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리 메뉴

힘내자, 청춘!

[통영] 즉흥적 혼자 여행의 추억② 본문

국내여행/통영

[통영] 즉흥적 혼자 여행의 추억②

Yildiz 2010. 10. 28. 02:52




#1. 소매물도에 도착하다

 
1시간 30분정도 걸려 소매물도에 도착했다.
배에서 함께 내린 관광객들의 걸음을 따라가다가 바위에 적힌 표지, 발견!

바위덩어리가 살아서 미소짓는 것도 아닌데,
왜 그리 반가운지.

머지않아 눈으로 보게 될 등대섬이 무척이나 기대된다.

답답하기만 생각했던 일상에서 갑자기 뛰쳐나와 지금 이렇게 소매물도에 와서 길가에 핀 꽃과 나무를 보는 게 참 즐겁다.



새벽에 통영 항구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태풍의 약한 기운이 스멀스멀, 섬에 오고 있는 것 같다.
정상을 향해 걸음을 옮길수록 몸에 부딪치는 바람의 강도가 세지는 느낌이다.


 













소매물도 정상에 오르자, 훤히 내다보이는 수평선이 가슴을 시원하게 한다. 그런데 마구 불어대는 바람 힘이 장난이 아니다. 
까딱 잘못하다가는 바위 밑으로 떨어질라. 이휴.

눈 앞에 펼쳐지는 끝모를 바다를 바라보는 것도 아찔하지만,
바로 밑을 보자니 더 아찔하다.




몇 걸음 더 옮겨 저 너머에 있는 등대섬을
드디어, 눈으로 보게 되었다.

아, 저기가 바로 등대섬이구나!




#2.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네.


에구구. 멀리서도 바닷물이 벌써 차 있어 밑으로 내려간다 한들 등대섬에 발을 내딛지는 못할 것 같다. 이런, 아쉬울수가!
그래도 한번 내려가볼까. 말까 고민하기 시작한다.

그 누구도 일러주지 않았다.
사실 누군가 소매물도 가는 사람들에게 꼭 알려줘야하는 일은 아니지만,
나처럼 내리막길을 두려워하는 이에게는 꼭 필요한 정보다.

"등대섬에 가기 위해서는 경사가 급한 내리막길을 지나야한다." 는 사실. 

발 밑에 바로 위치한 내리막길을 쉽게 지나갈 용기가 나질 않는다.  
자칫 하다가는 앞으로 굴러 떨어질 것 같다는 무서운 상상.
비닐봉지라든지, 쌀포대가 있으면 이 급경사 내리막길을 안전하게 갈 수 있을텐데...

어차피 아래로 내려가봤자 등대섬에 못 갈거면, 안 내려가도 될 것 같은데...?
다시 돌아가 배를 기다릴까?
포기하고 싶은 마음이 불끈 솟았지만
그래도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소매물도 끝까지는 한번 가봐야하지 않겠는지
잠시 멈춰서서 고민한다.

우선은 할 수 있는데까지,
갈 수 있는데까지는 가봐야 후회가 없지 않을까.

기어서 가더라도,
끝까지 가보자.
스스로 당당해지기 위해서라도.

두 다리가 벌벌 떨리기에, 서서 내려가기는 무서워 못하겠다.
자세를 최대한 낮춰 엉금엉금 내려오기 시작한다.
바지가 더러워지든 말든.
기어서라도 내려가야지 별수있나.


쉬엄쉬엄 조심히 내려온 덕분에 내리막길 통과하기 미션 성공!

중간에 밭이 있는 곳에서 검정색 염소떼들이 한가롭게 모여있는 것을 보고는, 계속 아래로 향하다가 또다른 경사길을 맞딱뜨렸다!!

등대섬으로 가는 길이 생각보다 험한 길이군.ㅠㅠ

아까는 흙으로 된 경사길이었지만, 이번에는 돌로된 경사길. 참 다리가 후들거린다.

초긴장, 부들부들 떨리는 다리를 진정 시키며 드디어 바닷물 가까이 내려오기 성공!!




이 곳까지 내려온 기념으로 중간에 만난 부부님 사진을 찍어드린다. 더불어 나도 기념사진 한장.

무서운 길도 씩씩하게 헤쳐서 이렇게 내려오다니.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고 나름 뿌듯하다.

태풍이 오고 있기에 오후 2시에 있을 배가 더 일찍 출발할 수도 있을거란 소식을 들었다. 이젠 발걸음을 뒤로 옮길차례.
아까왔던 길을 찾지 못해 없는 길을 막 올라갔다. 살기 위해 풀무더기를 잡고 겨우 오르고 올라 길에 들어선 기분은...
참.. 이런 경험도 나름 스릴만점이다. 훗.

점심을 아직 먹지 않는 탓에 부부님과 나는 우연히 어느 집에 들어가 점심을 먹게 되었다.
나는 새벽에 산 충무김밥을 꺼내들고, 부부님도 자신들의 도시락을 꺼내들었다.
홀로 사시는 할머니는 우리에게 미역국 한 그릇 대접해주신다.
아들은 통영에서 지내고 홀로 이 곳에서 사신다는 할머니.



함께 점심을 먹는 사이에 부부님에 대해 좀 더 알게 되었다. 남편되시는 분이.. 어느날 뇌졸증으로 쓰러져서.. 지금은 은퇴하고 여행 다니면서 병을 치유 중에 있다고 하신다. 주로 산에 많이 다니신단다. 한번 아픈 이후로는 예전처럼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신다고 한다. 그냥 겉으로 봐서는 전혀 모르겠는데...

할머니께 미역국 감사하다고 인사 드리고 배를 놓치지 않기 위해 선착장으로 왔다. 이미 배를 타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이젠 제법 비가 한 두 방울 떨어지기 시작한다.


#3. 통영으로 돌아가는 배 안에서


드디어 배에 올라섰다.
배의 한 쪽 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별로 기대하지 않고, 멋 모르고 왔기에 몸은 조금 고됐지만 오늘 일이 정말 새롭고 즐거웠다.

아침에는 의자가 있는 배를 타고 왔는데, 이 배는 따로 좌석이 없이 넓은 자리로 되어있다.
배 가운데 쯤 자리를 잡고 있는 서너명의 아이들, 부부 그리고 친정어머니. 모처럼의 가족여행처럼 보인다.
시끌벅적, 아이들 덕분에 왁자지껄한 분위기가 그들이 행복한 시간을 보내고 있음을 짐작케한다.

오른쪽 벽에 기대 앉아 있는 한 부부가 눈에 들어온다.
오늘 섬에서는 못 본것 같은데, 등산복 차림의 이 부부.
호흡이 불편해보이는 아내를 위해 남편은 배낭에서 산소호흡기 같은 기구를 꺼내 아내의 얼굴에 대어준다. 

나처럼 혼자 여행 온 듯한 여자 여행자도 눈에 뜨인다.
그녀도 분명 나처럼 좀처럼 쉽게 해결할 수 없는 지긋지긋한 두통을 견딜 수 없어
일상을 박차고 떠나온 건지도 모른다.


다양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함께  배를 타고 가고 있다.
치유를 목적으로  여행을  떠나오는 사람도 있고, 가족간의 추억을 만들기 위해서,
또는 섬에 계시는 어머니를 뵙고  떠나온 사람들이
이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가고 있다.

이름 모를 사람들이지만,
그들이 가지고 있을 각각의 사연들이 무얼까. 지긋이 바라보며, 문득 든 생각.

...길 위에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을 바라보는 것,
홀로 이렇게 여행하는 것을, 무척 즐기게 될 것임을.
진정 사랑하게 될 것이라는 작은 울림이 조용히 퍼저나간다.



#4.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다.


여행을 통해 많은 생각들을 하고,
지금까지 해온 고민들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거란 기대를 갖고 시작한 여행이었는데, 별로 해결된 것은 없는 것 같다.

대신 실타래처럼 엉켜있던 생각들의 존재는 저만치 밀려나고,
'생존' 을 위해 앞으로 나아가는 걸음에 집중해야했던 순간들을 통해,

그 시간만큼은 아무 잡념없이 순수하게 그 시간을 살았던 것 같다. 



이번 여행이 청춘의 고민을 해결해주지 않아서 실망스럽다거나 괜히 왔다는 후회를 안겨주지는 않는다.

아무런 고민과 걱정없이,
새로운 걸음을 호기심으로 둘러보고, 
순간을 즐겼던 짧은 시간들.

가끔은
익숙한 생각들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음을.

가끔은
심각하게 생각했던 일이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머릿속을 백지장처럼 만들 권리.
일상에서 잠시 떠나 휴식을 떠날 필요가 있음을.


전날에 잔뜩 머릿속에 묵혀두었던 생각의 잔해들을 토해낸 수첩을 바라보며
오늘의 일기는 순전히 기억에 고이 보관하고, 짤막한 한 줄의 글을 쓰다.

"내가 여행을 떠나온 것은 더 잘 살기 위해서다."


지친 마음을 회복하기 위해 떠나갈 곳이 있다는 것도 좋은 일이고,
다시 돌아갈 곳. 편안하게 지친 몸을 기댈 곳이 있다는 것도 참 감사할 일이다.

어제 가볍게 생각했던 감기 몸살 기운이, 결국엔 도졌다.
그냥 냅두면 나아질거라 생각해서 나름 즐겁게 섬여행을 했지만, 몸은 좀 힘들긴 했나보다.

통영에 도착해서, 어디로 발걸음을 옮겨야 할까 고민하다,
이런 상태에서 또 하룻밤을 찜질방에서 보내는 것은 좋지 않을 것 같아 버스터미널로 걸음을 옮긴다.
얼른 그리운 집으로 가서 푹 쉬고 싶은 생각 뿐이다. 

박경리 작가님의 소설 토지에 그려진 통영의 모습을 보지도 못했는데, 이렇게 돌아가야한다니 아쉽지만.
언젠가는 다시 올 것이다.
아직 등대섬에 발도장을 못 찍었으니까!

-2007년 7월 13일 금요일 경상남도, 통영
(사진 원본이... 없어서 예전에 미니홈피에 올렸던 것들로 올립니다.
사진이 별로 신통치 않지요.. ㅎㅎ )

'국내여행 > 통영' 카테고리의 다른 글

[통영] 즉흥적 혼자 여행의 추억①  (0) 2010.10.16
Commen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