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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워홀] D+7~10, 별일 없이 사는 건 축복이라지 본문

2017 독일 워킹홀리데이/워홀일기

[독일워홀] D+7~10, 별일 없이 사는 건 축복이라지

Yildiz 2017. 4. 28. 22:59

(2017년 4월 6일 목요일 - 워낙 별일 없이 지내서, 목요일 일기만 씀)


#한 작은 새가 말하길...

호주에서 쓰던 스마트폰도 독일에 가져왔다. 호주에서 쓰던 유심칩이 그대로 꽂혀있어, 간혹 은행 업무를 해야 할때 사용한다. 은행에서 임시비밀번호를 보내줄 때가 있기 때문이다. 트럼프 당선 이후 요동치는 호주 환율의 비밀을 알 수가 없어서, 아직 남아 있는 호주돈을 최대한 안 쓰려고 애쓰긴 한다. 

이 스마트폰에 저장된 사진 중에 블로그에 올릴 만한 게 있는지 확인하려고 밤새 충전을 시켰다. 아이폰4라서 밧데리가 제멋대로였다. 그렇다고 밧데리를 교체하자니, 오래된 소프트웨어로 계속해서 업데이트 되는 어플들을 사용하기엔 힘들 것 같았다. 

평상시에는 이 폰을 사용할 일이 없어서 비행기모드로 두곤 하는데, 블로그에 사진을 올리려고 비행기모드를 껐더니 자동으로 독일의 통신망이 잡혔다. 

그리고 새벽에 생일 축하메세지를 받았다. 

한 작은 새가 우리에게 말하길, 오늘이 특별한 날이라고 한다. 생일 축하합니다. from Allied recruitment

세상에. 까마득히 있고 있었던 곳에서 생일 축하 메세지를 받았다. 호주에 있을 때, 일을 구하려고 등록했던 에어전시에서 문자가 온 거다. 물론, 자동으로 보내주는 거겠지만... 이 회사에 등록한 후, 일에 관한 연락을 한번도 못 받았는데, 생일이라고 문자가 온 것이다. 좀 어이가 없었다. 게다가 그냥 'Happy birthday' 도 아니고 '한 작은 새가 말하길.... ' 로 시작하는 메세지라니. 조금은 당황했고, 약간은 유치했다.

이 메세지가 촉매가 되어 호주에서 있을 때, 한창 일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다녔던 기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그때는 그때대로 힘들었었는데, 시간이 지나니 아무렇지가 않다. 


#지루했던 쇼핑몰 나들이 

오늘은 걸어서 3km 정도 떨어져 있는 큰 쇼핑몰에 가보기로 한다. 버스 타고 가기에는 노선이 애매하고, 택시 타고 가기엔 왠지 차비가 아까운 그런 위치에 있다. 우선은 걸어서 가보고, 집으로 돌아올때 너무 힘들면 택시를 타기로 했다. 

이 동네에는 소세지 자판기가 있는데, 집 주인 언니가 하는 말이 이런 자판기가 독일에서 흔한게 아니라고 했다.


처음에는 집 주인 언니 말대로 여기 동사무소에서 설치한 건 줄 알았는데, 자세히 보니 옆 건물이 바로 가게였다. 가게가 문 닫혔을 때를 대비해서 소비자가 구매하기 편하게 자판기를 설치한 것 같았다. 자판기 안에는 소세지, 살라미, 각종 소스 그리고 계란도 있다. 



나는 평소에 걷는 걸 좋아하는 편이지만, 오늘 쇼핑몰 가는 길이 왠지 모르게 힘이 들었다. 보통 남친이 걷는 속도와 비슷하게 잘 걷는 편인데, 오늘은 여려번 남자친구에게 '좀 천천히 가자.' 라고 말을 해야 했다. 

쇼핑몰 구경도 하기 전에, 가는 길에 지쳐버린 것이다. 엉엉...


큰 대로변의 신호등. 이 길을 지나 좀 더 가면 쇼핑몰이 '떡' 하니 보일 것 같았지만... 호텔이 보였다. 


탁 트인 시야가 예뻤다. 하늘에 있는 구름 또한 예뻤다. 


인적이 드문 곳에 아스파라거스 파는 농부의 트럭.



 Main-Taunus-Zentrum은 기대했던 것보다 넓었는데, 쇼핑을 그다지 즐겨하지 않는 나에겐 쓸데없이 넓어 보였다. 아직 내가 경제 활동을 하지 않는 다는 사실 그리고 각종 화려한 사치품들에 매겨진 가격이 나를 초라하게 만들었다. 

남자친구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구경하고 싶은데, 쇼핑몰 오기 전부터 내가 지친 기색을 보이자 답답해했다. 

배는 고픈데 어디서 무엇을 먹을까 고민하다가 결국 찾아간 곳은 '케밥' 음식점. 직원에게 독일어로 주문하긴 했지만, 그 직원이 무슨 말을 되물었고, 그 말을 이해하지 못했던 나는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오렌지 쥬스 주세요." 라고.  

그래서 결국 내가 받게 된 것은 '오렌지 쥬스' 가 아닌 '레몬 쥬스'.... 

오렌지 쥬스가 없어서 레몬 쥬스를 준 것 같은데, 내가 말을 못 알아 먹으니 그냥 아무거나 준 것 같았다.

아니, 없으면... 다른거라도 주겠다. 라고 말해줬으면 얼마나 좋아. 

왜 내게 레몬 쥬스를 주는가? 라고 되묻지 못하고, 상황을 이해하려고 머리를 굴렸다.  

독일어는 써야겠는데, 적응이 안 되서 상대방이 하는 말을 잘 못 알아듣고, 그렇다고 영어를 쓰면 독일어가 늘지 않을테니... 이런 상황이 답답했다. 덩치는 성인인데 언어 능력은 유년기 어딘가에 어정쩡하게 걸친 것 같은 억울함마저 들었다. 

케밥 가게에 있는 테이블에 앉아 있으니, 들려야 하는 독일어는 막귀라서 안 들리고, 그동안 잊혀졌었던 터키어만 생생하게 들렸다. 

dm에서 남자친구는 로션을 하나 사고, 레베Rewe에 들러서 바디크림, 물티슈 등을 샀다. Penaten에서 나오는 건 주로 아기들을 위한 목욕, 바디용품인데, 순하다길래 한번 써보고 싶었다. 한국에서 주로 샘플용으로 샴푸, 로션 등을 가져왔기 때문에 이제 거의 동이 나고 있다. 마트와 화장품 가게에서 싼 제품들이 많긴 한데, 막상 무엇을 사야할지 몰라서 주저하는데 시간이 더 걸리는 것 같다. 

집에 가는 길은 당연히 택시를 불러서 편하게 갔다. 무얼 많이 구경한 것도 아닌데, 오늘은 이상하게 피곤한 날이다. 생각보다 즐겁지 않았던 생일날이었다. 


#별일 없이 사는 건 축복이라지 

이번주 일요일에 안멜둥이 되는 집으로 이사가기로 정했다. 원래는 처음 들어온 이 집에서 3주 정도 지내는 걸로 말을 했었는데, 안멜둥을 해야하는 상황이 되어 일찍 나가게 되었다. 집 주인 부부가 우리를 배려해준 덕분에 좀 시간을 두고 이사를 나갈 수 있었다. 지내기에 좋은 집이어서 많이 아쉬웠지만... 안멜둥이라는 형식상의 절차가 필요해서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저녁에는 남자친구가 특식으로 '샘킴의 치킨 요로케'를 만들었다. 예전에 [냉장고를 부탁해]에서 샘킴이 만든 닭가슴살 요리인데, 호주에서 여러번 만들어 먹었었다. 거의 1년 만에 다시 만들어보는 '치킨 요로케'였다. 마트에서 사온 닭가슴살을 전부 요리하느라 시간이 좀 걸렸다. 양이 좀 많아서 집에 있는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오랜만에 만든 거였지만 맛이 괜찮았어서 남김 없이 다 먹었다. 

남자친구가 요리를 성공적으로 해내서 집 주인 부부에게 잘 대접해주고 싶어하는 눈치였다. 우리가 이 집에 들어오기로 해서, 얼마나 오래 있을지 모르므로 다른 사람을 계약하지 않았다던데.. 우리가 예상했던 것보다 너무 빨리 떠나게 되서 집 주인에게 많이 미안했다.

한국을 떠난지 벌써 일주일이 지나가고 있었지만, 한국에서 지내던 것처럼 별일 없이 무난히 지내는 평범한 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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