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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역] 차라리 좀비가 되어서 다행이야 본문

소소한 일상/영화수다

[서울역] 차라리 좀비가 되어서 다행이야

Yildiz 2016. 8. 19. 16:22


***주의 :: 스포일러가 있으므로, 영화를 아직 보지 않았다면 읽지 마시길. 스포 없이 서울역을 볼 것을 극구 추천함. 

+p.s. [부산행]만 보고 기대해서 [서울역]을 무작정 보면 감독에 대한 실망이 이만저만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서울역]은 연상호 감독이 이미 만들어오던 애니메이션의 기조와 흐름을 함께 한다. [서울역]을 보기 전에 감독의 전작인 [돼지의 왕], [사이비] 를 먼저 보는 것을 추천한다.

아울러, 15세 관람가이지만 자녀와 보기엔 불편할 내용일 수 있다. 하지만 자녀가 이 영화를 본다고 해서 순수한 마음이 흐려지거나, 오염되진 않는다. 이미 오염된 세상에 대해서 자녀와 함께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좋지만, 그럴 의도가 없고, 그럴 능력이 없다면 굳이 아이들과 함께 [서울역]을 보는 건 말리고 싶다. 준비 없이 아이와 함께 이 영화를 봤다간 서로 기분만 나빠질게 뻔하므로. 


#역시 연상호 감독이야

연상호 감독의 전작 [돼지의 왕]과 [사이비]를 인상깊게 봤기 때문에 '연상호'라는 이름은 믿고 봐도 되는 감독 중 하나였다.

칸 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린으로 초청된 [부산행]이 호평을 받았다는 기사를 읽었을 때부터 [서울역]과 [부산행]에 대한 막연한 기대감이 치솟기 시작했다. [부산행]은 7월 중순에 개봉됐고, [서울역]은 8월 중순에 개봉됐다.

[부산행]을 정말 재밌게 봤어서 [서울역]도 어서 보고 싶었다. 부산행과 서울역의 간극을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 부산행 메이킹 필름 영상, 각종 부산행 리뷰와 영화평 등을 보면서 아쉬움을 달랬었다.

그리고 어제 (18일) 아침에 조조로 보고 왔다. 빨리 [서울역]을 보지 않고 인터넷으로 검색만 하다가는 원치않는 스포일러에 노출 될것 같아서였다.

연상호 감독은 인터뷰를 할 때, 많은 부분을 알려주려고 하지 않음과 동시에 그가 하는 말이 꽤 정확하다는 걸 이번 [서울역]을 보고 느꼈다. 

그가 [부산행]과 [서울역]은 정말 다른 이야기라고 강조했었는데, 정말 참말이었다. 하지만 [부산행]을 재밌게 봤던 사람인데 연상호 감독이 어떤 애니메이션을 만들어왔는지 알지 못한 사람이라면 [서울역]을 보고 실망할 수도 있다.

감독의 날카로운 시선과 비판은 [부산행]보다는 애니메이션 [서울역]에 있다. [부산행]은 감독이 날선 칼을 품 안에 일부러 숨긴 듯한 기분이 들었었다. 그의 애니메이션 [서울역]이 막연히 '어두울 것' 이라고 생각했지만 영화가 끝나고는 씁쓸함의 깊이를 뭐라 설명하기 어려웠다. 

역시... 연상호 감독이다. 란 말을 조용히 읊조렸다. [서울역]을 보고자 한다면 [부산행]은 잊는게 좋다. 


감독은 [서울역]을 만든 이후 [부산행]을 찍기 시작했는데, [서울역]과 굳이 같은 내용일 필요가 없다는 생각으로 다르게 만들었다고 했다. 실제로 달리는 좀비의 움직임과 좀비 분장의 리얼함, 개별적인 특징 때문에 [부산행]의 좀비 등장이 더 현실감 있고 좋았다.

[서울역]이 프리퀄이라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는 못했다. 어디서부터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기 시작했는지 '원인'에 대해서 다루기 보다는, 노숙자에 대한 사람들의 시선, 노숙자들 사이에서도 나눠져 있는 '계급' 과 '권력' 에 대해 보여주는데 시간이 많이 할애된 것 같았다.


#집이 없는 사람들, 갈 곳이 없는 사람들 

[부산행]에 나온 사람들은 '갈 곳이 있고', '집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서울역]의 주된 주인공들은 '갈 곳이 없고', '집이 없는' 사람들이다. [부산행]과 [서울역]을 이어주는 '노숙자'라는 존재는 의미하는 바가 크다.

[부산행]에서 연상호 감독이 '노숙자'에 대한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이 무엇인지 '질문'하는 정도였다면, [서울역]에서는 우리의 생각과 느낌들이 노골적으로 표현된다. 

또한 이 영화의 주인공인 '혜선'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가출을 해서 남자친구와 여관방에 머물고 있는 '혜선'은 창녀촌에서 일한 적이 있으며, 밀린 여관비를 내기 위해서 또 몸을 팔아야 하는 상황에 몰린다. 

 

혜선과 기웅이 어떻게 만났는지에 대한 언급이 자세히 나오지는 않지만 보통 학교를 다녀야 하는 나이에 가출하고 둘이 여관에서 지낸다는 것 자체가 사회의 문제점을 보여주고 있다. '돌아가야할 곳'이 지금보다 더 좋지 않기 때문에 그들은 둘이 함께 여관에서 지냈을 것이다. 마땅한 경제적인 능력이 없는 이들이 서울 땅에서 살아가기란 힘든 일이었다. 하지만 그런 힘든 일에도 불구하고 둘은 의지했던 것으로 보인다. 

혜선이 좀비들에게 쫓기면서 연락하고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가족'이 아닌 그녀의 남자친구 '기웅'이다. '기웅'은 성실하게 아르바이트를 해서 같이 지내는 생활비를 마련하기 보다는 pc방에 더 자주가는 남자아이다. 심지어 혜선의 사진을 인터넷에 올려서 여자친구를 '성매매'의 상품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그런 그가 못미더웠지만, 그나마 그가 혜선을 위해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은 혜선 아빠 '석규'다. 목소리 연기는 '류승룡'이 맡았다.  

그는 기웅이 인터넷에 올린 혜선의 사진에 대해 지인에게서 제보를 받고, 기웅을 찾아갔다. 그 후 영화의 대부분은 둘이 혜선을 찾아나선 장면들이 나온다. 

#여기서부터 스포있음.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은 읽지 마셈요!!! 

'아빠'(가족)가 있고, 갈 곳이 있다고 여겼던 혜선마저 서울역에서 지내는 노숙자들처럼 '갈 곳이 없는' 어린 노숙자였다.

영화의 속 공간의 대부분 '지하도', '전철 역사', '여관', '모델 하우스' 등으로 나온다. 보통 사람들이라면 오고 가고 지나치는 곳들이 '갈 곳 없는' 사람들에게는 아이러니하게도 그나마 쉴 수 있는 공간인 것이다.

마지막 씬에 나온 모델하우스의 의리의리함은 주인공의 현실과 대비되어 더 비극적인 장소로 보였다.  


류승룡이 목소리 연기한 '석규'는 진짜 아빠가 아니다. 그가 '진짜 아빠'라는 생각을 믿어 의심치 않았던 나는 마지막에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그렇다. 혜선은 가짜 아빠를 가짜 주거 공간(모델하우스)에서 만나게 됐다. 석규는 혜선의 아빠가 아닌 창녀촌 포주였다. 

포주(석규)는 도망간 혜선이를 찾아내기 위해서 가짜 아빠 노릇을 하면서 좀비와 열심히 싸웠던 것이다.

그나마 혜선을 위해서 애썼던 남자친구 기웅은 석규에 의해서 살해당하고.

혜선은... 숨바꼭질 끝에 잡혔다. 그리고.... 침대로 가게 됐지만

마지막 순간에 혜선을 살렸던 것은, 좀비에게 긁힌 상처 때문에 좀비가 된 것이었다. 

연상호 감독의 인터뷰 글이 생각이 났다.

"차라리 좀비가 되고 싶을 것"이라고.

포주에게 끌려가 폭행과 감금을 당하느니, 차라리 좀비가 된게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좀비'가 되기 싫어서 도망다녔는데, 결국에는 '좀비'가 되는 게 다행인 일이라니. 이 비극의 씁쓸함을 달랠 뭔가가 있기는 할까. 


#[서울역]을 보고 불편하다면, 제대로 본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서 '집이 있고, 가족이 있는게 얼마나 다행인가.' 라는 생각을 했다.
한편으론, 집이 없고, 가족이 없는 사람들이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각박한지에 대해서도 생각했다.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과 돌아갈 곳이 없다는 것의 차이에 대해서 이 영화는 [부산행]과 대비되어 더 극명하게 까발린다.
[부산행]은 엔딩에 '생존에 대한 희망' 이라는 긍정적인 감정을 불어넣어줬지만, [서울역]은 이런 암울한 세상에서 살 바에는 차라리 좀비가 되는 게 낫다. 라는 생각마저 들게 한다. 

보편적 복지를 떠들지만, 그 복지를 받을만한 사람의 범주에 '노숙자'라는 존재는 투명인간처럼 취급하는 것부터 

경쟁과 이윤만 추구하는 자본주의의 사회에서 삶의 최소한의 경계가 허물어졌을 때. 사회는 어떻게 될 것인지, 

사회적 보호망이 제대로 없는데, 그 얄량한 보호망에서 조차 벗어난 이들이 사는 맨바닥 인생은 얼마나 힘든지.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집이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이게 얼마나 소중한가. 가족이 얼마나 소중한가에 대해서 스스로 질문을 해보게 된다. 


연상호 감독은 “‘서울역’은 우리가 사는 세상의 스케치라고 생각했다. 관객들이 느끼는 사회적 공기 같은 것들이 영화에 담겨 있다고 생각해줬으면 좋겠다”라며 “애니메이션은 내가 가진 생각 중 극단적인 것들을 담아내기엔 좋은 그릇이다. 평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면서 사는데, 그중에서 극단적인 생각을 보여주고 싶을 때가 있다. 그럴 때 애니메이션이란 도구를 사용한다”고 말했다.

-천지일보 기사 중 [영화한조각] 차라리 좀비가 나은 세상… 영화 ‘서울역’

http://www.newscj.com/news/articleView.html?idxno=369574


보통 좀비 영화를 보면 '좀비'가 되지 않기 위해서 고군분투를 하고, 끝내 생존하게 되는 이야기들을 보곤 했었는데,

한국의 좀비 영화는... 슬프게도.. 차라리 '좀비'가 되어야만 고통을 끝낼 수 있는 무기로서 인식이 됐다. 이게 뭔가. 인간이기보다는 좀비인게 더 나을 수 있다니. 

허나 이것이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세상이라서 뭐라 부정할 형용사도, 생각도 없다.

연상호 감독한테 '왜 이렇게 영화를 만들었어요?' 라고 따질게 아니라 이 사회에다가 발끈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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