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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걸어도 걸어도] 부재와 존재는 동의어다. 본문

소소한 일상/영화수다

[걸어도 걸어도] 부재와 존재는 동의어다.

Yildiz 2016. 8. 16. 00:18


+P.S. 스포일러 포함된 글이니, 영화를 아직 보지 않으셨다면 읽지 마세요. : ) 


별로 기대를 안하고 봤다.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또다른 작품 [그렇게 아버지가 된다]를 봤을때 크게 감흥이 일지 않았던 기억 때문이다. 영화[걸어도 걸어도]가 무슨 내용인지 별로 궁금하지 않았어서 예고편조차 보지 않고 덥썩, 영화관에 갔다. 지인과 함께 영화를 보겠단 약속을 한 탓도 있지만, 어떤 영화 평론가가 추천하는 영화라고 해서 궁금증이 인 탓도 있다. 아마 그 영화 평론가가 [걸어도 걸어도]를 언급을 하지 않았다면, "음.. 글쎄요." 하며 보기를 꺼려했을 수도 있었겠다. 

매일 아침마다 습관처럼 카페인을 섭취하다가, 그날은 왠지 카페인을 마시는게 꺼려지는 날이었다. 이틀 전에 커피를 배운 답시고 에스프레소를 과하게 마신 탓에 며칠 간 휴식기를 가지고 싶었다. 그래서였는지, [걸어도 걸어도]는 잔잔하다 못해 나중에는 슬 졸음이 밀려오는 영화였다. 

다행이 잠이 들진 않았다. 잠이 들 것 같으면, 이야기의 갈등은 또다른 문제로 넘어갔고, 새로운 장면들이 나왔다. 그리고 백종원을 닮은 사위가 나올 때마다 혼자 웃음을 지었었다.

일본의 가족 이야기가 나오는데, 어쩜 그리 내 이야기와 닮았는지... 가족끼리의 미묘한 닮음과 사소한 다툼과 감정들을 잘 잡아낸 장면들이 많았다. 어떤 장면은 소소한 웃음을 짓게 했고, 어떤 장면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영화의 초반부터 '부재' 에 대한 정서를 이끌고 나간다. 료타의 형- 준페이가 사고로 죽었고, 료타의 아내와 아들에겐 사별한 남편이 있었다. 그들의 존재나 그들과 함께 했던 순간들이 회상씬으로 나오지는 않지만, 인물들의 대화 속에서 존재감을 드러낸다. 실질적으로 현실세계에 존재하지 않지만, 영화에 나오는 이들의 마음 한켠에는 '존재' 하고 있는 형이자 아들 그리고 남편이었다. 

그리고 영화의 후반에는 또다른 '부재' 가 생긴다. 영화에서는 준페이의 기일에 모인 가족들이 나누는 대화가 주로 보여지고, 료타의 부모님이 어떻게 돌아가시고, 자식들이 얼마나 슬퍼했는지는 보여주지 않는다.

[걸어도 걸어도]는 실제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이 어머니를 여의고 나서 완성한 '가족 이야기'로 감독 자신의 어머니에 대한 회상과 그리움이 많이 담겨져 있는거라고 한다. 실제로 영화속 료타의 어머니가 하는 말들은 감독의 어머니가 생전에 하셨던 말씀이고, 음식 역시 생전에 해주셨던 거라고 한다. 

사랑하는 이들의 존재가 곁에 없지만, 현실은 계속 된다. '부재'에 대한 슬픔 보다는 '존재'하는 것들이 어떻게 이어지고, 잃어버린 것들을 어떻게 애도하는 지에 대한 영화다. 부재와 존재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생각을 하게 만든 영화였다.

'응? 내가 사는 이 세계는 뭐지?' 하는 생각마저도 들었다. 일장춘몽. 이 단어로 설명이 되려나. 

아래의 동영상은 료타 어머니의 18번 곡 [블루라이트 요코하마] 다. 


**아래의 글은 다음Daum 영화 에서 그대로 복사해온 글. 


Tip. 누구나 몰래 듣는 노래 하나쯤은 가슴 속에 품고 있다.


‘토시코 요코하마’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 료타가 아직 아기였던 시절, 남편의 바람을 이미 눈치채고 있던 토시코는 늦은 밤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던 남편을 찾아 나선다. 애써 찾아낸 그곳에서 자신이 아닌 다른 여인에게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를 불러주던 남편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토시코는 문 밖에서 남편을 불러보지도 못한 채 발걸음을 돌린다. 그리고 혼자 집으로 돌아오던 길, 레코드 가게에 들러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가 담긴 LP판을 하나 산다. 그렇게 토시코의 마음에 애증으로 남은 노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오랜 세월 그녀의 가슴 절절한 18번이 된다.

街の灯りが とてもきれいね 거리의 불빛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あなたとふたり 幸せよ 당신과 둘이서 행복해요
いつものように 愛の言葉を 언제나처럼 사랑의 이야기를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私にください あなたから 내게 주세요. 당신에게서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舟のように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私はゆれて ゆれてあなたの胸の中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 품 안에
足音だけが ついて来るのよ 발자국 소리만 따라 오네요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やさしいくちづけ もう一度 부드러운 입맞춤 다시 한번
歩いても歩いても 小舟のように 걸어도 걸어도 작은 배처럼
私はゆれて ゆれてあなたの胸の中 나는 흔들리고 흔들려서 당신 품 안에
あなたの好きな タバコの香り 당신이 좋아하는 담배 향기
ヨコハマ ブルーライト・ヨコハマ 요코하마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
二人の世界 いつまでも 둘 만의 세계 언제까지나

*[블루 라이트 요코하마]는 1960-70년대를 풍미했던 일본의 전설적인 가수, 이시다 아유미 Ishida Ayumi의 곡이다. 1968년 12월에 발매되어 오리콘 챠트에 9주 연속 1위를 차지, 100만 매 이상의 앨범 판매고를 넘기며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곡으로, 1970년대부터 80년대 전반에 걸쳐 한국에 가장 알려진 일본 노래이기도 하다. 


처음엔 이 노래를 듣고, "으~ 이게 뭐야. 촌스러." 라는 말이 절로 나왔다. 하지만 료타 어머니의 사연을 알게 되니 이걸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다. 듣다보니 은근 중독성이 있다. 

감독의 가족 이야기이면서 동시에 우리의 이야기이기도 한 영화[걸어도 걸어도]. 많은 부분을 공감하며 볼 수 있는데다 배우들의 연기가 일품이어서 실제 가족 같은 분위기를 잘 연출해냈다. 나중에 보면 또 다른 것들을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이 영화를 알게 되고, 보게 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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