해야한다면서 1시간에 10분씩 쉬면서 걸었다.

중간에 길 표시를 잘 못 보곤 길을 잘 못 들어서 다시 론세스바예스로 돌아갈 뻔 했다. 어이쿠!

길의 중간 중간 마다 순례 표식이 있어서 길을 쉽게 잃어버릴 일은 거의 없다.
아, 이게 바로 순례자를 위한 표식이구나!
노란색 화살표, 혹은 조가비 모양의 돌 표식이 길에 놓여있어 순례자를 반긴다.

론세스바예스에서 에스삐날로 향하는 길은 그리 경사가 없고 숲길인데, 5월이라 한창 푸르를 때라 아름다웠다.



그렇게 해서 들어서게 된 마을, 에스삐날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는 마을이다.
더 걸을까 말까 하다가 그다음 마을인 수비리(Zubiri) 까지는 15km 를 더 가야하므로
오늘은 여기서 쉬기로 결정했다.

이곳에는 사설 알베르게 밖에 없던 터라,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주인 아주머니가 그 다음 마을엔 꽉 찼다며, Completo. 라고 하는데
한국 어머니가, 저 말을 어떻게 믿냐며, 흥흥 하셨지만
우리에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처음인 순례길에 뭐든 조심히 결정을 내릴 수 밖에.

숙박료를 물어보니 싱글 25유로를 달라고 한다. 세상에!!
책에서 본 알베르게 숙박료는 5유로, 많아봤자 10유로 정도이던데.

이 곳은 해도 해도 너무하다.
하지만 내가 달리 방도가 있나...
가격 흥정이 내 취미는 아니지만, 눈물나는 가격을 듣자마자 Down 해달라며 요청했다.
아주머니는 안된다고 하면서, 결국은 23유로로 깎아주셨다. (더 깎지못한 서러움... -ㅅ-;;)
내일 아침을 먹을 거면 3유로란다.
아침을 먹고 갈 거라고 얘기하고는 근처에 슈퍼가 어딨는지 물어보았다.

비싼 숙소에 묵으니, 식당에 가서 밥을 먹을 엄두가 나질 않는다.
빵에다가 잼이면 충분하다.



아직 해가 지지 않아, 여유있게 마을을 둘러보았다.

순례자들이 지나는 길목에 있는 집의 경우, 파란색 바탕에 노란색 가리비 표식의 타일이 벽에 붙어 있어 순례자들에게 길을 안내해주기도 한다. 혹은 대문 아래쪽에 표시되어 있는 것처럼 노란색 화살표 표식도 있다.



오래되어 보이는 집...



나무와 개.
분명 이 마을에 얽힌 전설과 관련된 게 아닐까?
추측만 할 뿐.
사실 아는 게 없었다. 숙소 아주머니께 물어볼까 하다가, 까먹고는 못 물어봤다.




작은 마을, 에스삐날의 거리



내가 묵었던 사설 숙소


작은 마을에, 별로 볼 것도 없고, 마땅히 할 일도 없어서 방으로 돌아왔다.
간단히 저녁을 먹고 일찍 잠을 청했다.
내일은 일찍 일어나서 길을 떠나야 겠다.
5월이지만, 높은 고도에 위치한 마을이라 해가 지자 추워졌다.
침낭에 이불까지 덮었어도 추위가 잘 가시지 않았다.

이렇게 홀로 썰렁한 방에 누워 자게 될 줄 누가 알았을까.
앞으로 어떤 일이 생길지 몰라 두려운 마음에 피레네 산맥을 넘는 것을 포기한 게
마음이 영 좋지 않다.
역시, 생각하는 것과 실제로 해보는 것은 다르다는 깨달음.

여행길이 너무도 고독하고 쓸쓸하고, 생각나고 그리운 사람때문에 슬프기도 하다.
내가 왜 이 길을 걸으려고 했을까.
나는 왜 여행을 하는지,
고민하게 된다.

생각지 못한 소포비용, 숙박료에 출혈이 커서 움츠려 들고, 혼자라는 생각에 위축된다.
닭똥 같은 눈물이 주룩주룩...

겁먹고 포기한 게 무척이나 후회된다.
나중에 어떤 일을 할 때에도
두려움에 때문에 포기한다면, 이와 같은 쓴 맛을 또 맛보겠지.

다시는 이런 선택을 하면 안되겠다.
나에게 실망했기에 슬펐지만, 그래도 좋은 교훈을 하나 얻은 것 같다.

"실패했다고 부정적인 생각에 쩔어있는... 이런건 내가 원하는 마음 자세도 아니고,
내가 원하는 모습이 아니야.

매일 새로워지자고 다짐하자.
상황을 받아들이고 적응하기 위해서 노력하자구!!

까미노 길이, 처음엔 쉽게(?) 시작한 것 같지만, 정신차리자.
그리고 부엔 까미노. 화이팅이야!!"

이렇게 일기를 적고 다시 잠을 청했다.

춥다.
마음도 춥고
몸도 춥지만

그래도
내일은 따뜻할거야. 사람들이 있는 와중에 잠들 수 있겠지.
싱글룸은 더이상 No!!
 

산티아고로 소포 30유로, 숙박 23유로 (+아침 3유로) , 슈퍼 2.9유로 = 58.9유로


P.s.

 

저의 순례기에 대해 발표를 한 적이 있습니다.
그 날 어느 분이 제게 물었어요..
"그럼 피레네 산도 넘었겠네요?"

그 말에
엉떱결에 "네" 라며 거짓말을 했어요.
거짓말을 했다며 솔직하게 말씀드리려했지만, 그렇게하지 못했네요.
거짓말을 한 제가 스스로도 이해가 안되네요...
아직까지...  스스로가 낸 상처가 아물지 못해서 그랬나봅니다.
부족한 저를 너그러이 용서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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