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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백여행] 있는 그대로, 운명을 사랑하기 본문

소소한 일상/수다쟁이

[태백여행] 있는 그대로, 운명을 사랑하기

Yildiz 2012. 2. 11. 18:49



(겨우 1박 2일, 짧은 일정의 여행이었지만 어떤 사건으로 인해 생각이 많아졌답니다.
단순한 여행 사진 감상하실 분은 사진 위주로. 밑으로 주욱 이어지는 상념을 함께 공감하실 분은 끝까지.. ^^;)




#태백여행, 추전역으로 향하다.


갑자기 결정하게 된 1박 2일 태백 여행. (2/8~2/9)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비루한 자취방을 떠나 어디로 간다는게 마냥 좋아
그냥 떠나기로 했다.




아침에 청량리역에서 기차타고 4시간 조금 넘게 걸려 태백에 도착.
함께 동행한 지인은 모자에, 등허리에는 핫팩까지.

점심시간에 도착한 터라 태백에서 유명하다는 국물있는 닭갈비를 먹고 속을 든든하게 한 뒤,
자유시장 근처로 와서 황지연못도 보고.


낙동강 발원지인 황지연못. 황부잣집 전설의 터로도 알려져있다.





다리위에서 사람들이 뭐하나 했더니, 연못 안에 있는 단지에 동전을 던지고 있었다.




난 별로 할 생각이 없었는데 같이 간 지인이 그래도 해보라며 300원을 주셨다.
욕심껏 던지지 않아서인지, 동전은 '오늘의 행운' 인 네모난 돌 위에 겨우 떨어졌다.




시내버스 터미널에서 추전역 근처까지 가는 버스를 타고 휑한 도로가에 내렸다.

길가에 있는 민박집에 방을 얻어 대강의 짐을 풀어놓고,
우리나라에서 제일 높은 곳에 있다는 추전역을 보러 걷기 시작!



 

추운 날씨에도 빨빨거리며 돌아다니는게 어찌나 즐겁던지.
멋모르고 향하는 추전역.  


신난다♪




#말 안듣는 아가씨, 된통 혼나다.


추전역이 왜 유명한지 모르고 구경하러 왔다.
이 역은 더이상 기차가 다니지 않는 철길인줄 알았다.

사진을 찍다보니, 같이 동행한 분은 이미 가버렸고
역으로 가는 길이 어딘지 몰라서 발이 푹푹 빠지는 눈밭을 겨우 고르고 골라 철길로 들어왔다.

철길을 따라 천천히 걸으면서 추전역 사무실 건물 근처로 왔을 때,
지인이 역무원 아저씨께 혼나고 있었다.

"여기 기차 다니는 곳이에요. 출입금지라고 써 있잖아요. 빨리 들어오세요."

날씨도 춥고 해서 바로 쉼터로 들어와서 구경하는데,
순간 빛이 너무 좋다고 생각해서 다시 철길로 나왔다.

기차가 올때 신호음 같은게 들리겠지,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카메라를 만지작 거리는데...

뒤에서 뙈- 하고 기적소리가 울린다.
이크!!!
기차가 터널을 빠져나와 오고 있다.

역무원 아저씨는 어느새 나왔는지 어서 오라며 다급하게 손짓을 하시고...

다행이 얼른 안전선 안으로 뛰어 들어와
속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멋쩍어 웃었지만
아저씨는 노발대발하시며 엄청 혼을 내신다.

"아니 들어가지 말라는데 왜 들어가고 그래요.
기차 지나간다고 했잖아요."

입구부터 잘못 들어온 탓에, 난 아무 부담 없이 다시 철로로 나간 것이다.
심술궂은 마음은, 더 하지 말라고 하면 더 하고 싶은 법. =ㅅ =;;

그래도 처음에 역으로 들어올 때,
그때 기차가 오지 않았어서 천만다행이다. 휴우!  



이 길을 따라 올라왔어야 했는데, 처음부터 출입금지 구역으로 들어왔다. 조심, 또 조심합시다!!




#만약에... 


정말 운이 나빠서 내가 죽었다면?
'만약' 이라는 가정이 쓸데없는 경우가 많이 있지만
현재를 개선할 수 있는 방법으로 질문한다면 나쁘지 않을거란 생각에
민박집에 돌아와서 추전역에서 일어났던 사건을 떠올리며 가정해본다.

지금 번듯이 살아있으니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서 참 다행이고.
예기치 못했던 곳에서 그렇게 죽을 수도 있겠구나, 생각도 해보고.
그대로 죽었다면, 난 인생에 뭘 남기고 가는 걸까.
나 간다고 가족에게 말도 못하고 가버리면, 그렇게 슬픈일이 또 있을까 싶기도 하고.

그러니까
이렇게 살아있는게 참 다행이다. 다행이고 말고. 



민박집에서




#생과 사는 지금 이 자리에서. 


심난해진 마음 때문인지 간밤에 꿈을 많이 꾸었다. 특히 기억에 남는 꿈은 여행을 같이 온 지인이 내게 책을 선물하는 꿈이었다. 난 그 책이 이미 있다고 여겼지만 그래도 선물로 주시니 감사히 받았다.
그 책 제목은 법정 스님의 "맑고 향기롭게"

자고 일어나서 꿈을 떠올리니, 진짜 지인이 내게 책을 준 것 마냥 생생해서 기분이 묘하다.

지인에게 간밤의 꿈 얘기를 하고, 법정 스님 얘기를 나누다 보니 예전에 다이어리 한 귀퉁이에 적었던 글귀가 떠오른다.

"지금 앉아있는 이 자리에서 생사가 벌어지고 있다."

예전에 이 구절을 20%정도 이해했다면, 지금은 가슴에 팍 다가온다.
생과 사의 지점이 아직은 멀어보인다고 생각했는데,
그저 방향의 차이일 뿐.
그저 한 끝 차이일 뿐.
숨을 들이 마시고 내뱉는 매순간마다, 생과 사는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가끔씩 하게 되는 우울한 생각들, 남과 비교했을 때 부족해보이는 경제력이라든지
이미 지나간 인연에 대한 아쉬움과 한탄, 아직 오지 않은 인연에 대한 망상,
스스로를 괴롭히는 걱정거리들, 불평불만들로 찌들어있던 나인데.
이번 경험은 순간의 아찔함과 함께 어눌하게 살아가는 내 정신을 번뜩 뜨이게 해준다.

한없이 좋았다가 한없이 슬퍼질 수도 있는게 인생살이.
그렇다고 절대적으로 좋고 나쁜 것을 따질 수 있는게 아니라는 것을 알고는
그럼 그 어떤 것에도 일희일비하지 않고 무미건조한 마음으로 살아가야 하는 걸까, 고민을 했지만

어떤 일이 있어도 살아있는 순간을 그 자체로 축복하는 방법 중 하나는
나 자신을 그대로 긍정하는 것.
남과 비교해서 더 잘나고 못 났고를 보는게 아니라,
그냥 못 나고 잘 나고 모든 구석구석을.
그 구석구석에 덕지덕지 붙은 운명을 긍정하는 것. 스스로의 운명을 사랑하며 사는 게 중요하단 생각이 든다.

걱정거리, 이루지 못하는 인연 때문에 골치 썩고 있다는 건 감사해야할 일이다.
우선 내가 살아있으니까 할 수 있는 생각, 고민들이니까. 



#인생은 타타타!

점심무렵 태백역에서 기차를 타고 청량리역에 도착했다.
저녁에 요가 수업이 있는 날이라 집에 와서 간단히 저녁을 먹고 요가하러 고고씽!

소머리 자세라고, 양 다리를 교차한 상태로 앉아 있는 동작을 하는 중이었다.
잘 안 쓰는 근육이 땡기는 고통을 느끼며 몸을 숙이고 있는데, 요가실을 가득 채우는 노래.

김국환의 타타타.

"내가 나를 모르는데, 난들 너를 알겠느냐."

흐억. 이게 언제적 들은 노래더라.
오랜만에 듣는 노래라 반갑기도 하지만, 요가 동작을 하며 듣는 가사는 정말 예술이다.

"한치 앞도 모두 몰라, 다 안다면 재미없지."

정말 맞다, 맞어.
요가 동작이 좀 괴롭기도 하고, 가사가 절묘하기도 해서
혼자 조용히 킥킥댄다.

"산다는 건 좋은거지, 수지맞는 장사잖소.
알몸으로 태어나서 옷 한벌은 건졌잖소.
우리네 헛짚은 인생살이
한 세상 걱정없이 살면
무슨 재미, 그런게 덤이잖소."


캬, 이제야 이 가사가 귀에 들어오는구나.
슬퍼서 눈물이 날 것 같으면서도
혼자 실실 웃는다.

후렴부분인 "으허허~" 웃음이 요가실을 또 한번 가득 채운다.
나도 따라서 웃고 말이다. : )


삶을 긍정하기.
내 존재를 긍정하고, 운명을 살아내기.
별것 한게 없는 것 같아도, 옷 한벌 건져가는 인생.
그래도 살만한 인생이겠지.

절묘하게 맞아 떨어지는 사건이며, 꿈이며, 음악이며.
재밌다.
즐겁게 살아야지.
있는 그대로, 운명을 사랑하면서.



p.s )

1.
왜 이 노래 제목이 '타타타' 일까 궁금해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산스크리트어로 如如(여여),  '있는 그대로' 라는 뜻으로 작사가 양인자씨가 인도 여행을 갔다가
그 뜻을 알고 지은 가사에 남편 김희갑씨가 곡을 붙여서 만들어진 노래라고 합니다.

더 자세한 내용과 음악을 참조하시려면 The 클래식 키드 : 김국환 - 타타타 (클릭)


2.
참고도서 :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지은이 고미숙)
여러번 읽은 책인데도, 애매~하게 이해하고 있었는데
이번 기회에 좀 더 깨우치게 된 책.

책 239쪽에는 "자기 존재를 온전히 긍정하고, 욕망에 충실하며, 관습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랑" 을 한
노처녀의 "미친 사랑의 노래" 가 소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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