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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 Searching for

Out of India

Yildiz 2014. 4. 6. 23:10

@Bodhgaya, Bihar, India. 2013




<Out of India, Out of Mumbai> 



고아의 작은 마을에서 뭄바이라는 대도시로 가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사설 버스 회사가 몰려있는 건물은 시골의 점방보다 더 촘촘하게 작은 규모로 개미집처럼 간판들이 너저분하게 있었다. 마땅히 편히 쉴만한 공간이 없었어서 버스회사 바로 옆에 있는 곳으로 들어가 앉아있게 되었다. 
공기도 잘 통하지 않는 작은 곳이라 천정에서 돌아가는 작은 팬의 바지런한 움직임은 그저 전력낭비처럼 느껴졌다. 

종이책자로 부채질을 해가면서 무료함을 작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레슬링 프로그램으로 달래게 되었다. 어렸을 적 레슬링 프로그램을 본지가 손가락으로 세어보니 어엿 10년은 족히 넘었다.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을 한 걸음에 성큼 뛰어오른 기분이 들었다. 버스 회사 직원은 레슬링 경기도 그저 그런지 뮤직비디오 채널로 돌렸다가 다시 레슬링 채널로 돌렸다가 변덕을 부렸다. 

시간은 흐르고 흘러 뭄바이행 버스 출발시간이 가까워졌다. 남자친구와 단 둘이 작은 공간을 어지럽혀놓고 있었는데, 다른 승객들이 하나 둘씩 들어와 짐을 놓기 시작했다. 자리를 좁혀 텔레비전 앞에 있다가 계속 앉아있는 것도 지쳐서 일어나 슬슬 나갈 기운을 차리는 중이었다. 내 옆에 앉아 있는 인도 여자와 눈이 마주쳐 같이 웃어보였다. 

보통의 인도 여자와는 달리 그녀는 나의 시선을 놓칠새라 궁금했던 것을 마구 쏟아놓기 시작했다. 
"어디에서 왔어요?"
"어디로 가는 거죠?"

나는 뭄바이로 가는 거라고 하니 그녀 또한 뭄바이로 가는 길이라 하였다. 같은 버스를 타는 거라고 했다. 
그런데 그녀는 내게 왜 뭄바이로 가냐며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

"관광도 하고, 치과에 가봐야 해서 뭄바이에 가요."

그렇냐며 대답하는 그녀의 표정은 여전히 뚱해있다.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보는 그녀의 억양은 단단하고 야무지다. 

"직업이 뭐예요?"
"지금은 일하지 않고 여행을 다녀요."

인도를 여행하다 유럽으로 넘어가서 여행도 하고 지내고 싶다고 말하니, 그녀도 대뜸 대답하였다.

"저도 외국에서 일하고 싶어요." 
"어디로 가고 싶어요?"
"아무데나요. 그저 인도를 벗어나서요."

흔들림없이 나를 바라보며 또박또박 말한 "Out of India" 라는 표현이 귓가에 맴돌았다. 
한국에서 반복되는 숨막히는 일상에서 벗어나 인도로 여행하러 왔지만, 요즘 들어 내가 왜 인도에 왔는지 심각하게 생각하던 참이어서 그런가.
인도에 있다는 기분이 안 들때는 편안하지만 인도사람과 부대끼거나 신경이 거슬릴때는 짜증이 폭발하는 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여행이 한 두번도 아니고, 인도가 처음이 아님에도, 나는 여행자로서의 유연함과 노련함을 보이기보단 울그락 불그락 성을 내기 일쑤였다. 

여자의 간단한 말이, 그것도 인도에 살고 있는 여자의 말이 너무도 공감되어 순간 콧물이 나올 정도로 헛웃음을 흘렸다. 
'저도 인도에서 어서 벗어나고 싶어요.' 라는 말이 입 안에 가득 찼지만 꿀꺽 삼키고 그녀에게 궁금한 것을 묻기 시작했다.

"왜요? 왜 다른 나라로 가고 싶은거죠?"
"조용한 곳에 있고 싶어요..... 아무데나 좋을 것 같아요. 일할 수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괜찮아요.
 혹시 핸드폰 번호 알려줄 수 있나요?"

여행 중에 핸드폰을 가지고 다니지 않는다며 말을 하곤 그녀와 대화를 마쳤다.
내게 전화번호를 물어볼 정도로, 그녀는 인도 말고 다른 곳에서의 삶이 절실해보였다.

뭄바이행 야간 버스를 타고 다음날 새벽에 뭄바이에 도착했다. 

치과에 가기 위해 교외전철을 타고 사람들과 부대끼고 (서울 메트로 2호선의 출퇴근 시간 지옥철은 그저 애교처럼 느껴질 정도의 부대낌), 서울역 환승구역에서 바쁘게 이동하는 사람들보다 '더' 바쁘게 길을 걷는 인도인 사이에서 걸어보기도 하고.
오토바이와 자동차와 버스를 피해 근근히 도로를 건너야하는 위험함 속에서 뭄바이에서의 하루는 생각보다 힘들었다. 더운 날씨 탓도 있었지만, 길거리에서 마주해야하는 가난과 더불어 누군가의 엄청난 부에 또한 놀라고 둘 사이의 간극을 시도때도 없이 관찰하는 것은 사실 유쾌한 일은 아니었다.

뭄바이에서의 최고의 정점은 전철역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타고 가다 바로 눈앞에서 교통사고를 목격한 것이었다. 무단횡단으로 길을 바쁘게 걷던 어떤 남자가 오토바이가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치인 것이다. 해가 져서 어두워져가는 도로에서 그 남자의 하얀 셔츠가 바닥으로 털썩 무너진 장면이 눈에 선하다.

뭄바이를 떠난다는 사실 자체가 지친 하루의 고단함을 조금은 달래주기도 했다. 더불어 까만색 티셔츠를 입은 인도 여자가 했던 말, Out of India 가 마치 Out of Mumbai 인것 마냥 마음이 홀가분해지기도 했다.

그녀와 했던 대화를 곰곰이 떠올려보니, 그녀와 내가 닮은 구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지난 1월, 라오스를 여행할 때였다.
라오스의 빡세에서 국경을 넘어 태국 방콕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던 중, 스페인 여자와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내가 6월에 스페인에 갈 예정이고 세비야에서 살아보고 싶은데 일 구하는 게 어떤지 물어봤었다.

"이메일 주소를 알려줄테니,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 

내가 먼저 연락처를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메일 주소를 알려주니 너무 고마웠던 기억이 난다.

그러고 보면, 한국을 벗어나 외국에서 살아보고 싶어하는 나나
인도에서 벗어나 어디든 가서 살아보고 싶어하는 인도 여자와 닮았단 생각이 든다.

내게 이메일 주소를 알려준 스페인 여자처럼
나도 인도여자에게 내 연락처를 줄 수도 있었을텐데, 그렇게 하지 않은 이유는
그녀가 한국에 온다고 해서, 한국에 와서 일을 하게 된다고 해서 행복하지 않을 것이란 판단이 들어서였다.

한국 사회에서 소수자로 산다는 고달픔, 거기다 서양인이 아닌 인종에 대한 편견을 감당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가족이 있는 대륙의 땅이 오히려 마음 편한 곳일 것이다. 

그러고보면, 아무리 현재 사는 곳이 지겹고, 너무 고달파서 벗어나고 싶더라도
지금 내가 있는 곳에서 행복하지 않으면,
관성의 수레바퀴에 얽힌 감정들을 스스로 달래지 못한다면

이 세상 어느 곳에 있더라도
어렵게 도착한 유토피아에서조차도 행복하지 못하고 또다시 어딘가로 벗어나고 싶을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땐 다른 세상이 그립고,
인도에 있을 땐 한국이 아쉬운 변덕스런 내 마음을 인정하면서

Out of India, Out of Mumbai 가 해결책은 아니라는 것 또한 잊지 않아야겠다.
물론 Out of Korea 도 마찬가지.

P.S ) 인도여자가 친근하게 느껴진 이유가 있는데, 그녀가 입고 있던 검정색 티셔츠에 파울로 코엘료의 책 구절이 적혀져 있었기 때문이다.
페이스북 담벼락에서 보고 마음에 들어 저장한 사진 폰트 그대로 검정색 티셔츠에 박혀있었다.



그녀와의 만남 그리고 그녀의 티셔츠와의 만남 또한 이번 여행에서 가볍게 넘기지 않아야 하는 것 중 하나인 것 같다. 
그녀가 뭄바이에서 그 티셔츠를 샀다했는데 난 아쉽게도 발견하진 못했다.
내가 여행하면서 가슴에 새겨놓고 다니고 싶은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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