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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1] 겁먹은 꼬레아나 치까, 파리에서 생장으로!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1] 겁먹은 꼬레아나 치까, 파리에서 생장으로!

Yildiz 2009. 4. 8. 13:00


난 내가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될줄은 몰랐어...

순례길의 여정이 끝나고, 혹 만나는 사람에게 800여km 가 넘는 길을 걷고 왔다고 하면 다들 나보고 대단하다고 한마디씩 한다. 그리고 자신들은 그렇게 하기 힘들 거라고 덧붙이면서.

'누구나 할 수 있어요! 하루에 꾸준히 걷다보면 어느새 목표지점에 도달하거든요.'

이런 식으로 대답했었지만...
사실은 이렇게 대답하는 게 더 솔직한 심정이었을 것 같다.

"처음 시작할 땐 굉장히 두렵고 무서웠어요... 하지만 하다보니 극복하게 되더라구요. 당신도 할 수 있어요!"

난 내가 순례를 시작하기 전에 그렇게 두려움에 떨게 될줄은 몰랐고 
상상했던 그 이상의 것들을 얻어온 특별한 여행이기에
까미노 이야기를 쓰기 시작한 지금,
그 때 마냥 설레고 떨리고 행복하다.

나의 이야기가 즐겁게 읽히기를! 



겁먹은 꼬레아나 치까, 파리에서 생장으로 가다. 2008년 5월 23일 금요일


까미노 여정을 시작하기 위해 생장으로 가기 전날만 해도
나는 아무렇지 않았었다. 
사실 이런 마음가짐이 있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아직 다가오지 않는 것들에 잡아먹히지 말라는 박노해씨의 시 구절 중 하나가 뇌리에 깊이 박혀있기 때문이다.
'현재를 제대로 살아가기에도 빠듯한데, 벌써부터 걱정할 필요가 없잖아??'

그래도 막상 길을 떠나려니 예상치 못했던 두려움들이 나를 덥쳤기 때문에 
"나는 이 길을 걸을거야!" 라고 그리 쉽게 다짐했던 게 신기하다.

생애 첫 오랜 여정의 출발을 장식할 까미노 순례.
아침 일찍 일어나 민박집에서 나와 몽파나르트 역으로 향했다.
진정 내가 그 곳을 향해 가는 구나...!!
가슴이 떨리고 다이어리에 글이 잘 안 써져서 간략하게 심정을 적은 후
그저 창 밖을 바라보며 멍~ 하니 있었다.

머지 않아 바욘 역에 도착했다.
생장까지 가는 기차표를 사고 나서 시간이 남아서 역 밖으로 나왔다.


 

저기 보이는 성당에 가보고 싶었지만, 아직 배낭 매는 것이 익숙치 않아서 너무 힘들어 포기했다. 이 다리를 건너보지도 못하고, 그저 혼자 서성거리며 쩔쩔 매는... 이 불쌍한 소녀야!
엄마야, 이를 어쩐다냐....

다시 되돌아가려도 돌이킬 수 없다.
이미 순례 길은 시작된거나 마찬가지.

아...
배낭이 심각하게 무거운 것도 아닌데, 왜 이리 내 몸에 벅차게 느껴지는 걸까.
다리는 후들후들, 등에는 제대로 고정되지 않는 듯한 느낌...

나, 잘 할 수 있을까? 완주해야하는데 말이다.



다시 역으로 돌아가 쉬기로 결정하고 돌아오는 길에 순례자처럼 보이는 어르신을 만났다.
처음 만나는 순례자였다. 연세는 예순이 넘어 보이셨는데... (정확하게 기억나진 않는다.)
순례길이 이번에 두 번째이시란다.
간략하게 얘기를 주고 받다가 할아버지가 편지를 쓰기 시작하자, 나는 역으로 돌아왔다.



바욘 역 앞 거리



바욘 역

 

역으로 돌아와 배낭의 짐을 풀어헤쳤다.
뭐 버릴게 없을까?? 가볍게 다니고 싶은데...

생각만큼 버릴게 없어서 풀어헤친 짐을 다시 가방에 차곡차곡 정리했다.

모든 것이 너덜너덜해질만큼 떠돌아다닐것으로 짐작되는 젊은이들이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른다. 꽤 실력이 좋은걸? 하지만 아무 동요 없이 새침하게 열심히 듣는다.
무관심한 척 하면서.


자, 이제 열차에 오를 시간.
여행자의 노래를 위안삼아 길을 나선다.
찡긋 미소라도 지어주고 올걸 그랬나?
그대들에게도 행운이 깃들기를!


순례길을 위하여 열차에 오르는 사람들이 꽤 있다. (이 사람들, 다들 어디 있다가 오는 거지?)

내가 정말 까미노 순례를 하는거야?

생장으로 간단 말이지?

스스로 믿기지 않는다는 듯이
되묻고 어쩔 줄 몰라한다.



가슴은 마구 설레서 뛰는데
머릿속은 불안감으로 엉키고 설킨다.
흔들리는 기차에 몸을 맡겨 내 존재 자체도 내맡긴다. 

앞 좌석에 놓은 배낭에게  
"나 지금 떨고있니?" 묻지만 말을 아끼는 묵묵한 그대여!

순례길을 시작하기 위해 합석한 이들은 서로 인사를 나누며 까미노에 관한 대화를 나누지만,
Solo Coreana chica. 솔로 꼬레아나 치카. (한 명의 한국소녀) 
고독하고, 외롭고, 걱정이 앞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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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생장 도착!
여기서 잠시 생장에 관해서,

'생장'을 한국어로 발음하면 그건 정말 생마늘 장담그는 소리다. ㅎㅎ
쉥~장... 이라고 오버스럽게 해야하는데, 열심히 반복해봐도 도저히 프랑스인처럼 흉내내기가 어려운 이 지명.

St. jean de pied port. 을 줄여서 생장, 쉥장 이라고 부른다.

순례자의 길을 걷는 출발점으로(프랑스 길 루트로 걷는다면) 생장(프랑스 마을, 스페인 국경 근처), 론세스 바예스(생장에서 순례를 시작한 날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묵는 마을), 팜플로냐(비행기편을 이용해 스페인 입국 했을 경우 많이들 시작하는 순례지점)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다. 혹은 프랑스의 루퓌 라는 곳에서 시작하는 사람도 있고. 혹은 집에서부터 순례길을 시작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런 사람이 있긴 있냐고 묻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을 꽤 만났다.

까미노에 대해 처음 접하게 된 책, 김효선씨 저서 "산티아고 가는 길에 유럽을 만나다" 를 읽고 나서, '나도 피레네 산맥을 꼭 넘어야겠다. 할 수 있을거야!' 라는 생각으로 고집스럽게 정한 출발지점. 생장.

하지만 막상 와보니,
다리는 후들거리고 아직 적응이 안된 배낭은 왜 이리 무겁게만 느껴지는 건지
혹시 올라가다가 뒤로 넘어지는 건 아닐까.
더 심하게는 다리가 부러지면 어떡하지. 걱정이 피레네 산처럼 밀려온다.
그야말로 후덜덜...!!!

다른 사람들처럼 스틱도 없고, 지도도 없는데, 잘 찾아갈 수 있을까?

제대로 된 가이드 북도 없이,
'
카미노' 까페에서 몇 장 뽑은 간략한 지도와 알베르게 숙소 정보, 기본 스페인어 회화 빼곤 내가 믿고 따를 구석이 하나도 없다. 윽!

생장 역에서 내려 갈 길을 몰라 당황했지만
순례자인냥 보이는 사람들이 떼를 지어 한 곳을 향해 걷길래 뒤따라 걸었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곳이 마을에 있는 순례자 협회 사무실.


 


이 곳은 까미노 길을 걷기 위해 이름과 순례 목적등을 적고 크리덴시알 구입, 순례 시작에 앞서 가장 필요한 절차를 하는 곳이다.  크리덴시알은 순례자 전용 숙소에 묵기 위해서 순례자에게 꼭 필요하다.


순례자 협회 사무실 안에서



순례자 등록을 하고, 크리덴시알을 샀다. 이게 말로만 듣던 크리덴시알이군! 빈 공간에 채워질 무수한 스탬프들을 상상하니 벌써부터 설렌다.ㅎㅎ

34일로 나누어진 코스 일정이 담긴 자료와 마을 간 길이와 알베르게 정보가 나와있는 자료를 얻고 숙소를 소개 받았다. 늦게 도착한 편이라서 사설 알베르게에 가야만 했다.  

한국인은 나 혼자라고 생각했었는데, 한국인 중년 커플을 만났다.  그것도 두 커플!
앞으로 길에서 이 분들을 만나겠구나!

소개 받은 숙소로 가서 짐을 푼 다음, 마을을 둘러보기 위해 순례자 사무실이 있는 거리로 왔다.




카미노 여행책을 읽으면 흔히 볼 수 있는 이 집의 사진!
나도 한 장 찍었다~! ㅋ



순례자 협회 사무실이 있는 거리를 주욱 따라 올라오면, 요새로 쓰였을 거라 추정되는 오래된 성곽들이 멀리서 보인다. 구경 하려고 올라가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한국말!
"한국사람이세요??"



오! 잘 못 들은게 아니다~
노란색 옷을 입은 언니가 한국사람처럼 보이는 나를 발견하곤 부른게다!
예상치 못한 만남에 반가웠다.

언니와 이것 저것 얘기를 막 시작하다가, 마침 슈퍼를 가야한다고 해서 따라 나섰다.
피레네 산맥을 넘을 때 슈퍼 같은 건 찾기 어렵기 때문에 내일 아침부터 일찍 걸으려면 먹을 식량을 준비해야 한다고 한다.

아... 이 언니를 못 만났다면 나는 속수무책으로 걸었겠지... ! 다행이다 .. 휴....;;
슈퍼를 늦게 방문한 탓인지, 이미 바케뜨는 순례자들에 의해 다 팔린 상태.
아쉽지만 간단히 요기 할 것으로 요거트와 물, 비스킷을 샀다.



길에는 생장의 귀여운 마스코트들이 진열되어 있고,
집들과 골목길은 아기자기 하고, 꽃으로 창문을 장식한 길은 아름다웠다.
마치 동화속에 나오는 마을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참 예쁜 마을, 생장.





가는 길에 반바지 하나를 사고, 아까 보려다가 못 본 요새를 보러 되돌아 갔다.
잠시 언니가 묵는 알베르게에 들어갔는데, 타이완에서 온 '쳉' 을 만났다.
쳉이 만들어준 샐러드를 맛있게 먹고는 그 곳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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높은 곳에서 내려다 보는 생장의 마을은 정말 예뻤다! 작은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마치 내가 어렷을 적 장난감 레고를 이용해 만들었던 집들이 모여있는 듯한 착각을 하게 했다.

한국 언니는 저녁을 먹기 위해 알베르게로 돌아가고, 나도 내 숙소로 돌아왔다.
배정받은 방으로 돌아왔는데, 독일에서 온 할아버지와 인사하고는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독일의 집에서부터 자전거를 타고 여기까지 여행해왔고, 산티아고까지 자전거 타고 가신단다.
와우! 참 대단하시다!
출발하기 전 가족과 집 앞에서 찍은 사진을 보여주시면서 열심히 설명을 해주신다.
사진 안의 할아버지는 말끔한데, 시간이 흘러 할아버지 턱 밑에 수염이 꽤 자라나있다.
전직이 기자는데 지금은 은퇴하셨단다.
갑자기 북한과 남한과의 상황을 물어보셔서 나는 쪼끔 당황했을 뿐이고.
정치적인 대화를 영어로 능통하게 하지 못해서 옹알이 수준의 대화를 했다. 윽.
좀 더 공부 해올걸.

대화 도중 내가 이렇게 물어봤다. "아시아 여행하는 건 어떠신가요? 많이 흥미로울 텐데요."

할아버지 왈,
"유럽에도 아직 못 본 것들이 많고, 아름다운 곳이 많은데 내가 거기까지 갈 필요가 없지."

아, 예, 그러세요.
하고 답하고 말았는데, 알고보면 아시아도 매력이 넘치고 아름다운데 말이다.
항변하지 못하고, 간단히 답변한 내가 비굴하게 느껴졌다는 이 뒤끝은 뭥미... ;;

할아버지는 피부를 보호해야 한다며 애프터 선크림을 바르기 시작하셨다.
(사실 애프터 선크림은 처음 봤고, 할아버지가 유난히 피부를 신경쓰셔서 신기했다는... ^^;;)

대화를 마치고 나서 나는 샤워를 하고, 아까 슈퍼에서 사온 걸로 간단히 허기를 채웠다.
내일의 힘든 여정을 때문에 다들 일찍 잠을 청하는 분위기다. 내가 묵는 방에는 이층 침대가 6개가 있는데, 모두 꽉 찼다.

다른 사람들의 장비와 짐을 보면서, 난 순례길에 필요치 않는 것들을 꽤 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파자마, 청바지, 앞으로 남은 여행을 위한 여러 문서, 전자사전, 엠피쓰리 등...

이 짐을 가지고는 피레네 산맥을 넘기엔 무리일 것 같다. 이대로는 자신이 없다.
짐이라도 덜고 시작해야지.
산티아고 우체국에서 30일정도 순례자의 짐을 보관해주므로
내일 아침 일찍 우체국으로 가서 산티아고로 짐을 부쳐야 겠다.

... 일찍 잠자리에 들었지만 잠이 오질 않는다.
이리저리 뒤척이는데, 갑자기 비가 오기 시작한다! 이런...
그냥 냅둘까 하다가 아무도 미동하지 않길래
누군가의 등산화가 비에 젖을 까봐 방 안으로 들여놓고 테라스 문을 닫았다. 
내일은 경사진 산 길을 오르 내리는 힘든 코스인데, 걱정이 된다.

'뭐, 어떻게든 되겠지! 너무 걱정하지는 말자!'

그나저나 비는 그쳐야 할텐데... 


크리덴시알 2유로, 숙소 10.25유로, 생장까지 가는 기차표 8.2유로, 반바지 10유로,
슈퍼에서 이것저것 2.6 유로 = 33.05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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