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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워홀] D+11~12, 자전거를 사다, 이사함 본문

2017 독일 워킹홀리데이/워홀일기

[독일워홀] D+11~12, 자전거를 사다, 이사함

Yildiz 2017. 6. 7. 01:02

(2017년 4월 8일 토요일

#벼룩시장에서 자전거를 사다

일을 언제 시작하게 될지는 몰랐지만, 그에 대한 대비를 해야 했다. 남자친구는 틈만 나면 중고 자전거를 검색하다가 급기야 '벼룩시장'의 존재도 알아냈다. 마인강 강변을 따라 아침부터 '벼룩시장' 이 열린다고 한다. 남자친구는 인터넷 사이트까지 찾아가서 이번주 토요일에 열리는 벼룩시장의 위치를 알아냈다. 너무 늦게 가면 쓸만한 물건을 얻기 어렵다고 하길래, 시장이 열리는 시간에 딱 맞춰서 가려고 했다. 

그러나 평소에 늦잠 자는데 익숙한 우리는 예정보다 1시간 늦게 집에서 나섰다. 

조금 늦게 가는 거니, 괜찮은 자전거를 얻지 못할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우선은 가봐야 아는 거니까. 그렇게 발걸음을 재촉했다. 


벼룩시장... 중고품을 거래하는 곳이니 그렇게 멋질 이유도, 화려할 필요도 없는 곳이다. 조금은 쌀쌀한 날씨가 을씨년스러웠지만, 괜찮은 '물건' 을 득템하기 위해 두리번 거리는 사람들의 눈길과 발걸음은 바빴다. 남자친구와 나는 한 방향을 정해서 우선은 걷기 시작했다. 그러다 거의 시장의 끝에 왔을 때, 한 자전거를 발견했다. 

누구에게나 이런 순간이 있지 않나 싶다. 어떤 물건이, 오로지 나를 위해 기다리고 있던 것만 같고, 나는 그 물건을 보자마자 '저건 완전 내 꺼네.' 라고 중얼거리는 절묘한 순간. 

어떤 것에 쓰이는 지도 모를 물건 더미 사이에 자전거 몇 대가 세워져 있었는데, 거기서 발견한 검정색 미니 자전거가 내 눈에 들어왔다. 

남자친구도 이 자전거를 보자마자, 딱 나에게 맞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주변이 하도 어수선해서, 이 자전거를 파는 장사꾼이 누구고, 가격이 얼마인지 물어보는데 한 5분은 기다렸던 것 같다.

'이 자전거는 내가 살 것입니다.' 라는 표시로 내내 자전거를 붙잡고 있었다. 

자전거는 약간의 기스가 난 흔적이 있지만, 바퀴 상태, 페달, 체인을 보면 거의 새 것이나 다름없는 것 같았다. 

가격은 120유로. 

너무 높은 가격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낮은 가격도 아닌 것 같았다. 그냥 저냥 쓸만한 자전거를 70-80유로에 구입할 생각으로 왔는데 100유로가 넘는 지출은 상상해보지 못했어서 잠시 망설였다. 

남자친구가 한번 타 보고, 나도 자전거를 조금 타보았다. 

이 넓은 시장에서... 이만한 자전거를 또 발견할 수 있을까? 가격을 좀 더 깎을 수 있을까? 고민하던 중에 내가 만지고 있는 자전거에 눈독을 들이는 다른 손님들이 나타났다.

아마도 이들은 이 자전거를 살까 말까 고민하며 지나쳤다가 다시 되돌아오는 길 같았다. 

주인아저씨는 120유로에서 더 이상 깎아줄 수 없다고 단호하게 얘기했다. 

이 가격을 깎을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안 했다. 내가 여기서 어영부영 포기해버리면 뒤에서 대기하고 있는 다른 손님이 이걸 가져갈게 분명했다. 

예상치 못했던 지출이지만, 과감히 자전거를 샀다. 

원래는 남친 자전거를 먼저 살 생각으로 왔는데, 어쩌다보니 내가 먼저 선수 치게 되었다.  


내 것이 된 검정색 자전거. 상태를 확인해보는 남친.


어떻게 보면 중고품 시장. 어떻게 보면 쓰레기장... ㅎㅎ 


카메라를 파는 가판대를 지나칠 수 없었다.


#스멀스멀 살아나는 터키어

벼룩시장의 크기와 규모는 상상했던 것 이상이었다. 자전거를 하나 사게 되자, 내가 돈이 얼마나 많고 적고- 를 떠나서 괜찮은 물건을 더 득템하고 싶은 욕구가 증폭되기 시작했다. 자전거 잠금장치를 흥정해서 5유로로 깎아서 사자 마음은 더 들뜨게 되었다. 

필름카메라가 있는 가판대에서 로모카메라를 하나 발견하곤 발걸음을 멈췄다. 남자친구는 이름을 부르기에 너무 앞서가고 있었다. 여기에 있다보면 내게 올 것이다. 

주인아저씨에게 가격을 물어보고 싶지만, 그는 디카를 사려는 중년의 여성과 대화 중이었다. 그들은 터키어로 대화 중이었다. 

"좀 깎아주세요." 

"전 여기서 돈을 벌어서 터키에 있는 가족에게 보내요..." 라며 가격 할인을 요구하는 아줌마. 

순간 마음이 약해졌는지 이것저것 묻는 주인아저씨.

터키 어디에서 왔어요?, 가족은 어떻게 되나요?, 여기서 무슨 일을 하나요.... 등등

내가 완벽한 터키어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몇 년전 익숙하게 들어왔던 터키어들이 속속 생각나면서 그들의 대화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었다. 

터키 아주머니는 이윽고 돈을 지불하고 나서 가판대를 떠났고, 내가 계속 기다리고 있는 걸 알고 있던 주인 아저씨는 로모카메라 가격을 알려주었다. 내가 터키어로 물으니, 아저씨가 놀란 얼굴로 '터키어를 할 줄 아느냐.' 고 되물었다. 

정말 안 쓴지 5년이 되어가는 언어인데..... 드문드문 생각나고, 이해되는 게 신기했다. 

로모카메라는 중고로 구입하기 괜찮은 가격 같았지만, 약간 하자가 있어 보였다. 이음새가 딱 맞지 않아 자칫 잘못하다가는 필름에 빛이 들어갈 것 같았다.

그 부분을 아저씨께 보여주니, 아저씨는 어깨를 으쓱 거리며 다른 카메라들을 추천해주기 시작했다. 

내가 흥미로워 하자, 가격이 더더욱 비싼 것들을 보여주었다. 독일제 필름 카메라가 50유로. 내구성 강하고, 사용한 흔적도 별로 없고, 깨끗해보였다. 이만한 필름 카메라를 한국에서 사면 아무리 싸봤자 30만원일 것 같은데.. 여기서는 6만원이면 살 수 있다니...

새로운 카메라에 순간 영혼을 홀렸지만... 지금 내가 감당하기엔 당장은 힘든 것들이라서 현실과 타협해야 했다. 

재밌는 카메라 구경을 어느 선에서 마치고 이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아저씨에게 감사하다는 인사와 다음에 다시 보자는 인사를 터키어로 한 다음 남친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남자친구 마음에 드는 자전거를 찾기 위해서 벼룩시장을 더 둘러보기로 했다. 생각보다 더 많은 자전거들을 볼 수 있었다. 중간에 소세지와 빵을 파는 푸드트럭이 있어서 하나 사 먹어보았다. 

큰 소세지 하나에 작은 빵. 2.50유로. 


이렇게 바쁜 가게에서는 굳이 '완벽한 문장'으로 주문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았다. 오히려 천천히 얘기하면 바쁜 직원을 귀찮게 하는 기분이었다. 


남자친구는 사고 싶어하던 스타일의 자전거를 시범으로 타려고 했지만, 익숙하지 않은 거라 막상 사기를 주저했다. 그래서 결국에는 무난한 자전거로 골랐다. 이미 온 손님이 그 자전거를 살 줄 알았는데, 그는 이걸 살까 말까 고민하다가 결국엔 멀찌감치 떨어져서 지켜보는 듯 했다. 

남자친구는 자전거에 붙여진 스티커가 촌스러워서 싫다고 했지만, 한번 타보고는 나쁘지 않다고 결론을 내렸다. 150유로 부르는 것을 10유로 깎아서 140에 달라고 했다. 

그냥 자전거만 팔기 아쉬웠던 주인은, 잠금장치까지 같이 해서 150에 사면 어떻겠냐고 해서 흔쾌히 승낙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생각지도 않게, 각자 100유로가 넘는 자전거를 무작정 사버렸다. 


프랑크푸르트에 와서 처음 보는 마인강변... 



강가 산책로는 한산한 것에 비해 시장 거리는 사람들로 바글바글했다. 


자전거를 산 김에 자전거를 타고 이동했다. 

독일 도로에서 자전거 타보는 건 처음이라 무척 긴장이 되었다. ㅠㅠ 

Rossman 이라는 가게에 가서 필요한 물건을 사고 지하철 역으로 향했다.


S반에는 자전거를 태울 수 있는 칸이 따로 있다. 


S반의 1등석. 당연 1등석 티켓을 구입한 사람만 이용할 수 있다. 


집에 자전거를 안전하게 두고, 다시 기차역으로 나왔다. One day ticket을 산 김에 근처에 있는 아시안 식품점에 가서 라면을 사오는 게 나을 것 같았다. 그래서 향하게 된 Schwalbach. 

Rathaus- 동사무소? 건물의 색깔이나 모습이 투박하다. 더불어 비슷한 시대에 만들어졌을 법한 호텔 또한 이곳의 상징 같이 느껴졌다. 

투박하고 탁한 색깔의 건물 반대편에는 시립 도서관이 있다. 하얀색 건물이 이들과 대조적으로 보여 눈부실 정도다. 


아시안 식품점은 아파트? 건물 1층에 있다. 크기는 작지만 웬만한 라면 종류는 다 있는 편이다. 


슈발바흐의 라타하우스. 

(2017년 4월 9일 일요일)

#이삿날 

일요일 하루는 온전히 이사를 위한 하루였다. 이사갈 집 주인 아저씨가 오후 늦게쯤 집에 오라고 해서, 아침부터 서두를 필요가 없었다. 침대 시트, 이불 등을 빨고, 방 청소를 하고 다 챙겨도 시간이 꽤 남았다. 

거실에서 쉐어마스터 부부와 한동안 이야기했다. 남자친구가 호주에서 고기 공장에서 일했던 거랑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도여행 이야기도 하고 사진도 보여드렸다.

예정했던 이사 시간보다 1시간 늦게 새로운 집으로 짐을 옮겼다. 새로 옮긴 방은 지붕이 있는 3층 방이다. 이 집에 방을 보러 왔을 때, 전에 살던 사람이 방 보여주기가 좀 그렇다고 해서 반대편 방을 봤었다. 

방에 짐을 풀 시간도 없이, 주인아저씨와 반대편 방에 새로 들어온 한국분과 1층에서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하느라 시간은 늦어졌고, 샤워는 내일 아침에 미뤄야 할 정도로 늦은 밤이 되었다. 

오후에 이사를 했기에, 우리가 들어갈 방을 샅샅이 청소할 시간이 없었다. 침대에 있는 베개와 이불에서는 아주 칙칙한 냄새가 났다. 내가 인도여행 온 것도 아니고, 인도에서처럼 엄청 저렴한 호텔에 온 것도 아닌데.... 이런 냄새를 맡다니. 어이가 없었다. 침대 군데군데에는 전에 살던 여자의 머리카락들이 발견됐고, 침대 주변에는 먼지가 많았다. 

이전에 살던 사람이 이불 빨래를 하지 않고 떠난 탓이기도 하고, 주인 아주머니가 며칠 전에 한국에 간 터라 이 방을 청소할 사람이 "없었다".... 고 한다. 

얼마나 빨지 않은 이불일까. 찜찜한 마음에 쉽게 잠들기 힘들었고, 잠들었어도 중간에 깼다. 몸이 근질근질했다.

여기에 벌레가 있는 걸까. 


그렇게... 알게 모르게

최악의 상황은 조금씩 전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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