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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식주의자] 욕망과 열정 사이

Yildiz 2016. 7. 24. 14:07


채식주의자
국내도서
저자 : 한강
출판 : 창비(창작과비평사) 2007.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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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독서를 즐겨하는 편이지만 소설 장르 매니아는 아니다. [이 시대의 필독서!] 라는 타이틀이 붙거나, 내가 좋아하게 된 작가의 경우 일부러 찾아 읽거나 2번이상 읽기도 한다. 한국 소설보다는 외국 소설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 지하철 광고였던가, 아니면 오고 가며 듣던 그런 이름이었던가. '한강' 이라는 작가 이름은 내게 생소했고, 남자작가일 거란 혼자만의 추측도 했던 것 같다.

그러다 한강의 작품을 처음으로 접한게 [소년이 온다]였다. 누구의 추천을 받았다기 보다는, 갑자기 그 책의 표지가 떠올랐고 충동적으로 책을 구매했었다. 그녀의 글은 참으로 아렸다. [소년이 온다]를 읽고 한동안 그 책에 사로잡혔었다. 광주 민주화 운동을 주제로 한 영화와 책을 이미 여러번 봤었지만, 한강의 글이 주는 마력은 뭐라 설명하기가 어려웠다. 

타국에 있다가 한국에 온지도 거의 3주가 다 되어간다. 한국에 오자마자 시도한 것이 도서관 책 예약하기 였다. 혹시나해서 한강의 [채식주의자]를 검색했는데 운좋게도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었다. 그래서 냉큼 빌려 읽게 된 [채식주의자].

생각보다 책이 얇아서 금방 읽겠다, 쉽게 읽겠다. 생각했지만 그건 정말 큰 착각이었다. 



221페이지밖에 안되는 글을 읽고, 나는 며칠동안 소설에 대해서 생각했다. 중간에 너무 야한 장면에서는 쉽게 책장을 넘기지 못했다. 책을 덮고 숨고를 시간이 필요했었다. 이미 줄거리는 알고 있던 상태였다. 한강이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후 한국 언론에서 쏟아져 나온 기사를 읽어봤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었던 내용이라 해도 무방했다. 

하지만 이게 뭔가. 줄거리를 아는 것과 그녀의 글을 읽는 것은 달라도 너무 달랐다. 

어떻게 저렇게 여려보이는 사람이, 깊이를 가늠하기 힘든, 감정의 소용돌이를 덤덤하게 표현할 수 있을까. 그녀의 문장력과 표현력에 매료된 나는 한동안 길을 걸으면서도 '채식주의자'를 떠올렸다. 


책 표지에는 [한강 연작소설] 이란 단어가 박혀있다. 연작소설? 챕터마다 다른 이야기인건가? 싶었지만 알고보니 다 이어져있는 내용이었다.

이야기의 내용이 너무도 강렬해서 이 목차가 외워질 지경이다.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이 책을 읽으면서 나는 '욕망' 에 대해서 떠올렸다. 무서운 꿈을 꾸고 나서 고기를 먹지 않게 된 영혜- , 처제의 엉덩이에 있는 몽고반점을 보고 싶어하게 된 형부- , 식물이 되고자 하는 동생 영혜를 책임감으로 보살피는 언니 인혜-. 

이 세사람의 이야기는 사람의 '욕망' 에 대해 생각해보게 했다. 

세 사람의 이야기가 비극으로 치닫게 된 원인은 '자신이 갖고 있는 욕망을 무시한 채' 살아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저런 불륜을 저지를수가 있지?" "엄연히 가족이 있는데 어떻게 저럴수 있지?" 이런 비난을 섣불리 할 수 없는 게 소설 속의 인물이 단순히 '소설' 의 인물이라고 치부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개개인의 가정 사정에 따라서, 개개인의 취향에 따라서 차이는 있다. 하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소설 속 인물들과 비슷한 선택을 하면서 산다. 

남들이 결혼을 하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결혼하면 애를 낳으니까-

다들 그렇게 사니까-

가장 가까운 관계 사이에 '인간 대 인간' 이 존재하는 게 아니라 '역할 대 역할' 이 우선시 되어 가면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남편에게 섭섭한 것을 드러내지 않고 속으로 삭히던 인혜,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보다 혼자 있는 시간을 더 원하던 남편, 어린시절 아버지로부터 받은 학대를 혼자서 삭혀야 했던, 속으로만 자신을 숨겼던 영혜. 열정을 불러일으킬만한 사건도, 열정을 불러일으킬만한 배우자도 아니었건만 결혼을 했던 영혜. 

그들에겐 삶에 대한 '욕망'보다는 타인의 시선, 타인에 대한 '욕망'만 있었던 것 같다. 타인과 더불어 가는 세상에서 타인의 시선을 무시할 순 없다. 하지만 개인의 '욕망' 에 대한 이해보다 타인이 들어앉은 마음에는 '허황된 욕망'만 존재했을 뿐이다.

우린 정말 자기 자신으로 살아가고 있는가?

'어떻게 처제를 범할 생각을 하지?' 이런 비난에 앞서 형부의 별명이 '오월의 신부' 였음을 먼저 떠올리면 걷잡을 수 없는 열정의 광기는 어디서부터 시작됐는지를 상상하게 된다.

자신이 원하는 것, 자신의 욕망에 대해서 스스로 묻고 답하는 고독의 시간 없이는, 욕망의 부재에서 오는 혹은 스스로에 대한 분노로 인한 자기 학대에 빠지거나 혹은 자신이 가진 것, 지금껏 유지해온 사회적인 지위와 명성을 싸그리 무너뜨릴 수 있는 광기에 휩싸이거나. 

아니면 '여기서부터 잘못됐어, 그가 잘못 됐어. 아니야 내가 잘못됐어..." 이런 의미없는 원인 찾기와 비난으로 일상을 버텨내거나.

소설 속 인물인 영혜, 형부, 인혜.. 이들이 단순히 텍스트화된 박제인이 아니다. 

소설이 그저 소설로 치부되기 보다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너무도 잘 담아내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나는 책을 읽으면서 영혜에 나를 담금질 했다가, 형부에 나를 담금질 했다가, 인혜에게 나를 투사를 해보았다.


나는 내 욕망에 솔직한가.

나는 나를 알고 있는가.

스스로를 보살필 줄 아는 질문부터 시작해서 내 마음 속에 새겨진 타인의 시선을 지워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타인의 욕망과 시선 없이는 살 수 없는게 인간의 삶이므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해내는 건 각자 본인의 몫이다. 


+p.s. '채식주의자'를 검색했더니 2009년에 개봉된 영화 [채식주의자]가 있었다. 한번 봐야겠다. 예고편만 봤는데 소설 속 음울한 분위기가 더 뚜렷이 부각되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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