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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벽이란 환상 본문

소소한 일상/수다쟁이

완벽이란 환상

Yildiz 2011. 5. 19. 00:25


5월 8일
아침 7시 5분

 
 계단을 내려오는 사이
지하철 한 대가 가버렸다.

조금만 서둘렀다면,
 탈 수 있었을텐데.

아쉽다.


 


네가 필름을 테스트 한답시고
열심히 뷰파인더를 들여다본다.





어떤 할머니가 내게
아주~ 가깝게 다가와

카메라를 보며 무언지
되게 궁금해하신다.

교회 소책자를 내게 권하신다.

엄청난 경계심이 동하여
자리를 살짝 옮긴다.



7시 15분
지하철 안


자리에 앉자마자
카드케이스를 찾기 시작한다.
어디에 뒀는지 확인해야할 것 같아서다.

전철역 입구에서 체크카드를
카드기에 찍고
바지 오른쪽 주머니에 쑤셔넣으면서

'좀이따 가방에 넣어야지.'

생각했던 것까지 기억이 나는데...

가방 앞 주머니에도,
바지 주머니에도.


체크카드가
...
없다.

아무리 뒤져봐도.
없다.


아, 이게 무슨 날벼락이람.



7시 24분
인천시청역


다시 부평역으로
돌아가 카드를 찾아봐야
할 것 같다.

버스 예약을 한 체크카드도
함께 없어졌으니.
대략 난감.

인천시청역에서 내려서
다시 가방을 뒤져보지만
카드케이스는 정말 없다.

체크카드를 잃어버려서
다시 되돌아 가겠다며
메트로 직원에게 말하는 중에
결국은 울기 시작했다.

지하철을 다시 타서도
눈물이 찔끔찔금
나온다.


카드 분실신고를
하면 되니까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걸 알지만...

억울하다.

몇 분전까지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하루의 시작이었는데!



7시 30분

목포행 버스 출발 시간.
하지만 난 원점으로
돌아가는 중.


3년 전,
파리 출국 당일 날

체크카드 잃어버렸던
기억이 스물스물 올라온다.

그때도
앞, 뒤에 체크카드 2장을
넣는  투명 케이스를
통째로 잃어버렸었지.

서울역 근처에 있는
ATM에서 현금을 뽑고,
종이봉투 몇 장 챙기는 것에
정신이 팔려
기계 위에 카드를 놓고
나왔었다.

그것도 모르고
카메라 밧데리 바꾸러 갔다가
카드 분실신고 전화가 걸려왔을땐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 앉고 말았지 -
라는 어느 유행가의 가사처럼
쓰러질 뻔 했다.


정말정말정말.
마음씨 좋은 분이
카드들을 은행에 맡겨두었고.

그래서 다행히
공항버스를 탈 수 있었다.

그, 15kg 나갔던
빨간 배낭을 메고
걷고 뛰고 해서.


정말이지.
거짓말 안하고,
인천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내 심장은
계속해서
방망이질을 쳤었다.

체크카드를 못 찾았다면,
내 여행의 반은 포기해야 했으니까.

게다가 주민등록증을 끝까지
갖고 있지 않고 집에다 보내버렸다면,
카드를 못 찾았을거다.



다시 현재


혹시나 누군가
내 카드케이스를 주어서
메트로 직원에게 전해주고 가진 않았을까?

혹시나
공익요원이 내 카드케이스를
줍지는 않았을까?


부평역에서 내려서
아침에 지났던 길바닥을
뚫어지게
살펴보지만.

없다.

공익요원에게도 물어봐도
못 봤단다.

결국은
전철역 입구까지 
다시 와서 직원에게 물어보곤.

서둘러 카드 분실신고를 한다.

6개월간 흘릴 눈물을
30분만에
다 쏟아낸 것 같다.



8시 40분
인천터미널


9시 30분 버스표를 사고
빈 자리에 앉는다.

내 옆, 옆 의자에 앉은 여자는
통화를 하더니
어디론가 사라졌다.




내 옆 의자에 놓은
아이스 그린티 라떼를
버리고 간 걸까.

아니면
내가 체크카드를
잃어버린 것처럼
깜빡 잊고 놓고 간 걸까.

남자친구를 위해
자기 것과 함께 주문한,
입도 대지 않은 음료 같은데.


어딘가에 존재하고 있을
분실한 체크카드와
여자가 놓고 간
아이스 그린티 라떼가

같은 처지 같다.





 

한치 앞도 모르는 인생.
앞으로 살다보면
이보다 더한 일들도
겪게 될텐데.

순조롭게 시작했던
하루가 갑자기
예기치 못한 일들로
틀어지니

최악이라 생각했다.

사실
혹시 몰라 챙겼던
제 3의 체크카드가 있었고,
현금도 조금 있었기에
고향에 가는데 있어
전혀 문제될 게 없었다.

하지만,
난 어린애처럼 울었고,
아침부터 운 탓에
눈이 아프다.

몇 달 후면
여행을 할텐데.

그때도 이런 일을
겪게 된다면,
오늘처럼 절대
울면 안될 것이다.

부정적인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최악이라는 수식어를
갖다 붙이면서
에너지를
엄한데 쏟다보면

결국은
스스로가
지치게 마련이다.

여전히 곁에 있는 것들을 보지 못한 채.


오늘 이렇게
미리 열심히 울어둔 것으로,
나중에
이런 일이 있을 땐
침착함으로 대신해야지.



동경한다는 것은 마음속에 세상 저편의 본질이 존재함을 의미합니다.

그 본질은 이 세상을 초월합니다.
우리가 꿈꾸는 동경과 마주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삶을 있는 그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불만족으로 가득 찬 환상과 작별을 고하십시오.
삶이 완벽할 필요는 없습니다.
모든 소원이 충족될 필요도 없지요.
이는 오로지 신만이 채워줄 수 있습니다.


-머물지 말고 흘러라, 안젤름 그륀


 

늘 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것들이 실현되는 게
당연한 것은 아니라는 걸,

완벽함이 
삶의 본질은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늘 내 곁에 있을 것만 같은
가까운 이들과

'내 것'이라고 이름 붙인 것들과

그리고 나 자신조차

언제든 떠나보낼 수 있어야 함을.



작별인사를 준비할 시간은
따로 마련되지 않는다.

그러니,
매순간 순간이
마지막의 가능성을
품고 있다는 것을
잊지 않는 게 좋다.


완벽한 삶은 환상이고,
불완전한 삶은 실제다.

라고
 결론을 내리며,

완벽에 대한 기대의 벽을 허물며,
불완전을 위한 공간을 더 내어주기 시작한다.

삶을 더욱 더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서.



p.s ) 1. 이 글을 쓰는데도,
쉽지 않음을 느꼈음.
아, 이 완성의 어려움.

2. 칙칙한 지하철 건물 안에서
분실한 체크카드의 망령을
보곤한다.

아, 녀석들
정녕 어디로 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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