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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록여행기 (55)
힘내자, 청춘!
가던 길을 다시 되돌아 오다 2008년 6월 28일 토요일 # 지각! 늦었다!! 이크! 어쩌면 좋지? 시계를 보니 벌써 8시다! 부정언니와 8시에 만나서 함께 걷기로 했는데, 이미 늦었다. 서둘러 준비해서 가는 데도 10분은 걸릴텐데. 간밤의 달콤했던 잠을 음미하는 여유는 커녕 재빨리 화장실 다녀와서 배낭을 챙기고 헐레벌떡 약속장소로 향한다. 알베르게 근처에 있는 광장으로 왔으나, 부정언니는 보이지 않는다. 언니 먼저 간걸까..? 아니면... 혹시 늦잠을 자는 걸까. 알베르게에 가서 언니가 자고 있는지 살펴 보았으나, 언니는 이미 떠난 것 같다. 알베르게를 나와 홀로 길을 나선다. 그런데 문제는... 묵시아로 가는 방향이 어느 쪽인지 모른다는 것. 우선 마음 가는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걷다보면 뭐..
또 다시 일몰을 놓치다 2008년 6월 27일 금요일 모처럼 달콤한 잠을 잔 아침! 알베르게의 빽빽한 침대숲에서 잠을 자는 게 아닌 아담한 싱글룸에서 혼자 침대를 독차지하면서 그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잠을 잤더니, 푹 잘 잤다. 체크아웃을 하기 위해 짐을 챙기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다. 어제 피니스테레에 늦게 도착한 바람에 바닷가며 마을이며 제대로 구경할 시간이 없었다. 바로 묵시아로 떠나기 아쉬우니까 피니스테레에서 하루 더 있을까? 아니면 이 선택들을 절충해서 오전에는 피니스테레에서 보내고, 오후에는 걷기 시작할까. 딱히 결정을 못 내리겠어서 우선 꼬르륵 거리는 배부터 채워야 겠다는 생각으로 민박집 근처에 있는 바로 왔다. 바에는 이미 깔로가 와 있다. 깔로는 오늘 버스를 타고 산티아고로 돌아간다고..
깔로와 함께 피니스테레에 오다 2008년 6월 26일 목요일 새벽 일찍 일어났던 어제와 달리 7시가 되서야 일어났다. 방 안을 둘러보니 대부분의 순례자들이 방을 떠나고 없다. 사람들이 떠나는 줄도 모르고 푹 잤다니. 많이 피곤했었나보다. 방에는 옆 침대의 커플, 나이든 순례자 한 명과 나. 그리고... 참, 깔로가 오늘 같이 걷자고 했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아래층을 내려본다. '어랏, 없네?' 깔로가 늦잠을 자고 있을 것 같았는데, 이미 떠났나보다. 흰 침대시트만 달랑 보게 되어 섭섭하다. 흥, 같이 가자고 해놓고는, 날 깨우지 않고 혼자 가다니. 치사하다. 그래도, 기대했던 내가 바보지. 스스로를 달래면서 침낭을 정리한다. 배낭을 챙겨서 알베르게를 나오는데 식당 앞에 깔로가 앉아있다. 밖에서 나를 ..
소똥 냄새 가득한 마을, Olveiroa에 가는 길 2008년 6월 25일 수요일 순례자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기척에 저절로 눈이 떠졌다. 나도 그대로 누워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잠들기 애매하니, 나도 슬슬 길을 나설 준비를 한다. 먼 동이 터오는 아침. 이른 시각이라 사방이 어둡다. 길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걷다 보면 어떻게든 까미노 지표를 찾을 수 있겠지! 우선은 길을 나선다. 밤새 대지를 뒤덮었던 어둠이 점차 밀려나고 날이 밝아오기 시작한다. 시시각각 변하는 구름의 위치와 색깔은 새벽의 비밀을 서서히 드러내고 있다. 동그란 태양의 이마가 구름 위로 빼꼼히 모습을 드러내길 바랐지만, 여전히 어마어마한 구름이 해를 가리고 있다. 오늘은 33km를 걸어야 한다. 어제처럼 열심히 걸어..
2008년 6월 24일 화요일 어제 밤 늦게 자서 일찍 일어나기 힘들 줄 알았는데 깨어나보니 아침 7시. 생각보다 이른 아침부터 비어 있는 침대가 많다. 이 사람들, 모두 피니스테레로 떠난 걸까? 마르코스가 자는 방을 지나기 전에 로빈이 있는 방을 먼저 찾았다. 로빈은 깊게 잠이 든 것 같다. 깨워서라도 마지막 인사를 하고 갈까 하다가, 뒷모습에 인사만 건네고는 마르코스가 있는 방으로 왔다. 세상에. 한 줄로 나열된 침대 중 맨 마지막 침대에 마르코스만 덩그러니 남아있다.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는 문 앞에서 있어서 분명 잠을 잘 못 잤을 것이다. 조심히 지나치려고 했는데, 마침 마르코스가 깨어있어서 내게 인사를 한다. 이렇게 금방 헤어져야한다니. 아쉽지만 각자의 길이 다르니 이만 인사를 할 수 밖에 없다...
내 생애 가장 행복했던 날 2008년 6월 23일 월요일 #1. 같은 길이지만 만날 수 없었던 길. 마르코스는 쉴 새 없이 말하는데, 너무 빨리 말하고 있어서 제대로 알아듣지 못하겠다. "리, 순례자들이 산티아고로 보낸 우편물이 원래 짐을 부쳤던 곳으로 다시 보내졌대. 너도 산티아고 우체국으로 보내지 않았었나? 네 소포가 어딨는지 알아봐야 할거야." 엥? 왠 뜬금없는 소리? 처음 듣는 얘기라 쌩뚱 맞다. 왜 우편물들이 다시 돌려보내졌지? 정말 내 짐도 생장으로 돌아갔을까?? 생장에서 힘겹게 소포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그 날 아침, 생장의 우체국 앞에서 만난 한국인 부부님 덕분에 5kg 이나 되는 짐을 부치고 가볍게 까미노를 시작할 수 있었다. 한국인 부부님이 부른 택시 기사가 영어를 할 수 있어서 겨우..
2008년 6월 23일 월요일 몇 주 만에 모처럼 새벽 5시에 일어났다. 이제 슬슬 유럽 여행 일정을 세워야 한다는 긴장감 때문이었을까. 모두들 쿨쿨 자고 있는 방에서 나와 컴퓨터 앞에 앉는다. 순례일정을 모두 마치고 난 후 스페인 도시 몇 군데를 찍고는 바르셀로나를 마지막으로 동유럽에 갈 생각이다. 영어로 가득한 저가항공 사이트에 접속하여 고민 끝에 비엔나로 목적지를 정한다. 처음 사보는 저가 항공이라 온 신경을 곧두세워 구입했다. 생각했던 것보다 가격이 비쌌지만 더 미루는 것보다는 낫겠지. 다시 침대로 돌아가 잠을 청한다. 오늘은 하루 종일 산티아고 이곳 저곳을 둘러보고 내일부터 피니스테레를 향해 걷기 시작할 것이다.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산티아고를 떠나야 한다는 기분이 든다. 지금까지 순례길..
체력 바닥나는 소리가 들린다 2008년 6월 21일 토요일 새벽 6시 무렵. 일찍 길을 나서는 친구들이 나를 배려한다고 조심스럽게 나갔는데도 조그마한 기척에 잠이 깼다. 일부러 잠을 청하는 것도 무리인 것 같아서 피곤을 떨쳐내고 나도 배낭을 꾸린다. 새벽 하늘에 아직 달이 떠 있다. 거리의 조명처럼 세상을 환히 밝히는 달. 아침 안개가 자욱한 걸 보면, 오늘 햇살이 무지 쨍쨍거리며 화창하겠구나. 어제 나보다 앞서 간 군은 오늘 어디까지 걸으려나? 길에서 또 군을 만났으면 좋겠다. 평화로운 숲 속을 지나는 아침은 정말 상쾌하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안개가 걷히면서 만들어내는 광경은 신비롭다. 작은 마을에 들어설 때마다 개들이 울부짖는 소리에 아침 나절 평온했던 내 마음이 번뜩 번뜩 놀랐다. 그래서 새로운 ..
내 마음의 소리가 울리는 대로 2008년 6월 19일 목요일 난 벌써 출발할 준비가 다 되었는데, 군은 천천히 배낭을 챙기고 있다. 군은 서둘러 출발하고 싶지 않나보다. 군과 함께 걷고 싶어 기다릴까 잠시 고민하다가 걷다보면 어느 순간 그녀를 만날 수 있을거란 생각에 인사를 하고는 먼저 출발한다. 어제 못 걸을 상태가 아니었다면 이미 떠났을 사모스. 사모스를 떠나지 않기로 결정한 장소- 순례자 광장을 지나며 피식 웃어본다. 어제 한나절 푹 쉬었기에 오늘은 많이 피로하지 않다. 오늘의 목적지는 아직 결정하지 못했다. 우선은 걸어 봐야 알 것 같다. 헝가리에서 온 순례자, 피터를 길에서 만나 함께 걷게 되었다. 헝가리가 예전에 공산국가여서 그런지, 피터는 한국에 대해 다른 유럽인들보다 더 깊은 관심을 보인다..
다 괜찮아질거야! 2008년 6월 17일 화요일 좀 더 푹 자고 싶은데, 사람들은 그게 싫은가보다. 아, 내가 까미노 초반엔 그렇게 일찍 일어났었는데, 그게 다 사람들 힘들게 하는 것이었군! 간밤에 잘 잤는데도, 피곤하고 걷기 귀찮음을 느끼는 건 뭔지. 하지만 밖으로 나와 맑게 개인 하늘을 보니 언제 그랬냐는 듯 길을 열심히 두리번 거린다. 여기저기 지천으로 난 노란색 향기나는 꽃. 파란색, 초록색, 게다가 구름의 흰색까지. 내가 좋아하는 색들이 한데 모여 굉장한 그림을 만든다. 오늘의 코스는 오 세브레이로O Cebreiro 마을까지 급 오르막길을 올라서 고도 1300m 정점을 찍었다가 도착 예정지인 트리아카스테라Triacastela까지는 내리막길이다. 트리아카스테라Triacastela까지 가는 걸로 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