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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oose a color, make your life colorful. 본문

2014 Searching for

Choose a color, make your life colorful.

Yildiz 2014. 6. 20. 03:39

 

코라이가 말했다.

 

"Take it,

just take it."

 

"색깔이 너무 예뻐. 하지만 내가 이 색실들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어."

 

 

 

 

# 코라이와의 만남

 

한낮의 뜨거운 열기를 피해 시간을 흐느적 보내기 위해서 남자친구와 나는 각자 기타를 들고 우리가 자주 찾는 레스토랑에 왔다. 빨로렘에서 보내는 며칠은 이곳에서 프렌치 후라이와 시원한 음료를 즐기는 게 하루 일과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바다를 마주 보고 있는 레스토랑은 의자에 축 늘어져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 참 좋았다. 레스토랑 구석의 자리는 단골 손님의 "Reserved" 테이블이 있을 정도였으니까.

 

그날따라 레스토랑이 서양인 그룹으로 시끌벅적 했다. 웨이터가 술을 자주 서빙할 정도로 그들은 더운 열기를 안주 삼아 술을 즐기고 있었다. 그들과 한 테이블 떨어져 자리를 잡은 우리는 기타를 딩가딩가 거리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지 시간이 좀 지났을까. 기타를 치다, 음료수를 홀짝 거리다, 모래사장 지나가는 사람들을 구경하는데, 한 외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남자친구도 그가 눈에 띄였는지 같이 쳐다보았는데, 그도 우리의 시선을 느꼈는지 눈이 마주쳤다.

 

남자친구가 내게 속삭였다.

 

"왠지 우리한테 올 것 같아."

 

그도 우리가 흥미로워보였는지, 그리고 무언가 통했다 싶었는지 정말 남자친구의 예언대로 그는 대뜸 레스토랑으로 들어왔다.

 

"내가 여기에 앉아도 될까?"

 

선뜻 나이를 가늠하기 어려운 남자, 진한 금발의 머리는 지저분하게 산발이 되어 있지만 밴드로 머리카락을 뒤로 넘기고, 머리색만큼이나 노란 눈썹과 콧수염을 가진 사내였다. 헐렁한 옷차림과 손목 가득 팔찌가 있는 걸 보면 영락없이 여행을 좋아하고 오랫동안 즐겨오는 사람임을 한 눈에 알 수 있었다.

 

영어를 유창하게 잘하길래 유럽 어디께 사는 방랑객인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터키 사람이라고 한다. 그의 이름은 코라이.

이제껏 배낭여행을 하면서 터키 사람을 만난 적이 딱 한 번 있었는데, 코라이는 두번째로 만난 터키 사람이었다. 그것도 인도에서 터키사람을 만나다니. 쉽게 만날 수 있는 국적의 여행자가 아니었다.

 

터키 남자들의 남초적인 이미지와 달리 혼자 배낭여행을 다니는 남자들이 많지 않기 때문에 코라이의 존재는 특별해보였다. 지금까지 내가 만나본 터키 사람 중에서 가장 자유로운 영혼으로 손꼽을 만한 사람이었다.

 

"난 집에 둔게 별로 없어. 최신식 텔레비전이며, 냉장고, 세탁기. 그게 다 무슨 소용이야? 더 좋은 것을 갖기 위해서 뭔가를 사들이다 보면, 우린 결국 우리의 삶이 없어져버려."

 

이야기 할 사람이 필요했는지 코라이는 우리를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이야기 한보따리를 풀어내었다. 코라이는 이미 인도에

몇 번 온적이 있다고 한다. 여행가이드 자격증이 있어서 한철에는 가이드 일을 하고, 돈이 모이면 세계 여기저기 여행을 다닌다고 한다.

 

"내 고향은 카쉬야."

 

인도에서 터키사람을 만날 줄이 상상이나 해본 적이 없어서, 그에게 터키어로 뭐라 전하고 싶지만 단어들이 많이 기억이 나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더듬더듬 어설프게라도 터키어를 하니 코라이는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 그는 강아지가 신나서 잔디밭에 데굴데굴 구르듯이 온몸으로 즐거움을 표현하는 사내였다.

 

"내가 인도에서 와서 터키말을 하는 여행자를 만날 줄이야. 우리 형이 너를 알면 아마 깜짝 놀랄거야."

 

사촌형이 인도에 가고 싶은데, 혼자 가는 것을 꺼려해서 코라이가 같이 동행해 왔다고 한다.

 

코라이는 남자친구에게 잠깐 기타 연주를 해도 되겠냐면서, 기타를 빌려달라고 하였다.

기타를 잡은 코라이는 노래를 한 곡 불러주겠다며 목청을 가다듬고는, 정말 우렁찬 목소리로 한 곡조 뽑아내기 시작했다.

 

그의 우렁찬 목소리에 옆옆 테이블에서 낮술을 즐기던 외국인들의 관심이 쏠렸다. 흥이 돋궈진 코라이는 터키 노래를 몇 곡 더 불렀다. 그의 작은 콘서트를 지켜보던 한 외국인이 우리에게 말을 걸면서, 자기 테이블에도 기타를 잘 치는 친구 한 명 있다며 소개시켜 주었다.

 

선그라스를 쓰고 연신 우리쪽을 보며 흐뭇하게 미소짓던 한 청년이었다. 노르웨이에서 온 키 큰 백인은 우리 테이블로 와서 기타를 만지작 거리기 시작했다. 코라이의 연주, 남자친구의 연주, 노르웨이 청년의 연주까지 들으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앉아있었다.

 

기타를 좀 친다는 외국인이 내게 조용히 물어보았다.

 

"저 사람이 어디에서 왔다고?"

"터키사람이에요."

"정말??"

 


 

# 친구에게 행운의 징표를

 

터키 여행을 할 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남자들의 대답으로 꼭 등장하는 말이 '칼데쉬(kardeş, 형제)' 라는 표현이다. 양손의 검지 손가락을 빼빼로 하나씩 든 것처럼 시늉을 하며 터키와 한국은 형제의 나라라고 말한다. 정작 한국에서 나고 자랐으면서 6.25 전쟁때 터키군도 참전했다는 것을 모른 체 터키를 방문했었지만, 터키 남자들에겐 먼 동양의 나라까지 가서 희생된 자국의 형제들을 잊지 않고 기억하나보다 싶었다.

 

남자끼리의 우정을 길에서도 서슴없이 자랑하는 터키인들이라, '알카다쉬(arkadaş, 친구)' 라는 표현도 터키에 가면 꼭 알게 되는 단어 중 하나다. 길에서 처음 만난 여행자도, 인사를 나누고 이야기를 하다 보면 어느새 그들은 금방 여행객을 친구로 인정한다.

 

그런면에서 코라이는 겉모습 10초는 다른 나라 사람 같지만 속마음은 100% 터키인이었다.

 

남자친구와 나는 코라이와 만난지 하루도 안되어 다음날 저녁 버스로 함피로 갈 예정이었다. 코라이는 우리에게 선물을 주고 싶다며 내일 아침 꼭 자신이 늘 아침식사를 하는 까페로 오라고 당부했다.

 

다음날 아침, 코라이가 기다리고 있겠다고 한 까페를 찾아갔다. 전날 밤 모래 위에 불을 피우고 기타를 치며 놀던 곳이라 쉽게 찾아갈 수 있었다. 늦은 밤까지 영업했을 텐데, 아침부터 서빙을 하는 네팔인이 우리를 알아봐주었고, 코라이는 어서 오라며 우리를 반갑게 맞이했다.

 

분명, 코라이는 우리보다 더 늦게까지 놀았을텐데 일찍이 나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저 체력은 어디서 난 걸까.

 

그는 여행을 하면서 만난 친구들에게 팔찌나 목걸이 같은 악세사리를 직접 만들어 준다고 한다. 그래서 온갖 특이한 돌들과 실들을, 여러 봉지에 넣어 다니는데 그것들을 테이블 위로 왕창 풀어내었다.

 

돌들에 대해 관심이 많지 않은 나라, 내가 아는 것이란 고작 푸른색 터키석밖에 없었지만 하얀색, 노란색, 검정색, 핑크색, 초록색, 남색 등 각기 다른 줄무늬와 빛을 지닌 돌들에 아침부터 눈이 호강했다.

 

 

코라이는 자신의 고향집에는 자신이 가진게 별로 없기 때문에 문을 잘 안 잠그고 다닌다면서 얘기했었는데, 나한테는 그가 여행하면서 가지고 다니는 돌들의 무게가 조금 묵직하게 다가왔다.

 

크고 작은 돌들의 모양과 생김새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그가 어머니를 위해 만들었다는 것도 구경했다.

어느새 '형제' 가 되어버린 남자친구에겐 코라이는 '트루말린' 이라는 힘을 주는 검정색 돌을 가지고 팔찌를 만들기 시작했다.

 

"코라이, 이런거 만드는 건 어디서 배운거에요?"

"배우지 않았어. 혼자 하다보니까 만들게 된거야."

 

튼튼한 팔찌를 만들기 위해 코라이는 실을 한번 감고 또 감고 자신만의 방식대로 꼼꼼하게 작업을 하고 있었다.

친구들을 위해 손수 정성들여 작업하고 있는 코라이 곁을 맴맴 돌다가 테이블 위에 널려 있는 실타래에 손이 갔다.

 

"와, 색깔이 너무 예뻐요."

"가져, 원하면 가져도 좋아."

"음... 너무 예쁜데, 이걸로 뭘 해야할지 모르겠어요."

 

코라이는 내게 '그냥 가져도 돼.' 라며 내가 가져도 괜찮다고 했지만 나는 아무것도 고르지 못했다.

그 어떤 색도 콕 찍어 '이거다' 라며 고를 수 없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내가 이걸로 뭘 할 수 있을까? 그냥 짐만 될거야.' 라는 생각 뿐이었다.

 

 

Nikon F3, Agfa Vista 200 @ Palolem beach, Goa, India, 2014.03

 

 

코라이의 수작업은 생각보다 시간이 더 걸렸다. 게스트하우스 체크아웃 시간 때문에 남자친구와 나는 숙소로 돌아와 짐을 모두 챙겨서 맡기고는 다시 코라이가 있는 까페로 왔다.

 

코라이는 사촌형과 함께 다른 해변가를 다녀올 거라서 팔찌도 만들고, 내게 줄 목걸이도 만들고, 잡다한 일을 해야해서인지 무척 바쁘게 움직였다.

 

팔로렘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다녀오기 위해 차를 대절했는지, 택시를 대절했는지. 사촌형은 코라이에게 빨리 오라고 재촉하고 코라이는 친구를 위해서 지금 이걸 다 끝내야되는데 등 불라불라 터키어로 다투기 시작했다.

사촌형의 급박한 재촉에도 불구하고 코라이는 아랑곳 하지 않고 내게 줄 목걸이까지 완벽하게 만들었다.

 

코라이는 자신이 만들어준 목걸이가 내게 딱 맞는지 확인하고는 급하게 가려했다.

그의 사정을 알고 있는 우리는 주변 정리를 도와주고 있었기에 뒤늦게서야 그와 기념사진을 찍게 되었다.

만난지 얼마 되지 않아 작별인사를 급하게 하게 되었지만 사진을 찍자는 우리의 제안에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무지막지하게 짜증을 내는 사촌형과 대화하는 표정과는 달리, 발랄한 웃음을 지어주었다.

 

 

 

 

 

# Choose a color, make your life colorful.

 

짧은 여행을 다녀온 후, 요즘따라

코라이의 실타래를 찍은 사진에 자꾸만 눈이 가기 시작했다.

 

왜 그런가 싶었더니, 무언가 하나를 덜컥 잡기 두려워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있는 지금의 내 모습이 그때의 나와 비슷해서인가보다.

 

내가 이것을 선택했을때,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가 있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가 있다.

그 경계인, 현재의 순간에서 무엇을 선택하면 좋을지 몰라하는 내 모습,

확실한 결과가 눈에 보여야만 마음 놓고 선택하려는 내 모습이 보인다.

 

실패하지 않을 성과가 머릿속에 그려지지 않으니 안갯속인 미래를 잘 헤쳐 나갈 수 있을지도 의문투성인 것이다.

 

코라이의 실타래 중 아무것도 선택하지 못했다.

하지만 내가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좋아하는 색깔 중 하나를 골랐다면

나는 그 색실로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나도 코라이처럼 팔찌 만드는 것을 시도해볼 수도 있었을테고.

검정색 정장에 예쁜 색실이 눈에 띄도록 단추를 바꿔달아볼 수도 있었거나.

 

내가 상상하지 못했던 무언가를 만들 수도 있지 않을까.

 

어차피 상상대로 되지 않는 인생

계획대로 되지 않는 인생,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면

가장 마음이 가는 것을 고르는 것도 어디냐는 생각이 든다.

 

적어도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자유가 있다는 것의 가치는 굉장한 것이다.

 

그것에서부터 미래가 만들어지기 시작하는 거지,

내 예상속의 미래는 그저 내 망상속에만 존재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선택하지 않고

아무것에도 물들지 않고 사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선택을 하고,

그것들로 내 삶을 물들이게 하는 것.

 

내가 선택한 것에 책임을 지고 감당하겠다는 마음과 함께 한다면

 

하지 않은 것에 대한 후회 보다

선택한 것에 대한 만족감으로

삶의 그림이 다채로워질 것이다.  

 

그 어떤 색깔로 삶이 칠해질지는

삶의 마지막이 오기 전까지는 그림의 완성본을 알지 못한다.

 

그건 끝까지 가봐야 아는 것.

 

우선 가기 위해 선택을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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