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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까미노 이야기 3] 순례 2일째, 친구를 사귀다! 본문

까미노, 그 길을 걷다

[까미노 이야기 3] 순례 2일째, 친구를 사귀다!

Yildiz 2009. 4. 12. 10:34

에스삐날(Espinal) - 수비리(Zubiri) - 라라소냐(Larrasoa) = 20.5km

2008년 5월 25일 일요일

어제 일찍 잠을 청해서인지
오늘은 까미노를 충실히 걸어야 한다는 긴장을 했던 탓인지
이른 아침에 일어났다.
재빨리 짐을 꾸려 아래층으로 내려가 아침을 먹었다.

아침식사라고 해서 한국에서 먹던 아침 식사의 양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빵 몇 조각, 비스킷, 버터, 잼, 그리고 차 한잔.

나중에야 이곳 사람들은 아침을 간단히 먹는다는 걸 알았다.

이게 3유로라니, 흥.

그래도 힘을 내서 온 종일 걸어야 하므로 최대한 열심히 먹었다 ㅎㅎ
다 먹고 길을 나서려는데, 부부님께서 식사를 하러 내려오셨다. (제가 성함을 기억 못하겠네요.. 죄송...)
먼저 가겠다고 인사를 하고 숙소를 나왔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날씨가 흐렸다.
어제는 조금 밖에 못 걸었는데, 오늘은 20km 정도 걸을 계획이다.
중간에 길을 잃을까봐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때마다 나에게 길을 알려주는 지표가 있어서 수월하게 걸을 수 있었다.



갈림길에 이르렀을 때 '어디로 가야하나' 고민이 될 경우엔
위의 사진 처럼 돌로 화살표 모양을 만들어 놓은 걸 바닥에서 발견 할 수 도 있고
근처의 바위나 나무에 노란색 화살표 모양이나 다른 순례 표식을 찾아보고 길을 선택할 수 있다.

혹은 표식을 발견하지 못하고 길을 걸을 경우, 약간의 불안함은
후에 그 길에서 까미노 표지를 발견하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으로 풀어진다.

Zubiri 로 가는 길에서

 


어제 생장에서 출발한 순례자들은 대부분 론세스바예스에서 하룻밤을 묵고
아침에 길을 떠나므로 나는 6km 좀 더 앞선 에스삐날에서 일찍 걷기 시작했기에
길에서 아직 누군가를 만나지는 못 했다.

한적한 숲길, 하지만 곧 작은 자갈들로 이루어진 급경사길을 맞닿뜨리자 급 당황했다.
산을 올라가는 건 잘 하지만, 내려가는 데 있어서 젬병이기 때문이다.
다리는 후들후들, 땅은 아직도 축축해서 미끄러지길 쉬운 길이었다.
개미걸음처럼 발을 옮겨 간신히 내려가는 도중 순례자를 발견했다.

"Hello!"
길에서 처음 순례자를 만나 인사를 해본다.
키가 크고, 발목까지 오는 큰 등산화, 목에는 카메라를 걸고 턱에는 수염이 가득한 이 남자.
이름은 ZSOLT. 이 발음 따라하기가 힘들었다. "죨~드" 라고 흉내내면 얼핏 맞다.
헝가리에서 왔다는 것을, 나는 영국으로 착각했다. 이런.
어쩐지 영국사람이 너무 영어를 못한다고 생각했다.. 하하...

함께 길을 걸으면서 대화를 나눴다.
죨~드는 헝가리에서부터 걸어왔단다. 하... 거짓말!!
하지만 죨드가 자신의 크리덴시알을 보여주자, 나는 인정할 수 밖에.
그걸 사진으로 담았어야 했는데,
난 이 대단한 친구에게 무심했던 걸까.
 
죨드는 이번 까미노가 두 번째. 자신도 라라소냐로 간단다.
내리막 길에서 나는 속도가 나지 않자, 빠른 걸음인 죨드는 먼저 가겠다고 하며 갔다.
좀 이따 보자고 인사를 하고
나는 이 어려운 코스에 집중을... =ㅅ=;;

혹시나 밑으로 굴러 떨어질새라 배낭 끈을 꼬옥 잡고 조심히 걸었다.
눈물나게 어렵다. 내리막 길...

간신히 내려와 이젠 쉬운 계단 길이다.
저~기 멀리 마을이 보인다.
만세!!

저~ 기 오른쪽에 보이는 마을. Zubiri



마을을 돌아보고 갈까 하다가, 그냥 지나쳤다.
조금 더 가다가 마땅히 쉴 곳이 없어서 길 가에 앉아 어제 먹다 남은 빵과 요구르트를 먹었다.
좀 더 쉬고 싶지만
조금만 더 가면 목적지이니, 힘을 내자꾸낭!

중간에 길을 잘못들어 잠깐 해맸었지만 그래도 무사히 라라소냐 마을에 도착!
아까 만났던 죨드는 1등으로 도착해 이미 쉬고 있는 중이었다.
아직 알베르게가 문을 여는 시간이 아니라서 문 앞에 배낭을 놓고 앉아 쉬고 있었다.
나는 3등으로 도착!

또 한 명의 순례자가 왔다.
내 옆으로 짐을 내려놓자, 호기심에 물어봤다.
"어디서 오셨나요?"

이름은 마르코스, 브라질에서 왔단다.
남미 국가는 언젠가 꼭 여행하고 싶은 동경의 땅이기에 반갑게 인사했다.
이런저런 얘기를 주고 받다가 '브라질' 하면 생각나는게 '파울로 코엘료'. !!
그의 얼굴이 가물가물 하면서도 대뜸 마르코스 보고
"당신은 파울로 코엘료를 닮았네요!" 하니
되게 당황해하면서도 좋아 한다. ㅎㅎ
파울로 코엘료는 자기보다 나이가 더 많다나 뭐라나.
내가 파울로 코엘료의 작품을 좋아한다고 하자, 책 이름을 언급하며 대화를 했다.
무튼 이렇게 해서 마르코스와 친해졌다.

이번 까미노가 두 번째인 죨드는 이곳 알베르게 샤워 시설은 3개 뿐이라서, 가방 놓자마자 어서 씻을 준비를 해야한다며 조언을 해주었다. 그리고 여기 마을 식당 중에 Menu del Peregrino(순례자를 위한 메뉴) 가 맛이 좋다는 조언 또한.

시간이 흘러 더 많은 순례자들이 줄을 이어 섰고,
론세스바예스까지 함께 택시 타고 온 부부님 말고 생장에서 뵌 다른 한국인 부부님을 만났다.
그 부부님들을 수비리에서 만나셨는데, 아내 분 다리가 좋지 않아 오늘은 그 곳에서 묵으신다는 얘기를 전해들었다.

이윽고 알베르게의 문이 열리고, 차례대로 온 순서대로 이름과 나라, 여권번호 등을 적고 숙소비용을 지불하고 스탬프를 받는 절차가 시작되었다. 죨드와 나, 마르코스는 서둘러 샤워할 태세를 갖추고 재빨리 움직였다.

국토대장정을 할 때 시간과 물 부족으로 '신속샤워' 는 이미 몸에 베어있는 상태!
한국에서 가져온 100ml 샴푸의 무게조차 무겁게 느껴져 산티아고로로 보낸터라
비누 하나로 머리와 몸, 빨래까지 금방 헤치웠다.
히히. 개운하군!

방으로 돌아와 쉬는 데 마르코스가 함께 식당에 가지 않겠냐고 물어본다.
마땅히 할게 없어서 따라갔다.
그렇게 해서 도착한 식당! 죨드가 말한 그 추천 식당이었다.
저녁에 식사할 거라고 예약을 해놓고, 맥주를 시켰다.

헝가리에서부터 걸어왔다는 죨드의 말에 마르코스는 "you're crazy!" 를 연발했다.
그리고 죨드가 자신이 기네스북에 이름이 올랐다는 말에도 연신 크레이지 연발이다.

눈을 가리고 양쪽 양궁판 중앙에 정확히 몇천발을 한 시간 동안 쏜다던가?
와우. 대단하다.
자신의 홈페이지도 가르쳐주면서
나중에 알베르게에서는 자신의 홈피에 직접 들어가 보여주었다.
허나 헝가리어로 되어있어서 알아볼 수는 없었지만...

브라질에서 온 마르코스!


왜 까미노를 걷기 시작했냐는 물음에 마르코스는 앞으로 할 사업에 대해 구상하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조그마한 수첩에 연신 뭔가를 열심히 적는 중이다. 

헝가리맨, 죨드


죨드는 내 침대 이층에 자리를 폈다. 죨드도 뭔가를 열심히 적는 중.
내 다이어리에다가  발음하기 어려운 이름을 적어달라고 하자 이메일 주소랑 홈피 주소도 적어주었다.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밖에 널어놓은 빨래를 방 안으로 들여놓았다. 방 안은 순례자들이 몸에 바른 파스, 약 냄새가 진동했다. 나도 근육이 시큰시큰거려 맨소래담을 발랐다. 강력한 맨소래담의 향기... ㅋㅋ
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어가자, 식당으로 향했다.
길게 테이블이 2개 놓여있었는데, 예약 손님으로 꽉 찼다. 모두 순례자들.
어제는 혼자 싱글룸에서 빵 먹었었는데... 이렇게 사람들과 함께 하니 좋다.
스페인에서 처음 먹어보는 메뉴코스다. 책에서 보기만 했던 건데, 와인이 병째로 나오고, 후식까지... 쌀푸딩이 맛있다는 죨드의 말에 그걸 선택했지만, 아직 한국의 미각을 지니고 있는 터라, 싱겁고 맛이없다. 우엑. 그래서 다 먹지 못했다는 얘기. 하지만 다시 먹으라면 잘 먹을 수 있을 것 같다.

라라소냐 식당에서 순례자들과 함께


죨드, 마르코스


나, 죨드, 마르코스


즐거운 식사 후 알베르게에 돌아왔다.
내 침대 바로 옆에 한 여자가 있길래 밥은 먹었는지 물어봤다. 지금 식당에서는 또다른 예약 손님을 받느라 한창이기에 어서 가보라고 하자,
여자는 밖으로 나갔다. 하지만 얼마 안되 다시 돌아왔다. 이미 예약이 꽉 차서 못 먹었단다.
나이를 가늠하기 힘들어서 물어보니 나와 동갑내기였다.
와우! 이름은 노라. 오스트리아에서 왔다. 내가 까미노를 마치고 워크캠프 봉사활동도 할 거라고 하니 자신은 워크캠프 경험을 많이 했단다.
같은 나이의 친구를 알게 되어서 정말 반가웠다.

배낭 무게며, 걷는 거며 조금씩 적응해가겠지? 내일도 20km 정도 걸을 계획이다.
Buen Camino!!

숙소 6유로 , 식사 11유로, 인터넷 1유로 = 17유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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