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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산티아고] 그 길이 당신을 부른다면 응답하라 본문

소소한 일상/영화수다

[나의 산티아고] 그 길이 당신을 부른다면 응답하라

일디즈 Yildiz 2017. 3. 18. 22:46


독일에서는 2015년 12월에 개봉한 영화, Ich bin dann mal weg.  

한국에서는 [나의 산티아고]라는 제목으로 2016년 7월에 상영됐다. 

영화의 상영과 더불어 서점가에서는 영화의 원작인 하페 케르켈링의 책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산티아고 길에서 나를 만나다
국내도서
저자 : 하페 케르켈링 / 박민숙역
출판 : 은행나무 2016.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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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번역본으로는 2016년 7월에 발간됐지만, 독일에서는 2006년에 출판되기 시작해 많은 인기를 얻었나보다. 


하페는 무대위에서 사람들을 즐겁게 하는 엔터테이너다. 과로로 인해 일을 중단했고, 순례자의 길을 걷기로 결심했다.

작년 여름에 개봉했을 때 극장에서 한 번 보고, 며칠 전에 다시 또 보았다. 9년 전에 순례자의 길을 걸었기 때문에 오랜만에 추억을 회상하고 싶었고, 독일어를 배우기 시작했기에 공부하는 촉매제로서 영화가 궁금했었다. 

처음 영화를 봤을 때는, 주인공이 너무 엄살을 부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페는 순례자의 고된 행군을 하기 싫을 때- 혹은 피곤할 때 버스를 타고 이동하고, 알베르게 (순례자 전용숙소) 에서 머무는 게 싫어서 호텔에서 머물렀다. 물론, 하루에 20km 넘게 배낭을 메고 걷는 것은 힘든 일이다. 하지만 그보다 더 나이 많은 사람도 발바닥의 물집을 이겨내고, 길을 걷곤 하는데... 왜 저렇게 호들갑을 떠는 것일까, 라는 생각이 들어 쉽게 공감이 가지 않았다. 

나는 2008년 5월 중순 무렵에 까미노 길에 올랐다. 그 당시 나는 대학 졸업을 1년 앞두고 휴학을 한 상태였다. 순전히 세계여행을 하기 위해서였다. 휴학을 결정하는데 있어 기회비용을 따져보았었다. 내가 대학교를 제때 졸업하고, 임용고시를 바로 통과하여 돈을 벌었을 때의 통장잔고와 사회 진출의 시기에 대해서 조금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내가 아는 '나'는 임용고시 공부를 그렇게 열심히 할 사람이 아니었다. 만약 내가 돈 걱정과 동기들보다 늦은 사회 진출을 걱정해서 여행을 포기한다면, 무지막지하게 후회할 것 같았다. 세계여행을 가지 않고 강의실 구석에 앉아 있으면, 자유롭게 내버려두지 못한 영혼이 땅이 꺼질 듯 길고 깊은 한숨을 쉴 것이 불 보듯 뻔했다. 

첫 여행지로 선택한 곳이 바로 까미노였다. 나는 걷는 것에 자신이 있었고, 도보여행이므로 여행기간에 비해 경비가 적게 들것이란 계산 때문이었다. 순례자들의 전용숙소인 알베르게의 하루 숙박비는 1만원도 채 안되는 저렴한 가격이었다. 간혹 기부제로 운영하는 알베르게에서는 그보다 더 적은 가격으로 하룻밤을 보낼 수 있었다. 

대학과 진로를 잘못 선택했다는 자책감은 대학생활 3년 내내 나를 괴롭혔었다. 대학 수업이 진부하고 너무 재미가 없어서 죽을 맛이었다. 나는 진정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살아가고 있었다. 방황의 답을 얻고 싶어 까미노를 선택했다. 그무렵 내가 정말 좋아했던 외국 소설가 - 파울로 코엘료가 스페인의 순례자 길을 걷고 작가로 살기를 결심했다는 것을 알고는 더더욱 내가 걸어야만 하는 길이 바로 까미노였다. 

순례길에서 매일 메모를 했던 주인공. 순례 중 떠오른 생각과 기분을 적는 것은 사진, 기념품과 별도로 스스로에게 주는 큰 선물과 같다.

이미 다녀온지 9년이 다 되어가는 길이지만, 나도 걸어봤던 길을 영화 속 장면으로 보니 좋았다. "나도 저기에 있었지." 들뜬 목소리를 낼 수 있었다.


세계여행을 결심하기 전, 대학교 여름방학 때 국토대장정을 완주했었다. 파주에서 부산까지- 긴 거리를 걷는데 무난히 해냈던 나는 순례자의 길에 큰 포부를 갖고 있었다. 하지만 순례 첫 날과 둘째 날은 후회를 했었다. 현실은 상상했던 것과 달랐고, 나의 겁쟁이 면모에 스스로 실망하기도 했다. 가파른 산을 오르 내리는 일에 젬병이었던 나는 매번 마음을 가다듬고 더듬더듬 발걸음을 옮겼다. 

힘든 코스, 지루한 코스, 무난한 코스를 걸으면서 제일 좋았던 것은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의 매력을 알게 된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을 찾고 싶은 마음 반, 호기심 반으로 걷기 시작한 길은 예상했던 것보다 더 값진 경험과 만남들을 주었다. 마지막에 우연히 파울로 코엘료를 만나게 되고, 그의 싸인을 받고 같이 사진을 찍을 수 있었던 건 정말 상상도 해보지 못했던 삶의 선물이었다. 

무엇보다 그동안 스스로 생각했던 '나' 자신의 새로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새로운 사람들과의 만남에서 진심을 전하고, 그들의 안녕을 기원하면서 혹은 혼자 걷는 길 위에서 나와 마주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길을 걸으며 어느 순간 울음이 나오기도 하고, 또는 성당 한 구석에 앉아서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신을 만나고 싶어서 걷기 시작한 영화 속 주인공- 또는 실제 주인공은 어느 마을에서 신기루처럼 자신의 과거의 모습을 보게 되고, 길을 걷던 중 울음을 터뜨린다. 그 장면을 논리적으로, 주인공의 마음과 심리 기제를 표현하기는 힘들었던 것 같다. 그건 정말 자신이 그 길을 걷는다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가능한... 설명하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영화[나의 산티아고]를 처음 볼 때는 주인공의 단점이 주로 눈에 보였지만, 두번째로 볼 때는 독일어에 대한 애정이 생겨서인지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주인공이 독일어로 쓰고 말하는 문장들이 살짝씩 이해가 갔다. 한국어로 보는 자막과 귀로 들리는 독일어의 뉘앙스는 약간 다르게 느껴졌다. 마음 속에 영화에 대한 애정이 생기니, 그 전에는 느끼지 못했던 것들이 눈에 더 들어왔다. 영화 초반부에서 주인공의 표정이 좀 경직되어 있었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그의 표정은 여유롭고 편안해보였다. 고된 순례길이 한 달 가까이 계속됨에도 불구하고, 순례자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어떤 평화로움의 한 조각이었다. 

두번째로 보는 영화임에도 똑같이 느끼는 아쉬움이 있었다. 짧게는 20일, 길게는 30일 넘게 걷는 그 길을 빠짐없이 걸었다면, 아무리 모자를 쓰고 선크림을 바르더라도 신체의 일부분이 타기 마련이다. 쌔까맣게 타지는 않더라도, 반소매 옷과 바지를 입고 걸었다면 바지 경계부분을 기점으로 살색이 달라진다. 하지만 이 영화에서는 주인공들은 처음과 비슷한 피부색을 가지고 있었다. 남 주인공이 주로 반바지를 입고 걸었음에도, 다리는 아주 깨끗했다.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순례를 제대로 한 사람은 조금 촌스러워지게 마련이다. 그러나 영화 속 인물들은 마지막에도 깔끔한 편에 속했다. 

또 하나의 티는 바로 '가벼워보이는 배낭' 이다. 아무리 가볍게~ 배낭을 꾸린다고 해도, 주인공이 배낭을 벗을 때 느껴지는 무게는 현실감이 없었다. 이런 아쉬운 점이 있지만, 그래도 유쾌하게 관조하며 볼 수 있는 이야기와 큰 앵글로 잡은 순례자의 길 장면들은 지루함 없이 관객들을 몰입시키기에 충분한 것 같다. 

프랑스 생장에서 스페인의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약 800km. 기나긴 길이지만, 함께 걷는 이들과 만남과 이별, 길 위에서의 새로운 만남으로 인해 한 달의 시간들은 특별한 '여행'이 된다. 순례자의 길이 당신을 부른다면- 혹은 당신이 그 길을 간절히 원한다면- 언젠가는 가게 될 것이고, 언젠가는 만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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